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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0월 18일 일요일 오전 01시 59분 50초
제 목(Title): 뉴스+/조병로  조선시대의 역민



“조선시대 驛民은 평민이었다” 
조병로교수 ‘김천 송라역 호구대장’분석뒤 기존 천민설 뒤집어  
    

지금으로부터 불과 200~300년 전의 일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조선 후기 조상들의 
삶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기초자료 자체가 많이 소실된 탓도 있지만 남은 
것조차 우리의 관심망에 제대로 걸려들지 않은 탓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조선후기 신분제 변동의 연구에 대단히 중요한 사료가 새로 
발견됐다. 경기대 조병로교수(역사학)가 지난 5월 일본 효고현 가도군 야시로초의 
조형문화연구가 호라이 고헤이(蓬萊公平·77)씨로부터 입수해 기초분석까지 마친 
경북 김천(金泉)역과 송라(松羅)역 일대의 호구대장이 그것. 군과 현의 호구대장은 
많이 있지만 역 호구대장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었다. 

‘김천도형지안’(金泉道形止案)이라는 표제의 호구대장은 영조 14년(1738년)에 
작성된 것으로 김천역과 관할 19개 역의 역민 2642명에 대한 호구조사 내용이 
기재돼 있다. 송라역 호구대장은 표지와 일부가 소실됐지만 산하 7개역 역민 
5873명의 거주실태를 친가쪽으로는 4대조까지, 모계로는 외조부모까지 직역과 
이름을 상세히 기록해 놓아 조선후기 역민의 신분변동 연구에 결정적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역(驛)이란 삼한시대 이래 유지돼 온 중앙-지방간 교통기관. 중앙집권적 
양반관료사회를 공고히 지탱하는 동맥구실을 했다. 왕명을 비롯한 행정문서들을 
전달하고 사신 접대와 역마제공, 왕래인에 대한 검문검색, 육로에서의 조세와 공물 
등의 운송을 담당했다. 순조8년(1808년) 기록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따르면 당시 
조선 전역에 산재한 역은 504개, 역에 종사하는 역민은 약 13만명에 이르렀다. 이 
골격은 19세기말 역제가 폐지될 때까지 대체로 유지됐다. 

“역에 대한 연구는 옛 육상교통체계를 이해하는 것이자 공백이 적지 않은 
사회신분사 토지경제사 지방재정사의 내용을 채우는 것”이라는 게 조교수의 말. 
지난 수개월간 김천역도에 대한 기초분석을 마친 그는 “분석결과 역촌에 관한 한 
기존 학설과 다른 내용이 상당히 많다”고 전했다. 

역민이 양인(良人)인지 천민(賤民)인지는 70년대 이래 사학계의 논란거리. 이에 
대해 조병로교수는 혼인관계로 미루어 볼 때 역민의 상당수는 양인에 해당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양인으로 볼 수 있는 역리(驛吏)는 기록상 한 역에 
800~1000명에 이르기도 한다는 것. 

또 한가지, 조선후기로 갈수록 양반은 증가하고 양인과 노비는 줄었다는 것이 
일반론이었다. 그러나 김천-송라역의 인구증감 실태는 여자노비(驛婢)는 줄지만 
남자노비(驛奴)는 상대적으로 유지됐음을 보여준다. 이는 곧 조선후기 신분지위의 
변동이 종래 주장들처럼 상승적 또는 하강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고 부계혈통은 
신분세습이 비교적 강하게 지속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됐다. 

역 업무는 매우 고됐고, 빈번한 사객들의 왕래에 따른 송영과 접대, 말값의 앙등 
등으로 역리들조차 재산을 탕진하고 도망하거나 세도가의 노비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듯하다. 이 과정에서 일반 양인들이 역민으로 유입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조교수는 “역이 향촌사회에서 담당했던 사회-경제적 기능에 대해서도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역제가 폐지된 1896년까지, 역은 향촌사회에서 정보유통의 
중심이었다. 역 가까이에는 장이 섰고 주막이 있었다. 그러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숙박업을 함으로써 상업발달에 기여한 일본의 역과 달리, 조선의 역은 일반인에게 
닫혀 있었다. 

본격적인 연구결과는 내년 후반기에나 완결될 예정이다. 현재 조교수는 
김천-송라지역에 대한 현장조사와 군-현 호구대장과의 비교분석, 관련 가계 
족보와의 비교분석 등을 준비하고 있다. 이같은 연구를 통해 역촌을 중심으로 한 
조선시대 선조들 삶의 모습 일부가 성큼 우리 앞에 다가설 것으로 기대된다. 


서 영 아 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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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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