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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illes ( riverside)
날 짜 (Date): 1999년 12월  4일 토요일 오후 02시 33분 23초
제 목(Title): [펌] 삼국지 번역본들의 오역실태



 삼국지 번역본들의 오역 실태 
-이문열 <평역 삼국지>를 중심으로
                                                        박   정   국 
                                              (전 코리아타임스 기자)



   제1. 글머리에

   1. 심각하고 본질적인 오역들 

 필자는 10대에 {삼국지}를 읽기 시작해서 중년의 나이를 넘긴 지금까지 참으로 
여러 종류의 삼국지를  읽었다. 단행본 번역본은 물론이고 그 당시에는 신문에도 
{삼국지}를 연재했었는데 신문연재의 삽화의 장면들이 마치 어릴 때 본 영화의 
장면들처럼 지금도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최근에 소위 {삼국지}의 번역본(飜譯本)들을 원문(毛宗岡本)과 대조해서 보면서 
참으로 너무나 많은 오역을 발견하고 놀랐다. {삼국지}가 본격 문학 작품도 아니요 
뭐 그렇게 난해한 책도 아닌데 이렇게 눈에 뻔한 오역들이 참으로 오랫동안 
방치(放置)되어 왔다는 것은 결국 소위 번역자들의 안일하고 무성의한 태도 
때문이라고 보았다. 필자 자신은 참으로 한문(漢文) 실력이 천박(淺薄)하여 감히 
한문 원전을 번역할 수 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필자의 
눈에 너무도 명백하고 본질적인 오역들이 너무 쉽게 너무 자주 여기저기에 
발견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2. 오역의 질과 양

 그 오역들은 양(量)과 질(質) 양면에서 문제된다고 본다. 여기에서 '양'이란 너무 
자주 너무 많이 그런 오역들을 양산(量産)하는 것을 말하고, 질이란 내용의 
본질(本質)에 관련된 오역을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는 것이지만, 번역상의 
실수는 양적으로는 너무 많지 않게 질적으로는 본질적인 부분을 오역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여기에서 '본질적'(本質的)이라고 말하는 경우의 
'본질적'이란 그 오역이 삼국지의 내용의  중요한 부분과 관련된 것이어서 결국 그 
부분의 오역은 내용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경우를 
말한다. 예컨대, 사물(事物)의 존재 여부, 행위의 존부(存否),행위의 주체(主體)와 
객체(客體)의 오해, 사물과 행위의 수(數)에 대한 오해 등은 본질적인 오해이다. 
그 오역이 너무 많다. 그런데, 지금 소위 {삼국지}라고 불리는 
{삼국연의}(三國演義)의 국내 번역본들의 경우는 너무나 본질적인 오역들을 너무 
많이 양산하고 있어서 문제이다. 

 더구나 {삼국연의}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는 [업중가]의 번역이 거의 반대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는 사실에 경악(驚愕)을 금치 못했다. 필자가 이 [업중가]의 
오역을 지적했을 때 모 인기있는 번역자는 그것이 어디에 속한 가사인지도 몰라 
필자에게 반문했다. "업중가가 어디에 있는 거지요?"

   3. 언어해석의 원칙

 문명 인류의 언어의 해석에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 우선은 그 글의 필자가 그 글 
속에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느냐를 아주 치밀하게 탐구해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타난 문장의 단어와 단어의 개념상의 의미에 우선 유의하고, 그 다음에는 문장의 
논리적 선후 관계에 유의하여 그 단어나 구나 문장이 상호 관계에서 어떤 의미로 
쓰여야하는가를 탐구해야하는 것이다. 결국, 말의 의미는 
관계(關係:relationship)인 것이다.

 {삼국지}는 우선 단적으로 말해서, 싸움 이야기다. 그런데, 전쟁을 하는 당사자가 
어떤 작전으로 전투를 벌이는지, 적장과 아군 장수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된 이야기책을 전쟁이야기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이야기가 
정사(正史)에 있느냐 없느냐를 논하기 전에 우선 번역서로서는 그러한 원본의 
내용을 충실히 이해하고 옮겨야 한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물건이 진짜냐 
가짜냐를 말하기 위해서는 그 물건의 사양. 제조공정(製造工程)을 정확하게 
알아야한다는 말이다.

 사실, 정사냐 아니냐의 문제는 1천년 뒤의 멀리 떨어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또한 정사라는 것이 사실은 그 시대의 정치세력의 영향을 받아서 
문자 그대로 정사일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당대(當代)에 경험하고 알고있는 
역사를 일본(日本)이 바로 이 시대에 왜곡(歪曲)을 획책(劃策)하려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따라서, {삼국지} 또는 {삼국연의}(三國演義)의 독자로서는 그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재미를 만끽(滿喫)하면서 거기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4. 이문열 {평역삼국지}를 문제삼는 이유
 이문열 {평역삼국지}는 몇 가지 점에서 아주 이상한 책이다. 이 책은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삼국연의}를 번역하면서―그는 <모종강본>을 근거로 해서 
번역했다고 밝히고 있다--시종일관 {삼국지}, 즉 {삼국연의}를 헐뜯는 것으로 
일관했다. 그는 진수(陳壽)의 {三國志}를 소위 정사로 보고 삼국연의를 번역하면서 
그런 역사적 관점에서 '허구이다', '과장되었다'는 표현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이씨가 왜 그런 의분심을 느꼈는지, 그의 어떤 역사관이 시킨 일인지는 몰라도 
조조(曹操)를 복권하고, 미화하고 우상화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필자는 이씨의 코멘타리(commentary)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저술의 
방법론상(方法論上)으로 우선 문제가 있다고 본다. 참으로 이상한 이야기자만 
이씨는 {삼국연의}라는 물건을 팔면서 "이 물건은 가짜요!"라고 천하에 외치면서 
그 물건을 팔았는데도 이상하게 그 물건을 많이 판 것으로 되어있다. 1988년 
초판을 찍은 이래 1997년 1월까지 60쇄가 넘게 찍었으니 장사치곤 희한한 장사를 
한 셈이다. 그의 문필가로서의 명성에 덧붙여져서 그의 {평역삼국지}도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면서 "대학논술의 필수교재"라는 광고문안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필자의 소박한 생각으로는 <진수>의 {삼국지}를 번역하면서 그 안에서 나관중의 
{삼국연의}를 비판하는 것이 순리(順理)요 인간적 도리(道理)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S회사의 전자제품을 팔려면 D회사의 전자제품을 들고 
"이 물건은 가짜요!"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S회사 전자제품이 진짜인 것을, 다시 
말해서 S회사 제품을 들고서 선전하면서 팔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문열씨는 D회사 제품을 들고 그 상품이 "가짜요 열등한 제품"이라고만 외쳐댄 
것이다. 그런데도, 진짜라고 주장한 S회사 전자제품을 많이 판 것이 아니라 
가짜라고 주장한 D회사 제품을 아주 오랫동안 아주 많이 팔았으니 참으로 장사치곤 
아주 이상한 장사를 했다는 말이다.
 
 {삼국지}의 필자 진수가 군령위반(軍令違反)으로 제갈량에게 참수형(斬首刑)을 
당한 진식의 아들인 점을 감안한다면 그가 아무리 역사가의 양심으로 책을 
썼다하더라도 그가 유비.제갈량을 중심으로 한 촉한의 집권세력에 대하여 
일말(一抹)의 편견도 없이 사실을 기록했다고 보기 어렵다. 아주 소박하게 
이야기해서, 수백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고 수천리 머나먼 이 조그만 나라의 이 
아무개가, 수억의 중국 인민들이 수백년 동안 한결같이 믿어 의심치 않는 
신념체계(信念體系)에 도전하면서까지, 왜 그토록 조조를 복권시키려고 기를 써야 
했을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단지 그 이전의 소위 {삼국지}의 번역작가들과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라면 몰라도.
 
 조조를 "간악하고 흉포한 역적"으로 보는 관점은 나관중(羅貫中)이란 작가가 
{삼국연의}라는 작품을 통하여 중국인민들에게 이식(移植)시킨 정서(情緖)가 
아니라, 나관중이 태어나기 수백 년 전부터 있어온 사실이요 하나의 신념체계였다. 
사실, 민중적 지도자라면 빈한한 가정 출신으로 아주 어릴 적부터 가난한 민중의 
삶을 경험한 유비가 훨씬 그 이미지에 맞다. 조조는 그의 조부가 환관으로 그의 
아비는 억만전으로 관직을 산 파렴치한(破廉恥漢)이요, 따라서 비교적 유복한 
상류생활을 경험했었을 조조가 부패할 대로 부패한 그 당시 조정에서 효렴이라는 
정식 등용의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이 "민중적 지도자"로서는 걸맞지 않다. 
 
 또한, 아니할 말로 그렇게 기를 쓰고 조조를 미화하고 복권시켜 무슨 실익(實益)이 
있는가? 가뜩이나 영악할대로 영악한 이 시대의 청소년들에게 조조의 악령(惡靈)이 
들어가면 우리 사회에 "검은 악마"를 양산할 뿐이다. 필자는 {양자강}(The 
Yangtze)이라는 책자를 갖고 있는데, 거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Chinese say "Speak of T'sao T'sao, and there he is," instead of "Speak of the 
Devil," but with the same sense.(p.140, The Yangtze, by Lyman P. Van Slyke, 
1988) 중국인들은 "귀신" "악귀"와 동의어로 사오사오(주:조조의 중국어 발음)라는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문열의 {평역삼국지}의 또 다른 이상한 점은 장사를 하면서 그 물건의 구성관계, 
제조과정은 정확하게 알고 밝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삼국연의}의 번역만은 완전무결해야할 텐데 너무 오역이 많다는 것이다. 아주 
심하게 이야기해서, "나관중의 {삼국연의}의 내용도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 
책이 잘못되었다거나 과장되었다고 어떻게 단언(斷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몇 가지 문제점 때문에 필자는 이문열씨의 {평역삼국지}의 오역을 중점적으로 
문제삼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시중(市中)에 나와있는 십여종이 넘는 삼국지 
번역본들은 등장 인물과 지명에 한문(漢文)을 병기(倂記)조차 하지 않은 상식 밖의 
것, 흥미중심의 내용을 요약한 것 등도 있어서 논급(論及)할 대상이 못된다. 이런 
모든 아류(亞流)들은 가뜩이나 대부분의 삼국지의 "실패한 독자들"을 더욱 
실패하게 할뿐이다. 우리 사회에는 어찌 된 연유인지는 몰라도 누구에게나 물으면 
거의 모두 "삼국지를 읽었다"고 말하고 심지어, "삼국지를 안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단1분도 채 이야기하지 않아서 거의 전부의 삼국지의 독자들이 별로 읽은 
것이 없으며 아는 것도 없음을 안다. 필자는 이들을 "실패한 독자들"이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이 땅의 번역자들도 이 현상에 기여한 점이 있다고 본다.


   제2. 오역의 유형

 아래에 삼국지의 번역본들의 많은 오역들 중에서 대표적인 몇가지 사례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자한다. 원전은 한국의 번역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모종강본(毛宗岡本)을 사용했다. 

   1. 단어의 의미 오해에서 비롯된 오역들

 *{삼국연의}에는 '좌우'라는 말이 수십 번 나오는데 거의 대부분이 
측근,아랫사람(從人)의 뜻이다. 이 말의 의미를 오해해서 
'급체좌우소패지검'(急 左右所佩之劍)이란 표현이 있는 부분에서 '유비는 좌우에 
차고있던 칼을 급히 뽑아들고'라고 번역한 것(이문열. 7권 73쪽)은 전혀 오역인 
것이다. 위의 경우 유비는 칼을 차고 있지 않았으며 측근의 칼을 뽑아든 장면이다. 
*지명을 인명으로 오해하여 '조자룡지취계양'(趙子龍智取桂陽)을 '조자룡이 지혜로 
계양을 사로잡다'운운하기도 한다.(이문열. 6권 195쪽) 여기에서 취(取)는 '얻다'의 
뜻이며 계양은 지명인 것이다. 

 *또한 하나의 인격자를 두 인격자로 오해하기도 하여 
'차사전이.신인필불긍오폐하야'(此詐傳耳.神人必不肯誤陛下也)를 '아마도 잘못 
전해진 것이겠지요.귀신과 사람이 아울러 폐하를 그릇되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번역하여 신인(神人)을 '귀신과 사람'으로 오역하기도 
한다.(이문열, 10권. 275쪽) 여기에서 신인(神人)은 '귀신과 사람'이 아니라 신인, 
즉 신통력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두 인격자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서 또한 신인은 바로 이 글의 다음에 나오는 
문장 속의 사파(師婆), 즉 무당을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신인(神人)을 '귀신과 사람'으로 두 인격자로 본 이 오역자는 드디어 
[업중가]편의 패왕강작아녀명(覇王降作兒女鳴)에서 패왕(覇王)을 '패자와 
임금'으로 패왕, 즉 천하 일인자, 제후의 뜻을 가진 하나의 인격자가 아니라 
'패자와 왕자' 즉 두 인격자로 보아 '패자며 왕노릇 아녀자를 울리는 법'이라고 
오역하고 있다.(이문열. 8권 228쪽) 여기에서는 패왕은 조조를 말하며 '패왕이 
자잘하게 아녀자의 울음을 우나'로 되어 패왕인 조조 자신이 어린아이나 여자처럼 
징징 울어댄 사실을 말하는 것이지, 패자나 임금이 아녀자를 울리는 것이 아닌 
것이다.

 *자신을 찾아온 관공(關公)의 혼령을 달래며 보정(普淨) 스님이, "석비금시이니 
일체휴론이라(昔非今是,一切休論)를 "지난 날은 이제가 아니니 일체 말하지 
말며"라고 요령부득의 번역을 하는데(이문열, 8권. 196쪽) 이것은, "지난날은 
그르다 이제는 옳다 일체 말하지 마시요"라고 해야하는 것이다.

 2. 논리적으로 모순인 경우

 * 적장과 적군사들을 유인하여 화공(火攻)을 하기로 되어있는 계곡에 제갈량이 
진채, 즉 주둔 막사를 친다는 것은 도대체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공명은 모든 장졸들에게 할 일을 정해준 뒤 스스로는 한 갈래 군사를 이끌고 
상방곡 곧 호로곡에 진채를 내렸다'고 번역하고 있다.( 이문열, 10권, 156쪽) 
여기에 나오는 상방곡은 바로 적군, 여기서는 위나라의 사마의와 그가 이끄는 
군사를 유인하여 제갈공명이 화공(火攻)을 하려는 곳이다. 물론, 이 부분은 
'……자인일군, 근상방곡하채'(……自引一軍,近上方谷下寨)의 오역으로서 바른 
번역은 '……스스로는 일군을 이끌고 상방곡 근처에 하채했다.'인 것이다.

 *병부(兵符)는 병권(兵權), 즉 군사지휘권의 표상이며, 병권을 가지지 못해 모반한 
장수 위연이 제갈량 사후에 병부가 자기가 아닌 양의가 가지고 있어서 모반을 
했는데도 작중의 양의가 '……내가 그에게 병부를 보낸 것은……'(이문열, 10권. 
194쪽) 운운하고 있는 것은 사물의 존재여부,논리적 관계에 대한 오해인 것이다. 
이 부분은 '……금아이병부왕'(……今我以兵符往……)의 오역으로서 '내가 병부를 
가지고 가는 것은……"로 번역해야하는 것이다.

 *또한, 제갈량 같은 대병략가를 속일 수 있는 계책이라면 제갈량이 적지에 있던 
없던 상관이 없는 일인데도, '걱정마시오. 이번에 내가 순우단을 보낸 것은 다만 
제갈량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오. 다행히 그 사람이 여기없어'라는 번역을 
하고도(이문열, 9권, 24쪽) 아무 생각이 없다. 이것은 '오저조계, 
단만불과제갈량이. 천행차인부재……'(吾這條計, 但瞞不過諸葛亮耳. 
天幸此人不在……)의 오역으로서 ' '내 이번의 계책은 제갈량만은 속이지 못할 
것이었는데 다행히 이 사람이 부재라……"로 되어야하는 것이다.

 *최일선의 전장에서 갑자기 옷 한 벌을 마련하라는 명령은 제갈량 같은 합리적인 
지휘관이 내릴 수 없는 명령인데도 '모든 군사들은 옷 한 벌씩을 따로 
마련해……'운운(이문열, 9권. 158쪽)의 말도 안 되는 오역을 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 부분은 '매군요의금일폭, 한일경시분응점. 무자입참'(每軍要衣襟一幅, 
限一更時分應點. 無者立斬)의 오역으로서, '모든 군사는 옷깃 한 폭을 준비하여 
1경까지 점검을 받으라. 준비하지 못하는 자는 선 채로 참한다."가 바른 번역인 
것이다. 이 장면은 10만 명의 군사가 옷깃에 모래를 담아 하룻밤 새에 토성을 
쌓았다는 남만 정벌 때의 이야기다.

 *왕토사상(王土思想)의 고대국가에서는 군대도 천자(天子)의 군대이며, 더구나 
장수(將帥)의 모반(謀反) 여부를 알아보기 위하여 10만 대병을 이끌고 나타난 천자 
앞에서 장수가 자신의 위엄(威嚴)을 과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위주 조예가 갑자기 대군을 이끌고 그리로 온 
까닭을 알 리 없는 사마의는 오히려 그걸 천자에게 자신의 위세를 떨쳐 보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병마를 정돈하고 갑옷 입은 군사 몇 만을 딸리게 해 조예를 
맞으러 갔다'(이문열, 9권. 201쪽) 운운하고 있다. 물론, 문제 부분은 
욕령천자지기위엄(欲令天子知其威嚴)의 오역으로서 '……천자에게 그 위엄, 즉 
천자의 위엄을 알게 하려고'가 바른 번역인 것이다. 이 번역자는 기(其) 운운 
표현만 나오면 10중 팔 구를 오역하고 있다. 한문에서 기(其) 운운의 표현은 앞에 
나온 선행사(先行詞)를 받는 말이며, 여기에서는 앞에 나온 천자(天子)를 받아 
따라서 '기위엄'(其威嚴)은 '천자의 위엄'이지 '자신의 위세', 즉 사마의의 위세가 
아닌 것이다. 논리적으로도 사마의의 군대는 위나라 천자의 군대이며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나 갑자기 천자가 내방(來訪)했으니 천자의 위엄에 어울리는 
영접을 해야겠다는 신하된 마음가짐으로 군세(軍勢)를 갖추어 나온 것이다. 그 
뒤의 사마의가 어느 시점에서 위나라 조정에 모반할 심정을 굳혔는지, 사마씨가 
위나라 조정을 장악하고 전횡(專橫)을 했는지는 이 문장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는 사마의는 천자 조예의 충성된 신하일 뿐이다. 


   3. 번역자의 자의(恣意) 또는 고정관념이 개입된 경우

 *번역자의 고정관념이 번역과정에 작용해서 말도 안되는 오역을 하고 있는 경우도 
본다. 사마의가 제갈량과의 전투를 기피하여 수성(守城)만하고 싸우지 않다가 
모처럼 군사를 내어 나왔는데 "부친하고반욕공기후?"(父親何故反欲攻其後)라고 
하니 군대를 끌고 나와서 까지 뒤로 빠지는가 라는 고정관념이 지배하고 있다가 
'아버님은 무슨 까닭으로 오히려 뒤편을 맡아 치려하십니까? 이미 대군을 내기로 
해놓고 자신은 뒤로 빠지는 사마의가 이상했던지'라고(이문열, 10권. 159쪽) 말도 
안 되는 오역을 하고 있다. 게다가, 그 뒤의 해설까지 덧붙여져 오역을 더욱 
완전하게 만들어버렸다.

 사마의는 전장에 언제나 두 아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아무리 부자간이긴 하지만 
야전군사령관이기도한 사마의에게 감히 아들 녀석이 "왜 아버지는 뒤로 
빠지느냐?"고 말 할 처지가 아니다. 그리고 사령관이 작전 시에 어디에 
위치하느냐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사령관이 정하는 것이지 수하 장수나 병사가 
함부로 논할 문제가 아니다.

 이 부분은 "왜 아버지는 앞은 치지 않고 그 뒤를 치려고 하십니까?"가 바른 
번역이며, 따라서 여기서 기후(其後)는 사마의가 서게 되는 위치가 아니고 
공격하려고 하는 적 진지의 위치인 것이다. 지금 공격자의 위치에서 앞의 진지를 
제쳐두고 왜 그 뒤에 있는 진지를 공격하려고 하느냐의 질문인 것이다. 한문에서 
'기'(其)는 소위 대명사의 소유격으로서 영어로 표현하면 its. his. her, 
their이며 앞에 언급된 어떤 선행사를 받는 것이다.

 *이러한 번역습관은 결국 어떤 상황을 창작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공명은 
상방곡에서 몸을 빼내 기산 위에 앉아있었다'(이문열, 10권. 160쪽)의 번역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제갈공명의 전략과 작전과 계책을 '과장되었다' 
'허구이다'라는 말로 일관되게 제갈량을 폄하(貶下)하고 매도(罵倒)해온 이씨의 
뇌리에도 제갈량의 기문둔갑(奇門遁甲)의 재능이 잠재(潛在)하고 있었던 것인가? 
마치 슈퍼맨(superman)처럼 상방곡에 있던 제갈량이 어느새 몸을 빼내 기산 위에 
앉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이 '공명정재기산"(孔明正在祁山)의 번역인 걸 
알면 그야말로 기절을 할 노릇이다. 이 부분은 '공명은 바로 기산에 있었다'가 
바른 번역이다. 여기에서 정(正)은 부사로 쓰인다.(또 다른 예로 정시(正是)→바로 
그렇다).

 이 오역이 나오게 된 경로(經路)를 살펴보면 참으로 재미있다. 이문열씨는 그의 
{평역삼국지}에서 공명이 사마의를 끌어들여 화공을 펼치는 이 상방곡 전투의 
곳곳에서 오역을 하고 있어서 이씨는 이 정교하고 치밀한 작전의 의미와 
전개과정을 명쾌하게 알고있지 못한 게 분명하다. 

 우선 이 기산이란 지명에 대해서 설명해야겠다. 우리나라도 명명법(命名法)이 
동일하지만 중국의 경우에도 '……산'이란 이름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리가 
통상(通常) 남산(南山)이라고 하는 경우, 물리적(物理的)인 산 그 자체가 남산인 
동시에 그 일대의 지명(地名) 또한 남산인 것이다. 지금 기산이란 곳에 촉나라 
군사의 본채가 있고, 제갈량이 사마의를 끌어들여 화공을 할 기산 근처에 제갈량의 
진채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기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제갈량이 지금은 
'바로 기산' 즉 지명으로서의 기산이 아닌 바로 물리적인 산, 기산에 있다는 뜻인 
것이다. 이 기산의 아래에 있는 계곡이 상방곡이며 물론 제갈량은 상방곡에 있은 
적이 없는 것이다. 적군을 끌어들여 불로 태워 죽이려고 하는 그 계곡에 제갈량이 
왜 가겠는가 말이다. 거기에는 식량저장고로 위장한 인화물질(引火物質)이 가득 
들어있는 가짜 진채가 서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씨는 촉나라 야전군 사령관인 
제갈공명이 얼마 전에 '상방곡에 진채를 내리고'라고 오역을 하고 나서 다시 그 
오역에 근거해서 기산에 있는 제갈공명을 설명하기 위해서 '상방곡에서 몸을 빼내' 
운운하며 원전에도 없는 말을 덧붙였으니 이쯤 되면 번역이 아니라 가히 
창작이라고 할만하다.  

   4. 전혀 엉뚱한 번역이 된 경우

 *{삼국연의}에서 제갈량의 남만 정벌은 국내 번역서의 경우 대개 100쪽이 넘는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전투와 작전도 복잡하고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그 작전이 
이루어지는 지역이 '동'(洞)인데 이것을 국내의 거의 전부의 번역서가 '동네', 
'마을', '부락' 등으로 번역하고 있어 전혀 원의(原義)를 전할 수가 없게 
되어있다. 

 언어의 의미는 그 언어의 사용자들이 거주하는 시간과 공간 경험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제약을 받는다. 다른 말로 하면, 언어에 대한 개념형성(槪念形成)은 
그러한 경험들이 축적되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 
독자들이 동네나 마을이나 부락이라는 단어들에 대하여 가진 이미지나 개념내용은 
이 '동'의 개념과 맞지 않다는 말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어쩔수 없이 
가지고있는 '동네'나 '마을'의 목가적 개념이나 의미가 전혀 아닌 것이다. 
여기서의 동은 '동굴', 그것도 거대한 노천동굴(露天洞窟)이며 남만족들은 그 
동굴과 동굴을 부교(浮橋)로 연결하고 성곽으로 둘러쳐서 요새화(要塞化)해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남만족(南蠻族) 중에는 그야말로 땅굴을 파서 살고있는 종족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토혈(土穴)이다. 동(洞)을 동네로 번역한 번역자는 이번에는 이 토혈을 동굴로 
번역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이문열, 9권. 78∼197쪽)

 *그렇게도 무겁던 짐이 늙은이에게는 가볍기 그지 없어 보였다(이문열, 7권. 
315쪽)→조조편의 좌자(左子) 이야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짐꾼들의 짐을 좌자가 
대신 져주는데 이 좌자가 도술(道術)을 부려서 귤 속의 속살이 다 빠져버리고 그 
짐이 전부 가벼워진 현상이며, 원문은 "이 선생이 졌던 짐은 
가벼워졌다"(但是先生挑過的擔兒都輕了)로 되어있다. 경료(輕了)는 '가벼워졌다'. 
이른바 완료형(完了形)이다.

   
   3. 업중가( 中歌)에 대하여

   1. 업중가란 무엇인가?

 [업중가]는 {삼국연의} 중에서 가사의 제목이 붙여진 몇 안 되는 가사들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가사의 명칭 여부에 관계없이 그 형식상의 의미는 같다. 여기서 
필자가 형식상의 의미라고 하는 경우의 형식이란 가사가 {삼국연의} 중에서 
형식상으로 한 장(章)의 서술(敍述)이 끝난 다음에 제시되는 형식상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요, 형식상의 의미란 따라서 그 앞에 진술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하여 
다시 축약(縮約)하여 표현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업중가]는 조조의 생애를 집약하여 표현한 시가이며 그 내용 또한 바로 
앞 장 까지 저자가 표현한 내용들(병략가이면서 시문에 능했던 사실, 천자를 
볼모로 폭정을 한 사실, 조조가 환상과 악몽에 쫓긴 사실, 무당을 불러와 굿을 해 
보려고 했으나 일평생 너무나 많은 사람을 죽여 죄를 지은 몸이라 빌 곳이 없음을 
알고 포기한 사실, 임종시에 패왕답게 의젓한 죽음을 맞지 못하고 어린아이나 
여자처럼 징징 울어댄 사실, 좀스럽게 애첩들을 불러 향을 나눠준 사실)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2. 업중가의 중요성 
 [업중가]는 조조의 생애를 집약한 시가이기 때문에, {삼국연의}의 편제상의 
비중으로 보나 조조가 작중인물로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나 대단히 중요하다. 
더구나, 조조를 간웅(奸雄)이나 역적(逆賊)으로 보는 {삼국연의}의 관점(觀點)에 
비해서 조조를 새롭게 조명하려는 일부의 학자들은 이 시가를 그러한 측면에서 
해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 그러한 관점에 입각하지 않은 사람조차도 이 
시가의 해석에서만은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서 이 시가가 마치 조조를 
미화하고 조조의 생애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표적인 시가로 오해하고 있어서 이 
시가의 번역문제가 중요한 의미를 띈다.

 3. 정반대로 해석된 [업중가]

 우선 결론부터 말한다면,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소위 번역본 {삼국지}들은 
[업중가] 부분에 있어서 전부의 번역본들이 이 시가를 정반대로 해석하고있다. 
앞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이 시가가 저자 나관중이 조조편에서 서술한 그 내용을 
시가로 읊은 것에 지나지 않는데도 마치 조조를 영웅시하고 미화하고 적어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조조의 생애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모 인기 있는 번역자는 그 책에서 "연의를 지은 이는 조조에게 
지나치게 엄격했으나 그의 삶을 이 업중가로 마무리한 일만은 예외일 것 같다. 
조조의 삶을 이 보다 더 정확하게 요약한 글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단언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평가를 공개적으로 하지 않은 번역본의 경우도 
[업중가]의 번역 부분에서 그러한 내용으로 오해하고 그 오해에 근거하여 오역을 
하고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동일한 관점에 서 있다고 본다.

 여기에서도 지나친 선입견이야말로 사물을 바로 볼 수 없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삼국연의}는 조조의 문장가적 기질, 병략가로서의 업적, 인재 
등용의 포용성과 공정성을 기술하는 장면에서조차도 장({삼국연의}에서는 回)의 
제목 이외에는 또는 대화에서 상대방이 사용하는 호칭의 경우 이외에는 자(字)를 
넣어서 맹덕 또는 조맹덕(曹孟德)이라는 명칭을 쓴 적이 없다. 조조(曹操)라고 
성명을 사용하는 경우도 별로 없고 그냥 이름만을 써서 조(操)라고 할뿐이다. 
그러나, 저자는 관운장이나 유비의 경우는 전장(全章)에 걸쳐서 이름만을 쓰는 
경우는 역시 상대 적(敵)이 호칭으로 사용하는 경우뿐이고, 본문의 경우는 
유현덕(劉玄德), 현덕, 유예주, 유황숙(劉皇叔)으로 일관하고, 관운장은 
운장(雲長), 관운장 또는 관공(關公)으로 최존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생각해 보라. 이렇게 호칭 사용에서조차도 작중의 주인공에 대하여 호오(好惡)의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삼국연의}의 저자가 왜 갑자기 [업중가]에서만은  조조를 
미화하고 찬사를 올리겠는가 말이다. 이것은 결국 번역자가 너무 조조의 
복권(復權)에 열을 올리다 보니 조그만 완곡(婉曲) 표현도 아전인수적으로 본 
환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말하자면, 헛것을 본 것이다.
 

   4. [업중가]의 구성과 내용

 [업중가]는 7언절구 22행의 가사이다. 앞의 6.6.6행이 기·승·전(起承轉)이며 
마지막 4행이 결(結)구이다. 내용은 조조를 가장 신랄하게 조롱하고 비난하는 
가사이다. 오로지 거기에 의미가 집약되어 있다.또한, 그러한 의미의 숨은 
의미조차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시가는 {삼국연의}의 저자 나관중의 
작품이라고 추정된다.

 번역자나 {삼국지}의 독자가 어떤 조조관(曹操觀)을 가지는 가에 따라 이 시가의 
의미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여러 가능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난해(難解)한 
시가(詩歌)가 아니라, 그 의미는 문장 표현의 논리적 관계, 단어와 문장과의 
관계를 치밀하게 추구함으로써  명명백백하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다만, 지금까지 
번역자들이 치밀하지 못했고, 앞에 이루어 놓은 작업들을 무비판적(無批判的)으로 
수용(受容)하는 과정에서 그 오해 상태가 참으로 오랫동안 아마도 400년 이상 
방치되어 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연유 때문에 이런 중요한 시가가 한문 실력이 
미천(微賤)한 필자가 이 시가의 의미(意味)를 바로 잡을 때까지 필자의 
과업(課業)으로 남아있었다는 사실이 인생의 신비(神秘)이기도 하다.
  
   5. [업중가]의 원문과 해석

 아래 부분은 필자에 의한 번역이며 기존 본역서에서 오역이 일어나고 있는 부분은 
(오)이하 부분이다.
(이문열, 8권 228∼229쪽; 김홍신, 8권 131쪽 이하; 황병국, 7권 129쪽 이하; 
박종화, 6권. 42쪽 이하)

城則 城水 水,  성은 업성 물은 장수
定有異人從此起.  참으로 희한한 이인이 여기서 일어났다.
雄謀韻事與文心,  웅모 운사가 문심과 함께여라  
君臣兄弟而父子.  군신 형제 부자간이 그러했다.
                 (오☞) 임금과 신하,형과 아우,아비와 자식같이 지냈다.  
英雄未有俗胸中,  영웅의 흉중은 속인과 다르나니
出沒豈隨人眼底?  나타남과 사라짐이 범인 눈에 뜨일 소냐?
功首罪魁非兩人,  공도 으뜸 죄도 으뜸 다르지 아니하고
遺臭流芳本一身.  유취와 유방이 본래가 한 몸이라.         
文章有神覇有氣,  문장은 패기있고 기백 있어
豈能苟爾化爲 ?  제 어찌 구차하게 무리 속에 함께하리.
橫 築臺距太行,  창을 놓고 대를 쌓아 태행과 겨루나니
氣與理勢相底 .  기와 이의 세가 서로 낮고 서로 높다.
                 (오☞) 힘과 운세따라 머리 숙이고 쳐들 줄도 알았다
安有斯人不作逆,  만일에 이 사람이 모반을 아니했으면
                 (오☞) 이런 사람이 역적질인들 못할까  
小不爲覇大不王? 작게는 패자가 어찌되고 크게는 왕이 어찌 되었겠는가?
                 (오☞) 작으면 패자 크면 왕 아닌가
覇王降作兒女鳴,  패왕이 자잘하게 아녀자의 울음우나
                 (오☞) 패자며 왕노릇 아녀자를 울리는 법
無可奈何中不平.  아무 소용없는데도 불평을 하네
                 (오☞) 불평해본들 모두가 부질없는 일이네
請禱明知非有益,  청해와서(사람을 불러와서) 기도해도 소용없는 줄 잘 알았고
分香未可謂無情.  계집들에 향 나눠주니 무정타 할 수 없으리.
嗚呼!古人作事無鉅細,  오호라! 옛 사람 하는 일이 그리 자잘한 일이란 없네.
寂寞豪華皆有意.  답답하고 호방한 일 모두 뜻이 있으리라.
書生輕議塚中人,  서생이 가벼이 무덤 속 사람을 말하나
塚中笑爾書生氣!  도리혀 무덤 속 사람이 서생의 기상을(옹졸함을) 비웃으리라.

  

(1) 웅모 운사가 문심과 함께여라....웅모는 거대한 계획, 운사는 운치있는 일, 
이런 일들이 조조의 시문을 좋아하는 기질에서 나왔다는 것

(2) 공도 으뜸, 죄도 으뜸……조조는 공과 죄가 모두 최고의 수준에 달한다는 것

(3) 유취와 유방이 모두 한몸…… 앞 행과 같은 반복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유취는 
더러운 냄새→세상에 남긴 악덕과 죄; 유방은 은은한 향기→세상에 남긴 공적

(4) 창을 놓고 대를 쌓아…… 전쟁을 일시 중지하고 동작대를 쌓은 일

(5) 태행과 겨루다…… 태행은 산 이름. 동작대의 위용과 태행산의 위용을 서로 
기의 겨룸으로 봄

(6) 기여이세가 서로 높고 서로 낮다....기여이세는 이기(理氣)의 세력. 어떤 것은 
이가 승하고 어떤 것은 기가 승하다의 뜻.

(7) '安有斯人不作逆,小不爲覇大不王' 이 부정(否定)의 수사의문문은 사실은 
두가지 해석이 다 가능하다고 본다. 하나는, 부정의 부정은 긍정으로 보아, '이 
사람이 역적질을 하지 않았더라면 작게는 패자(제후),크게는 왕이 어찌 
되었겠는가'(어림없는 일이다), 둘째는 '이 사람이 역적질을 하지 않았더라도 
작게는 패자, 크게는 왕이 되지 않았겠는가?'(왜냐하면 대단한 능력을 갖춘 
인물이니까). 그러나, 그 이하의 연과의 논리적 관련상 전자가 더 정확한 의미라고 
본다.

    
  (1) 위의 시는 반어법(反語法)과 반복법(反復法), 완곡어법(婉曲語法), 
수사의문문(修辭疑問文)이 잘 결합된 아주 교묘한 문장이며, 해석에 주의를 요한다.

  (2) 이 문장을 조조의 인간적 장처(長處)를 말하고있다고 단언하는 것은 
속단이다. 사실은 아주 교묘하게 조조를 비웃고 조롱하는 글임을 알아야한다. 
아니, 사실은 그렇게 교묘한 것도 아니며 비유와 완곡어법을 빌리고는 있어도 그 
전달하는 의미는 분명한 것이다. 
  그런 속단을 하지 않고있는 번역본의 경우도 (시중에 나와있는 5-6개의 
번역본들) 거의 이런 시각에 입각하여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전혀 잘못된 
관점이다.이 관점이 이 시의 올바른 해석에 장애가 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겉으로 보이는 그런 표현들은 뒤의 혹독한 표현을 하기 위한 위장. 또는 
체면치레에 지나지 않는다.

  (3) 문명인의 역사에 있어서 500년 남짓한 시간적 간격은 아무것도 
아니다.(나관중이 삼국연의를 지은 시기를 중심해서 볼 때) 바로 어제와 같다. 
그렇다는 것은, 인간의 사물에 대한 느낌과 표현내용이 그렇다는 것이다. 위 
시에서도 '寂寞'이니 '豪華'니 하는 말들이 본문의 어떤 내용과 관계되는 것이지, 
오늘날의 '적막'이나 '호화스러움'의 의미가 아닌 것이다. 나온김에 우선 
말한다면, 여기서 말하는 '적막'은 '답답한 것' '좀스러운 것', '호화'는 '호방한 
것' '의젓한 것'이다. 그럼, '적막'은 어떤 것과 관계되는가? 대왕(大王) 호칭을 
받는 위왕이 임종에 이르러 아녀자처럼 징징울고, 손수 애첩들에게 향--편리하게 
이 단어 대신에 프랑스 샤넬 No.5 같은 최고급 향수를 대입해보라--을 일일이 
나누어주고 있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4)위의 시는 2행(行)이 1련(聯)이 되는 칠언절구(七言絶句)이다. 전반 12행이 
각각 기(起)와 승(承)을 이루고 후반 10행중 앞의 6행이 전(轉), 나머지 4행이 
결(結)을 이룬다.
  전반부는 공과(功過)가 엇갈리는 조조의 생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고, 
후반부는 조조의 삶의 해학적이고 역설적인 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역적이 
되었기 때문에 왕이 되었다--아녀자처럼 징징울다--죄를 많이지어 빌 곳도 
없다--애첩들에게 향을 손수 나누어준다--<결구> 오호라, 옛사람 참으로 자잘하고 
좀스럽구나)

  (5) <업중가>의 표현의 핵심어는 무엇인가? 이 시의 필자는 희한하게도 
<理氣>라는 철학적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氣與理勢相低 '(기여이세가 서로 
낮기도하고 높기도하다→기와이의 세가 서로 낮기도하고 높기도하다)란 기(氣)와 
이(理)가 서로 세를 다툼에 있어서 기가 이보다 낮기도하고 높기도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기이하게도 처세에 있어서 몸을 굽히고 낮추는 것으로 번역한 것은 원문의 
의미와는 동떨어진 상상에 의한 창작이다. 또한, 거의 전부의 번역서들이 이에 
입각하여 번역하고 있다.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연변문화사판의 삼국연의는 
예외)

  기는 물질적인 것, 밖으로 나타난 것,호방한 것,남성적인 것, 장군의 기질이고 
이는 정서적인 것, 시문으로 표현하는 것, 여성적인 것이다. 조조는 평생을 
전장에서 보낸 장군이고,병략가이고,정적(政敵)에 대해서 잔혹하고 
무자비했다.그런 면에서 조조는 기가 대단히 승(勝)한 기(氣)의 인간이었다. 
그런데, 조조는 문장가이고 시에  능했으며, 사물을 감각적으로 보았고, 여색을 
탐했으며, 향(香)을 모아두었다가 애첩들에게 나누어주는 자상함이 있고, 대제국의 
대왕답게 의젓한 죽음을 맞지 못하고 징징울었다.이런 것들은 조조에게 있어서 
이(理)가 승한 부분이다.필자는 이것을 그야말로 대비법적인 구도로 아주 치밀하고 
교묘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6) 언어는 문자로 표현되고, 그 문자는 문법 또는 어법에 따라 표현되므로 우선 
언어해석은--그 표현 매체가 어느나라 언어이고, 어느 시대의 언어이고 
간에--필자가 표현하는 그 매체와 어법과 논리구조에 의하여, 다시 말해서, 우선은 
그 표현된  문장 상호간의 관계에 의하여 해석되어야한다.

  다른 말로하면, 상투적인 어떤 자구(字句)나 명제를 막연하게 대입하는 그런 
해석 또는 번역은 충실한 해석 방법과는 거리가 있다. 예컨데, <업중가>에서 
'覇王降作兒女鳴,無可奈何中不平'에서 '영웅은 호색이다','호색가는 여자를 
좋아한다', '고로 영웅은 여자를 울린다'등이 상투적인 고정관념으로 자리하고 
있다가 '覇王'운운하고, '女鳴'운운하니까, '패왕은 여자를 울리는 법'운운하며 
번역하는 따위가 바로 언어해석의 바른 방법과는 거리가 먼 오역이라는 말이다. 
또한 이 시련의 결구부분인 '無可奈何中不平' 부분을 영웅에게 때로 희생되고 
버림을 받은 여자들이 대상인 것으로 파악한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언어는 오직 필자가 표현한 그 문장내의 관계에  우선 국한해서 
아주 치밀하게 추구해야한다.

  <업중가>의 전시편(全詩篇)이 2행이 1련이 되고, 1련의 시는 전반이 
조건(...한다면),후반은 결과(...이다), 또는 원인(..이기 때문에),후반이 
결과(...이다)로 구성되어있다. '覇王....'운운의 시구에서는 우는 자도 
패왕이요,불평하는 자도 패왕인 것이다.도대체 이 문장구조도 제대로 보지못하면서 
어떻게 번역을 하고 번역본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는지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그런데, 시중의 번역본들은 한결같이 패왕이 여자를 울리고 그렇게 운 
여자들이 불평을 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우선 '女鳴'에 있어서 '鳴'은 동사 '작(作)'의 목적어가 되는 명사이며 '女'에 
의하여 수식되는 피수식어인 것이다. 영어로 표현하면 'a child's and woman's 
cry'인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을 '여자를 울린다'운운하면서 타동사로 취급하고, 
정작 동사로 쓰인 '강작'(降作)은 아예 보지도 않았다. 이것이 번역자가 
번역과정에 우선 표현된 언어매체만을 치밀하게 추구하지 않고  그 표현과 관련된 
개념이나 명제를 연상(聯想)하여 그것이 해석에 개입함으로써 바른 해석을 
방해하는 절실한 예인 것이다.

  위의 예문에서 '강작'은 낮추어짓다이다. '낮추어짓다'란 무슨 뜻인가.즉 
'宜作'(마땅히짓다.의젓하게 짓다)의 반대로서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하다'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다'의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위 행의 시구는 '패왕이 
어울리지 않게도 아녀자의 울음을 지으나, 이제 불평해도--후회해도--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의 뜻인 것이다. 이것은 '영웅이 여자를 울리는 법' 따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조조의 못난 행위, 즉 조조가 죽음에 가까이 가면서 아녀자처럼 
징징운 사실을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는 위에서부터 그대로 "아무 소용이 
없는데도 불평을 한다. 후회한다는 등의 말을 늘어놓는다"로 된다.

  (7)잘 쓰여진 문장은 산문이나 운문이나간에 그 표현매체 상호간에 긴밀한 
관계를 맺고있으며, 이것이야말로 논리의 고리(環)이며, 이 관계(關係)의 고리를 
캐내야 바른 의미에 접근할 수가 있다.이것은 500년전 글이나 지금의 글이나, 
영어문장이나 프랑스어 문장이나 러시아어 문장이나 한문문장이나 같다.

  (8) 위 시의 논리의 고리는 무엇인가? 우선, "安有斯人."이하 끝까지가 사실은 
조조의 단처(短處)요 못난점이요,결점을 지적하는데 지나지 않고, 이것이 전부 
①-②-③-④-⑤-⑥으로 논리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것이다.

  즉, ①조조 따위, 역적질을 하지 않았으면 어찌 제왕의 자리에 올랐으랴, ② 
패왕이란 자가 아녀자처럼 징징울어댔으나 이제 무슨 소용있나, ③ 죄를 많이 지어 
빌어도 소용없고 ④ 죽는 자리에 좀스럽게 애첩들에게 향을 나누어준다,(이상이 
轉) ⑤옛사람--여기서는 바로 조조--은 지나치게 좀스러운 일이란 없구만, 
⑥답답하고 호방하고 다 뜻이 있는 일이니(제가 좋아서 한 일이니) 무덤 속 조조를 
너무 비웃지 마시라, ⑦무덤 속 조조가  비웃는 선비를 비웃는다 (좀스러운자는 
자신이 얼마나 좀스러운 인간인지 조차도 모른다)(結句)

  (9) 우선 생각해보라! 왕이란 자가 집사(執事)나 그야말로 '아랫것'을 시켜서 
해야 마땅한 그런 자질구레한 일을 하고있는 모습을. 향을--향 대신에 향수를 
대입하자--애첩 1,2,3,4,..등등에게 하나씩 나누어주고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 
얼마나 희화적(戱畵的)인가! 그래서, 이 시에서도 '古人作事無鉅細'라고 빗대고 
있다. (옛사람--바로 조조--하는 짓 너무 자질구레하다는 법은 없네). 
거세(鉅細)에서, 거(鉅)는 부사(副詞), 형용사인 세(細)앞에서 '너무' 
'지나치게'의 뜻을 가진다.

  '無鉅細'는 '너무 자질구레한 일은 없다'(There's nothing too trivial)→어떤 
자질구레한 일도 할 수 있다→아주 자질구레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체신이 
있고, 할 짓 있고, 해서는 안 될 짓이 있고, 나이와 지위와 장소에 따라서 할 짓, 
해서는 안될 짓이 있는 법인데,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하고있으니,  명색이 
제왕이란 자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체신머리없고 좀스러운 짓을 하고 있으니 이 
시의 필자는 '옛 사람은 지나치게 자잘한 일은 없는 모양이구나" '오호라! 옛 
사람은 어떤 자잘한 일도 다 하는구나'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표현 
그대로이며, 좀스러운 조조를 빗댄 표현이라는 걸 누구나 알 수가 있다. 
  놀라운 일은 '無鉅細'의 경우, '鉅'와 '細'를 반대개념으로 보아서 '크고 작은 
것도 없구나'하면 오역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앞의 '鉅'는 뒤의 '細'를 수식하는 
부사이지, 명사가 아니다. 또, 한발 양보해서 거세(鉅細)를 반대개념으로 보아서 
'크고 작은 것'으로 해석한다고 해서 이 연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세상일이란 좀스러운 것과 의젓한 일, 큰 것과 작은 일의 구별이 있는 법인데 이런 
구별을 못하고 있으니 조조가 참으로 체신머리없고 좀스럽다는 의미를 이시구는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10)이 글에서 이인(異人).영웅.패왕은 일반적 개념이 아니라 전부 조조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글 속에 숨은 뜻이 있으니,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으니 
수백년 동안 숨어있었던 셈이다) 이인(異人)이 그중 하나다. 이인은 '비상한 
인물', '도인'(道人)의 뜻도 있지만, 문자그대로 '이상한 사람' '미친 사람' 
'괴짜인간' 아닌가. 필자의 뜻을 가장 숨기기 좋은 표의어가 한문임은 온 천하 
사람들이 이미 아는 바이다.

  또한, 한번 생각이나 해보라.<삼국연의>에서도 좌자나 우길이나 제갈량 정도가 
되어야 '異人'이라고 할 수 있지, 조조 정도가 뭐 이인인가. 그저 지모가 좀 
뛰어나고, 사람을 잘 부려서 그리고 무자비한 무력의 힘으로 왕위에까지 오른 자에 
지나지 않는다.이 시의 전편의 의미로 보나 행간의 의미로 보아도 여기에서 이인은 
그야말로 '미친놈' 정도의 뜻을 숨기기 위하여 앞전반 부분의 이런저런 치적이나 
장처를 이야기한 데 지나지 않는다.

   처음 시의 서두에 마치 사람 소개하듯이, '성은 업성이요,물은 장수라'라고 
하고있는데 필자는 그 지명을 이용해서, 500년 동안 큰 뜻을 숨겨놓았다.물론, 
겉으로야 업성과 장수의 기(氣)와 산수(山水)로 위대한 인물이 형성된 것 같이 
쓰고있지만, 이 시의 필자가 동음이철어(同音異綴語)를 이용해 언어유희를 
하고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업( )자 대신에 업(業)자를 장( )자 대신에 
장(障)자를 대입해보라. 바로 업장(業障)이 된다.이 글의 필자는 아마도 
불교신자이거나,불교적 사상에 근거하여 조조의 모든 악폐와 잔학이 결국 임종시의 
단말마적 고통이라는 것, 더 나아가 앞으로 그의 사후 조조의 자손들이 
사마(司馬)씨 집안 사람들로부터 겪게될  크나큰 고통은 결국 다 그대로 자기가 
한왕실 조정에 한 그대로 고스란히 물려받을 뿐이라는 것, 다 자기가 지은 
업보라는 의미를 숨겨놓은 것이다. 

  또 다른 숨은 의미는 '雄謀韻事與文心'의 경우이니, 이 구에서 문(文)과 
심(心)을 합하면 '어지러울 민'( )자가 된다. 조조야말로 세상을 어지럽게하고 
혼란하게 한 자이며,그들은 미친자(異人)이며, 그 일당,즉 
군신(君臣),형제(兄弟)와 부자(父子)가 모두 똑같은 자들이라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숨어있는 것이다. 

  왜 잘 쓰지도 않는 말을 조어(造語)해서 굳이 '文心'이란 말을 썼을까? 그런 
뜻을 전달하려면 '好文',"士氣','士風'이란 좋은 말도 있는데 왜 흔히 쓰지도 않는 
문심이란 말을 썼을가? 이제 문장 전체의 의미와 다른 숨은 의미와 연결하여 볼 때 
필자의 의도는 분명하다.조조의 장처를 말하고있는 전반부에서 조차도 곳곳에 
의미를 숨겨놓아 조조를 공격하고있는 것이다.

  위의 시에서 어조사 이(而)는 접속사에 지나지 않는다. 즉, 君臣兄弟而父子는 
君臣父子皆異人(군신부자가 모두 미친자들이다)의 직접적인 표현을 숨기기 위해서 
만든 말에 지나지 않으며,명사로만 이어진 글에 있어서 이(而)는 '그리고' 
'..과'의 뜻으로 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을 '..같다'(如)로 해석하여 '군신형제는 
부자와 같았다'운운하면 도대체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군신관계가 부자와 
같았다'고 하면 말이 되지만 '형제간이 부자같았다'고 하면 말이야 되지만 
여기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종잡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바로 위 행의 
이인(異人)을 예시한 열거이며 따라서, '임금과 신하, 형과 동생, 아비와 
자식들'로 보아야한다. 다시 말해서, 앞의 이인을 열거한 말들에 지나지 
않는다.이들이 모두 이인이요(미친자들이요), 민( )한자들( 세상을 어지럽히고 
혼란케한자들)인 것이다. 

  (11) 위 <업중가> 마지막 연의 2행의 시구가 있다고 해서 조조를 정당시하고, 
조조를 간웅으로 보는 보편적 조조관(曹操觀)을 뒤집는 것은 아니다. 이걸 마치, 
<삼국연의>의 필자가 조조에 대한 자신의 편협된 기술(記述)에 마치 속죄(贖罪)나 
보상(補償)이라도 한 것인양, 판단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그것은 그대로의 의미일 뿐이다. 마치 우리가 정신병동(精神病棟)에 있는 환자를 
비웃을 때, 그 병동의 환자가 오히려 우리들 정상인들을 비웃는다는 그런 
인간사(人間事)의 한 단면(斷面)을 쓰면서 이 시의 필자가 씁쓸하게 웃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무덤속 조조를 보고 '잔혹하고,의심많고,간악하고,그리고 말년에는 
좀스러운 모습으로 죽은 버러지같은 놈'이라고 말해보았자, 그자 역시 자신이 
얼마나 자잘한 인간인지를 알지 못할 것이라는 그런 인간사의 한 측면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조조를 높게, 조조를 비웃는 선비들을 낮게 보고있는 그런 구절이 
결코 아닌 것이다.

  (12)그러고 보니, 이 <업중가>야말로 <삼국연의>의 백미이며,가장 어려운 
부분이며,심오한 의미를 참으로 오랫동안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적어도 한국의 
수백만 독자들에게는 참으로 오랫동안 <업중가>의 의미가 오해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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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must scream, But I have no m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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