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8월 4일 수요일 오전 11시 50분 44초 제 목(Title): 김민웅/케네디신화 똑바로 보라 케네디 신화, 똑바로 보라 미국 로열패밀리의 이면에 숨겨진 금권정치와 제3세계 지배정책 (사진/존 에프 케네디 부자의 즐거운 한때. 아버지가 죽은 지 36년 만에 아들도 불운한 최후를 맞았다.) 사고로 인한 존 에프 케네디 주니어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부각된 ‘케네디 신화’는 미국 정치문화에서 차지하고 있는 정치적 명문가문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인들과 미국 언론들은 아버지가 상원의원을 지냈던 앨 고어와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 2세간의 대선 경쟁을 왕실 또는 왕가를 의미하는 이른바 ‘로열 패밀리’간의 싸움으로 보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인들은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 갑부로 주영대사를 지낸 조셉 케네디를 비롯해 그의 아들 가운데 한명의 대통령과 한명의 대통령 후보, 그리고 한명의 상원의원을 배출한 케네디 가문을 그야말로 정통성을 지닌 미국형 로열 패밀리로 인식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부와 권력, 그리고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정상에서 성취해낸 가문에 대한 대중적 선망이 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 ‘왕실’ 없는 미국인의 문화적 콤플렉스 케네디 가문에 대한 미국민의 선망은, 19세기 토크빌이 목격했던 혁명전야의 유럽과 차이를 보였던 미국의 민주주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혈통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판 왕족 내지는 귀족주의의 지배가 오늘의 미국 속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미 언론들은 존 에프 케네디 주니어를 가르켜 ‘비운의 왕자’라는 식으로 표현하면서 그를 ‘왕관을 쓰지 않은 왕자’였다고 추워올린다. 서양문명의 동화 속에 나오는 ‘백마 탄 왕자의 전설’은 이렇게 왕정체제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미국에서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사진/생전에 클린턴을 만난 존 에프 케네디 2세 부부. 클린턴 역시 '새로운 케네디'를 선거 캠페인으로 내세웠다.) 유럽적 왕정정치에서 벗어난 미국 정치문화의 역사적 진보성을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는 미국인들은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의 왕실과 같은 신화적 존재를 갖지 못한 데 미묘한 문화적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해서 케네디 가문과 같은 상류층에 대한 일종의 신화화 작업이 이뤄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것은 자본주의의 상품화 논리에 따라, 명문가를 둘러싼 일체의 움직임이 대중들의 상류층에 대한 선망의식과 결합하여 ‘고급문화상품’으로 변한다. 정치적 명사들을 할리우드의 스타문화 속에 끌어들여 대중적 인기를 확대재생산하고 이를 미국정치의 본질을 이해하는 작업과는 전혀 관련없이 대중들의 정치적 가십성 화제와 소비성 문화지식으로 삼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더 나아가 제3세계 사람들에게도 이들 정치명문가들을 선망의 대상이 되게 하거나 상당히 중요한 화제가 되는 것처럼 만드는 일종의 문화제국주의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언론들이 내세우는 ‘케네디가의 정치적 신화’라는 것도 그 이면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화란 언제나 허구의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케네디’는 우리에게도 뉴프론티어 정신으로 다가온다. 미국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 얼굴 잘생기고 정력적인 젊은 정치지도자로서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이다. 그렇게 배웠고 지금도 그렇게 입력되고 있다. 미국의 현대정치사에서 케네디 가문의 이러한 정치문화적 유산은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케네디’를 내세우는 선거 캠페인으로 강력하게 남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케네디 가문의 명성을 절정으로 끌어올린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추진했던 제3세계 정책은 기본적으로 제3세계 국가의 군사정권들에 대한 지원으로 제3세계 민중에게 깊은 고통을 주었던 역사가 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오늘날 미국 현대외교사 전문가들이 비밀해제된 정부문서들을 통해서 명백하게 입증하고 있는 대목이다. 노년의 아이젠하워로부터 40대의 자신에게로 권력이 이양된 것을 상징하듯 ‘젊고 강한 미국의 미래’를 꿈으로 심어준 그의 뉴프론티어 정신은 제3세계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본격적인 신개입주의 내지는 신제국주의적 정책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제3세계 희생자들의 신음과 절규 가령, 1960년대에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정치변화를 꿈꾸었던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중동 등지에 미국의 냉전형 군사정책을 확고하게 밀어붙인 정부가 바로 케네디 정부이다. 한국의 5·16 군사쿠데타에 대한 지지를 비롯해, 베트남 전쟁의 확전을 결정하고 이후 미국을 반전운동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은 것도 케네디 정부의 선택이었다. 고 딘 디엠의 암살과 쿠데타로 인한 베트남의 비극에 비밀공작의 방식으로 관여했던 것도 그였다. 1980년대 제3세계의 군사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레이건 대통령의 군사주의적 정책의 원형과 이른바 ‘저강도 전쟁’(Low intensity warfare)의 기본전술을 추진한 것도 케네디 대통령 때였다. 한마디로 케네디 정부는 미국의 냉전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 2차대전 이후 해방된 제3세계의 민족자주화 투쟁의 진로를 매우 강력하게 가로막은 패권주의적 권력이었다. 이것은 적어도 우리들에게 미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케네디의 신화’라는 모습으로 수용될 수 없는 대목이다. 이와 같은 케네디 정부의 이면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 그에 대한 미국언론의 일방적인 미화 내지는 신화화 작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국 제 땅 허물어지는 줄도 모르고 남의 장단에 춤추는 격이 될 수밖에 없다. 케네디 가문의 일련의 비운은 실로 안 된 일이지만, ‘케네디의 신화’가 어떤 ‘역사적 정체’를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받은 제3세계의 희생자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해가 동시에 진행돼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제1세계가 만들어낸 정치신화를 우리 자신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훼손하고 만다는 점에서 되돌아봐야 할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정치적 명문가들에 대한 미국 언론의 보도도 이들이 사실은 거대한 부를 기반으로 하여 미국 정치를 철저히 ‘금권화’하고 있다는 측면을 보지 못하면, 최고급 정치 브랜드인 양 로열 패밀리를 거론하는 신화화 작업에 우리도 그대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미국의 정치경제가 자본주의적으로 대대적인 재편성을 하기 시작한 19세기 중엽 이후부터 이미 형성된 미국 내 독점자본의 내로라 하는 가문들이 형성해온 금권정치의 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미국정치의 기반을 좌우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 정치는 이미 민주주의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한 점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깊은 위기에 처해 있다. 민초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영향력을 가지기보다는 돈줄의 로비가 워싱턴을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케네디의 신화’ 같은 정치적 허구가 깨어진 자리에서 역사와 인간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새롭게 시작될 수 있음을 우리는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강자들의 정치적 신화의 이면에는 거의 언제나 이들에 의한 희생자들의 신음과 절규가 있기 때문이다. 뉴저지=김민웅/ 재미언론인 minwkim@worldnet.att.net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