|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태하 ) <1Cust92.tnt3.red> 날 짜 (Date): 2000년 7월 29일 토요일 오후 05시 32분 47초 제 목(Title): 한겨레/인터뷰 김진호 인문학데이트] ⑩ 김진호 인문학 데이트 열 번째 초청자는 신학자이자 목회자인 김진호(38) 목사다. 민중신학의 1세대인 고 안병무 선생이 창립한 한백교회 담임 목사이기도 한 김 목사는 민중신학 3세대의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현대 철학자들의 개념을 광범하게 수용해 민중신학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그는 “올바른 세상을 위해서라면 교회의 문을 닫는 것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사뭇 `과격한' 주장을 펴는 예외적인 기독교인이다. 인천의 고등학교 윤리교사이자 한백교회를 다니는 김미정(28)씨가 나와 김 목사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편집자 세상 위해서라면 교회문 닫을 수도 김미정=목사님과는 한백교회에서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토론을 하잖아요? 그래서 오늘 대화도 평소에 하던 이야기의 연장이 될 것 같은데요. 김진호=같은 교회 식구라고는 하지만 김미정 선생은 교회 안에서 저의 가장 강력한 논적 아닙니까? 부드러운 대화가 되면 좋겠습니다. 미=먼저 비교적 최근에 펴낸 책 두 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예수 르네상스>와 <예수 역사학>을 소개해 주신다면…. 진=두 책은 연작으로 기획한 것입니다. <예수 르네상스>는 최근의 예수 연구에 관한 북미 학자들의 글을 번역한 것이 주내용이고요, <예수 역사학>은 <예수 르네상스>의 내용을 민중신학의 눈으로 평가해보려고 기획한 것입니다. 미=실존했던 예수를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평가하고 조명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박정희가 죽은 지 얼마 안 됐는데도 평가가 극단으로 엇갈리잖습니까? 진=성서에서 예수라는 분은 단순히 한 사람의 개인으로 포착되지 않습니다. 예수의 실천행위는 독백하듯이 혼자 한 게 아니고, 참여자와 방관자와 적대자들과 얽힌 상태에서 한 것입니다. 그 얽힘이 예수 이야기로 남아 있는 것이죠. 또 전승자들은 그분의 이야기를 단지 암송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대와 욕망과 관심을 담아 전달한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적 연구의 단위는 예수라는 개체적 존재가 아니라 예수 사건이 돼야 합니다. 사건의 관점에서 예수에 관한 역사적 물음을 해야 하는 것이죠. 미=그렇다면 예수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진=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권력 해체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력과 싸움을 벌이는 것이 예수의 실천이었던 것이죠. 최근 예수를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도 이 점을, 그러니까 그분이 동시대 권력과 어떻게 구체적으로 싸웠던가를 많이 밝혀 냈습니다. 그 동안 민중신학자들이 제기했던 것을 증명하고 보충한 셈이지요. 미=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목사님은 권력해체를 거대권력뿐만 아니라 작은 권력, 우리 내부의 권력에까지 적용하는데, 거대 권력 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상황에서 `우리 안의 파시즘'을 이야기하는 건 전선을 흐리게 하는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진=박정희 이후 한국의 산업화가 압축 성장의 표본인데, 사회변혁마저도 압축적으로 해야 한다면 그건 압축 성장만큼이나 폐해가 날 수도 있습니다. 거대 권력에 대한 싸움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우리 내부의 문제들을 동시에 성찰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미=목사님의 권력이해에 대해 더 묻고 싶은데요, 현대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습니까? 진=푸코에게서 배운 점이 많습니다. 가령, 권력이란 사회 안에 그물처럼 펼쳐져 있고 우리 자신이 거기에 수동적으로 걸려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그물을 손질하고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통찰을 들 수 있습니다. 작은 권력이나마 그 권력을 행사하고픈 욕망에서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저는 그게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 욕망을 끊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을 질 들뢰즈는 유목민이라 했고,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표류자라고 했는데, 저는 순례자라고 하고 싶습니다. 불의한 세상과 싸우는 만큼이나 나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의 모습이 곧 순례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그렇다면 그런 현대철학을 통해 권력해체자로서 예수의 모습을 본 것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진=예수를 보는 다른 관점은 푸코 등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교회가 기독교의 거의 유일한 제도적 실체인데 이게 예수의 참모습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 면이 많았어요. 사실, 회복불능할 정도로 가렸죠. 제 경우, 교회의 눈에서 벗어나 예수를 다시 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현대철학자들에게서 교회를 넘어 예수를 볼 수 있는 눈을 길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역사학>의 원제가 `예수로 예수 넘어서기'였는데, 후자의 예수가 교회가 강요한 예수라고 한다면, 전자의 예수는 여러 사상가·실천가들의 눈으로 보면서 다시 포착한 예수라고 하겠습니다. 미=교회 얘기가 나왔으니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자기중심성 해체, 배타성 해체는 목사님이 자주 강조하시는 부분이잖아요. 그런데, 사실 교회만큼 배타적인 곳도 없지 않습니까? 진=그렇습니다. 교회의 자기중심주의나 배타성은 거의 극복 못할 정도예요. 저는 제가 교회의 담임목사 처지에 있기 때문에 더욱 강하게 교회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내야 한다고 봅니다. 목사는 교회를 살리고 성장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교회를 망하게 하고 문 닫게 하는 사람이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죽여야 진정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 교회에 필요한 것이 그것인 것 같습니다. 미=그렇군요. 이야기를 바꿔서 목사님의 정신적 젓줄이라 할 민중신학에 대해 묻고 싶은데요, 목사님은 안병무·서남동 같은 분들이 창안한 민중신학의 3세대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세대의 특징은 뭔가요? 진=80년대의 민중신학이 정치경제학적인 경향이 강했다면, 90년대 3세대의 민중신학은 문화정치적인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나 정치체제가 거대한 영역에서 인간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삶의 작은 영역, 일상생활에까지도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죠. 그래서 문화의 문제가 정치경제적인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미=라틴아메리카에서 발원한 해방신학과 우리의 민중신학은 어떻게 다른 겁니까? 진=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이나 억압체제로부터 인간의 해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러나 해방신학은 매우 신학적인 반면, 민중신학은 신학해체적이고 탈신학적이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달리 말하면, 해방신학은 전통적인 신학적 주제, 곧 구원, 교회, 메시아 등의 개념들을 해방사상과 정교하게 연결시켰는데, 민중신학은 이런 신학적 전제들을 기반부터 뒤흔들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해방신학자라면 메시아가 민중을 구원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와 달리 민중신학자는 고난받는 민중의 얼굴에서 예수를 발견한다고 말하고, 예수를 민중이 구원한다고 말하고, 결과적으로 예수와 민중이 함께 구원사건을 일으킨다고 말하겠죠. 미=교회를 비판하는 목사님 말씀을 듣다보면 기독교인으로서 정체성이 흔들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진=제가 한국사회의 나쁜 면을 혐오하고 남성중심주의의 모습을 싫어한다고 해도 한국인으로서, 남자로서 제 정체성은 그대로이듯이, 그리스도교로서, 목사로서 정체성도 그대로입니다. 미=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에게 참된 신앙과 참된 실천은 무엇일까요? 진=참된 기독교인의 모습이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존재하는 권력 질서에 순종하지 않으면 당장 보복이 오는 그런 세상에서 거기에 타협하지 않고 사는 것이 저한테는 가장 큰 과제입니다. 종착지가 어디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매번 실패하면서도 멈추지 않는 순례자이고 싶습니다.정리 고명섭 기자michael@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bong9@hani.co.kr 김진호가 말하는 김진호 뭘 공부하는지도 모르고 대학엘 들어갔고, 아는 것 없이 졸업했다. 학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친구가 준 신문광고 쪽지 하나 든 채 신학대학원엘 지원했고, 어쩌다 분위기에 휩쓸려 민중신학에 입문했다. 그때 그땐 나름대로 진지했지만, 결과적으로 대충 얼치기로 살아온 인생이다. 민중신학에 입문한 지 이제 햇수로 15년쯤 됐다. 대학원을 졸업할 때 학문의 제도권에 진입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민중신학자의 길은 이래야 한다고 말했지만, 실은 자신에게 기고만장한 자만심이 더 컸다. 그렇지만 세월은 이런 불순한 생각을 연단시키는 훌륭한 대장장이다. 적어도 지금은 왜 이 길을 가는지를 알게 됐고, 어떤 자세로 가야하는지도 깨달았다. 사람들이 나를 목사라고 부른다. 하지만 교회를 지키는 목사가 아니라, 교회를 공격하는 목사요, 교회를 변증하는 신학을 저주하는 목사다. 생존과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교회가 존속하는 한, 민중신학 연구자로서 그리고 목사로서 나의 길은 그러하다. 한데, 그런 내가 한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란다. 소신껏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고, 나름대로 그런 주장을 자제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신념과 직업간의 괴리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그런 갈팡질팡하는 얼치기 목사/신학자의 동요가 얼마의 세월 동안 더 다듬어져야 해소될지 나는 아직 모른다. 남들 잠 오는 시간이 되면 눈이 말똥해진다. 아프다가도 몸 상태가 말끔해진다. 그리고 남들이 깨어나서 일을 막 시작하려 할 때쯤 되면, 소리도 잘 안 들리고 말도 버벅거린다. 그래서 자칭 타칭 올빼미다. 기나긴 밤을 지새며, 마구 써댄 원고가 제법 많다. 하지만 누구 말에 따르면, 읽을 만한 것은 거의 없다. 그래서 매번 책을 내려할 때마다 시혜를 베풀어줄 출판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런 내게 닥친 또 하나의 유혹은 신념을 상업주의에 팔아넘기려는 얼치기 글쟁이를 향한 동경이다. 이런 유혹에 빠질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의심한다. 정말 내가 제도권 진입의 욕망에서 자유로운가,라고. http://theology.co.kr/jinho 김진호는 누구? △1962년 서울 생. △1985년 서강대 수학과 졸업.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석사). △한국신학연구소 연구원 역임. △현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연구실장. △현 한백교회 담임 목사. △현 <진보평론> 편집위원. △저서: <함께 읽는 구약성서>(공저, 1991) <함께 읽는 신약성서>(공저, 1992) <실천적 그리스도교를 위하여―예수운동의 혁명성 연구>(1992) <예수 역사학―예수로 예수를 넘기 위하여>(2000) △편저:<예수 르네상스―역사의 예수 연구의 새로운 지평>(1996) △역서:<열왕기> 상·하권 국제성서주석(19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