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3월 4일 목요일 오전 03시 25분 43초 제 목(Title): 월간중앙/김영옥 일본인 앞에선 작아지는 � [32] 제목 : [김영옥의 서울 스케치①] 일본인 앞에선 작아지는 한국인 내게는 평생을 두고 영광으로 남을 한국에서의 유학생활. 중국 “옌볜일보” 첫 서울특파원 으로 부임한 뒤 정신 없이 바쁘게 지냈던 지난 1년. 어느새 나의 한국에서의 생활은 5년째로 접어들었다. 그간 나는 한국 국민들이 낸 세 금으로 베풀어지는 배려와, 쉽게 잊기 어려운 존경스러운 한국분들의 도움으로 짧지 않은 ‘타향살이’를 힘들지 않게 버텨왔다. 그러나 그 따뜻한 배려와 존경의 이면에는 쉽게 잊기 어려운 한국인들의 ‘폐’(弊) 또한 적지 않 았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내가 눈을 감으면 감을수록, 마음을 비우면 비울수록 크 게 보이고, 잊기 어려운 아픈 기억들이다. 한국과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이 엄별(嚴別)돼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조선족(朝鮮族)에게 그 것은 한 밭에서 뽑아낸 한 종류의 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선족들은 유난히 남북의 동포 들을 엄히 구별하고, 분위기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힘든 반세기를 살아왔다. 오랫 동안 중국 대륙의 문화권에도 길들지 않은 채 들말(야생마)처럼 살아왔던 조선족이건만 왜 동족 앞에서는 이처럼 마음에 없는 애교나 엄 숙함을 표방해야 하는지. 그것은 ‘치사한’ 한국과 ‘치사한’ 조선에서 비롯된 조선족들 의 치사한 조건반사인가. 이렇게 말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여전히 남과 북의 이념을 초월한 진한 민족애가 자리잡고 있다. 마침 “월간중앙”이 그동안 고국생활을 통해 보고 느낀 바를 글로 옮겨 달라는 제의를 해 와 어렵사리 결심을 하게 됐다. 한편으로는 한 국에서 배우면서 보고 느낀 바를 가식없이 짚 어내는 것이 그동안 도움을 준 고국에 대한 의 미있는 보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더 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고국에서 느낀 장단점을 짚어보는 데 독자들의 오해없는 질책과 가르 침이 뒤따르기를 기대한다. ----------------------------------------- 첫 인사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한국인들은 놀랄 만큼 예절이 밝고 친절하다. 조용하고 상 냥한 목소리뿐만 아니라 말귀도 부드러워 조선 족인 우리가 쓰는 말이 오히려 상놈말처럼 느 껴질 때도 있다. 일견 자타가 공인하는 동방예 의지국으로 손색이 없다. 중국에서도 ‘예절’ 하면 최고로 꼽히는 조선족이지만 한국에서는 금방 주눅이 들고 무색해질 정도다. 그러나 한국에서 몇년간을 지내면서 그런 나의 생각은 크게 바뀌었다. 오히려 나는 한국이 동방예의지국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국가라는 것을 절실히 느낄 정도였다. 한국인은 중국인 보다 상품포장을 잘하듯 ‘사람포장’(人包裝 )을 잘할 뿐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겉으로의 예의만 잘 지키고자 할 뿐, 결코 심 성(心性)으로부터 나오는 속깊은 예의를 모르 는 이들이 바로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 었다. 언젠가 나는 한 한국 교수가 일컫는 예우(禮遇 )로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나중에 당사자인 그 교수는 나에게 진심어린 사과의 말을 하였지만 그때 일은 아직도 내 마음 속의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한국에 유학을 온 뒤 내가 제일 먼저 한국 학 생들의 본(本)을 받아 따라 배웠던 것은 교수 님들을 만나면 깊숙이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버릇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어색하고 꽤나 힘들었다. 그러나 내가 처음 유학올 때 아버지 께서 내게 거듭 일러준 진지한 충고가 있었다 . “모국에 유학가면 서책지식(書冊知識)도 중요 하지만 우리 민족의 예절과 문화, 사회의식 등 에 대하여 폭넓게 배우고 오너라. 그래야 너에 게 값진 유학이 될 것이다.” 이 말을 너무나 잘 기억하는 나로서는 허리 굽 혀 인사하는 것에서부터 한국 학생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빠짐없이 배우려고 무진장 애쓰던 터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내 전공과목의 J교수님에 게 교재 등에 대해 몇가지 상의를 드리려 연락 을 드리고 그의 사무실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는 비록 나의 주임교수지만 나는 한번도 그 의 강의를 들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많 은 저서를 내시고 겉에서 봐도 항상 인자한 웃 음을 잃지 않는 분인지라 나는 한국 지성인에 대한 맹목적인 존경심 같은 것을 지니고 있던 차였다. “어때요, 한국 생활이 힘들고 외로우시죠? 내 가 한국 사람 하나 소개시켜 드릴까요? 뭐 다 른 조건보다 중국 사람들은 돈만 많으면 되잖 아요. 그 사람 한달 월급이 얼마냐 하면, 음… 2백만원 정도는 될 거요.” 조심스럽게 그가 권하는 자리에 앉기 무섭게 교수님은 인자한 웃음을 띤 채 이런 말을 내게 건네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내가 뭔가 말을 잘못 들었나 싶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물어보았다. “녜? 교수님, 방금 뭐라고 하셨죠?” 한 老교수의 별난 ‘예우’ J교수는 정말로 내가 못알아들었나 싶었는지 여전히 인자한 표정을 흐트리지 않고 방금 했 던 말을 천천히 되풀이했다. 그때 나는 기가 막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닌 밤중 에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이랄까. 나는 그날 J교수님 방을 나오면서 인사를 하고 나왔는지 안하고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말할 수 없이 곤혹스러운 마음을 안고 숙소로 돌아왔다는 것뿐. “영옥씨, 웬만하면 그렇거니 하고 지나가요. 필경 교수님이잖아요. 아직 그 교수님 아래서 공부해야 할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그날 기숙사로 돌아온 내가 처음으로 J교수의 말을 룸메이트에게 옮겼을 때 그녀는 내게 이 렇게 권고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돈만 많으면 되잖아 요, 월급은 2백만원 정도예요”라고 말하던 노 교수의 그 목소리는 더욱 또렷해져왔다. 중국 에서 20여년간 타민족들과 어울려 살면서도 나 는 그같이 혹독한 인격모독을 당해 본 일이 없 다고 생각했다. 또 그 말은 나 하나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 나 의 부모님, 나아가 나를 키워주고 사랑해 준 고향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까지 밀려 와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것도 내가 그토록 어렵게 대하고 존경심을 품어왔던 한국 교수 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라니…. 나는 도저히 참고 지나갈 수 없었다. 나는 기숙사 문을 박차고 J교수 연구실로 뛰다 시피 달음박질쳤다. “교수님! ‘돈만 많으면 되잖느냐, 월급은 2 백만원 정도’라는 말을 저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이해할 수 있도록 오늘 저에게 그 말을 똑똑히 해명해 주셔야 저는 밥을 먹 고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스러운 대 한민국 H대학원 간판 아래 계시는 지성인으로 부터 그런 말을 들은 것에 대해 저는 지금 너 무나 큰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동포 유학생인 저에게 던지는 유혹입니까, 아니면 멸시입니 까?” 마침 J교수는 교학실에 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그 말고도 한국인 교직원들이 여럿 앉아 있었 다. J교수는 처음에는 의외로 당황해 하였다. 그리 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김영옥씨, 오 해하신 것 같은데 나는 좋은 뜻으로 한 말이에 요. 오해를 푸세요. 내가 김영옥씨한테 나쁜 감정 가질 이유가 뭐 있어요. 김영옥씨는 항상 부지런하고 착하고 순수한 사람인데…. 한국 사람들은 혼기를 앞둔 젊은 여자에게 그런 말 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것도 일종의 예우지 요. 그래도 계속 불쾌하고 그것 때문에 상처받 았다면 내가 사과할게요. …앞으로 잘 지냅시 다.” 내가 보기에 그 변명은 앞뒤가 안 맞고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나이 많은 J교수님의 사과하 는 표정은 사뭇 성근(진지)하였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내가 공부하던 대학원 에는 학생수가 적은 탓인지 J교수님이 나에게 던진 언사에서부터 사과했던 일이 금방 최고 ‘뉴스’로 교내에 떠돌았다. 한국 학생들은 교수님께 내가 발칙하게(?) 대들었던 것이 못 마땅했는지 나를 저으기 아니꼽게 보는 눈치였 다. 나는 어느덧 ‘예의바른 영옥씨’에서 ‘버릇 없는 중국 학생’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사회주의 나라 학생들은 교수님에 대한 예의 도 없나봐….” 어느날 룸메이트 언니가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 떠도는 쑥덕공론을 정리하여 나에게 전해줬다. 그 자리에서 언니는 한국 학생들에게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고 한다. “아니에요. 중국에서도 역시 교수님은 매우 존경받는 분이에요. 한국 학생들처럼 교수님 앞에서 90도 허리 굽혀 인사하지는 않지만, 대 신 한국 학생들처럼 뒤에서 교수님에 대한 험 담 같은 것도 늘어놓지 않아요. 한국 학생들은 교수님 앞에서는 숨도 크게 못 쉬는 것 같아 요. 하지만 중국에서는 학생들이 교수님 면전 에서 교수님의 잘못을 지적하죠. 그러나 우리 는 그런 행위가 한국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처 럼 예의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죠. 우리는 교수 님 앞에서 담배도 자유롭게 피우고, 사제간에 술을 붓고 권커니 잣커니 하지만 교수님에 대 한 정의(情義)와 예의는 한국 학생들에 뒤지지 않아요.” 룸메이트 언니 역시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었던 것이다(후문이지만 내가 이 ‘사건’을 어느 지면을 통해 글로 소개하자 이 글을 읽은 일 부 한국에 나와 있는 조선족들은 내게 ‘꽃타 령’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뜻인즉 내가 그 일로 받은 충격은 매일 자신들이 겪는 한국인 의 무례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 “孔子의 제례의식을 왜 잊었느냐고?” 중국에서 사업하는 한국인 사장님이 한분 있다 . H사장님이다. 내가 연변에 있던 시절, 그가 어느날 자기네 회사의 광고를 내겠다며 우리 신문사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날 그는 품 안에서 귀중한 선물이라며 20cm는 됨직한 사기 (沙器) 공자상(孔子像) 하나를 가지고 왔다. “이걸 어디다…?” 뜻밖의 선물에 의아하게 생각하는 우리에게 그는 마치 ‘이렇게 무식 한 사람들을 봤나?!’하는 표정으로 얼굴이 금 방 붉어지며 언성이 높아졌다. 그는 “이 분은 말이야,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성인(聖人)인데 중국 사람들은 먹고 사는 데 만 급급해 반세기를 거치면서 공자에 대한 제 례의식을 다 잊어버려 나는 오히려 우리 한국 인 전문가로부터 그것을 배웠다”면서 긍지감 과 우월감을 감추지 못했다. 줄기차게 이어지는 H사장의 공자에 대한 ‘찬 미’는 너무나 지루했고 30분이 다 가도록 그 칠 줄 몰랐다. 그는 이제는 광고 얘기보다 마 치 공자에 대한 특강을 하러 온 사람처럼 보였 다. 그는 스스로 마치 무지몽매한 미개인을 개 화(開化)하러 온 선지자쯤으로 생각하는 듯했 다. 듣다 못한 선배동료 한 사람이 이런 말을 뱉었다. “사장님, 그런 일이 한국에서는 대단한 자랑 거리가 될지 모르나 여기 조선족들은 자기 조 상신을 믿습니다.” 그날 그는 불쾌한 마음에 광고 얘기는 아예 꺼 내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표정은 마치 야만인이라도 대한 듯한 표정이었다. H사장이 나가자 한 선배동료가 참을 수 없다는 듯 큰소리로 역정을 냈다. “조상인 단군묘지 (檀君墓誌)도 바로 못세우는 주제에 대국 땅에 와서 제례의식을 잊었다구 우리를 훈시해?!” 결론적으로 나는 한국 사람들이 일본을 좋아하 는 것에 대해 이의가 없다. 그리고 나는 아직 한번도 일본에 가본 적도 없고 알고 지내는 일본인도 없다. 다만 내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 은 문자로는 그렇게 혹독하고 감정적으로 일본 을 욕하면서 현실에서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는 너무나 상반된다는 점이다. 내가 즐겨 찾는 서울 도심의 한 대형 서점에 가면 요즘도 일본에 관한 책이 소설 분야를 빼 고라도 굉장히 많다. “일본은 없다”(1, 2권 ) “일본은 있다” “일본을 미워하는 50가지 이유” “일본이 있는지 없는지는 가봐야 한 다” “추한 한국인인가, 추한 일본인인가” “추한 한국인이 일본에게 답한다” “일본남 자를 말한다” “일본여자를 말한다” “일본 의 첫왕은 한국인이었다” “일본인은 샤워를 하지 않는다” “가면 속의 일본인” “일본 , 일본인” “한국이 기필코 일본을 이겨야 하 는 이유”…. 중국인도 이해 못하는 한국인의 對日感情 오늘도 일본을 ‘욕하는’ 책들이 서점에는 범 람하고 한국인들의 갈채 속에서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까지 일본, 일본 사람에 대해 입으로 험담하는 한국인을 본 일이 없다. 단 한사람도. 한국인은 모두 일본이나 일본인에 대해 얘기할 때면 감탄사와 ‘지나친’ 호의로 절절했다. 그리고 그들의 면전에서도 깍듯했고 때로는 절절매는 모습이 다. 중국 사람들 눈에 비친 한국인 형상도 그랬고 조선족의 눈에 비친 한국인 형상도 그랬다. 그리고 한국인은 서울에서 일본인 앞에서 기는 것도 부족하여 외국(중국)에 가서도 ‘일본인 ’하면 꺼벅 허리를 굽힌다. “일본인은 참 대단한 사람들이야. 우리나라는 안돼!”(무엇을 보고 그러는지 나는 아직 완 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일제는 확실히 다르단 말이야, 사람도 물건 도 우리보다 몇배 나아!” “… …” 한국인은 중국 땅에 가서도 일본에 대한 절절 한 존경심과 호감을 감추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해 조선족은 물론이고 아직까지도 일본인을 ‘쑈꾸즈’(小鬼子)라고 칭하는 중국 사람들 모두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은 배타적인 한국 사람들과 달리 포용력이 넓다(중국 사람들이 만약 한국 사람 들과 마찬가지로 민족심이 강하고(?) 배타적이 었다면 중국의 우리 조선족도 그 옛날 벌써 견 디지 못하고 한국으로 도로 쫓겨왔을 것이다) . 사람들이 좀 거칠어 그렇지 외국인에 대해 중국인처럼 우호적이고 열정적으로 대하는 나 라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 다. 그런 포용력이 넓은 중국인들이지만 유일하게 옹졸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바로 일본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중국에 와서 굉장 히 언행을 조심하고 자기단속이 엄한 편이다. 그것은 자신감과 오만함으로 중국 땅을 휘젓 고 다니는 한국인들과는 아주 대조를 이룬다. 한국처럼 일본을 꾸짖는 책들이 나와 있지는 않지만 그들은 일종의 ‘짖지 않는 개가 더 무 섭다’는 뿌리 깊은 의식을 갖고 있다. 실제로 중국에 있는 일본 사람들은 매일 피부로 중국 인들의 속내(대일감정)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은 중국에서 기업을 하면서도 회 사원들의 편의시설을 잘 배려하는 것은 물론 ‘공산당지부 회의실’까지 지어주는 등 ‘과 잉’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중국 언론은 이러 한 사실들을 가끔 다루기도 하지만 굉장히 가 볍게 취급한다. 거기에 비하면 한국인 사업가들은 배짱이 두둑 한 편이다. 언젠가 중국 칭다오(淸島)에 있는 한국 기업에 들어가 일하던 조선족 청년들이 하던 얘기가 생각난다. “처음에는 한국 기업이 같은 동포라고 해서 의지할 곳도 되겠다 싶어 찾아갔는데, 차라리 간사한 일본놈 기업에 들어가기만도 못했지! ” 조선족 청년들은 중국어와 다른 외국어에 능통 한 관계로 일 외에 가끔 통역 일을 하는 경우 도 흔하다. 그런데 한국인 사업가들은 상하를 불문하고 중국인들에게 거의 말머리마다 ‘이 뙤놈들이…’‘이 미개한 청국 새끼들이 뭐라 고 하나? 빨리 한국말로 번역해 봐’라고 막말 을 해대 곤혹스럽다 못해 분노마저 느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한국 사장, 부장도 전혀 다른 언 행을 보일 때가 있었다. 바로 일본 손님에 대 한 색다른 예우였다. 그때마다 조선족들은 허 탈해 했고 구역질을 금치 못했다는 것이다. 조선족 청년들을 일본 손님 앞에 통역으로 세 울 때면 한국 사업가들은 평소 입던 작업복 대 신 반드시 새 양복을 입도록 명령하는 것이다 . 일본인 방문객의 나이가 많고 적고간에, 심 지어 관광차 들른 어린아이들 앞에서도 그렇게 공손할 수 없다고 한다. “‘선생님께 말씀드린다고 여쭤라…’‘황송 합니다. 아가씨…’ 굽신거리고 손바닥을 싹싹 비벼대며 억지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 몰골, 아휴 징그러워! 진짜 추한 한국인이야.” 조선족 청년들이 마지막으로 머리를 흔들어대 면서 한 말이다. 중국에서 한국인의 이러한 꼴 불견을 볼 때마다 조선족들은 말할 수 없는 정 신적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조선족들의 정신적 바탕에는 “우리 조상들은 너희들 왜 놈과 싸우기 위해 애국하러 중국에 왔고 우리 는 그이들의 후예들이야”하는 강한 의식이 자 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자란 사람들은 조선족이나 본토민족 인 한족을 막론하고 일본에 대한 감정은 대개 비슷하다. 나이 많은 세대들은 아직도 일본에 대해 말할 때면 치를 떨며 얘기하고 젊은 사 람들도 자기 조상들이 일본에 무참히 짓밟혔던 역사를 알고 있는 지라 항상 일본에 대한 무 겁고 ‘불순한’ 감정, 경계심을 가득 갖고 있 다. 한국인의 자기비하가 부른 일본인의 오만 그래서인지 중국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민족이 든 일본 사람을 사람이라 부르지 않는다. 꼭 일본‘놈’(중국말로는 鬼子)이라고 버릇처럼 붙여 부른다. 또 우리말 ‘왜놈’과 걸맞은 중국말 쑈꾸즈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 사람 과 비즈니스를 하는 신세대들일지라도 중국인 이면 역시 변함없이 이렇게 부른다. 그러나 중국 서점에서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없다” “일본을 미워하는 50가지 이유”류의 책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 대신 서점에는 그동안 일제가 저질러온 온갖 만행들을 차분히 기록한 역사책들만 정리되어 있을 뿐이다(‘ 차분히’라는 표현은 양국의 책 제목에서 내가 느낀 차이 때문에 쓴 표현이다). 우리가 보기 에 한국인들은 실속없이 북치고 꽹과리치며 떠 든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한국인의 이같은 호의와 존경심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의 반응은 사뭇 다른 것 같다. 도쿄(東京)에 유학중인 나의 중국인 친구 마쑈쭝의 얘기에 따르면 일본인들 이 한국인을 무지막지하게 싫어하고 깔본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일본인과 들소처럼 떠받기를 잘하는’ 중국인에 대해서도 별로 호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중국인은 한국 유학 생들보다 훨씬 ‘값’이 나간다고 자랑삼아 말 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그 친구는 말했다. “일본인은 자기 보다 세게 나와야 우러러보고 존경하지, 아첨 하고 싹싹하게 나오면 X처럼 본단 말이야. 그 덕분인지 우리 중국 유학생들은 장학금도 한 국 학생들보다 쉽게 타 쓸 수 있을 정도야. 돈 있는 일본인들은 우리 중국인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아는 것 같애.” 그는 그 대목에서 어깨를 으쓱할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일본에서 몇년 있다 보니 알게 된 것인데 일본인이 남북한을 대하는 태도 역 시 엄청나게 다르다는 점이야. 한국의 반일감 정은 얼마 안되는 민족주의자와 서민층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하더라구. 그런데 북조선에서는 일제가 망한지 반세기가 다 되는 데도 어제 일같이 기억하고 있는데 우리 중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무의식적으로 골수에 박힌 사상으 로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는 거야. 내가 아는 일본 기자는 ‘나는 한국에 가면 귀빈 대접을 받아도 북한에 가면 손님으로 대접해 주기는 하지만 마음이 불편하고 저리다’라고 말할 정도였어.” 중국 친구 마쑈쭝의 말이 아니더라도 조선족의 눈에 비친 한국인들의 반일감정은 북조선에 비하면 형식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조선족들은 하고 있다. 김영옥 (옌볜일보 서울특파원)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後後� �碻�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