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0월 18일 일요일 오전 02시 31분 21초 제 목(Title): 이코노/ 만주국 황제,푸이 문화 / Culture 제 457호 1998.10.20 ------------------------------------------------------------------------------- - 西歐자본주의에 무너지는 中國경제 군국주의 일본의‘허수아비’로 전락한 만주국 황제 푸이의 기구한 인생 이재광 기자·leejk@ ------------------------------------------------------------------------------- - ▲원제:The Last Enperor 감독: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주연:존 론, 피터 오툴, 조안 첸 비디오배급:미디아트 아이신교로 푸이(愛身覺羅溥儀). 1905년생. 청조 11대 황제인 광서제(光緖帝)의 동생 순친왕(醇親王)의 아들이며 선통제(宣統帝)로도 불림. 1908년 만 3세의 나이에 청의 12대 황제로 등극. 1911년 폐외된 후 1917년 복위했다가 다시 폐외당했던 비운의 ‘마지막 황제’. 1934년에는 일본에 의해 만주국 황제로 추대됐으나 일본 패망과 함께 전범 신세로 전락. 중국 공산당의 교화를 받은 후 정원사로 1967년 사망. 청조의 마지막 황제 푸이의 드라마와도 같았던 삶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 만하다. 한때 중국 공산당은 교화를 받은 후 평범한 ‘인민’으로 탈바꿈한 그를 ‘평등주의’의 대표적 인물로, 중국을 망친 봉건주의의 상징적 인물로 세계 만방에 선전하기도 했다. 시민이 된 그는 황제도, 정원사도 아닌 공산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한 하나의 ‘선전 도구’이기도 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그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의 삶의 배경이었던 20세기 초로 돌아가 보자. 20세기 초 열강들의 각축장된 중국 20세기 초반의 중국은 단순한 ‘격동기’ 이상이었다. 산업화된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에는 무엇보다 상품시장이 필요했고 10억 인구의 중국은 그 어느 지역보다 큰 시장으로 부각됐다. 아편전쟁에서 시작된 열강과의 전쟁은 ‘중국 땅 따먹기’로 급진전했다. 아편전쟁 후 중국은 열강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맛본 적이 없으며 1894년 조선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전쟁에서마저 참패를 당했다. 청일전쟁은 배상금 2억냥을 지급하고 대만과 팽호열도를 할양하는 등 중국에는 ‘굴욕’ 그 자체였다. 19세기 말 ‘잠자는 호랑이’에서 ‘종이 호랑이’로 전락한 중국의 20세기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 한때 속국에 불과했던 일본까지 가세한 서구 제국주의의 침탈, 이들의 국토 분할, 공산당과 국민당에 의한 내란, 신구 체제의 교체, 교활한 매판자본의 할거…. ‘격동기’라는 표현에는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다. 이같은 역사적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청조였다. 3백년을 이어온 절대 권력의 무능과 부패는 곧 중국 전체 민족이 겪었던 수난의 책임자이기도 했지만 청조의 비운은 많은 이들의 동정을 불러일으키기만 했다. 19세기 중반 아편전쟁이라는 서양과의 대충돌이 청조의 총체적 위기를 불러일으킨 주범. 푸이는 이같은 위기에서 스러져가는 청조의 대미를 장식한 인물, 즉 ‘마지막 황제’의 역할을 담당했던 역사적 인물이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명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부의의 삶에 매료된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다. 1970년대 초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로 이미 충분한 명성을 얻은 뒤였다. 1940년생인 베르톨루치는 이미 12살 때 시집을 낸 시인으로, 15살에는 16mm 카메라로 영화를 찍던 비범함으로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데뷔작은 ‘불굴의 농부’(1962년). 이후 ‘혁명전야’(1964년), ‘컨퍼미스트’(1970년), ‘1900년’(1976년),‘루나’(1979년) 등 일련의 작품으로 치밀한 역사성, 사회성으로 탄탄대로를 걷던 영화계 ‘천재’였다. 푸이를 황제의 자리에서 내몬 신해혁명(위)과 영화‘마지막 황제’에서의 푸이. ‘마지막 황제’는 이 천재가 무려 7년만에 내놓은 대작이다. ‘광대의 비극’을 마친 직후인 80년대 초 푸이의 자서전 ‘나의 반생’을 읽고 영화제작을 꿈꾸었다니 이 7년 세월 대부분을 영화 제작을 위해 썼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영화는 촬영 개시부터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키더니 개봉과 동시에 관객과 비평가를 매료시켰다. 그 동안의 기대와 호기심을 충족시키는데 한 치의 빈틈이 없었던 것이다. 화려한 자금성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나 2만명의 엑스트라가 만들어 내는 화면, 보는 이를 사로잡는 카메라의 황홀경, 아름다운 중국계 배우 존 론이 주는 섬세함, 말로만 듣던 중국 황실의 재현…. 미국도 아닌 파리에서만 개봉 1개월만에 1백만명의 관객을 돌파했다. 아카데미 회원들 역시 88년도 제 6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영화에 무려 9개의 상을 주었다. 영화는 2중 구조로 진행된다. 얘기의 시작은 1950년 남루한 옷차림의 전(前) 황제 부의가 포로수송열차를 타고 중국 전범수용소에 도착하면서부터. 수용소장의 지시로 포로복으로 갈아 입은 푸이는 여느 포로와 다름 없이 자신의 일생과 ‘죄’를 자백하기 시작한다. 수용소와 과거를 오가며 전개되는 그의 삶은 당시 중국의 역사만큼이나 극적이다. ‘마지막 황제’에서 베르톨루치 감독이 가장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그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다. 자신도 원하지 않던 황제의 자리에 올라 부모의 정도 모르며 자란 푸이. 황제로 떠받들여지기는 했지만 어린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호기심조차 충족시키지 못했던 안타까운 삶. 만백성에 군림했으면서도 인간으로서는 더없이 불쌍한 존재가 돼버린 삶이다. 관객의 눈시울을 적시며 그의 무기력한 인생역전을 이해시킨다. 푸이에 대한 ‘동정 끌기’에 역사가들 분노 그러나 많은 관객, 비평가들과는 달리 ‘마지막 황제’는 역사가에게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 “어떻게 저럴 수가”하는 비탄이 터져 나오기에 충분하다. 심지어 영화인들이 갖는 역사인식의 오류를 지적할 수 있는 대표작이 될 지경이다. 푸이는 어떤 인물인가. 어린 시절 맛들인 부와 권력의 ‘중독증’에서 평생을 헤어나오지 못하며 오직 자신을 위해 주변 인물과 민족을 모두 팔아먹은 무기력자가 아닌가. 늘 자신이 지은 죄에 떨며 심한 약물 중독과 낭비벽에 시달린 인물이기도 했다. 베르톨루치 감독이 감명을 받았다던 그의 자서전에는 그 내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나온 영화란? 참으로 기가 막히다. 결정적인 것 몇 가지만 보자. 푸이는 영화와는 달리 4명의 처첩을 거느리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그가 함께 한 처첩은 황후 완용과 비(妃) 복귀인. 그러나 그는 누구도 ‘아내’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45년 일본 패망과 함께 일본으로 도주하며 이들을 버렸다. 당장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것은 뻔한 일이다. 영화는 또 푸이를 부정적으로 인식시킬 만한 역사적 행위를 빼먹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일본에서의 매국적 행위다. 만주국 황제 시절 그는 두 차례 일본을 방문해 중국의 적인 일본 천황을 ‘어버이’로 받들고 있다. 물론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다. 1940년 5월 두 번째 방일 때 그는 “만주국의 전력을 다해 어버이의 나라 일본의 전쟁을 지원하겠습니다”라는 충성 서약을 맺기도 했다. 베르톨루치 감독의 ‘신화 만들기’는 철저하다. 부정적인 요소를 빼고 긍정적인 부분을 첨가했다. 그의 자살소동과 아들의 죽음은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어낸 명백한 ‘조작’. 푸이는 자살을 기도할 만큼의 용기도 없는 인물이었다.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조차 “푸이는 눈곱만큼의 동정도 매력도 갖지 못한 인물”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중국은 역사를 바로 잡겠다며 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들어냈지만 관객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흥행과 작품성 이외에 ‘역사 왜곡’이라는 내용을 덧붙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해 주는 영화다. ▲ 제457호 -------------------------------------------------------------------------------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