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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xena (warrioress)
날 짜 (Date): 1998년 10월 21일 수요일 오전 12시 29분 31초
제 목(Title): Re: 일본의 철포에 대해서


조선에서 철포(화승총)을 만들지 않은 이유는 화승총의 전시 효용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승총은 분명히 활에 비하면 대단한 위력을 
가진 무기이지만 발사하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번거로웠고, 제작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무시해 버린 것이죠. 실제로 화승총은 여러명의 포수들이 서너개의 집단을 
형성하여 순차적으로 번갈아가며 발사해야 효과가 있었는데, 일본의 노부나가를 
예로 들면 3000명에 이르는 철포대를 운용했습니다.

당시 조선의 경우 국방의 중요성에 관하여 거의 인식을 하지 못하던 상황이었고, 
이를 입증하듯 임금의 호위부대도 천명에 미치지 못했으며 북방의 수비대 병력 
역시 만 오천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당시의 군제가 비용절감을 위해 부대를 작은 
단위로 나누어 지역방어, 즉 소규모 국지전에 유리하게끔 되어 있었기 때문에
효과적인 철포부대 운용에 필요한 수천 병력을 차출한다는 발상 자체가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었죠.
그렇다고 해서 각 군영마다 몇정 되지 않는 화승총을 분배해봤자 별 효과를 
기대할수도 없었구요.

또다른 이유는 조선이 화승총의 살상력을 크게 치지 않았기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조선은 대형화기(당시로서는)가 상당히 발전해 있던 나라였기 때문인데,
그 기술수준을 중국과 비교하기엔 좀 무리가 있는것이, 중국의 대포는 그야말로 
초대형 화기였고, 탄환의 크기만 해도 엄청났기 때문에 주로 공성전에서 성을 
부수는데 썼읍니다. 이여송의 화포 부대가 평양성을 탈환할때 대포덕을 톡톡이 
봤죠. 조선의 대포는 그와 다르게 발전했는데, 중국과 같은 거대한 화기는 만들지 
않고 대신 '총통'이라고 부르는 종류의 독자적인 화포를 개발해 왔습니다.
당시에는 대포알이 탄착 지점에서 폭발하도록 하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철구나 다듬은 돌을 쏘았는데, 이는 살상력에 있어서 효과가 없었지요.

조선에서는 이점을 염두에 두어 주로 수십개의 철환이나 자갈을 쏘는데 적합한 
쪽으로 개발을 했습니다. 산탄총과 같은 원리이죠. 물론 수전에서의 경우 대형 
철환도 쏘았고, 비격진천뢰라고 불는, 적의 머리위나 탄착지점에서 폭발하는 
포탄도 개발했습니다.(폭발 타이밍을 심지에 의존하여 원시적이기는 했지만 
당시로선 획기적인 발상이었죠) 아무튼 중국과 조선의 화기를 보면 일장 일단이 
있으므로 어느쪽이 더 우수하다고볼수는 없지만, 분명한건 일본에 비해서는 상당히 
발달한 화기 운영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싯점에서 수십초마다 한방을 쏘아 적 한명을 살상하는 화승총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이지요.
임진 왜란 이후에는 근대적인 총포부대 운용기술의 효용성을 깨달아 조총부대를 
본격적으로 운영하게 됩니다만 이때에는 국가 재정이 어려워서 소규모적으로 
운용해야 했습니다. 
병자호란 이후 효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조총부대를 대대적으로 육성하는데(북벌을 
위해) 효종이 육성해놓은 조총부대는 오히려 청나라의 요청에 의하여 
나선정벌(러시아가 시베리아 동쪽으로 진출하면서 빚어진 청국과의 소규모 마찰) 
에 참가하여 그 실력을 입증합니다. (2차에 걸쳐 300여명의 포수와 100여명의 
지원부대를 파견했지요) 소규모 전튜였음에도 불구, 러시아군의 화력에 청군은 
사기를 잃었었고, 조선의 300 조총부대의 도움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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