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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hild (:: 아리 ::)
날 짜 (Date): 2000년 3월  8일 수요일 오전 12시 12분 55초
제 목(Title): 잡담 - 지나가는 얘기






 철학하는 친구가 있다. 전공은 주자로 잡았다고 한다.

얼마전 만나서 이런저런 서로의 얘기를 늘어놓았다. 서로에게

무척 자극이 되는 우리 사이다.

 그 친구가 얼마전 주자어류 번역에 참여해서 그 결과가 곧

나온다고 한다.

 주자를 공부함에 있어서 일차자료는 세가지가 있는데,

주자가 낸 단행본 격의 책, 그리고 논쟁서신을 묶은 주자집이

라는 문집, 그리고 제자들이 필기한(?) 주자어류 세가지라고

한다. 얼마전 먼저 팀이 1차로 1,2권을 냈고, 이번에 3,4권이

나오는 것이다. 근데 한자로 된 책의 양은 얼마 안된다.

손바닥을 쫙 펴면, 엄지에서 새끼까지 한 20cm? 그런데 번역

의 결과는 약 40권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1-4권 합해봤자, 첫번째 책의 3분의 1분량의 번역이라

한다. 역시 한문이란.....^^;

 주자학에 있어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

10년? 20년? 아니다. 공공연히 얘기하기로 무려 200년 차이가

난다고 한다. 일본의 주자학도들이, 인문학도들이 엄청난 연구를

해놨기에 우리나라에서 주자학을, 아니 동양철학을 공부하려면

주로 중국과 일본의 학문성과를 바탕으로 공부해야한다고.

 공부에 있어서 망치,톱같은 역할을 하는 공구류라고 불리는

여러 도구책들이 있는데, 그게 다 일본, 아니면 중국에서 축적한

결과다.

 예를 들어, 주자어류에 '오늘 주선생님이 이씨와 말씀하시길..'

이라고 있다면, 이 '이씨'라는 사람은 누굴까? 첨엔 모른다...-_-;

 오늘날 어떤 대학원생이 '김교수님이 오늘 박씨랑 말씀 나누시길..'

이라고 기록했는데, 이 원생이 뭐하러 박씨의 약력, 생년 등을 옆에

기록한단 말인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일본에서 나온 인명사전이 있다. 이 인명사전

에는 중국여러 책에서 나온 모든 인물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씨'를 항목을 찾으면 수십수백명의 인물이 주르륵 나온다.

거기서 주선생이랑 연대가 틀린 인물은 제끼고 하나하나 검토해서

'이씨'가 누군지 알아내는 것이다. 당연히도 이 사전은 거의 한아름

나오는 양이다. 그런데 이런 사전을 일개 출판사가 무려 30년 동안

이나 교수 하나 믿고 돈을 지원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책을 보다가 누가 뭔 말을 했는데, 사자성어처럼 어째 

의미가 있는 말인 것 같다. 그러면 중국에서 낸 또 커다란 사전이

있는데, 여기에는 중국고전에 나온 모든 단어,어구가 정리되어 있

다고 한다. 그래서 한 어구를 찾으면 그 어구가 어느어느 책에서

나온 것인지 어디어디서 참조되고 쓰였는지 알 수 있다고.

 중국은 아예 국가에서 인문학에 엄청난 지원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국립출판사 격의 한 출판사의 편집장은 그 힘이 중국사회,

정권 내에서도 상당할 정도라고 한다. 부러웠다.

 우리나라는? 난 아직도 규장각의 자료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예전에 들었던 기억으로,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가 말하길, 규장각

과 정신문화연구원에 가장 많은 사료들이 있는데, 규장각의 경우,

얼마전 우리나라쪽 사료에 대한 해제 작업이 끝났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얼마후 규장각에 소장된 중국자료들에 대한 작업에

들어가는데, 4년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서울대 동양사학에 있는

친구가 송대를 맡았다고, 주자학을 하는 이 친구한데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줄 계획이라고 했다. 아직 자료조차 정리가 되지 않았

다니, 몇 백 년 뒤떨어졌다는 말도 당연한 것 같다.

 우스개로 누가 그랬단다. 일본애들은 참 불쌍하다고. 뭣 좀 파고

들어 연구해보려면 쟁쟁한, 이미 무덤에 간 선배들이 엄청난 논문

을 써내서, 그걸 딱 보고 있으면, '씨바, 이거보다 어떻게 더 잘

쓰냐' 머리 아픈데, 한국애들은 그 점에 있어서는 무지 행복한 사

람들이라고. 그냥 가면, 기냥 가면 그게 곧 길이니..........^^;

 
 
 그래서 규장각 얘기를 하다가, 친구가 그랬다. 사실은 자기들이

주자어류를 번역할 생각을 감히 갖게 된 것은 규장각에서 선배들

이 얼마전 발견한 책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왠 영인본 책을 

보여주었다. 이의경(기억이 애매하다...^^;) 이라는 사람이 한 

400여년 전에 왕명을 받아 주자어류를 붙잡고 공부한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자어류를 보다가 막히는 부분에 대해 열심히 연

구한 책이기에 자기들도 그 책을 통해 막히는 부분을 해결하고

번역까지 할 생각을 갖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 번역이

조금 다르게 평가 받은 것이, 일본이나 중국의 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우리나라 고유의 학문 성과를 바탕으로 이루어졌기에 그렇

다고 했다. 400년의 차이. 친구는 '400년 동안 한 게 별로 없는

것 같아', 웃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 책을 잠깐 봤는데, 한문책을 많이 본 적이 없어서 원래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는데, 정말 웃겼다. 왜냐하면 동그라미도 쳐저

있고, 엑스표처럼 친 것도 있질 않나, 틀리면 (물론 세로로지만)

두 줄로 찍찍 긋고, 연결된다고 생각한 부분은 조그마하게 동그라

미를 쳐서, 우리가 화살표쳐서 책에 연관을 표시하듯 선을 그어서

표시하지 않나......^^;  정말 공부한 흔적이, 열심히 머리굴려

필기한 흔적이 역력했다.........^^;

 

 친구가 또 웃기를, '저 쉐이랑 나랑 생각하는 거랑 모르는 게

비슷한 것 같아. 주자어류 보다가 막혀서 저 책 보면 쟤도 똑같히

몰라서 연구하고 공부해놓았더라고....'



 그 친구의 흘리는 듯한 웃음이 부러웠다. 먹고사는 문제에서는

내가 나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을 손에 넣은 친구

가 부러웠다.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이 그것만이 아니었기에 그와 나

의 길이 갈린 것이지만, 내 손에서 멀어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은 그저 내가 욕심이 많기 때문이

아닐 것이니.

 

 


        난 끊임없이 누군가를 찾는다.            
                                                metheus@iname.com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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