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Hyena ( 횡 수) 날 짜 (Date): 1999년 10월 23일 토요일 오후 02시 10분 30초 제 목(Title): 토끼와 거북이 근대에 들어와 서양 문명이 지배하게 된 요인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상업의 발달, 식민지 개척, 금속 활자 인쇄에 의한 지식의 확산, 그들의 시민 의식의 성장, 산업 혁명, 등등… 이러한 많은 요인들이 작용해서 지난 2세기간 세계사의 패권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서양 문명이 남긴 부작용은 결코 만만찮습니다. 요즘 20세기를 마감하면서 '20세기는 가장 불행한 세기였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20세기는 1,2 차 세계 대전을 비롯한 대규모의 살육 전쟁이 일어나 가장 피를 많이 흘린 비극의 세기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환경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서양의 기계론적이고 파괴적인 문명은 전지구적으로 광범위한 환경의 파괴라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러한 환경 파괴는 당장 눈 앞에 닥친 21세기조차의 미래도 낙관적으로 예측하기 힘든 상태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따라서, 서양 기계 문명적 패러다임의 한계는 이미 드러난 것으로 봅니다. 문제는 현재 그 것을 대체하거나 극복할 만한 것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서양 문명이 당분간은 이런 식으로 대책없이 세계를 지배하긴 하겠지만 결코 바람직한 문명도 아니고, 몇 백년이내에는 끝나고 다른 패러다임으로 반드시 전환되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그 근거는 뻔한 거지만 현재의 서양 문명의 에너지원 중에서 가장 오래가는 석탄이 그 때가서는 바닥이 나기 때문입니다. 저는 서양 문명 중에서도 그 핵심은 영국이라고 봅니다. 산업 혁명과 근대 의회 민주 정치가 최초로 나타난 곳이 영국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들로 많은 기여를 했지만, 유럽 대륙의 전체 국가가 서양 문명에 기여한 것을 다 합치면 영국 혼자 기여한 것과 비슷한 비중을 가진다고 봅니다. 그런 이유가 영국이 19세기를 전세계를 지배한 요인이고, 그 여파는 아직도 영국식 양복이나 복장을 전세계 누구나 입고 다니는 것에 상징적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영국의 지배는 20세기 들어와 미국에게 그 바톤을 넘깁니다. 미국도 기본적으로 앵글로 섹슨이 주류를 이루고 영국적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국가이기에 영국 지배의 연장선상으로 봅니다. 그런데, 위에서도 제가 포스팅했듯이 영국의 역사를 보면 유럽의 다른 국가에 비해서도 일천합니다. 불과 1000년 남짓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어떻게 성장을 거듭해 전세계를 지배하는 국가로 성장했는 지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런 영국의 역사와 아주 유사한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현재 세계 제 2의 경제 대국인 일본입니다. 이 두 나라 역사의 공통점들을 살펴보면 문명이나 국가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요인들을 알 수 있다고 봅니다. 1. 우선 둘 다 섬나라입니다. 2. 국가 형성이 상당히 늦습니다. 제가 위의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영국은 10세기에 이르러서야 통일 국가를 형성합니다. 그 이전은 여러 바이킹 족의 잇단 침입과 그들이 세운 여러 왕국의 난립으로 인한 혼란기로 제대로 기록된 역사도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은 기원전 3세기에 이르러 대륙에서 도래인들이 대거 들어옴에 따라 신석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갑자기 뛰어 넘습니다. ( 이 것에 대한 내용은 위에 호연 지기님이 퍼오신 '왜인의 기원을 찾아서'란 글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청동기 시대가 없는 이상한 역사를 가집니다. 이러한 일본의 역사를 우리 나라에도 억지로 적용해서 일부 식민 사학자들은 우리 나라에도 뚜렷한 청동기 시대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앵무새같은 짓(서울대의 한영우 교수)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국가 형태를 이루는 것은 빠르게 봐야 기원후 3세기에 부족 연명체 성격을 띤 '야마토' 국입니다. 식민 사학자들은 이러한 늦은 일본의 국가 형성기에 맞춰서 우리나라 삼국의 국가 형성도 비슷한 시기로 잡고 있습니다. 역시 아무 생각없이 일본 역사를 그대로 복사하고 있습니다. 3. 대대로 해적질로 먹고 살았다. 동아시아에서 역사적으로 왜구들의 노략질은 익히 잘 알고 있는 것이라 더 이상 얘기할 필요가 없겠죠. 영국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적질을 지원했습니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 함대 아르마다를 격파한 영국의 드레이크 경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대의 유명한 해적 선장입니다. 스페인이 식민지에서 약탈한 것들을 쏙쏙 빼내가는 영국의 해적질을 응징하려고 스페인의 필리페 2세는 무적 함대 아르마다를 출동시킵니다. 그러나, 때마침 최신식 장거리 대포로 무장한 영국 소형선들의 기동성있는 전술에 아르마다는 뜻밖에 참패를 당합니다. 바이킹의 후예인 영국으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그들의 지난 몇 천년간의 오랜 생업이었기 때문에 도리어 해적질을 하지말라고 하는 나라의 주장이 그들에겐 말도 안돼는 억지라고 생각했을겁니다. 영국의 이러한 해적질은 무적 함대를 격파한 후에는 다른 나라의 눈치를 보지 않고 본격적으로 노예 매매를 통한 무자비한 식민지 착취로 이어집니다. 4. 침략 전쟁으로 남의 문명을 약탈해 와서 배우고 익힌다. 영국은 프랑스와의 100년 전쟁, 십자군 전쟁을 통해 대륙의 선진 문물을 많이 도입합니다. 일본은 임진 왜란을 통해 우리 나라의 선진 문물을 대규모로 가져갑니다. 5. 왕권이 유명 무실했다. 일본은 천황이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시대(야마토 시대, 나라 시대?)가 있었지만 얼마 가지않아 곧 유명무실한 존재로 됩니다. 영국도 1688년 명예 혁명이후에는 왕은 실권이 없는 존재로 됩니다. 이러한 왕권의 부실이 일찍부터 영국의 의회 민주 정치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이 것은 영국사가 다른 나라들과 아주 다른 가장 독특한 특징입니다. 같은 시기에 유럽 대륙의 국가들은 '짐은 국가다'라고 선언하는 절대 왕권의 시대로 왕은 신적인 존재로 군림하며 영국과는 극단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6. 대규모 유혈 혁명이 없이 민주 정치를 발전시켜 결국 오늘날의 내각제에 이릅니다. 봉건 왕조를 극복하는 데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엄청난 피를 흘렸고, 러시아는 볼세비키 혁명을 거쳐야 했습니다. 반면 영국은 점진적으로 비교적 조용히 발전 시킵니다. 그러면서도 영국의 의회 정치는 오늘날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채택한 정치 형태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영국 왕이 아무리 부당한 요구를 해도 영국 의회는 무력을 통한 해결보다는 왕이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몇 년이고 기다립니다. 그리고 왕과의 타협은 사소한 것들이라도 문서화된 계약으로 만들어서 후대의 왕들이 받아 들이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영국의 이러한 문서화된 타협들이 차근 차근 쌓여서 근대 민주주의를 이룩한 것입니다. 일본은 영국보다도 더 조용히 넘어갔습니다. 이 것은 일본이 이미 완성된 민주주의를 그대로 도입했고 일본 사회가 소수 엘리트들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라는 탓이라고 봅니다. 그 외에도 공통점이 있겠지만 영국, 일본사에 대해선 지식이 짧아서 더 이상 들 수가 없네요. 위의 공통점들 중에도 이 두 나라를 성장하게 한 가장 큰 요인은 6번째라고 봅니다. 정치 분야에서는 급격한 혁명없이 점진적으로 발전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두 나라는 역사 전반적으로 모든 것을 꾸준히 발전 시켰다는 것입니다. 정체된 시기는 있었지만 후퇴의 시기는 보이지 않고, 정체와 발전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중국은 성장과 후퇴가 역사적으로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일본 외의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보인 모습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성장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은 오랜 역사도 아니고, 급격한 발전도 아니고, 조금씩이라도 얼마나 꾸준하게 성장을 지속하느냐라고 봅니다. 바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바로 세계사를 단적으로 나타낸 얘기가 되네요. 우리가 오늘날 IMF를 맞은 것은 너무 경제 일변도의 급격한 발전에만 눈이 어두웠던 탓이 아닐까요? .참고 서적) 1. 영국사, 앙드레 모로아(신용하 역, 1997) 2. 일본의 역사, 井上 淸(서동만 역, 19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