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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0월 30일 금요일 오전 11시 47분 02초
제 목(Title): 이코노/전후 대호황이끈 미국의 자유주의 


戰後 대호황 이끈 미국의‘自由主義’ 
‘기회의 땅’아메리카에서 실패한 한 자동차개발자의 혁신과 좌절 그려 



이재광 기자·lee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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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Tucker(1988)
감독: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주연:제프 브리지스, 프레드릭 포레스트, 조안 앨런
비디오배급:우일  
 “미국은 모름지기 상상과 자유의 나라입니다. 만일 개인의 상상과 자유가 
박탈된다면 누가 이 나라를 책임지겠습니까. 최선을 다했을 때의 실패는 결코 죄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했으며 곧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프레스톤 토머스 터커-. 80년만인 1988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터커’로 다시 태어난 그는 최후 법정 진술에서 미국의 자유주의를 이렇게 
설파하고 있다. “전통을 일신하려는 기업가의 혁신은 결코 죄가 될 수 없다”는 
항변이었다. 그는 이어 “‘빅3’의 온갖 방해로 늦어졌지만 나는 결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의 명변론은 배심원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터커는 비록 후세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기는 했지만 실존 인물이다. 1909년생으로 
1956년 4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자동차업계에 혜성같이 등장해 스포트 
라이트를 받다가 기존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빅3’의 음모에 휘말려 아깝게 
실패의 쓴 잔을 마셔야 했다. 만일 뜻을 펼칠 수 있었다면 헨리 포드나 월터 
크라이슬러, 존 닷지 등 미국 자동차 업계의 ‘대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것이다. 코폴라 감독은 위인들만이 영화의 주연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 
줬다. 

자유주의는 전후 미국의 부흥을 이끌어 준 1등 공신. 그리고 혁신은 이 자유주의의 
‘적자(嫡子)’다. 과거와 전통을 부정하며 늘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내는 것이 
‘혁신’의 역할이다. 새로운 소비자, 새로운 상품, 새로운 서비스, 그리고 거기에 
맞는 새로운 제도…. 전후 자본주의의 원리와 꼭 들어 맞는다. 미국은 ‘평등’을 
강조하는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이같은 자유주의와 혁신의 전도사가 됐다. 
제3세계에 엄청난 돈을 뿌려대며 미국은 이를 ‘세계의 정신’으로 만들고자 
했으며 90년대 공산주의 붕괴로 승리감을 만끽했다. 

전쟁 특수로 대공황 극복하고 세계 지도자로 

전후 미국의 부흥은 실로 세계 자본주의를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시작부터가 
좋았다. 전쟁이 끝난 1945년 미국의 공업생산은 1935∼39년의 5년에 비해 2배가 
넘었다. 세계 석탄과 전력은 절반, 석유는 3분의 2를 미국이 생산했고 조선, 항공, 
자동차, 무기, 화학공업 등에서 선두를 달렸다. 세계의 금은 80%가 미국 소유였다. 
1945년부터 60년대까지의 25년간은 경쟁자 없는, 그야말로 미국의 독주시대. 
미국의 GNP는 침체기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적이 없다. 1950년 2천8백50억 
달러에서 20년 후인 1969년 9천3백억 달러로 2백%가 넘는 성장률을 달성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소비 부문이다. 50년도 미국 전체의 소비 규모는 1천9백10억 
달러. 10년 만인 1959년에는 3천1백10억 달러로 60% 이상 성장했고, 20년 후인 
1969년에는 5천8백억 달러를 소비함으로써 3백%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다. 바야흐로 
미국은 세계를 먹여 살리는 ‘최대 소비시장’으로 ‘등극’한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갈브레이드는 이 시기의 미국을 가리켜 아주 유명한 말을 남겼다. 
바로 ‘풍요의 사회’(affluent society)다. 
이 ‘풍요의 사회’ 한 가운데에 ‘혁신’이 있다. ‘혁신’이란 한 마디로 
‘새롭게 만드는 것’. 그 대상은 기술이 될 수도 있고 제품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지식이나 풍습, 제도를 새롭게 하는 것 역시 ‘혁신’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영화‘터커’의 한장면.  
 슘페터는 자본주의 발전의 최대 공로자를 이 ‘혁신’으로 보고 있다. 또 그에 
따르면 혁신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기업가다. 결국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것은 
바로 기업가’라는 말이다. 인구나 자본의 증가, 화폐제도 등 여타의 요소는 그저 
부가적인 요인을 뿐이다. 그는 혁신과 관련해 아주 유명한 말을 남겼다.
혁신은 곧 ‘창조적 파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혁신은 단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이때까지의 것을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다. 따라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쉽게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기존 기술과 질서를 고수하려는 세력은 
적(敵)으로 돌변해 변화를 막고자 한다. 성공보다는 실패하기 쉽다는 얘기다. 

20년 앞선 ‘터커차’ 개발 성공 

터커는 ‘자유의 나라’ ‘기회의 땅’ 미국에서 실패한 ‘혁신가’의 대표격이다. 
1940년대 말 자동차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터커차’를 개발해 놓고도 
사기꾼으로 몰리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아직도 그가 만든 차 50대는 자동차 
매니어들의 ‘최고’ 소장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자신도 터커차 1대를 소유하고 
있다며 자랑스러워 하는 코폴라 감독은 그를 ‘열정적인 몽상가’로 부르며 자신과 
동일시했다. 어렸을 때 그로부터 감화받은 코폴라 감독은 개봉 직후 
“영화에서라도 성공시키겠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1948년 개발에 성공한 첫 터커차를 보자.비록 부엌의 오븐을 개조해 엔진 
블럭(몸통)과 헤드를 만들었다고는 해도 그 당시 기술자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차였다. 충돌시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유리, 안전벨트, 네 바퀴 모두에 달아 
놓은 브레이크와 완충장치는 운전자 입장에서는 ‘최고’. 기능면에서는 더욱 
놀랍다. 배기량 5천5백cc에 1백70마력을 낼 수 있는 알루미늄 엔진을 뒤에 단 이 
차는 시속 1백96km를 낼 수 있었다. 당시 최고 시속이었다. 시속 1백30km까지 
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15초. 가장 우수한 차종인 캐딜락이 1분이 걸렸던 
것에 비춰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터커차를 본 ‘빅3’는 당황했다. 시장을 송두리째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한 것이다. 이들은 집요한 방해공작을 펴기 시작했다. 거물 정치인, 
언론, 법조계,자본가, 은행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다. 효과는 빨랐다. 공장을 
담보로 신청한 융자는 취소됐고 은행은 등을 돌렸다. 언론은 터커에 대한 
흠집내기에 여념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1950년이 되자 터커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는 결국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난국을 타개하려 했다. 차도 
없이 계약을 했다. 고객도 판매업자도 모두 걸려 들었다. 명백한 사기죄로 기소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 준 셈이다. 

‘가장 미국적인 영화를 만든다’는 평가를 받는 코폴라 감독은 ‘터커’에서도 
유감없이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터커 역을 맡은 주인공으로 제프 브리지스를 
캐스팅한 것부터가 그렇다. 가장 미국적인 배우 중 하나로 꼽히는 그는 미국을 
벗어나면 거의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국내용’ 스타. 오픈카를 거칠게 몰고 
와 달마시안 12마리를 내려 놓는 첫 장면부터 미국 냄새를 물씬 풍긴다. 코폴라 
감독은 ‘터커’를 앞세워 미국의 자유주의와 혁신을 가장 미국적으로 전파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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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9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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