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9년 5월 29일 토요일 오전 07시 59분 18초 제 목(Title): 홍수전설의 전지구적 분포 대규모의 홍수전설이 전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고들 합니다. 때로는 이러한 현상이 `실제로 (성경에 기록된 것 같은) 전지구적인 대홍수가 있었다.'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홍수전설이 전세계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는 이유는 반드시 전지구적인 대규모 홍수를 가정하지 않아도 다른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읍니다. (아마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학술적으로 먼저 했을지는 모르지만, 이 가설은 순전히 저 혼자 생각해낸 것입니다.) 흔히들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로 나일강, 황하, 인더스-갠지즈, 그리고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변을 듭니다. 그리고 강변에서 인류문명이 발생한 이유를 `인간이 생활하는 데는 물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간략하게 설명 하지요. 하지만, 다른 수량 풍부한 강들도 많은데 유독 저 4개의 강변에서 고대문명이 발생한 이유는 그것만 가지고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중국의 경우를 보면 황하에 비해서 양자강이 오히려 더 크고 수량도 풍부하며 주변환경도 인간이 살기에 더 좋습니다. 그런데 왜 정작 황하에서는 문명이 발생하고 양자강 유역은 주변부로 남아서 황하문명에 흡수된 것일까요? 보통 그 답은 `강에서 문명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강에서 문명이 발생하는 것'이라는 데 있읍니다. 주기적인 큰 강의 범람이 문명발생의 기본이라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황하나 나일강 같은 큰 강이 범람하면서 강의 중하류에는 상류에서 떠밀려온 비옥한 토양이 계속해서 쌓이게 됩니다. (이걸 충적지라고 지리 시간에 배웠던 것 같은데 맞는지 모르겠읍니다.) J. D. Bernell 의 `역사 속의 과학' 이라는 책에 따르면 이렇게 하천의 하류에 퇴적된 촉촉하고 기름진 토양에서 농경이 처음 시작되었다는 것은 고고학계의 정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대규모 하천의 충적지가 비옥하고 생산성이 높은 것은 좋은데 주기적으로 홍수가 밀어닥치기 때문에 인간이 거주하거나 농경을 하기에 부적합한 면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규모 하천의 범람이 가져온 결과의 동전의 양면입니다. 홍수가 실어온 비옥한 토양은 좋지만 정작 홍수 그 자체는 거주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대인류는 치수사업을 하기 시작했읍니다. 요새식으로 말해서 댐을 쌓고 제방을 쌓아서 `인간의 힘으로' 홍수를 방지하기 시작한 것이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치수사업을 하는데는 `조직'이 필요합니다. 혼자서 해가지고는 절대 효과를 볼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러면서 홍수를 방지 했을때 비옥한 충적지에서 얻을 수 있는 높은 작물생산성은 아직 생산성이 낮았던 수렵이나 유목에 비해 충분히 경제적인 동기를 부여해 줄 수 있읍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홍수방지를 위해 인간의 집단적인 치수사업이 시작되고 거기서부터 조직이 생겨나고 조직을 이끌어갈 권력자가 생깁니다. 그리고 치수사업의 결과로 만들어진 비옥하고 안전한 농토와 산출물들은 주변의 유목/수렵민족과 비교해서 월등히 생산량이 많기 때문에 `잉여' 활동.. 그러니까 예를 들면 치수사업지휘를 전담하는 `지도자계급'따위를 발생시킬 수 있는 경제적인 바탕이 됩니다. 황하고대문명의 역사-사기의 전반부를 읽어보면 중국의 고대정권에 가장 중대한 문제는 황하의 범람을 막는 치수 문제였음을 알 수 있읍니다. 전설의 하왕조를 개창한 우임금은 치수문제 담당자였고 우임금의 아버지 곤 은 치수문제 담당자 였으나 일을 제대로 못해서 (우의 전임자인) 순임금에 의해 참수형(!)을 당한 인물입니다. <--- 요순시대할 때 그 순입니다. 그만큼 고대문명에서 `치수사업'이란 권력의 요체이며 죽느냐 사느냐하는 심각한 문제임을 알 수 있읍니다. 나일강의 고대문명 또한 이러한 치수사업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고, 기하학이 홍수가 쓸고 지나간 평야에 농경지를 분할하는 데에서 시작되었다던가 천문학이 나일강의 범람시기를 예언하기위해 발달하기 시작했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고대문명과 `범람하는 강'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알려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양자강의 경우 강이 엄청나게 크고 수량도 많지만 불행히도 이 강은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강'이 아닙니다. 물론 상류에 비정상적으로 비가 많이 온다던가 하면 양자강도 범람하지만 그건 특수한 경우이지 황하처럼 주기성을 갖는다던가 하류에 비옥한 충적지를 형성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황하 유역에서는 고대문명이 발상했지만, 양자강 유역은 춘추전국시대 내내 야만 변방의 땅으로 치부되다가 서서히 황하문명권에 흡수된 것입니다. ---(요기까지는 저만의 생각이 아니라 많은 역사책에서 기술된 것들이고) ---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즉, 인류의 고대문명 발상지에 살던 사람들은 (동시에 수많은 신화, 설화, 전설의 기원이기도 하지요) 모두 하나같이 홍수의 위협에 시달리며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문명이 발생한 것은 치수사업이 어느정도 이루어지고난 이후이므로 문명이전의 신화시대에 범람하는 하천 주변에 살았던 선사시대인들은 늘 홍수의 피해에 시달렸을 것이 확실하며 때로는 (주로 기상때문에) 대규모의 홍수를 경험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비옥한 충적지가 제공하는 높은 생산성 때문에 피해를 보면서도 계속 그곳에 남아서 홍수를 막을 망법을 강구하고 치수사업을 하게되고 그러다가 조직이 생기고 문명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치수사업이 진전되면서 대규모의 홍수피해는 점차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예외없이 거친 고대문명사회에서 `옛날에 말야 온 세상을 뒤덮는 큰 홍수가 났었는데...' 어쩌구하는 설화나 전설이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대규모 하천의 범람을 한강이 넘어서 구로동이 물에 잠기는 수준으로 생각하면 물론 안되지요. 재작년인가 양자강 상류에 비가 엄청오는 바람에 제방의 일부(!)가 무너졌을때 침수지역 (티비로 보니 완전히 바다더군요) 의 면적이 수십수백킬로 단위였읍니다. 이만한 홍수를 접했을때 선사시대인들이 `온 세상이 물에 잠겼다'라고 착각한 것도 무리가 아닐겁니다. 역시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문명권'의 설화는 교류를 통해 주변의 야만적인(?) 비문명권...그러니까 홍수랑 직접 연관이 없는 유목민족이나 미개지로 전파되어 나갑니다. 오늘날에도 선진국에서 발생한 문화가 후진국에 쉽게 침투하는 것처럼 `황하'문명이나 `나일'문명의 설화가 주변부의 양자강권역이나 지중해일대에 유포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오늘날 우리는 `전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 홍수설화를 접하게된 것입니다. 물론 이 이론은 왜 홍수설화들이 그렇게 닮았느냐 하는데에는 답을 주지 못합니다. 어쩌면 인간의 상상력이 거기서 거기다 보니 홍수 이야기가 비슷해졌을수도 있고, 아니면 구대륙의 3개의 고대문명 (사실 나일강과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지역은 지리적으로 가까와서 기원이전 시대에 이미 서로 영향을 많이 주고 받습니다.) 이 우리 상상외로 오랜 옛날부터 간접적으로 교류를 해왔기 때문에 서로 닮아갔을 수도 있읍니다. 하여간 각설하고, 이처럼 좀 과장되게 말하면 인류의 고대문명이 공통적으로 홍수가 밥먹듯 일어나는 곳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홍수설화가 분포한다라는 설명이 가능하므로 `홍수설화의 전지구적인 분포가 실제 전지구적인 홍수의 실재를 증명한다'는 이론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land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