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9년 5월 15일 토요일 오전 05시 27분 28초 제 목(Title): 스코틀랜드 - 잉글랜드 피나는 항쟁의 역사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다른 `나라'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 싶습니다. 솔직히 단일민족국가에 익숙한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잘 이해가 안 가지만, 아래에 제가 아는 대로 요약한 스코틀랜드 - 잉글랜드 간의 개싸움(?)의 역사를 보시면 왜 21세기가 내일모레인 지금도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겠다고 난리인지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원래 영국 - 브리튼 섬은 유럽대륙에 아주 가까와서 고대부터 중세까지 유럽대륙으로부터 여러 인종들이 몰려와서 피가 섞인 잡종의 국가입니다. 고고학에 따르면 석기시대쯤에 영국에는 이베리아인으로 여겨지는 원주민이 살았는데, 당시 유럽대륙을 석권하던 켈트족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에 나오는 갈리아인)들이 몰려와서 이베리아 인들을 내쫓고 자리를 잡은 것으로 생각되고 있읍니다. 그런데 한마디로 간단히 켈트족이라고 해도 그 안에 또 잡다한 부족들이 다양하게 많아서 브리튼 섬의 북부인 스코틀랜드 지방에는 픽크트 족이라던가 하는 종족이 주로 왔고 브리튼섬의 남부인 잉글랜드 쪽에는 주로 브리튼 족계통의 켈트인들이 자리를 잡았읍니다. (이 브리튼 족에서 브리튼 섬이라는 지명이 유래) 그러니까 큰 계통은 같아도 이때부터 이미 브리튼 섬은 남북이 다른 부족의 땅이었읍니다. 일부는 더 서쪽으로 가서 오늘날 영국 바로옆에 붙어있는 아일랜드에 정착했고요. 그러다가 기원전후에 로마제국이 팽창하면서 브리튼 섬도 로마의 침략을 받았읍니다. 이 때 남부의 브리튼 족 - 오늘날의 잉글랜드에 해당하는 지역은 로마에게 정복되었는데, 북부의 픽크트 족을 중심으로 하는 스코틀랜드는 완강하게 저항해서 결국 로마도 정복을 단념했읍니다. 그리고는 로마에게 점령된 지역과 픽크트 족의 영역 사이에 만리장성 같은 무지 기다란 성벽을 쌓았는데 당시 황제 이름을 빌려서 이것을 하드리아누스의 벽이라고 했답니다. (이건 지금도 유적지 관광지로 일부가 남아 있읍니다.) 영국에서는 이 하드리아누스 방벽의 건설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가르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고 보고 있읍니다. 그런 식으로 브리튼 섬이 반으로 남북분단(?) 되어서 북부 스코틀랜드 지방은 켈트의 전통을 지켜나가고 남부 브리튼인들은 로마인에게 동화 되어서 당시로서는 상당히 문명화된 문화인으로서의 생활을 누렸는데.. (팍스 로마나) 5세기 무렵 로마 제국이 붕괴하면서 유럽전체가 엄청난 격변에 시달리게 됩니다. 로마군대가 철수하고 브리튼인의 방비가 허술해진 사이에 당시 전 유럽을 휩쓸던 `게르만 족의 대이동' 물결을 타고 게르만 족이 남부 잉글랜드를 침략한 것입니다. 이때 브리튼 섬의 남쪽 잉글랜드맙� 쳐들어온 종족들이 앵글로족, 색슨족, 쥬트 족 등등이어서 잉글랜드라는 나라이름이나 앵글로-색슨 족이라는 종족의 이름이 여기서 기원했읍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앵글로색슨 족이 굉장히 호전적이고 잔인한 족속들이라 로마문명을 받아들여 살던 브리튼 족을 완전히 씨가 마를정도로 다 죽여 버리고 아예 남부 브리튼 섬 전체를 다 차지해 버렸읍니다. 당시 살아남은 브리튼 인들의 일부는 브리튼섬 남서부의 산악지대로 도망가서 험준한 지형을 배경으로 저항한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았는데, 이 사람들이 사는 곳이 오늘날의 웨일스 (Wales)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브리튼 섬에 존재하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세 나라는 기본적으로 민족이 다르고 언어조차도 서로 판이합니다. (웨일스와 스코틀랜드가 같은 켈트계이긴 하지만 하드리아누스 방벽이래로 서로 갈라져서 전혀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에 다른 민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12세기 정도까지 계속됩니다. 그 사이에 잉글랜드 (브리튼 섬의 남부)는 계속 유럽대륙으로부터 침략을 받아서 바이킹 족의 피도 많이 섞이고 노르만 족도 한몫하고 해서 완전히 잡탕이 되어 버렸읍니다. 그러다가 잉글랜드가 본격적으로 발전을 시작해서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그 이전까지는 머... 부족단위로 노는 거죠) 브리튼 섬 전체를 먹겠다고 나서기 시작합니다. 쉽게 말해서 웨일스와 스코틀랜드를 병탄해서 브리튼섬 내부의 삼국통일(?)을 이루겠다고 나선겁니다. 그 이전에도 아무래도 인구도 잉글랜드가 제일 많고 힘이 세다보니 웨일스와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로부터 압박도 심하게 받고 탄압도 많이 받았읍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잉글랜드가 에드워드 1세 시절에 스코틀랜드를 통째로 잡아먹겠다고 나섭니다. 이 당시 스코틀랜드는 왕은 있었지만 내부의 여러종족들이 분열되어서 왕이 권한도 약하고 잉글랜드의 졸개나 마찬가지였읍니다. 이때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대를 먹어버렸으면 정말 통일이 되고 스코틀랜드는 없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인물이 바로... 영화 브레이브 하트로 순식간에 유명해진 윌리엄 월레스 입니다. (영화속에 아주 간악하게 나오는 영국왕있죠? 그 사람이 바로 에드워드 1세입니다.) 영화보신 분들 잘 아시겠지만 스코틀랜드 구국의 영웅 월레스가 이끌었던 스코틀랜드 군대가 야심만만하던 에드워드 1세의 군대를 그 유명한 스털링 전투에서 묵사발을 만들고 스코틀랜드 독립을 지켰읍니다. 그런데도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계속 기회를 노렸지요. 영화에서 보셨다시피 스코틀랜드 귀족(족장)들 간의 분열과 배신 때문에 윌리엄 월레스가 잡혀 죽고 스코틀랜드는 또 비실비실한 상태가 됩니다. 잉글랜드는 한참후에 다시 군대를 끌어 모아서 다시한번 스코틀랜드를 침략했읍니다. 이번에는 로버트 the Bruce 라는 귀족이 선두에 섰는데 (영화에서 웰레스를 배신하라는 아버지의 말때문에 무지 고민하는.. 나약하지만 양심적인 귀족 있지요? 그 사람이 바로 로버트 더 부르스 입니다.) 스코트랜드 군대는 바노크번이라는 곳에서 또 한번 잉글랜드 군대를 완전히 개박살 내버립니다. 두번이나 참패한 잉글랜드는 결국 스코틀랜드를 먹어버려서 브리튼섬을 통일한다는 야망을 꺾고 스코틀랜드 와 그 왕을 정식으로 승인하게 됐읍니다. 이때 바노크번의 명장 로버트 더 브루스가 로버트 1세로 등극해서 스튜어트 왕조의 시조가 되지용. (바노크번 전투는 에드워드 1세가 죽고 그 아들 2세때 일입니다.) 이후로 또 수백년간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서로 으르렁 거리면서 째려보면서 시간이 흘렀읍니다. 사실 그 사이에 잉글랜드가 프랑스와 유명한 뱍년전쟁을 치렀고 (잔다르크가 활약한 그 전쟁) 백년전쟁이 끝난후에는 백 잉글랜드 내부에서 왕위계승을 두고 내란이 일어나서 (속칭 장미전쟁) 브리튼 섬 통일이고 나발이고 자기일이 더 바빴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결국 허약한 웨일스를 꿀꺽 먹어버리는 침략을 단행했읍니다.) 그러다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사이의 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온것이 유명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죽음 때였읍니다. 처녀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죽고나서 후계자로 가장 가까운 친척을 찾고보니까 그게 황당하게도 `적국'인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1세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연유로 해서 제임스 1세는 핏줄덕분에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는데 동양인에게는 정말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혼자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을 겸임하는 것이었읍니다. 정말 웃기죠? 지금의 영국왕도 이 스코틀랜드 왕가의 후손이기 때문에 런던에서 대관식을 한 번 하고 에딘버러(스코틀랜드의 수도)에 가서 대관식을 또 한번 (약식으로) 한다고 합니다. 잉글랜드의 왕이면서 스코틀랜드의 왕이다 이거죠. ㅎ여간 이런식으로 서로 다른 나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공동의 왕을 모시면서 졸지에 오월동주하는 처지가 됐읍니다. 그런식으로 두 나라가 같이 지내다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닮아가더니 백여년쯤 지난후에 `의회통합'을 해버렸읍니다. 당시 잉글랜드는 막 의회주의가 성장하던 시기라서 명예혁명이나 청교도 혁명을 통해서 왕의 목을 댕겅 자르거나 왕을 외국으로 축출하면서 의회가 권력을 갖고 내각제에 의한 정부를 만들었던 시절입니다. 스코틀랜드도 잉글랜드의 영향을 받아서 의회를 가지고 있었는데, 두 나라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어차피 왕도 공동이니까) 대등하게 의회를 합쳐버린 것입니다. 당시 잉글랜드는 막 산업혁명과 식민지개척을 위해 밖으로 뻗어나가려할 때라서 브리튼 내부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의 산업혁명이나 식민지 개척에 편승하려 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두 앙숙나라 사이에 `나라는 다르지만 의회와 왕은 같은' 연합왕국 United Kingdom 이 생겼읍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의회통합이 스코틀랜드 내부에서 전체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자체도 다시 고지대 (highland)와 저지대 (lowland)로 구분할 수 있는데 잉글랜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잉글랜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통합시에 이익을 많이 볼 수 있는 저지대 쪽은 의회통합에 긍정적이었던 반면 스코틀랜드 민족주의가 강하고 이익이 별로 없는 고지대 쪽은 통합에 반대했었읍니다. 또 계층적으로는 기득권층은 통합에 찬성, 하층은 반대. 그런 이유로 해서 잉글랜드 -스코트랜드 의회통합 이후에도 한동안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이나 반란이 끊이지 않았고 통합을 전후로 해서 특히 고지대 쪽은 엄청난 탄압을 받았읍니다. 어느 한 씨족이 잉글랜드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몰살당한 글렌코의 참극 같은 사건은 꽤 유명한 일이지요.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통합은 기정사실화 되고 또 마침 식민지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대영제국을 건설하며 잘 나가게 되자 ㅇ런 내부갈등은 안으로 숨고즐기기에 바빴읍니다. 실제로 스코틀랜드의 공업도시 글래스고우는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버밍엄과 더불어 산업혁명과 제국주의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도시가 됐읍니다. 그러나 아무리 대등하게 합쳤다고 하지만, 스코틀랜드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빼먹은 이야기지만, 지금 인구비례로 볼때 스코틀랜드는 잉굴랜드의 1/10 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나라입니다. 따라서 아무래도 소수의 설움을 맛볼 수 밖에 없었겠죠. 돈버는 데 편승한 것은 좋았겠지만. 더군다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앞서 이야기한대로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몇번이나 주고받은 앙숙이고 , 종교도 다른데다가 (잉글랜드는 영국 국교회, 스코틀랜드는 장로교) 언어도 달라서 아직도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일부에서는 영어가 아니라 원래 스코틀랜드 말을 씁니다. (지금은 잉글랜드화 되어서 대부분 영어를쓴다지만) 이렇게 서로 다른 나라가 한 정부 안에서 동거하다가 2차대전이 끝나고 나라가 기울어가면서 또 사움을 시작했읍니다. 인제 서로 단물 다 빨아 먹었으니 갈라서겠다 이겁니다. 우리는 고래로 앙숙 아니냐.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이 북해유전의 개발이었읍니다. 아시는 분이 많겠지만 영국은 산유국입니다. 70년대 오일쇼크를 얻어맞으면서 엄청난 돈을 퍼부어서 북해의 유전을 개발해서 산유량이 꽤 많습니다. 그런데... 이 석유 나는 곳이 스코틀랜드 앞바다 거든요? 이렇다 보니 스코틀랜드 독립주의자들은 인제 잉글랜드로 부터 이익 얻을 것은 다 얻었다. 마침 석유도 나고 하니까 , 망해가는 잉글랜드에 붙어 있으면서 소수민족으로 설움 받느니 이참에 독립해 버리자 이렇게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석유도 통째로 우리거다. 그래서 지금부터 20년쯤 전에 스코틀랜드하고 (덩달아 웨일스까지) 의회를 잉글랜드로부터 분리할 것인가 말것인가 국민투표를 했읍니다. 그런데 이미 통합후 300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두 나라 사이에 워낙 연관이 깊어져서 분리할 경우 손해가 막심할 거라는 생각도 있고 또 북해유전이 개발비가 엄청 들어간데 비해서 석유값은 별로 안 올라서 석유장사가 별로 수지맞는 장사도 아니게 되어서 (영국이 옜날에 IMF 맞은 데에는 이 탓도 큽니다. 일껀 돈들여서 석유파놨더니 석유값이 떡값이라 수지가 영 시원찮은 것이죠) 국민투표에서 분리안이 부결되어 버렸읍니다. 하지만 이때 일어난 스코틀랜드 웨일스 민족주의는 계속해서 분리를 주장하고 점점 지지층을 넓혀가서, 그전까지 무조건 잉글랜드화 되어가던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에 독립의지가 강해졌읍니다. 잉글랜드는 이걸 무마하려고 지금까지 사용을 금지하면서 탄압해오던 고유언어도 사용을 공식적으로 허가하고, 에드워드 1세적에 빼앗아다 놓고 지금까지 영국왕의 의자밑에 깔아놨던 스코틀랜드 왕의 대관식용 돌도 돌려주고 했읍니다만, 여전히 독립하겠단 목소리들이 강해서.... 결국 그럼 니들 좋을대로 해라 이러면서 다시한번 국민투표를 하게된 것입니다. 그게 이번 1999년 5월입니다. 토니 블레어는 분리를 막아보려고 뻑하면 스코틀랜드에 가서 ` 우리가 남이가? ' 머 이딴 소리나 하면서 부결을 호소하고 있읍니다만 결과는 봐야알일 이지요. 제 짐작으로는 투표해서 스코틀랜드가 떨어져나갈 공산은 희박한 듯 싶습니다만, 혹시 분리지지가 많아서 정말 그런 일이 이루어진다면 아주 재미있는 일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난 8월에 학회 때문에 스코틀랜드 가야하는데 그건 어찌되는거지?) 스코틀랜드-잉글랜드의 감정은 한국의 지역감정하고는 게임이 안되게 무지 강하고 기원자체가 다릅니다. 잉글랜드에서는 아직도 스코틀랜드 대학으로 공부하러 간다면 `외국에 유학간다'라고 생각하고.. 얼마전에 이곳에서 열린 민속무용 거리공연을 보니까 두 나라의 민속무용은 복장이나 움직임, 형식등이 비슷한데가 거의 없는 완전 딴판이었읍니다. 한국인의 입장에선 이해가 잘 안되지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왕과 정부는 공유하되 `다른 나라'입니다. 낄낄... (엽기적인 영국인들.) landa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