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2월 14일 월요일 오전 05시 43분 09초 제 목(Title): 정재걸/학교교육과 전통문화교육 학교교육과 전통문화교육 정재걸 ------------------------------------------------------------------------------- - 현 대구교육대 교육학과 교수. 57년 생. 서울대 교육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철학박사.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사 철학 연구부장 역임. "교육이란 무엇인가"(공저), "한국 근대 학교교육 100년사 연구(1)-개화기의 학교교육"(공저)"동도서기론 연구(1)(2)(3)"외 논저 다수. ------------------------------------------------------------------------------- - ------------------------------------------------------------------------------- - 1. 전통의 계승과 발전 우리 영화사상 최대의 관객동원 기록을 세운 「서편제」와 유홍준 교수의 베스트셀러인 『나의 문화유적 답사기』는 1990년대에 들어와 전통문화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음은 물론 "우리 것을 찾는 움직임"이 본격화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존 네이스빗이라는 미래학자는 이러한 현상을 "세계화"와 동시에 출현하는 "민족화"의 세계적 추세라고 말하고 있다. 즉 엄청나게 늘어난 교역과 여행 그리고 국가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홍수처럼 밀려드는 영화와 TV 매체 등에 의해서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이 동질적인 것이 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외부적인 영향에 반발하면서 그 대신 반작용으로 그들 자신의 문화, 언어, 종교, 예술 등의 독특성을 주장하게 된다는 것이다(김성건, 1993). 그러나 외적세계가 보다 동질적인 것이 될수록 그들의 내부로부터 나오는 전통에 한층 더 매달리게 되는 세계화 경향이 모든 나라에서 다 전통교육의 강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럽과 같은 지역은 전통문화가 그대로 현대문화로 성장해서 계승되고 있다. 그들이 현재 하는 연극, 음악, 무용 등은 따지고 보면 모두 그들의 전통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학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포퍼(K.Popper, 1902∼,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국 철학자로 비판적 합리주의의 대표적 인물 )와 푸코(M.Foucault, 1926∼84, 구조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의 학문 속에 그대로 살아있다. 유럽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소위 팝송이라고 하는 미국의 현대음악과 헐리우드 영화에 그들의 청소년들이 오염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 우리와 같이 서구문화전체와 전통문화간의 위상 재정립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과 관련하여 세계는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대별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럽과 같이 전통문화 자체가 현대문화로 계승 발전되는 유형이 그 한가지요, 또 한가지는 인도와 같이 오히려 전통문화가 문화의 주류를 형성하고 서구문화가 부분적으로 유입되고 있는 유형이다. 이런 범주에 포함되는 나라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불교국가들과 서남아시아의 회교권국가들이 포함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유형에는 전통문화와 서구문화가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나라와 일본과 같은 나라들이 포함된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현재 문화재 보호법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우리 나라와 일본 두 나라뿐이라고 한다(박성희, 1991). 일본은 1955년부터 인간문화재를 지정·보호하기 시작했고, 우리 나라는 이를 참고하여 1961년 정부산하 문화재관리국의 발족과 더불어 유형문화재(1962년), 무형문화재(1964년)를 지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은 범 세계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통문화와 서구문화 간의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권 혹은 한자문화권의 독특한 문제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은 전세계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나라를 위시한 동아시아 문화권 혹은 한자문화권의 독특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1). 이런 나라의 공통적 특징은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통해 외형상 서구문화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그들이 축적해온 문화적 전통이 서구 문명에 완전히 동화 흡수되기에는 너무나 뿌리 깊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특징은 인도나 아랍권의 문화적 전통과는 달리 이들 동아시아 국가들의 전통문화는 지나치게 배타적이거나(회교권) 또는 지나치게 포용적(인도권)이지도 않은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보다 더 진전된 사실 확인 작업과 논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전통문화에 관한 한 동아시아 문화권은 - 비록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양자 택일적 선택은 아니지만 -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으며, 여러 가지 배경적 요인은 그 선택을 더욱 더 강요하리라는 것이다. ------------------------------------------------------------------------------- - 2. 민족의 생존 조건으로서의 전통교육 전통의 계승과 발전은 전통교육의 모습을 기술하는 용어이지, 그것이 전통교육의 목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달리 말해 왜 전통의 계승과 발전이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이 보다 전통교육의 목적에 접근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전통의 계승과 발전이 필요할까? 전통의 계승과 발전의 목적을 흔히 "민족주체성"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민족주체성이라는 목적이 전통교육의 가장 일반적인 목적이요, 그래서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는 것이다.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민족주체성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증거가 필요하지 않다. 물론 몇 가지 단서가 있다. 그 중 한가지를 들자면 자신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데에 있어 계승자의 민족적 자존심과 반드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깃털로 장식된 모자를 쓰고 춤을 추는 것이라든가, 일본의 원주민 아이누족과 대만의 고산족이 자신들의 수공예품을 파는 것, 타이티의 무녀들이 관람객들과 춤을 추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 혹은 그것을 통한 민족주체성의 형성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들의 시연(施演) 속에서는 아무런 민족적 자존심을 발견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이홍우 교수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영광스러운 것인가 수치스러운 것인가 하는 것은 그 유산 자체의 특성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물려받는 자손의 태도에 달려 있다"(『한국교육학의 성찰과 과제』, 213쪽)고 하여 전통의 계승과 발전에 있어서 계승자의 주관적 입장이 결정적이라는 것을 단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민족주체성이라는 전통교육의 목적은 더 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궁극적인 개념이다. 즉 사랑, 애국, 민주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그것 자체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족주체성은 그 입장을 견지하거나 타인을 비판하는데 유용한 개념이지, 일반국민들이나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데 유용한 친절한 개념은 아니다. "서구 산업문명과 합리주의의 한계와 그 대안으로서의 전통문화"라는 다소 긴 제목의 전통교육의 목적은 이런 점에서 민족주체성이라는 전통교육의 목적과 대비된다. 서구 학자들 중에 동양사상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이룩한 사람들은 적지 않다. 하이데거(1889∼1976, 20세기 독일의 실존철학의 대표자)를 위시한 실존철학이 그렇고, 불교의 유식학(唯識學, 우주의 궁극적 실체는 오직 마음 뿐으로 외계의 대상은 단지 마음이 나타난 결과라는 불교사상)을 받아들인 심리학자 칼 융(Carl Gustay Jung, 1875∼1961)의 경우가 그렇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서구 학문의 토대가 되는 물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까지 동양사상을 배우는 대열에 합류하였다. 카푸라(F.Capra, 물리학자, 동양학을 배우려는 신과학운동의 주창자)를 위시한 "신과학운동"의 주창자들이 그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물론 이런 배경에는 일본의 경제적 성취가 크게 작용하였음은 분명하다. 서구문명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해서 우리가 공연히 우쭐대거나 좋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어쨌거나 그 한계를 깨달은 사람들은 서구학자들이지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과학운동에서 고전물리학과 패러다임을 달리하는 현대물리학이 동양사상과 놀랍도록 유사하다고 해서 당장 동양사상이 물리학의 연구방법으로 활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비극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이해하는데 조차 서구의 학문적 성과를 빌어오거나 심지어는 그들이 이해한 세계관을 다시 번역하여 이해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비관할 일만도 아니다. 인류문명이 유럽을 지나 미국을 거쳐 동아시아로 이전될 것이라고 장미 빛 미래를 펼치는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지만,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서구의 문명을 따라잡기 어렵다고 자포자기하거나 아니면 여전히 서구학문을 소개하는 "유통업으로서의 학문"(조동일, 1993) 을 하는데 만족하는 것도 똑같이 어리석은 일이다. 서구문명은 우리 경제가 그러했듯이 "압축경험"으로 따라 잡을 수 있으며, 전통문화에 관한 한 - 비록 문화적 단절을 겪었지만 - 우리가 서구 사람들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전통교육의 목적으로서의 민족주체성과 서구문명의 한계와 대안은 일견 매우 유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전통교육의 내용과 방법과 관련하여 상당한 차이를 나타낼 수 있다. 과거 유신정권 하에서 행해졌던 것과 같이 민족주체성이라는 목적 하에 전통문화를 가르친다고 할 때, 찬란한 과거의 역사·문화를 일방적으로 미화·숭배하도록 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고조선의 영토, 광개토대왕 때의 국토의 크기,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동양 최고의 천문대, 최초의 측우기, 철갑선 등등 "최고", "최대", "최초"의 수식어가 붙는 유물·사건들이 끊임없이 발굴·소개되었던 것이다. 연변의 인민출판사에서 펴낸 『중국의 세계제일』이라는 책은 이런 측면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준다. 머리말에서 이 책은 " 애국주의 교양을 진행하는 보급도서"라고 하여 세계에서 "제일 많은","제일 큰", "제일 오랜", "제일 먼저"의 수식어가 붙은 사항 187개가 소개되어 있다. 예컨대 "글자수가 제일 많은 자전", "제일 일찍 나온 교육저작", "제일 먼저 로케트를 발명". "제일 처음으로 신대륙발견", "제일 일찍 나온 환경보호법" 등 아동들이 조국에 대한 긍지와 자랑을 느낄 수 있는 교육내용들이 쉼 없이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이 나온 것이 1990년이므로 개방화와 시장경제전략을 통해 급격한 경제성장을 꾀하는 와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서양이 밟은 산업화과정을 거치면서 국민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 책이 출간되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제 1차 경제개발 계획이 끝난 직후 국민교육헌장을 통해 "민족중흥"과 "새 역사창조"를 선포한 것과 시기적 유사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민족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미화·숭배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소극적인 방법이고 실제 그 효과도 그리 크지 않다. 유홍준 교수가 첨성대에 대해 전통문화교육을 비판한 내용을 들어보자(『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32∼135쪽). //기대를 안고 경주에 가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은 고사하고 실망만을 안겨주는 대표적인 유물은 첨성대이다. 교과서에서 동양 최고의 천문대라고 배운 첨성대가 겨우 10m도 안돼는 초라한 규모라는 사실에 망연자실해질 따름이다. 저것도 천문대라고 해서 기어올라갔단 말인가? 거기에 올라가면 하늘이 가깝게 보이더란 말인가? 그럴 바에야 산 위에 올라가서 보거나 옆 동네에 있는 반월성 언덕에라도 세울 일이지. 신라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도 가난하고 용렬스럽게만 생각된다. 그러나 가난하고 용렬스러운 것은 첨성대가 아니라 그것을 동양 최고의 천문대라고 가르치고 배운 이 시대의 문화행태이다. 우리가 언제 첨성대의 구조와 상징성을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들어볼 기회가 있었던가?// (('민족주체성의 확립'을 위해 전통문화를 부분적으로 발췌, 미화, 숭배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소극적이다. 즉 경주의 첨성대가 '동양 최고'라고 가르칠게 아니라 그 '상징성'을 이해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민족주체성의 확립은 첨성대를 최고의 천문대로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진 상징성을 이해하도록 가르쳐야 보다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유홍준 교수는 "사랑하게 되면 알게 된다"고 하였지만 거꾸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전통교육이 또 하나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서구문명의 한계와 대안은 민족주체성의 확립보다 오히려 더욱 더 "적극적"이며, 전통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시사하는 측면도 적지 않다. 즉 우리의 전통을 사랑하고 긍지를 갖기 위해서는 서구문명의 시각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적인 세계관으로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미술을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조용진, 1993). //우리 나라의 근대화과정에 있어서 서구화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서구화 자체가 나쁜 것, 잘못된 것이 아니라, 서구화된 시각으로만 우리 것을 보려고 하는 것에서 문제가 커지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미술의 전통을 발견하고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선 그 시대, 그 예술을 만든 상태로 되돌아가 그들의 생각과 가치관, 즉 그 시대의 조명을 통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런 연후에 비로소 이 전통이 현대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전통에 대한 현대적 해석은 실로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미술의 장래에 커다란 악영향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착각마저도 당연시하게 된다.// 전통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궁극적으로 민족의 생존과 관련되는 것이다. 국가의 성립요건이 국민, 영토, 주권이라고 한다면 전통문화 혹은 민족문화도 반드시 또 하나의 요건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이계학 교수와 같은 사람은 심지어 영토와 주권은 없어도 전통문화는 국민과 함께 국가를 형성하는 양대 요소라고 지적하고 있다(『환장한 사람들』, 174∼175쪽). 이렇게 볼 때 "민족주체성"이나 "서구문화의 한계와 대안"이나 궁극적으로는 민족의 생존이라는 목적의 하위요소들이다. 그리고 전통교육의 목적을 어떻게 설정하든지 간에 전통의 "어떤" 내용을 "어떻게"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 3. 학교교육을 위한 전통문화의 범주 ((전통은 '모든 것이 변하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이며, 특정 역사적 시기의 돌출적인 사건이 아니라 '면면히 이어 내려오는 것'이고, '특정 민족이나 공동체만이 가지는 독특한 그 무엇'이어야 한다)) 전통이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전해져 내려오는 계통"이다. 서양어의 "tradition"의 어원은 라틴어의 "tradito" 혹은 희랍어의 "pradosis"라고 하는데 양자 모두 "넘겨주다"(handing over)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전통사상의 현대적 의미』, 9쪽). 그러나 전통은 단순히 넘겨받은 유산은 아니다. "나쁜 전통"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전통적"이라고 하는 말을 사용할 때는 부정적 의미보다는 긍정적 의미가 강하다. 고병익은 전통의 의미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고병익, 1982). 첫째, 전통이란 변화를 전제로 한다. 즉 모든 것이 바뀌어 나가는 가운데서도 바뀌지 않는 것을 전통이라고 한다. 모든 것이 옛날과 동일하다든지, 혹은 모든 것이 전혀 새로운 것이라는 상황 속에서는 전통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 비록 우리가 개항 이후 100년 남짓의 짧은 시간동안 급속히 서구화되었다고 해도 무엇인가 변하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에 전통이라고 하는 것을 찾게 된다는 의미이다. 둘째, 전통은 계속성을 포함한다. 특정 역사적 시기에 돌출적으로 발생한 사건을 전통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전통이란 한 민족을 단위로 하여 면면히 이어져오는 그 무엇인가를 의미한다. 셋째, 전통이라고 간주될 수 있으려면 특정 민족이나 공동체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하고 고유한 그 무엇이어야 한다. 어느 민족 혹은 어느 공동체나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은 전통의 범주에 포함될 수 없다. 위와 같은 주장은 전통의 의미에 대해 극히 중요한 범주를 설정해 준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전통인 것"과 "전통 아닌 것"의 구별이 모호하다. 예컨대 노래방에서 부르는 뽕짝이 과연 우리의 전통가요인가? 국토순례시 절두산 성지와 천진암에 들렀다면 그것도 과연 전통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이 생기는 것이 전통이라고 하는 개념이 갖고 있는 상대성이라는 의미 때문이다. 어제 것은 오늘에 비해 "더" 전통적이다, "단군 신앙은 불교신앙에 비해 더 전통적이다"라는 주장이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전통이 갖는 상대적 성격 때문이다. 특히 전통사상과 관련하여 전통의 상대적 의미는 심각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컨대 기독교 사상의 경우를 살펴보자. 카톨릭의 경우 이 땅에 들어온 지 200년이고 개신교도 이미 선교 100주년 기념식을 성대히 치렀다. 더구나 카톨릭과 개신교를 합한 기독교인의 총 수는 여타 종교를 앞지른 지 오래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 사상은 전통사상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대두되고 실제로 국민윤리교과의 전통사상부분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이미 전통사상의 울타리를 점령해온 불교 측의 반발을 초래하여 "기독교도 전통사상인가" 하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불교사상』, 44∼59쪽; 『전통사상의 현대적 의미』, 14쪽). 전통의 상대적 성격과 관련하여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세 가지 문제가 있다. 그 한가지는 전통의 시대적 하한선을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이고 또 한가지는 전통과 외래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마지막으로 전통 속에 내재되어 있는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문제는 상호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는 각 문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전통의 시대적 하한선 문제는 전통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전통의 시대적 하한선은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이다. 즉 전통을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창조된다는 의미에서 하한선이란 의미가 없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재창조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가와 관련하여 보면 사정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3·1운동을 재현하기 위해서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하는 것은 매년 전주에서 개최하는 국악경연대회하고는 의미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의미가 다른가? 3·1운동이 전통과 관련되는 것은 그 이전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고 간주되는 "외침에 대한 저항",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정신"이지 그 행위자체가 전통인 것은 아니다. 반면에 국악경연대회에서의 국악연주는 그 자체가 전통의 재현 내지는 재창조라고 간주된다. 이 비교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즉 3·1운동은 일회적인 것이고 국악이라고 하는 것은 지속적인 것이었다는 차이가 전통과 전통 아닌 것을 가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3·1운동과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을 비교하면 어떨까? 전통음악과 현대음악, 전통교육과 근대교육, 전통가옥과 양옥 등과 같이 대비되는 표현을 쓰는 것은 전통이라고 하는 것이 어느 시기 이전에 보편화되었으나 현재 그렇지 못한 것임을 함의한다. 그리고 그 시기는 서양문물이 유입되기 이전, 역사학의 시대구분에 의하면 개항이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앞에서 검토하기로 했던 두 번째 문제, 즉 전통과 외래의 경계문제와 관련된다. 전통과 외래의 경계문제는 또 다른 난제를 가지고 있다. 즉 전통의 고유성과 관련하여 외래의 범주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가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외래의 범주는 크게 중국과 서양으로 대별된다. 전통의 시대적 하한선을 개항으로 잡는 것은 외래의 범주를 서양에 한정시킨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대종교를 위시한 민족계 종교단체들 그리고 단재 신채호(1880∼1936, 항일독립운동가, 사학자, 언론인) 선생을 종주로 하는 재야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중국을 외래의 범주 속에 포함시키고 있다. 신채호 선생의 "조선 역사상 1천년래 1대 사건"은 고려 인종 13년 묘청의 난으로 김부식의 사대주의가 승리한 것을 말한다. 소위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에서 한학파인 비아가 국풍파인 아를 눌러 이겼다는 것이다. 이후 조선의 고유사상은 역사의 주류 속에서 소멸되어 나갔다는 것인 바, 이 논의에 따르면 전통의 하한선을 이 시기로 설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부식의 승리로 우리의 고유한 전통은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국풍파가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지배계층 내부의 일이요, 그 전통은 일반 민중들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그것이 화랑을 계승한 무당이요 무속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검토하고자 했던 세 번째 문제, 즉 전통 속에 내재된 지배와 피지배관계와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전통의 지배·피지배 관계는 논리상 한학파들의 승리이전에는 지배·피지배문화간의 차이가 없었음을 함의하고 있다. 이후 조선조 유교문화의 전반적인 확산으로 일반 백성들의 문화가 상당히 유교적인 색채를 띄게 된 것은 무속을 고유전통의 핵심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유감스러운 일로 간주될 것이다. 전통에 대해 계급론적 입장을 가지지 않더라도 지배집단이 향유하던 고급문화보다는 일반 백성 대다수가 향유했던 "민중문화"(2) 가 보다 더 중요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다 수긍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전통에 대한 대부분의 문화 인류학적 연구들이 전통이 아닌 "민속"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적 하한선', '외래문화와의 경계', '지배·피지배 관계'에 따라 전통은 상대적이다. 즉, 신라의 것이 조선의 것보다, 화랑이 성리학보다, 서민들의 구비문학이 지배층의 한문학보다 "더" 전통적인 것이다.)) 전통과 관련된 세 가지 문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상대적"인 것이다. 즉 신라시대의 것이 조선시대의 것보다 "더"전통적인 것이며 화랑과 관련된 그 무엇이 성리학과 관련된 그 무엇보다도 "더" 전통적인 것이며, 일반 서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온 구비문학이 지배층들의 한문학보다 "더"전통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간략히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전통교육이란 전통문화를 가르치는 일이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무엇을 전통문화의 내용으로 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홍난파의 "울밑에서 봉선화"라는 가곡은 전통문화인가? 신라시대의 토지소유관계에 대한 지식은 전통문화인가? 강원도 명주군 장덕리에 있는 은행나무는 전통문화인가? 퇴계 선생이 필사한 『活人心方』이라는 책은 전통문화인가? 전통문화란 "전통"과 "문화"가 합성된 개념이다. 전통의 범주는 그 상대성이라는 특징 때문에 시대적 하한선, 외래문화와의 경계, 지배·피지배 관계에 따라 그것이 포괄하는 내용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한다. 한편 문화라는 개념도 관념(ideas), 행위(acts) 혹은 추상적인 것(abstraction) 등 그 의미가 다양하다(레스리 A 화이트, 1978). 여기서는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전통을 서양문명의 본격적인 유입 이전에 우리 민족이 모든 역사적 단계를 거쳐 개별적 혹은 집단적으로 이룩한 문화적 유산이라고 규정하기로 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홍난파의 가곡은 전통문화가 아니다. 시기적으로 개항이후의 노래이기도 하거니와 이삭대엽(二數大葉; 우리 전통 가곡의 대표적인 형태)과 같은 전통적인 가곡의 영향을 받은 노래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홍난파의 가곡이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정서를 받아들인 것이라는 논란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끝없이 받아들이다 보면 전통문화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신라시대의 토지소유관계는 시기적으로 틀림없이 전통시대 혹은 전통문화 시대의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토지소유관계에 "대한" 지식이라고 할 경우 애매해 진다. 신라시대의 토지소유관계를 기록한 문서가 발견되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전통문화이고 또 문화재로 지정될 것임에 분명하지만 그 지식을 담은 논문이나 강연테이프를 전통문화 혹은 문화재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명주군의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166호로 지정된 엄연한 문화재이다. 현지 조사를 해보면 틀림없이 이 나무는 숱한 전설과 민담에 얽혀 있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은행나무는 전통문화라고 하기 어렵다. 이것은 문화라고 하는 것이 - 어떤 형태로 정의되던 간에 - 인간의 개인적 집단적 노력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록 우리 국토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통교육의 목적 중의 한가지라고 하더라도 명승지나 천연기념물은 전통문화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퇴계 선생의 친히 옮겨 적은 『활인심방(活人心方)』은 중국 명나라 초에 함허자(涵虛子)라는 선인이 지은 책이다. 퇴계 선생이 추가한 내용이라고는 5장(五腸)과 3초(三焦)를 건강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소리를 내는 내용에 한글로 "취", "훠", "휴" 등을 추가한 것이 고작이다. 따라서 그것은 엄격히 말해 중국의 전통문화이지 우리의 전통문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은 문화재로 분류되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전통문화 속에 포함된다. 그 이유는 퇴계 선생이 직접 필사했다는 것만은 아니다. 또한 중국의 문화를 제외하면 결국은 지금은 모두 인멸되고 없는 단군신화나 고기(古記)류와 관련된 내용만 전통문화 속에 남기 때문만도 아니다. 퇴계 선생이 필사한 『활인심방』이 전통문화인 것은 그것이 중국인이 썼다고 해서 중국의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가 공유했던 문화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현재 그리스와 이태리라는 국가의 고유한 전통문화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스·로마문화는 유럽 전체 국가가 공유하는 전통문화이다. 이런 맥락에서 서구문명의 유입 이전의 동아시아 문화는 비록 중국이 주도했다고 해서 중국의 전통문화라고 하지 않으며 동아시아 각국 모두 자신들의 전통문화라고 간주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엄격한 의미에서 『활인심방』이라고 하는 책도 함허자의 독창적인 저술이 아니라 그전까지의 도교적 수양법의 일부를 편집한 것에 불과하며, "술이부작"(述而不作-계승만 하지 새로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말)의 전통을 이어받은 동양의 문헌들이 대부분 이와 동일한 것이다. 판원(版元)과 판각(板刻)을(3) 고려하지 않는다면 문화재로 지정된 대부분의 불교관계서적들도 모두 베껴 쓴 책들이다. ((전통을 서양문명의 본격적 유입 이전에 우리 민족이 모든 역사적 단계를 거쳐 개별적, 집단적으로 이룩한 문화유산이라고 규정하면, '홍난파의 봉선화'나 '명주군의 은행나무'는 전통문화가 아니다)) 홍난파의 봉선화나 토지소유관계에 대한 지식 그리고 은행나무는 전통문화가 아니고 퇴계 선생이 베낀 책만이 전통문화이다라고 해서 무엇이 전통문화이고 무엇이 전통문화가 아닌지 확실해지는 것은 아니다. 전통문화란 무엇인지 보다 적극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통문화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구체적으로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 - 4. 전통문화의 분류 전통문화를 분류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가장 상식적인 방법으로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로 크게 대별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이러한 분류는 그 분류의 범주가 너무 크기 때문에 별 효용성이 없다는 문제를 제외하면 가장 무난한 방법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문화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정신문화 속에는 사상·종교·제도 및 관습이 포함되고 물질문화 속에는 건축·조형물, 서적 및 각종 유물이 포함된다라고 생각하면 일견 매우 명료해 보인다. 그러나 정신문화와 물질문화의 구분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불룸(B.Bloom, 1913∼, 미국의 교육학자로 교육목표를 구체적으로 분류함)의 "교육목표 분류학"과 같이 전통문화에 대한 분류준거나 방법을 체계적으로 논의한 책은 아직 없다. 그러나 전통문화를 다룬 책들은 나름대로 전통문화를 분류하고 있다. 이러한 기존의 분류방식을 분류하면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그것을 각각 "한국학적 분류", "민속학적 분류", "전통적 분류", 그리고 "교육현장적 분류"라고 명명하고 각각의 내용을 검토해 보기로 하자. 한국학적 분류란 한국학에서 전통문화를 분류하는 방식이다. 서울대 동아문화연구소에서 발간된 『한국학』이라는 책에서는 전통문화를 종교학, 철학, 국어학, 고전문학, 현대문학, 고고미술학, 고전음악, 연극, 민속, 역사학, 정치·법제, 경제학, 사회학, 과학 등 14개 항목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중 현대문학과 사회학은 각각 개화기와 해방이후를 대상시기로 하기 때문에 전통문화의 범주에서 제외된다고 할 때(4) 이 책에서는 전통문화를 12개의 범주로 구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8년간의 작업 끝에 완성한 『한국문화사대계』에서는 우리 문화 전반을 12개 부문으로 구분하여 민족·국가, 정치·경제, 과학·기술, 풍속·예술, 언어·문학, 종교·철학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두 가지 분류방식을 서로 비교해보면 민족문화연구소의 민족, 국가의 두개 항목을 제외하면 대체로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민속학적 분류란 문화현상을 그 문화를 향유하는 주체자의 시각에서 이해하려고 한다는 측면에서 한국학적 분류와는 차이가 있다. 고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한국문화사대계의 후속사업으로 발간한 『한국민속대관』에서 "민속문화"를 사회구조·관혼상제, 일상생활·의식주, 민간신앙·종교, 세시풍속·전승놀이, 민속예술·생활기술, 구비전승·기타 등 총12개 항목으로 분류하고 있다. 문화공보부의 문화재 관리국에서 펴낸 『한국민속종합보고서』에서는 민속문화를 사회, 민간신앙, 산업기술, 의식주, 민속예술, 세시풍속 및 놀이, 구비전승 등 총 7개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민속대관의 "관혼상제"는 이 보고서의 분류를 "사회" 속에 포함되어 있고 "종교" 항목은 "민간신앙"에 그리고 "일상생활"은 "의식주"에 각각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민속대관』이나 『한국민속종합보고서』나 전통문화의 분류에서는 거의 일치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국학적 분류와 민속학적 분류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기존의 분석 틀을 들이대고 볼 것인가 아니면 아무런 틀 없이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어느 경우나 서로 대비되는 장단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전통교육의 목적을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로 규정할 경우 전통문화의 민속학적 분류가 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 전통문화에 대한 전통적 분류는 우리가 전통문화의 하한선으로 상정한 개항 이전에 당시의 문화를 분류했던 방식이다. 여기서는 『성호사설』(조선 후기 성호 이익의 저술, 백과전서적인 구성)에서 분류한 방식과 『증보문헌비고』(1908년 융희2년 간행한 한국전통문화에 대한 백과사전)에서 분류한 방식을 살펴보기로 한다. 『성호사설』은 전통문화를 천지문(天地門), 만물문(萬物門), 인사문(人事門), 경사문(經史門), 시문문(詩文門)등 5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천지문에서는 천문과 지리를 그리고 만물문에서는 일상생활, 의식주와 관련된 사항들과 세시풍속 및 놀이들을 포함하고 있다. 또 인사문에서는 관혼상제, 사회구조, 학문과 사상, 생활기술 등을 포함하고 경사문에서는 경서와 역사서 그리고 만물, 제도, 풍속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문문에서는 역대의 시와 문장을 다루고 있다. 『증보문헌비고』의 문화분류는 보다 복잡하여 상위(象緯), 여지(輿地), 제계(帝系), 예(禮), 악(樂), 병(兵), 형(形), 전부(田賦), 재용(財用), 호구(戶口), 시적(市翟), 교빙(交聘), 선거(選擧), 학교(學校), 직관(職官), 예문(藝文) 등 모두 16개항으로 되어 있다. 『증보문헌비고』의 분류를 『성호사설』과 비교하면 상위와 여지는 천지문에 그리고 제계는 경사에, 예문은 경사와 시문에,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만물문과 인사문에 배치시켜 볼 수 있다. 『성호사설』 과 『증보문헌비고』에 나타난 전통문화의 전통적 분류방식은 하나의 전형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것은 성호의 문인인 안정복이 『성호사설』을 간추려 재편집한 『성호사설유선』과 『성호사설』의 내용항목을 비교해 보면 금방 드러난다. 즉 『성호사설』의 천지문 중 일부 항목이 『성호사설유선』의 인사편·경사편으로 이편(移編)되고, 만물문의 상당수의 항목이 『성호사설유선』의 천자편, 인사편, 경사편으로 이편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쨌거나 『증보문헌비고』나 『성호사설』과 같은 전통적 분류는 전통문화를 우리 선조의 눈으로 이해하는데 보다 유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전통문화의 분류방식 중 마지막으로 열거할 수 있는 것은 "교육현장적 분류"이다. 교육현장적 분류란 초·중등 학교의 전통교육을 위해 지역의 전통문화를 수집·분류한 것을 말한다. 경상북도 교육위원회에서 발간한 『전통문화의 맥』에서는 경북지역의 전통문화를 "향토풍속", "민속놀이", "민요", "가사", "민간신앙", "풍수도참사상"등 모두 6개 항목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편 경남 산청군에서 펴낸 『내고장 전통』이라는 책에서는 "인물"(영웅·효자·열녀), "유적과 유물", "전설", "생활과 풍속", "특산명물", "명승과 경관", "희귀종과 보호수" 등 모두 7개 항목으로 분류하고 있다. 산청군의 분류항목 중 "명승과 경관" "희귀종과 보호수"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문화재의 범주에는 포함되지만 전통문화의 범주에서는 제외된다고 하더라도 경북교위의 분류방식과 거의 공통점을 찾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아마 해당지역 전통문화의 분포상황의 차이에 의한 것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수집된 전통문화의 편포성(偏布性)에 기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현장적 분류가 앞에서 열거한 3가지 분류방식 중 어느 것에서 비롯된 것인가 하는 점을 살펴보면 당장 그것이 "민속학적 분류"에 의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상의 분류방식 중 어느 것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살펴보기 위해 각 분류방식을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학교에서 가르치기에는 '전통적 분류'는 전통문화에 입문에는 효과적이나 현실성이 없고, '한국학적 분류'는 전통문화르 파편화하여 본질을 간과하기 쉽고, '민속학적 분류'는 잡다하여 체계적인 학습이 어렵다.)) 학교 현장에서 우리 조상들의 전통문화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느 분류방식이 가장 효율적일까? 비록 정형성(定型性)은 없지만 전통적 분류방식이 전통문화에 입문하는 데에는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가르치고 배우는 내용상에 차이는 있지만 계룡산 신도안이나 지리산 청학동의 도인들이 배우는 5가지 학문분야, 즉 명(命),상(相), 복(卜), 의(醫) 산(山) 등은 『성호사설』식의 분류방식과 같이 전통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공부할 내용을 분류한 것이기 때문에 매우 효율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전통문화에 접근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분류자체가 전통문화에 입문하려는 학생들을 가로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학적 분류방식으로 접근하자니, 이것은 전통문화 자체를 파편화하여 그 본질적 측면을 간과할 위험성이 크다. 민속학적 분류는 사실상 전통문화의 대부분을 포괄하고 있지만 너무 잡다하게 나열되어 있어 체계적인 학습을 어렵게 한다. 이상의 분류방식을 학교 현장에서 그대로 채택하기에는 어느 것도 적합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다른 어떤 분류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학교전통교육을 위한 독자적인 전통문화 분류방식을 위해서는 몇 가지 확인해야 할 전제가 있다. 가장 중요한 전제는 전통문화가 어떻게 분류되던 간에 교육과정 속에 반영되어 교육내용으로 가르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통교육은 기존의 교육내용에 "덧붙이는"형식으로 가르쳐지는 그런 형태의 교육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전통문화는 교과 속에 녹아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기존의 교과 분류 체계를 민속학적 분류나 전통적 분류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통교육은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가장 직접적인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두 번째 전제이다. 그리고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는 어차피 서구문화에 대비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과정 속에 용해되어 가르쳐야 하면서 동시에 각 교과의 주류를 이루는 서구문화에 대비시켜 가르쳐야 하는 것, 이것이 전통교육의 딜레마이다. 세 번째 확인해야 할 전제는 전통문화는 연재 남아있는, 그래서 계승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은 고고학이나 박물학과는 달리 "전승력이라고 하는 역사적 지속성을 지니며 생성, 발전, 소멸하는 유기적 생명체"(임재해, 1993)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따라서 전통교육은 어차피 현재 남아 있는 유형, 무형의 문화재를 중심으로 조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세 가지 전제를 중심으로 전통교육의 내용이 되는 전통문화를 새롭게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위의 <그림> 에서 전통적 세계관이란 한국학적 분류에서 종교나 철학에 해당하는 것이고 민속학에서는 민간신앙에 해당하는 것이다. 전통적 세계관이라는 항목을 하나의 범주로 묶게 된 것은 그것이 전통문화를 이해하는데 가장 직접적인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여타의 분류, 즉 전통적 생활문화나 유형·무형의 전통문화재를 학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이해가 되는 내용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통적 분류에서 천지(天地) 혹은 상위(象緯)나 여지(與地)를 가장 위에 올려놓은 것은 결국 전통문화에서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전통적 세계관이란 우리 조상들이 사람의 삶과 그 삶이 이루어지는 사회, 삶과 죽음의 문제, 우주와 삼라만상의 형성을 어떤 인식 틀에 의해 파악했는지를 말한다. 상호습염(習染;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미침)으로 기본개념의 상당부분이 중첩되기는 하지만 이것은 다시 유교적 세계관, 불교적 세계관, 도교적 세계관, 무속적 세계관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세계관을 이루는 기본개념을 살펴보면 유교적 세계관은 이(理), 기(氣), 성(性), 정(情), 정심(正心), 활연관통(豁然貫通) 등이 열거될 수 있고 불교적 세계관을 진여(眞如), 무명(無明), 아뢰야식(阿賴耶識), 종자(種子), 훈습(勳習), 선정(禪定), 해탈(解脫) 등의 개념이, 도교적 세계관은 정(精), 기(氣), 신(神), 복기양성(服氣養性), 동기감응(同氣感應) 등의 개념이, 무속적세계관은 무(巫), 강신(降神), 영혼(靈魂), 씻김 등의 개념이 핵심적인 것으로 열거될 수 있다. ((기존 교육과정에 따른 전통교육 내용이 대부분 '전통적 생활문화'의 항목인 반면에 '문화재적 전승문화'의 항목은 특별활동, 실기과목의 전통교육 내용이다)) 전통적 생활문화의 범주에는 문화재적 전승문화를 제외한 모든 항목들이 포함된다. 그리고 학교교육에서 교육과정편제에 따라 이루어지는 전통교육의 내용들은 대부분 전통적 생활문화의 항목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문화재적 전승문화는 현재 학교에서 특별활동이나 실기과목(음악, 미술, 실업, 가정, 기술 과목) 시간에 이루어지는 전통교육 내용을 말한다. 전통적 생활문화란 우리 조상들이 구체적인 일상생활 속에서 영위했던 문화를 말한다. 그 내용들은 기존의 교육과정 속에 분화되어 들어있다. 예컨대 도덕과에서는 전통적 가치규범과 예절이, 국어과에는 한문학, 향가, 시조, 가사, 소설, 신화, 판소리, 무가, 언어와 문자들이 들어있다. 사회과에는 국토의 지리적 배경, 관혼상제, 가족과 친족의 범위, 정치, 경제 등의 각종제도를 다룬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며 국사과에는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전통문화의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각 교과의 내용 속에 용해되어 그것이 전통문화인지 분리해 내기가 사실은 쉽지 않다. 예컨대 국어과의 경우 언어학의 보편이론 속에서 우리말이 이해되고, 전통문화로서의 우리의 언어는 그러한 보편성의 특수한 성격으로 이해되고 있다. 국사과의 경우도 역사 발전의 진행과 변화의 측면에서 전통문화의 각 내용들이 해석되어 소개되고 있다. 문화재적 전승문화는 전통적 생활문화와는 달리 전통문화가 옛 모습 그대로 구체적으로 보존·활용되고 있는 것을 말한다. 문화재적 전승문화는 크게 4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그 한가지는 세시풍속과 전승놀이로 명절이나 계절과 관련된 풍속과 놀이이다. 최근에 상업주의로 발렌타인 데이니 화이트 데이니 하는 날들이 생기긴 했지만 명절과 관련된 풍속과 놀이는 비교적 많이 남아 있어서 이를 전통교육을 위한 축제의 한마당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노래와 연주와 춤이 한마당으로 들어 있는 음악과 무용 분야이다. 음악은 크게 궁정음악과 민간음악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각각은 다시 노래가 포함되는 성악과, 노래가 아닌 연주만 이루어지는 기악으로 구별된다. 궁정음악의 기악에는 제례악, 연례악, 군악 등이, 성악에는 악장(樂章)이 포함된다. 민간음악의 기악에는 무악(巫樂), 농악(農樂), 산조(散調), 정악(正樂)이, 성악에는 가곡(歌曲), 가사(歌詞), 시조(時調), 좌창(座唱), 입창(立唱), 창악(唱樂), 민요(民謠), 범패(梵貝)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무용은 제례악과 함께 시연되는 의식무(儀式舞), 연례악이나 지방관아의 잔치에서 시연되는 정재무(呈才舞), 탈을 쓰고 하는 각종 탈춤과 동제와 마을 굿에서 이루어지는 민속무로 구분할 수 있다. 음악과 무용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음악의 독특한 박자를 익히는 것이다. 박자란 호흡에 의해 이루어지며, 악기를 다루거나 아니면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고 있거나 장단 속에 들어 있는 숨구멍을 찾아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국악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문화재적 전승문화의 세 번째 범주에 포함되는 것은 미술과 공예분야이다. 여기에 포함될 수 있는 내용은 문인화, 고분벽화, 불교미술, 무신도(巫神圖), 민화, 서예, 목공예, 도자기공예, 화각공예, 나전공예, 지(紙)공예, 자수공예, 초고(草藁)공예, 매듭공예 등이다. 미술과 공예분야의 학습에서 중요한 것은 물론 직접 그것을 해보는 것이다. 예컨대 문인화의 경우, 그 속에 내재된 정신과 물질의 결합으로서의 수묵사상, 글과 그림의 관계, 화가가 체험하여 표현코자 했던 기운생동(氣運生動)을 이해해야 그 그림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열거할 수 있는 것은 유적과 유물이다. 유적과 유물은 크게 건조물, 서적, 고고자료, 유적 등으로는 구분할 수도 있지만, 문화권에 따라 백제문화권, 신라문화권, 중원문화권, 가야문화권 등으로 구분하는 방법도 있다. 유홍준 교수가 우리 국토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했듯이 유적과 유물은 전국 어디를 가나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유적과 유물을 직접 찾아보고 감상하는 것은 꼭 국사과와 관련된 학습만은 아니다. 절의 벽에 그려진 십우도(十牛圖 혹은 尋牛圖)를 보고 불교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며, 무덤의 위치나 주변 지세를 관찰함으로써 전통적 특수지리를 배울 수도 있는 것이다. ------------------------------------------------------------------------------- - 5. 맺는 말 ((전통교육은 학생들이 '자기고장'의 산천, 유적, 유물, 전해오는 놀이나 이야기 등을 먼저 알도록 해야한다. 이런 맥락에서 전통교육에 관한 연구와 실천은 교육부가 아니라 시·군 교육청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는 그것이 베스트셀러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최고 지성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소설가 박완서는 "마치 장님이 눈을 뜬 것 같은 놀라움을 경험했다"고 하고, 이대 신인령 교수는 이 책을 읽고 펑펑 울었다고 고백하고 있고 노동시인 박노해는 "제 눈을 맑게 열어 준 운명 같은 마주침의 책, 펼칠 때마다 선방의 죽비처럼 내 등짝을 때리는 책"이라고 했다고 한다(유영표, 1993) 그러나 사실은 이것 자체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자체를 과소평가해서가 아니고, 그래봐야 절이나 탑 등의 유적이나 유물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느낌을 적은 것에 불과한 책인데 왜 우리 나라 최고 지성인들이 놀라고 울고 하는 것일까? 이것은 그만큼 우리가 그 동안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쓴 책을 갖고 있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느 집을 가도 문인화 한 폭씩 표구를 해서 걸어두고 있지만, 그 그림의 유래나 화제(畵題)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어느 산을 가도 대웅전과 부도탑이 있지만 그것이 왜 그 자리에 있는 것인지 자식들에게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가 아닌가? 우리의 전통문화는 방대하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숱한 외침에 의해 수많은 문화재가 유실되고 탈취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 국토는 전체가 박물관이고, 우리의 삶 자체가 전통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여기서 시도한 전통교육의 내용을 체계화하려는 것은 작은 시도에 지나지 않으며, 수많은 내용과 항목들이 누락되었을 것이다. 현장 교사들을 만나보면 누구나 전통문화를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수업시간에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또 가르치려고 해도 활용할 만한 자료가 없다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전통교육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교사들의 직전 및 현직 교육일 것이다. 전통음악 교육으로 연구 지정학교가 된 어느 초등학교에서 교사들의 전통음악교육에 대한 실태를 조사한 결과 95.3%의 교사들이 전통음악 학습지도에 "자신이 없다"고 응답하였으며, 연주 가능한 전통악기가 "한가지도 없다"라고 응답한 교사가 69.8%에 달했다. 또 전통음악 박자의 기본이 되는 장구 장단 치기에 대해 79.4%의 교사가 "전혀 칠 수 없다"고 응답하였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음악에 대한 현직 연수에 대해 92.1%의 교사들이 "관심 없다"고 반응하고 현직 연수를 받더라도 학습지도에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반응한 교사들도 81.0%에 달하였다(『전통 음악성 계발을 위한 교육과정 재구성 지도』, 30∼31쪽). 조동일 교수는 전통교육을 위해서는 먼저 학생들이 걸어다닐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자기 고장의 산천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동식물이 살고 있는지를 먼저 알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 다음에 어떤 유적이나 유물이 있는가, 어떤 말을 어떻게 하는가, 놀이, 노래, 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는가, 어떤 산업을 이룩하면서 살았는가를 살펴보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는 면 정도로, 중학교에서는 군 정도로, 고등학교에서는 도 정도의 범위를 직접 체험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전통교육에 관한 연구와 실천은 교육부가 아니라 시·군 교육청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관내 교사들의 전통교육에 대한 관심과 전·현직 교육 실태를 파악하고 동시에 전통교육을 위한 교구 설비의 현황, 활용 가능한 지역사회 인사 등의 조사를 통해 전통교육의 현황을 파악해야 한다. 이어서 관내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현행 교육과정 속에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를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할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