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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1월 19일 목요일 오전 10시 53분 40초
제 목(Title): 이코노/세계공황이 낳은 열강의 약소국침략




문화 / Culture 제 462호 1998.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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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계 경제사 
세계공황이 낳은 列强의 弱小國 침략 
英國의 이집트·수에즈운하 진출에 수단 원주민들의 무력항쟁 



이재광 기자·lee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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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East of Sudan(1966)
감독:나단 주란
주연:앤소니 퀘일, 실비아 심스, 데렉 파울즈, 제니 아구터
비디오 배급:우일  
 “1880년대 수단과 중앙 아프리카는 갑자기 불길에 휩싸였다. 아랍 노예상인과 
이슬람교 광신도들이 마흐디 곁에 모여 들었다. 마흐디는 ‘마호메트의 화신’으로 
자칭하는 인물. 그들의 목표는 수단 정복과 노예상인을 없애려는 고든 장군의 
노력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하르툼은 포위됐고 나일을 건너 옴두르만에서는 수천 
명의 원주민들이 모여 고든의 평화사절 임무 수행을 방해했다. … 평화로웠던 
나일강 상류 지역은 차례차례 함락됐고 원정대는 상류를 향해 길을 떠났다. 이것이 
고든과 하르툼을 돕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불타는 수단’의 긴 내레이션은 몇 가지 점을 빼고는 별 무리가 없다. 19세기 
80년대 아프리카는 유럽 제국주의의 첫 번째 목표물이었고 유럽 국가들의 ‘땅 
따먹기’가 원주민의 격렬한 저항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동 국가들과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전쟁이 더해져 아프리카의 혼란은 커지기만 했다. 그야말로 
‘불타는 아프리카’요 ‘불타는 수단’이었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공황’ 유도 

이같은 갈등은 자본주의 발전의 결과였다. ‘발전’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생산과잉과 그에 따른 공황이었다. 그리고 선진국들은 이를 ‘침략’으로 해결하려 
했다. 1870년대 유럽의 장기불황을 역사가들은 ‘세계 최초의 공황’으로 기록하고 
있다. 19세기 중반, 특히 1840년부터 1870년까지의 30년 동안 세계 자본주의 
경제에 길고 거대한 호황을 가져다 주었던 철도가 과잉생산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영국의 철도용 철과 기계류의 수요는 식민지와 남미를 제외하고는 급격하게 
감소했고 그에 따라 1873년부터 10년 사이 철 가격은 60%나 떨어졌다. 현재 
진행중인 디플레 불황과 똑같은 모습이다. 

공황이 터지자 유럽은 대뜸 아프리카를 주목했다. 기계의 등장으로 노예무역의 
소멸과 함께 사라졌던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이제 원료공급지와 상품시장으로 
새롭게 조망된 것이다. 아프리카가 유럽에 제공할 수 있었던 각종 원료를 보자. 
야자 기름은 비누, 윤활유, 양초 제조에 쓰였고 야자씨는 마가린과 사료 제조에, 
땅콩은 비누나 식용유 제조를 위해 쓰였다. 그밖에 황금 해안에는 금과 목재, 
삼림지대는 상아와 면화, 고무가 있었으니 아프리카는 그야말로 원자재의 
‘보고’였다. 

아프리카는 또 산업혁명으로 남아 도는 유럽 공산품의 좋은 소비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지배층을 중심으로 한 아프리카 원주민들도 자본주의 생산물을 
소비할 수 있을 만큼 ‘부자’였던 것이다. 1816∼46년 사이 아프리카에 대한 
영국의 면직물 수출은 30배, 1854∼80년 사이 영국과 프랑스의 서아프리카에 대한 
수출은 2.5배 증가했다. 유럽의 열강들은 더 이상 아프리카의 시장가치를 외면할 
수 없었다. 19세기 말 유럽의 선진국들이 ‘아프리카로!’를 외친 배경이다. 

복잡한 정치·경제상황이 뒤얽혀 있는 19세기 후반의 아프리카를 담은 영화는 정말 
찾아보기 어렵다. 아프리카를 그린 가장 유명한 영화 중 하나인 존 허스튼 감독의 
‘아프리카의 여왕’(1951)은 제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것이며 슈바이처 
박사의 생애를 그린 ‘아프리카의 성자’(1990)는 20세기의 30년대가 주요 무대다. 
1918년 ‘타잔과 원숭이’로 시작해 무려 40여 편이 만들어진 타잔 시리즈는 
시대가 모호한 작품. 그래서 ‘불타는 수단’은 아주 귀한 영화다. 비록 ‘A’급 
판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1880년대 아프리카의 복잡한 정치·경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의 맥을 잡기 위해선 1860년대 말 이집트 상황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이집트는 1869년 11월 수에즈운하가 개통되면서 일약 세계 열강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이 운하는 유럽에서 아프리카 연안을 거쳐 
인도로 가는 기존 노선을 4분의 1로 단축시켰다. 누가 이 운하를 점령하느냐는 
향후 세계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와 같은 중대한 문제였다. 

영국의 이집트 침략이 ‘도화선’ 

 
▲고든 장군 최후의 전투.  
 운하의 실질적인 주인은 프랑스와 이집트였지만 당시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영국이 가만 있을리 없었다. 영국은 1875년 재정 혼란을 틈타 이집트를 속국화하며 
이집트측 지분 43%를 매수해 버렸다. 이같은 상황에서 반발이 없을리가 없었다. 
1881년 2월 이집트의 젊은 장교 아라비의 반란이 있었고 이후 이집트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들어갔다. 

그런데 이집트의 혼란은 곧 수단의 혼란을 의미했다. 북아프리카에서 
중부아프리카에 이르는 거대한 국가 수단은 1820년대 이후 이집트의 지배를 받아 
왔기 때문이다. 이집트가 내란으로 접어들자 ‘마흐디’로 불리는 수단의 지배자 
무하마드 아흐마드는 1881년 마흐디 국가를 건립하고 영국과 이집트에 저항했다. 
이 국가는 독립을 달성한 이래 1898년 영국 키츠너 장군에게 패할 때까지 국가의 
형태를 유지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던 여느 민족·국가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여전히 후진국이기는 하지만 수단이 아직까지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분이다. 

‘불타는 수단’은 이 혼란기의 초기를 다루고 있다. 원제는 ‘수단의 동쪽’(East 
of Sudan). 수단의 동부 지역에서 전투가 격렬했음을 의미하는 제목이다. 수단의 
상류 지역인 수도 하르툼은 1998년 8월 ‘지퍼게이트’로 곤욕을 치른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이 ‘테러국가’로 지정해 폭격을 가함으로써 다시 한 번 관심을 
모았던 곳이다. ‘불타는 수단’은 이곳에서 고군분투하는 고든 장군에게 원병을 
급파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원병중에는 상사에서 세 번이나 강등된 일등병 리처드 베이커(앤소니 퀘일)가 
있다. 그는 불평·불만에 불복종으로 수 차례 강등됐지만 전투에서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백전 노장. 전투의 책임자는 그에게 전장을 탈출해 
하르툼의 장군에게 원병 사실을 보고하도록 지시한다. 그의 여정에는 거칠지만 
매력적인 아가씨 우드빌(실비아 심스)과 샌님 같은 런던 신사 머치슨(데렉 파울즈) 
그리고 바라시 족 추장의 딸 아주아(제니 아구터)가 함께 한다. ‘불타는 수단’은 
이들 네 명의 모험, 사랑, 우정, 고난을 그리고 있다. 

건축가이며 미술감독 출신인 주란 감독은 이들 네 명과 함께 관객을 환상적 
모험으로 유도하고 싶어한다. 치열한 전투, 원시림과 야생동물, 끔찍한 아프리카 
토인은 연약한 두 여인과 함께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배경이 된다. 늘 
위태롭고 목숨을 건 위기의 순간들이 계속된다. 19세기 아프리카의 복잡한 
정치·경제적 상황은 단순히 극의 리얼리티를 높이려는 수단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내레이션만 있을 뿐 아무 설명이 없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가족용, 
교육용 영화의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역사적 시각에서 보면 거의 ‘최악’이다. 온갖 왜곡과 민족적 편견이 
가득하다. 특히 아프리카를 착취한 영국은 온데간데 없고 돌연 아프리카의 평화를 
찾아 주는 ‘정의의 사자’로 등장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영화의 첫 머리에서 주란 감독은 “마흐디의 목표는 노예상인을 없애려는 고든 
장군의 노력을 저지하는 것”이라고 역사를 ‘홍보’하며 ‘착취의 역사’를 
빼먹었다. 물론 말 자체는 맞는다. 산업혁명으로 영국은 1807년 노예 무역을 
폐지한데 이어 1833에는 노예제 자체를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예무역에 
관심을 갖는 국가들을 퇴치시킨다는 ‘미명’은 순전히 아프리카를 독점하겠다는 
전략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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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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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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