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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artistry �) <PPPa39-ResaleTac> 
날 짜 (Date): 2000년 6월 10일 토요일 오전 06시 32분 59초
제 목(Title): 진중권/ 마광수: sexuality와 gender 


마광수의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마광수씨 구속사건이 있었던 당시의 일이다. 어느 신문지면에 이문열
씨가 이 문제에 관해  컬럼을 썼다. 그는 문학에 사법적 잣대를 들이
대어 단죄하는 데에는 반대하면서도, 마씨의 소설엔 강한 적대감을 보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의 시각 역시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
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 어느 신문 인터뷰에서 마광수씨는 "소위 진보
적인 지식인들조차 성에 대해서 그렇게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는 데에 절망한다"고 말했다. 지금이야 물론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지
만, 아직도 진보 지식인들 중에는 '성'의 문제에 관해서만은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한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직도 찝찝한 것은, 내가 왜 그 시절 마씨의 문학에 
그토록 감정적인 적대감을 보였는가 하는 것이다. 그의 성취향이 타인
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그것을 나는 지금 반성한다. 
최근 <음대협>이라는 곳에서 다시 이 소설에 주목했다는 얘기를 듣고 
"겁이 많은" 마씨는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정말로 
부도덕한 것은 <음대협>이다. 왜? 그들은 한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나아가 그의 신체에 법적 구속이라는 위협을 가하기 때문이
다. 더 이상 이런 만행은 저질러져서는 안 되며, 정말로 우리가 경계심
을 갖고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음대협>이라는 단체의 주제넘은 
협박질이다. 

<알라딘>의 마술램프는 작가 자신이 자신의 성적 취향으로 고백하는 
'페티쉬즘'에 입각한 52가지 섹슈얼 팬터지를 옴니버스 스타일로 다룬 
소설이다. '성'은 그저 육체만 부딛히는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신체접
촉과 함께 감성과 상상력이 함께 어울어지는 행위이다. 거기에서 '섹슈
얼 팬터지'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발휘한다는 것은 매우 당연
하며, 그것이 문학적 표현을 얻는 것 역시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외려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이런 류의 문학은 서양에
서는 이미 백여 년 전에 시대를 앞서 가는 몇몇 지식인들에 의해 사회
적 물의를 일으키며 등장하기 시작하여, 오늘날엔 아예 대중의 담론이 
되어, 저녁마다 TV 토크쇼우의 화제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말이다. 

서양에서는 기독교가, 동양에서는 유교가 육체와 성과 쾌락을 배제하
고 정신성만을 추구하는 금욕주의를 고집해 왔다. 계몽을 말하는 '근대
화' 역시 금욕주의를 폐기하지 않고 그것을 세속적인 형태로 온존, 강
화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마광수씨의 작품은 그 자체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 그처럼 유약해 보이는 사람이 이렇게 앞뒤 콱콱 막혀 보수적
인데다가 언제라도 위해를 가할 준비가 된 폭력적인 사회에서 제 목소
리를 내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그의 작
품들은 목청 높여 '성의 해방'을 얘기하는 운동가의 촌스러운 강박관념 
없이 제 존재로부터 자연스레 흘러나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가 존재하는 방식의 예술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 그의 소설을 읽으며 당혹감을 느낀다. 그처럼 유약
하며 여성적인 이미지를 주는 사람에게서 가끔 나타나는 어떤 마초 기
질 같은 것 때문이다. 가령 그가 좋아하는 여성은 정말로 "하렘"의 여
인들처럼 남자를 위해 모든 서비스를 다 해주는 성적 노예와 같다는 
느낌이 든다. 또 '감방에 갇힌 여성의 수가 남성의 1/5 밖에 안 된다'
며, 그것을 남성이 더 고생하는 증거로 해석하는 그 태연함도 나를 당
혹시킨다. 가령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법정구속률은 사회적 평균치를 
훨씬 상회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일반 시민들보다 더 고생을 하는 
건 아니다. 한 마디로 그에게는 또 하나의 '성' 문제, 즉 'gender'문제
에 대한 의식이 취약해 보인다. 그가 한탄하는 성의 보수성이 가부장
독재와 관계가 있다면, gender에 대한 분석 없이 sexuality의 보수성을 
한탄하는 것 자체가 좀 우스운 것이 아닐까?

그가 태연하게 호스티스들과의 관계를 팬터지 안에 집어넣는 것을 보
면, 나는  매우 혼란스럽다. 성은 자유로워야 한다. 그것은 주책없이 
남의 사생활 속으로 들어오는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동시에 다른 성을 성적으로 수단화하는 다른 우월한(?) 성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사실 우리 나라처럼 성적으로 자유로운 곳도 없다. 
그가 한탄해마지 않는 그 '위선' 때문이지, 어떻게 보면 우리 문화 자
체가 매춘문화다. 그리고 이는 물론 압도적으로 남성을 위한 것, 그 과
정에서 여성은 간단히 수단화된다. 매정하겠지만 나는 마광수씨가 성
을 보는 시각이 우리 사회에 팽배한 철저한 마초적 시각과 어떻게 구
별되는지 잘 모르겠다. 이를 그는 어린이의 친진난만함을 가지고 용감
하게 발설했을 뿐이고, 뭔가 켕기는 어른들이 거기에 발끈하여 소동을 
부리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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