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5월  1일 토요일 오전 02시 44분 39초
제 목(Title): 김대중/ 충효사상과 21세기 한국 


    
 
김대중대통령 특별기고

충효사상과 21세기 한국

현대사회에서 충(忠)의 대상은 반드시 국민이 되어야 한다. 헌법정신도 국민이 
주권자라는데 있다. 충의 대상은 바로 내 아내요, 내 남편 이요, 내 이웃이다. 
과거에는 임금이 주권자로서 좌지우지했지만, 지금은 백성‘민(民)’자, 
임금‘주(主)’자, 즉 백성이 임금이고 백성이 주인이다 


-------------------------------------------------------------------------------
-

    오 늘날 세계는 그야말로 새로운 천년을 향하여 국가경쟁력을 높이려는 피눈물 
나는 경쟁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수한 산업능력 또는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첨단 기술능력이 중요하다. 또한 국민의 도덕적 능력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존중하고 신뢰를 소중히 여기는 문화, 바르게 
살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 참여한 만큼 책임을 공유하고 협력을 아끼지 않는 
국민의식이 성숙되어야만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오늘날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어느 때보다 도덕과 윤리 및 인문교육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각자 자신의 정신문화 전통을 가꾸어 21세기 미래에 
접목시키려는 노력을 활기차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오늘날 유교나 불교에 
대한 토론도 서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마저 있다. 



그런데 우리의 정신문화는 오늘날 어떠한가? 유교는 고루하고 시대착오적이라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있는 젊은 세대들이 많다. 이렇게 된 데는 유림측에서도 
무엇인가 반성할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 전통을 흑백논리로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의 귀중한 문화 전통의 
하나인 유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해 평소에 가졌던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우선 약 2500년 전부터 시작한 인류의 사상혁명부터 살펴보자. 동서양 모두에서 
4가지의 중요한 정신혁명이 일어났다. 





-------------------------------------------------------------------------------
-

세계 사상혁명과 유학의 전개 

-------------------------------------------------------------------------------
-


서쪽부터 얘기하자면 그리스에서는 탈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등의 철학자들에 의해 사상혁명이 일어났다. 과거의 유대 나라, 지금의 
이스라엘에서는 이사야 아모스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에 의해서 획기적인 사고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부처님, 바라문 승려들에 의해서 
또 하나의 위대한 사상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동쪽 중국에서는 공자를 위시해서 
노자 묵자 순자 제자백가, 2300년 경에는 맹자가 나와 사상혁명을 선도했다.



이 가운데 동아시아의 정신사에 깊은 영향을 끼친 것은 유교이다. 제자백가의 
시대를 거쳐 한나라 한무제 때 유교가 국교로 확립되었다. 그때부터 유교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뒤 송대에 와서 정이천, 주자, 이런 분들이 나와 정주학을 
일으켰고 맹자의 사상이 부각되면서 주자학 혹은 성리학이 융성했다.



우리 역사를 보면 신라 때도 설총, 최치원 같은 유가의 대학자들이 나왔다. 백제의 
왕인 박사는 유교경전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전파했다. 이런 사정을 보면 
삼국시대에 이미 유교 전통이 확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라시대에는 
화랑도 또는 불교가 지배적이었다. 고려시대까지도 불교가 국민의식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건국한 이후로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쓰면서 성균관이 탄생하고 유교가 국교로 확립되기에 이르렀다. 성리학은 
고려 말엽부터 이색 정몽주 정도전 같은 학자들에 의해 발전되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꽃을 피웠다. 서화담이 나오고 기대승도 나오고, 마침내 이퇴계 선생이 
나와서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으로 중국 주자를 능가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또 이율곡 선생은 이퇴계 선생의 주리론과 구별되는 주기론으로 성리학을 더욱 
발전시켰다.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지만, 조선시대 유학의 발전은 참으로 
독창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

우리민족의 높은 문화 능력 

-------------------------------------------------------------------------------
-


나는 우리 민족의 높은 문화 능력을 믿는다. 이것은 중국문화에 동화된 많은 
민족들과 우리 한민족을 비교해보면 분명하다. 중국의 문화는 대단히 통합력이 
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양자강이나 사천성까지 중국문화를 넓혔다. 
몽고족인 원나라는 100년간 중국을 지배했지만 그것이 끝나고 나니까 중화되고 
말았다. 만주족인 청나라도 270년간 중국을 지배한 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우리 한민족은 2000년 동안 중국으로부터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에 
걸쳐 온갖 영향을 받았는데도 독립과 자주성을 지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원나라나 만주족은 중국문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문화에 동화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반드시 우리 것으로 
재창조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 민족에게 우수한 문화능력이 있다고 확신한다. 



불교도 그렇다. 불교는 당나라에서 들어왔지만 해동불교는 원효 스님을 중심으로 
주체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유교도 중국으로부터 온 것이지만 ‘조선유학’은 
독특하고 창조적인 것이었다. 이퇴계 선생의 학설은 중국 유학의 최고봉인 
주자학을 능가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세종대왕은 집현전을 만들어 당대 최고의 학자들을 모아 학문에 전념케 했다. 
집현전 학사들은 중국의 문물과 제도를 철저히 전문적으로 연구했지만 이것을 
우리의 습관과 풍토에 맞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 도입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세계화 마인드로 주체성을 살렸다. 특히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사들의 협력을 얻어 
창제하신 한글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 민족의 생명력이 바로 문화창조의 능력에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바로 이런 역량이 있었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지도에서 많은 나라들이 중국에 
동화되었지만, 혹처럼 붙어 있는 한국만은 중화되지 않은 채 계속 번창하는 기적 
같은 사실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 유교가 끼친 영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유교가 국민의식 교육과 
향촌 질서에 끼친 영향은 널리 알려졌다. 삼강오륜을 도입하고 남녀간의 풍속을 
교정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이에 관하여 우리의 선현들이 중국에서보다 더 유교 
정신에 철저하고 엄격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 나라 유교는 ‘정통’에의 집착이 강하고 ‘이단’을 배척하는 
정도가 매우 심했다는 점에서 그 부작용을 지적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볼 때 유교가 국민 의식을 계몽하고 공직자들의 정신적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노력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위대한 학자들이 나와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중시하는 선비사상을 고취시킨 것도 귀중한 전통이다. 이런 
문화 전통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조상들의 위업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된다. 





-------------------------------------------------------------------------------
-

충효(忠孝) 사상의 재조명

-------------------------------------------------------------------------------
-


그러면 이제 초점을 좁혀 많은 사람들이 유교의 핵심으로 보는 충효 사상에 관하여 
살펴보자.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충효의 전통이 아직도 의미가 있다면 왜 그런 
것일까? 또 이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충효 사상의 역사적 기원은 매우 오랜 것이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건립되면서 
유교가 국민 도덕의 기본이 되었다. 이때부터 충효가 말하자면 국가의 
국시(國是)가 된 셈이다. 이에 힘입어 국민 의식과 국가 운영에 일대 각성과 
진흥이 일어난 것도 사실이다. 그 가운데 세종대왕이 나오시고 많은 인재들이 
나오게 되었다. 



요즘 TV드라마 ‘왕과 비’를 보면서 여러 가지를 느낀다. 세조는 우리에게 충효의 
반면교사로 다가온다. 세조는 임금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했다. 성삼문 
박팽년 이개 같은 절의파 집현전 학사들을 죽이고 나중에는 단종까지 죽였다. 나는 
과거에 감옥살이를 할 때 집에 보낸 편지에 세조에 대해서 쓴 적이 있다. 



‘조선왕조는 충효로 나라의 기본을 세운 국가였다. 그래서 국민들이 정신적으로 
지향할 목표를 얻게 되었다. 충효는 국민이 공유하고 신봉하는 철학이자 신앙이 된 
것이다.’ 



그런데 세조가 단종을 죽임으로써 충의 정신은 훼절되었다. 신하가 임금을 
죽였으니 역적이다. 권력을 잡았으니까 임금으로 행세했을 뿐 어디로 보나 임금의 
자리를 빼앗은 것이 분명하다. 즉 유교의 기본인 충(忠)의 정신이 무너졌다. 
아울러 세종대왕이 돌아가시면서 세조에게 손자를 부탁하고 잘 돌보아줄 것을 신신 
당부했는데 그 손자를 죽였으니 아버지에게도 막심한 불효를 한 것이다. 



이것은 곧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충을 어기고 효를 어긴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조선왕조의 정신적 기둥이 일거에 무너져버린 것이다. 그 결과 
유학자가 충효를 진정으로 논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불충(不忠)의 최고는 세조요, 
불효의 최고도 세조이다. 



당연히 민심이 동요하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배경에서 
사림파를 대변하는 김종직이라는 대학자가 나와 개혁을 주창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성공하지 못했다. 영남 밀양에 가서 의제를 조문하는 시를 써서 
현판에 걸었다가 죽은 뒤에 무덤 속의 시체까지 꺼내서 부관참시당하는 변을 
당하지 않았는가? 유교의 본질인 충이 거기에서 좌절된 것이다. 



이로 인해 유교의 최고 덕목인 충과 효의 사상이 원래의 의미를 잃고 왜소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현실 개혁과 정신 기강의 큰 방향이 깨져버린 셈이다. 결국 
국가의 사상체계가 무너지면서 유생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렸다가는 큰일나니까 
소소한 문제를 갖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보기가 바로 당파싸움이라는 것이다. 대비가 돌아가셨는데, 복상을 몇 
개월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 즉 국가의 운명이나 백성들과는 관계없는 것을 
가지고 서로 싸우는 통에 나라가 힘과 정신력을 잃게 되었다. 국민의 실제 생활을 
중시했던 유교의 전통이 공허한 명분론으로 변질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가정이든지 나라든지, 정신적 기둥이나 에토스 또는 신앙이 무너지면 
건전한 발전이 어렵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
-

유교의 忠과 민주주의

-------------------------------------------------------------------------------
-


그러면 유교의 충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일까? 혹자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어할지도 모르겠다. 1961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고 70년대 유신독재 시절에 
충효 사상이 다시 강조되었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충(忠)이라는 말만 들어도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의 민주주의 시대에 알맞게 충의 개념이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교의 가치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유교 안에서 이런 의미 있는 작업을 해야 하며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 우리 국민은 
개방적이고 다원적이다. 오랫동안 불교의 영향력이 큰데다 19세기 중엽 이래 
천주교를 포함하여 기독교의 영향력도 크게 증가했다. 여러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좋은 모델이라고 할 수도 있다. 또 서구의 민주주의 사상이 정착했다. 
따라서 유교에 대하여 말씀드린다고 해서 다른 사상이나 종교를 무시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단지 국민들의 실제 생활과 의식에 미치는 유교의 영향력이 
아직도 크다는 점에 유의하여 이 유산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충(忠)의 정신을 해석하는 데 있어 지배층은 대체로 국가에 대한 충(忠)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가치가 도입되면서 깨어 있는 국민이나 
지식인은 국민에 대한 충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민주주의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사상이고 따라서 민(民)에 대한 충(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상은 
근대적이고 서구적인 것이지만 우리의 민본사상 안에도 이렇게 볼 만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제는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충(忠)의 사상을 
재조명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전통을 시대정신에 알맞게 재창조하는 능력이다.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서 과거를 미화시키는 방식으로 충과 효를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시대적 상황에 맞게 전통을 재창조하는 능력을 갖춘 민족만이 
세계화 시대에 문화적 정체성을 향유할 수 있다. 또 이것이 국가경쟁력의 근본이 
된다.



단도직입적으로 정리해 보면 충의 대상이 무엇이냐, 즉 누구를 위한 충이냐, 
이것이 핵심 질문이다. 국가에 대한 충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국가의 
기능은 사실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국가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면 히틀러의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 또는 우리 나라의 유신체제와 같은 것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현대사회에서 충(忠)의 대상은 반드시 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헌법 
정신도 국민이 주권자라는 데 있다. 충의 대상은 바로 내 아내요, 내 남편이요, 내 
이웃이다. 그러지 않으면 겉돌게 된다. 충의 대상이 내 앞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남의 인격을 함부로 할 수 없고, 그분을 위해서 봉사할 
생각이 나온다. 과거에는 임금이 주권자로서 좌지우지했지만, 지금은 백성 
‘민(民)’자, 임금 ‘주(主)’자, 즉 백성이 임금이고 백성이 주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이지만 충을 바르게 하려면 민주주의를 철저히 할 수밖에 
없다. 충의 대상이 국민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지난 수십년간 민주화 운동, 인권 운동, 학생 운동, 여성 운동 
등 많은 사회운동을 이끌고 이에 참여해온 수많은 젊은이와 시민들의 생각에는 
정권이나 국가와는 다른 국민에 대한 충성이라는 굳은 신념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들은 온갖 희생을 무릅쓰면서도 국민의 편에 서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정신의 배후에 바로 우리 민족의 고귀한 자산인 선비정신, 유교의 민본주의 
전통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유교가 앞으로 이런 전통을 새롭게 
계승해나간다면, 우리나라의 민주발전을 이끌어 가는 데도 크게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세계의 수많은 민족과 시민들이 싸우면서 
피투성이로 희생한 시대이다. 그러나 21세기는 민주주의가 세계의 보편적 상식이자 
규범이 될 것이다. 20세기에 시작한 민주주의는 21세기에는 아프리카 대륙까지 
확장될 것이다. 



이런 세계사적 흐름 안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재창조하고 활성화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그 가운데 한 주제가 바로 
충(忠)의 해석이다. 우리 헌법에도 국민을 주권자로 규정했다. 백성을 임금으로 
생각하는 충(忠), 이것이 과거에 임금을 생각하던 충(忠)과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다. 이처럼 4500만 우리 국민을 위한 충(忠)의 개념을 정립하고 이것을 
교육하는 데 성균관이 앞장선다면 유교를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젊은 세대도 
유교에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며, 근본적으로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현대화시키는 데도 크게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
-

유교의 孝와 상호 배려의 윤리

-------------------------------------------------------------------------------
-


다음으로는 충에 못지않게 중요한 효(孝)에 관하여 살펴보자. 유교의 효는 
농경시대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대가족제도가 일반화되었고 다들 농사를 지으면서 
부모를 모시는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부모는 시골에 있고, 
자식들은 도시에 살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를 포함하여 동양에는 가족제도와 문화가 서양보다 훨씬 잘 
유지되고 있다. 서양은 개인주의 사상이 번창하면서 심지어 가족적 유대까지도 
무너지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족의 해체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것은 
그만큼 사회의 안정적 기초가 무너지고 있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이런 세기말적 
상황에서 우리 동양사회는 가족의 유대와 협력을 어떻게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유교는 부모에 대한 효도는 거의 무조건적인 것으로 가르치는 경향이 있다. 부모가 
설사 부모답지 못하더라도 자식은 무조건 자식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젊은 세대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청소년 아동 또는 학생도 
권리의 주체라는 생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스승을 부모처럼 
존경하라는 유교의 가르침은 훌륭한 것이지만, 스승 또한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차제에 효를 수행하는 방식과 그 주체에 관해 살펴보자. 우선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도 자식다워야 한다.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부모답지 못하다고 해서 효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교가 가르치는 상호 배려의 정신, 즉 “남이 나에게 행하지 말았으면 싶은 것은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충서(忠恕)의 정신이 기본적으로 어디서나 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될 때 나의 주장이나 이익만이 아니라 남의 입장을 배려할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될 것이다. 나의 권리 못지않게 남의 권리도 존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의 보편적 세계주의를 위해서도 이런 상보성의 원리 또는 역지사지하는 생각이 
매우 중요하다. 즉 맹목적 복종보다는 상호 배려의 공동체적 가치 위에서 효의 
정신이 알찬 결실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효를 수행하는 주체에 관해서도 자식만이 하는 효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식도 효도를 해야 하지만 이제는 국가가 효도를 해야 한다. 
자식이 자신을 낳은 어버이를 공경하고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와 떨어져 있는 경우도 많고 생활이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 
국가가 경로사상을 이어받아 노인을 보호하고 존경하며 생활을 안정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사회적 효도라고 말할 수 있다. 



21세기 미래를 위해서는 자식의 효도와 국가사회의 효도가 합쳐져서 노인들을 
바르게 모시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 국민의 
정부는 사회정책을 세우고 예산도 책정하려고 한다. 





-------------------------------------------------------------------------------
-

유교와 21세기 한국

-------------------------------------------------------------------------------
-


이제 유교에 대한 새로운 눈으로 우리의 미래를 내다보자. 충의 대상은 국민이고, 
따라서 국가가 국가답지 못하면 국민은 이에 항의할 권리가 있다.



맹자는 이미 2300년 전에,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다. 천자는 하늘이 백성을 
다스리라고 내려보낸 것인데, 만일 백성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학정을 할 
때에는 백성은 일어나서 그를 쫓아낼 권리가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방벌주의를 
주장한 셈이다.



이는 2000년 후 존 로크가 말한 사회계약론, 서구민주주의의 기본을 세운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민주주의 제도는 분명 서양에서 발전했지만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룬 인권사상, 인간의 존엄성은 동양문화에서도 풍부하게 
꽃피웠다고 하겠다.



우리는 이런 새로운 눈으로 유교 전통을 재해석하고 서구의 보편적 사상과 
당당하게 대화하는 자신감과 용기를 가져야겠다. 



국가 권력이 바로 국민의 뜻에 기초해 있고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신장하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데 존재이유가 있다는 정신은 공자의 인본주의나 맹자의 사상과 
잘 부합할 수 있다고 본다. 공자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사상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아주 큰 교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유교의 이런 사상을 현대적으로 잘 접목시키고 
발전시켜 우리 젊은 10대 20대도 유교에 대해서 친근감을 가질 수 있도록 개혁을 
솔선수범해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나름대로 투철한 자기반성과 성찰을 요구한다고 
하겠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생각했던 유교와는 다른 것으로 그 정신을 재창조하는 두뇌와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유교를 세계의 보편적 사상과 교류할 수 있도록 만들려는 
개방적 사고가 요구된다. 이렇게 유교가 새로 태어나야만 흔들리고 있는 
우리나라의 윤리와 도덕을 재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서양사회의 장점도 많지만 동양사회에도 훌륭한 전통과 가치가 있다. 효도 그 
하나이고 스승 존경도 서양인이 부러워하는 동양의 덕목이다. 우리는 이런 귀중한 
재산을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한테 덮어놓고 
과거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이라고 본다. 즉 유교가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이들과 대화를 
통해서 충과 효의 가치를 현대화시키는 노력을 부단히 경주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정부도 이런 문화발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윤리와 도덕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이때 도덕 갱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

정신혁명으로 선진국 이루자

-------------------------------------------------------------------------------
-


국민의 정부는 지난 1년여간 6·25 이래 최대의 국난을 맞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으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혼신의 노력을 경주했다. 그 결과 
경제의 재도약으로 동아시아와 세계 속에 중심이 되려는 노력이 나름대로 결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세계가 이를 인정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북한에 대해서도 한편으로는 단호한 안보태세를 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교류·협력을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포용정책, 
햇볕정책은 전세계의 관심 속에 전폭적인 국제적 지지를 얻고 있다. 



올해 우리 경제는 다시 성장을 시작해서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리하여 2001년에는 정상적인 발전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 과정에 우리가 부딪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실업자 문제이다. 정부는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정책을 과감히 추진할 것이다. 동시에 
직장을 못 얻는 사람에 대해서는 의·식·의료,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을 정부가 
책임지려고 한다. 이를 위해 예산을 편성했으며 부족한 점은 추가경정예산에 
편성하려고 한다. 아무튼 정부는 국민을 하늘같이 받들고, 국민과 함께 국정을 
운영하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우리가 선진 일류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정신혁명이 필요하다. 신라 이래 
1000년 이상 우리 국민 의식에 깊은 영향을 끼친 공자, 맹자의 가르침을 
현대화시키는 작업은 따라서 매우 중요하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존중받고 참여하는 
민본주의 정치가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도 앞으로 21세기를 향한 
유교의 역할에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할 생각이다.



(이 글은 김대중 대통령이 1999년 3월 18일 유림지도자들과 나눈 청와대 오찬에서 
밝힌 소견을 보완한 것임). 
 
 
    
 

-------------------------------------------------------------------------------
-

Copyright(c) 1999  All rights Reserved.
E-mail: newsroom@donga.com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後後�    �碻�                     ��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