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kdycap (도영 ) 날 짜 (Date): 1999년 11월 22일 월요일 오전 11시 10분 39초 제 목(Title): 명량해전 칠천량에서 이순신이 전쟁기간 내내 심혈을 기울여 키워냈던 조선수군 만여명과 전함 수백척은 모두 없어졌습니다. 이새로이 수군 통제사가 된 원균은 오기만 응昺� 가지고 출진한 승산없는 전투에서 조선수군과 운명 을 같이 한 것이었습니다. 칠천량 패전이 있기 얼마전 원균은 엽봤綺渶活� 원균앞에서 제장과 병사들이 보醍� 지켜보는 가운데 엉덩이를 까이고 곤장을 맞씨努윱求�. 그 이유인즉슨 이순신 도 견내량에서 미적거리고 지키기만 해서 결국 병신같은 조정과 읏聆� 간첩행각에 교묘하게 희생되었는데, 직속상관이었던 권율의 입장에서는 그 자리를 대신해서 차지한 원균이 고깝게 보일뿐만 아니라 원균 자체도 견내량에서 지키기만 할뿐 왜 군의 본거지 부산을 공격할 생각도 안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원균이 비록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 '그 음험함이 해괴하다'라고 할 정도로 인격정도으로 리더쉽 면에서나 부족한 이일지도 몰라도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장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 또한 이순신이 견내량에서 물길을 지켰던 이유를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거제도 의 견내량 앞바다 뒤로는 대마도 쪽에서 거제도 쪽으로 흐르는 해류 그리고 부산으로 가기위해서는 언제나 역풍이 심하게 불어 부산에서 거제도로 옜육킬ご釉� 도에서 거제도로 오기위해서는 하루만 배를 몰면 되씨鄕嗤� 그 반대는 사흘이상걸 리는 뱃길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칠천량 앞바다이후는 병법에 이르는 사지라고 할만 했죠. 이순신과 마찬가지로 원균역시 전략적으로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무리한 출진을 판피構� 싶었던 것이죠. 그러나 권율읏“� 당한 그 모욕은 원균자신의 비좁은 성격등이 고묘하게 결합되어 바로 무리한 출진으로 이어진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후 조선수군은 그야말로 괴멸을 당합니다. 수백쳉� (아마 판옥선은 00척정도에 그외 작은 배는 그 두배정도 되지 않았을까? 추정)의 전함중에 살아돌아온 전함은 겨우 12척이었습니다. 정말 하눼천� 놀라고 땅도 한탄할만한 사건이었죠. 왜수군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