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7월 13일 화요일 오전 02시 15분 40초 제 목(Title): 박노해/시간은 신뢰받는 사람의 편이다 믿을 '信'자를 잃어버렸습니다. (3) 시간은 신뢰받는 사람의 편이다 오늘 하루 당신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당신은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야" "난 너를 믿어" "우린 널 신뢰해" 라는 말이 아닌가요. 때로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신뢰한다는 말이 더 깊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신뢰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지만 신뢰하면서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요. 사람은 관계 그물망 속에 살아가기에 인연마다 신뢰의 꽃을 피워내는 사람에게 우리는 힘을 모아 줍니다. 그래요, 많은 사랑을 받는 사람, 참된 성공을 이룬 사람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비결은 결국 인간관계를 잘 하는 능력에 있고 그 핵심은 신뢰임을 알게 됩니다. 어린이날 조카들과 공원에 갔습니다. 가게에서 잘 알려진 상표의 식품을 집었더니 유치원 다니는 녀석이 "삼촌 그거 괜찮아요?" 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 여기 보렴, 무방부제 무색소라고 새겨 있지 않니" 했더니 "그걸 어떻게 믿어요. 삼촌은 너무 순진해" 하는 겁니다. 그림 '임옥상' (길을 걷는다) 종이 부조에 아크릴릭. 각 32 X 38Cm. 1999 그날 공원에서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마침 엔진오일 교환도 할 겸 카센터에 차를 맡겼습니다. 돌아와 보니 냉각수를 갈았다면서 4만원을 더 내라는 거예요. 어? 아직 냉각수 갈 때가 아닌데, 자기 멋대로 교환을 해, 진짜 갈았나, 돈을 줘야 되나 말아야 되나, 마음이 이리저리 흩어지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아, 오늘 내가 불신비용을 단단히 치르는구나 싶었지요. IMF국난 이후 가장 사무치게 들려온 말이 '신뢰' 였다는 고백을 많이 듣습니다. 우리는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사회 지도층의 부정부패는 말할 것도 없고, 고통분담의 약속은커녕 노사정 합의조차 지켜지지 않습니다. 신뢰의 파탄은 가진 자와 권력층에 국한된 것만이 아닙니다. 저 시골 장터에서 중국산 나물을 우리 것이라 속여 파는 할머니부터, 택시를 타도, 병원에 가도, 세금을 내도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는 한탄이 그칠 새 없습니다. 솔직히 아침에 아이를 보내면서 모르는 사람이 친절하게 잘해주면 조심하라고 "남을 믿지 마라" 고 가르쳐 온 우리가 아닙니까. 지금 문제는 신뢰입니다. 갈수록 문제는 신뢰입니다. 세계 변화가 빠를수록, 국경이 낮아지고 정보화가 진전될수록,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신뢰가치는 더욱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뢰 없이는 미래도, 희망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뢰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누군가를 신뢰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의 무엇을 믿는 걸까요. 어떻게 해야 우리는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요. 신뢰란 첫째, 정직투명성입니다. 우리는 정직한 사람, 뱃속이 환하게 보이는 사람을 신뢰합니다. 그가 내건 명분의 속셈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할 때 우리는 그를 신뢰할 수 없습니다. 자신에 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정직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개인이나 기업을 누가 신뢰하겠습니까. 그래서 정직의 다른 이름은 '비참함' 입니다. 자신의 부실함, 자신의 거짓됨, 자신의 과오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깨끗이 드러낸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그 비참함을 감내하면서 자기 자신을 바로 보고, 다시 분투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을 우리는 신뢰합니다. 둘째, 신뢰란 진정한 자기 실력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실력이 없는 사람을 우리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착해도 무능이 사람을 속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진 실력을 넘어선 주장이나 사명감은 그 선한 동기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파탄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자기 주장과 포부를 책임질 수 있는 진정한 실력이 없다면 그것은 허장성세이고 추한 탐욕이 되고 맙니다. 세계에 통할 만한 자기 실력도 없이 갖은 특권과 특혜로 덩치만 거대하게 벌여놓고 '무늬만 개혁' 인 집단이 여전히 군림하는 나라라면 누가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셋째, 신뢰란 결과에 대한 책임입니다. 자신의 과오와 실패에 대해 깨끗하게 책임지는 사람을 우리는 신뢰합니다. 과거를 철저하게 성찰하지 않고 조건 탓, 남의 탓만 일삼으며 자기를 합리화하고, 자신의 정당성만을 주장하는 사람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과거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사람은 과거 속에서 계승해야 할 가치마저 살려내지 못합니다. 미래준비란 곧 과거 정리이고, 개혁이란 곧 과거 청산입니다. 청산돼야 할 것들에 의해 부당하게 억눌리고 가로막혀온 미래 가치를 키우는 것이 개혁입니다. 국난을 불러온 자들이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나라, 일제시대 친일파에서부터 군사 독재의 주역들이 참회도 없이 고스란히 사회 지도층을 차지하고 있는 '이상한 나라' 를 세계가 얼마나 신뢰하겠습니까. 넷째, 신뢰란 미래창조 능력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시간을 뚫고 살아 날 수 있는 사람인가가 중요합니다. 늘 치열하게 학습하고 겸허하게 배우는 사람, 새로운 감성으로 미래의 주인공인 신세대와 소통하는 사람, 익숙한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낯설고 새로운 인연으로 자기를 쇄신하는 사람, 건강한 몸으로 긴장과 집중력을 유지해가는 사람, 변화 속에서 변해서는 안될 것을 지키기 위해 처절한 자기 변화를 이뤄가는 사람에게 미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있습니다. 신뢰란 결국 그를 움직이는 동인이 무엇인가, 그의 가치관이 올바른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를 움직이는 것은 사랑인가, 힘없고 작은 이웃에 대한 강인한 애정인가, 정의와 진리에 대한 열정인가, 나눔과 연대와 공동선에 투철한 사람인가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이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의 가치 중심과 비전이 효율과 경쟁력만을 중시하는 경제대국.군사강국을 추구하는가, 인간성과 노동가치, 민주주의와 복지를 중시하는 문화 선진국을 지향하는가에 따라 그 나라에 대한 신뢰성이 좌우됩니다. '신뢰 후진국' 으로 전락한 우리 현실이지만 그러나 큰 위기는 울분과 성토만으로 극복되지 않습니다.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는 지도층만 쳐다보며 절망 할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힘을 모아 희망의 뿌리를 키워가야겠습니다. 이 불신의 위기 속에서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고 살아갑니다. 큰 일이 났다고 해서 작은 일을 잊어버리면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큰 것을 잃어버렸을 때는 작은 진실부터 살려가야겠지요. 내가 먼저 믿음의 사람이 되고, 그 푸른 메아리가 나와 인연 지어진 관계 그물망을 타고 창조적 맴돌이를 하도록 오늘, 다시 시작입니다. 글·시인 박노해 ------------------------------------------------------------------------------- - Copyright 1999 중앙일보,중앙일보뉴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Contact the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