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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7월 13일 화요일 오전 02시 19분 47초
제 목(Title): 박노해/신세대 낯선 떨림 앞에서




 요즘 애들 큰일났다지만…

5. 신세대, 낯선 떨림 앞에서

노랗게 빨갛게 물들인 머리카락에 헐렁한 바지를 엉덩이에 걸치고 거리를 쓸고 
다니는 모습이라니.

잘 놀고 멋 부리고 저마다 튀는 개성은 그렇다 치자. 컴퓨터나 영어 잘 하고 
똑똑하면 뭐하나, 잠시도 진지할 줄 모르는데. 이웃에 대한 관심이나 정의감은 
아예 찾아볼 수 없으니, 과연 쟤들 장래나 나라 앞날이 어찌 될 지, 정말 한심하고 
두려워. 

그러나 신세대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은 우리가 관심있는 걸 알기나 해요?" "인터넷.힙합.농구.이성 친구에 
대해선 얘기도 안 통하면서 우리 인생의 관리자인 척 하잖아요. " "제대로 알든지, 
들어나 주든지, 아니면 가만 있든지, 제발 좀 내버려둬요. "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사오정이에요. 난 이제 어른들 포기했어요. "


그림 '임옥상' '사랑하는 아들 바다에게'. 나무판에 책과 먹. 42 X 76Cm. 1999  


우리 나라 만큼 세대간의 가치관 차이가 벌어진 나라가 또 있을까. 
신세대와 세대차를 가장 확연하게 느낄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노래방에 갔을 때' 
'컴퓨터 앞에서' 라고들 말한다.

노래방에 가면 우리 세대는 포크나 발라드로 과거에 멈춰 있고 신세대들은 
서태지에서 핑클, 드렁큰타이거로 미래 진행형이기에 전혀 다른 타임머신을 타고 
논다는 것이다.

우리가 워드면 워드, 통신이면 통신, 한 가지 프로그램으로 쓴다면 애들은 먼저 
컴퓨터로 음악을 틀고 게임을 띄워 놓고 채팅을 하면서, 거기다 윈도를 서너 개 
열어놓고 여러 기능을 자유자재로 쓴다.

그래서 모노크롬 세대인 우리와는 괴리감을, 멀티미디어 세대인 자기들끼리는 
동질감을 느끼는가 보다.

우리가 신세대와 의사소통이 안되면 안될수록 불신은 누적될 수밖에 없다.
제도교육에 쏟아 부은 값비싼 투자가 헛된 비용으로 날아가고 만다.
전통가치가 계승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라와 민족에 대한 애정과 소속감도 
사라져버린다.

지금은 경제위기 때문에 일시 잠복돼 있지만 사실 세대 갈등 문제는 우리 미래의 
지뢰가 될 수도 있다.
신세대 문제를 나라의 화두로 삼아 나가지 않으면 IMF처럼 또 다시 뼈아픈 대가를 
지불해야 할 날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92년 서태지가 막 등장할 때였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경주 남산자락 좁은 독방에 철커덩, 나는 가둬졌다.
만신창이가 된 몸보다도 내 신념이 더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무너진 길을 돌이켜 다시 새 길을 찾지 못한다면 나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참된 시작을 위해 나의 전부인 것들을 다시 낯선 것으로, 미지의 것으로, 
열려진 것으로, 그 막막한 불안과 떨림 앞에 세워두자고 했다.

어느 날 내 옆방에 소년수 방이 새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점점 이상한 인종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노랑.빨강.파랑 머리에 쉴새없이 노래부르고 춤추고, 교도관들에게 혼나도 그 때뿐 
어떤 권위도 먹히지 않는 것이었다.

오동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천하의 가을을 안다는데 아, 지금 뭔가 
심상치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구나. 그게 뭘까, 이걸 어떻게 봐야 되지….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어두워진 독방에 좌정한 채 책을 읽고 있는데 칙칙거리는 스피커를 통해 처음으로 
그 노래를 들었던 것이다.

서태지였다.
바로 저거였구나. 뭔지는 몰라도, 옳은지 그른지는 몰라도, 이건 혁명이야. 
그날부터 나는 소년수들을 스승 삼아 신세대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이 머리만이 아니라 몸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들의 노래.말법.몸짓.표정까지 따라 하며 신세대를 이해하고자 서툰 몸부림을 
계속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 아이들은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서, 우리가 
피투성이로 싸우는 동안 우리 자신의 품안에서 자라 나온 '또 다른 나' 임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신세대는 그렇게 두터운 벽을 뚫고 왔다.

서태지가 일으킨 문화돌풍은 개별의 흐름으로 존재하던 아이들의 자기 정체성을 
세대적 정체성으로 들어올리면서 말 그대로 혁명적 변화를 몰고 온 것이었다.

'생존단계' 의 정치 혁명에만 익숙해온 기성세대에겐 몹시 낯선 하나의 일탈로만 
보였지만 이미 '문화단계' 에 진입한 90년대 안에서 자라난 아이들에겐 다시는 옛 
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진화한 인간의 자기 선언이었다.

서태지는 '이미 자라나 있던 미래' 인 신세대들에게 그들의 노래 문법, 그들의 
감성, 그들의 몸에 맞는 리듬과 비트, 그들 고유의 삶의 템포를 제시한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수천년 이어져온 농경시대, 산업사회의 낡은 껍질을 한꺼번에 
깨뜨려버린 정서적 충격이었다.
서태지의 문화혁명은 신세대와 기성세대 사이에 거대한 골짜기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 대단절의 골짜기를 뛰어넘지 못하는 기존의 가치나 감성은 더 이상 미래의 
진보일 수 없고, 희망일 수도 없게 되고 만 것이다.

신세대의 특성은 분명한 '미래현실' 이다.
그리고 21세기 인간의 진화된 형질일 수도 있다.
어쩌면 신세대는 진화한 새 인류인지도 모른다.
'진보' 와 '진화' 는 다르면서도 같다.

신세대 문화의 특징은 3N, 다시 말해 새것 (New) , 지금 (Now) , 네트워크 (Net) 
로, 여기에는 긍정성과 부정성이 함께 깃들여있다.
새 것을 추구하는 것은 유행만 추종하고 전통가치를 무시하는 부정성이 있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변화의 속도가 급격한 시대에서는 새롭고 낯선 가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새 것을 빠르게 배우고 자기를 쇄신해 가는 태도는 정말 
중요한 미덕이다.

지금 여기에 충실한 것은 고통을 참아내는 기다림보다는 당장의 쾌락으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
그럼에도 삶은 '지금 이 순간의 흐름' 이 아닌가.
훗날에 가서 지금의 희생을 한꺼번에 보상받으려는 욕망의 유보는 더 위험한 
파국을 불러올 수 있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지금 이 순간에 더 충실하고,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성실하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네트워크에서는 자기중심이 없고 핸드폰.삐삐.컴퓨터에만 매달려 통신 중독증에 
빠지는 부정성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존재한다.
점점 세상이 복잡해지고 정보가 넘쳐나는 미래에는 내가 독립적으로 잘 하는 
노하우 능력을 갖는 것보다 '누가 잘하는 사람' 인지, 문제를 해결할 답과 내용이 
'어디에 있는지' 를 알고, 서로 연대하고 조화를 이루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갑작스레 등장한 신세대이기에 빛이 눈부신 만큼 그늘도 짙다.
폭발하는 저항성과 파괴적 열정을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창조적인 사회 참여로 
이끌어갈 수 있을까?

신세대의 부정성은 그들을 비판하고 질타하고 외면한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직 하나, 우리가 아이들을 긍정하고 서로 다름을 존중하면서 배워가는 길밖에 
없지 않을까. 신세대의 진보성을 북돋우며 함께 손잡고 21세기로 나서는 길 뿐이지 
않을까. 오늘의 진보가 정치 사회적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고 기존의 낡은 
방식에만 매달린다면 신세대들은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구체적인 생활 속의 진보로, 문화 감성적인 진보와 영성적 진보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신세대들은 영영 외면하고 말지도 모른다.

신세대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말로 설명해 봐, 잊어버릴테니
Tell me, I will forget
눈앞에 보여줘 봐, 기억할지도 몰라 
Show me, I may remember
날 감동시켜봐, 이해하게 될 거야 
Involve me, I will understand

결국 신세대 문제는 우리 어른들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문제는 우리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용기와 의지가 있느냐다.
우리가 지닌 세대적 자부심, 하나의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느냐다.

부정해버리고 싶은 저 낯선 진보를 아프게 끌어안을 수 있느냐다.
그래서 신세대 앞에 나서는 우리의 걸음은 하나의 떨림, 간절한 떨림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글·시인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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