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Hyena (우어어~~~) 날 짜 (Date): 1998년 9월 15일 화요일 오후 05시 24분 24초 제 목(Title): 일본 천황이 뭐길래. 오늘 인터넷 한겨레 신문에서 일본 '천왕'의 호칭문제에 대한 찬반 여론 조사에서 반대가 91%라는 최종 결과가 나왔다. (총 투표자수 : 15,973 명 ) 최근 독도문제로 대일 감정이 안 좋아서 그런 지 모르겠지만, 김현철 8.15 특사 여부(93% 반대)에 이어 두번째로 압도적인 반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여론 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선택은 정반대이다. 내가 보기엔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사전 작업으로 진행된 듯한 이러한 선택은 매우 적절한 판단이라고 본다. 이 문제의 경우에 우리 나라 사람들의 여론이란 게 너무 감정적인 대응에만 치우친다는 느낌이다. 일단 위의 설문 조사 결과를 신뢰한다는 전제하에 얘기이다. (그나마 한겨레이니깐 믿는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천왕'이란 그들의 고유 명사이다. 우리가 그들이 천왕으로 부르는 존재에 대해 같이 '천왕'으로 불러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일본인들이 일본 천황을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에겐 별 상관이 없다. 우리에게 단지 실권도 없는 일본의 국왕을 지칭하는 형식적인 의미밖엔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에 대해 과거에 감정이 있었다해서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다르게 부른다면 이 건 호칭이 아니라 욕설이 돼는 셈이다. 이 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너죽고 나살자는 식으로 한번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것이다. 쓸데없이 또 다른 감정 문제만 더 생겨날 뿐이다.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사정이 복잡하고 감정적인 앙금이 많다해도 이런 일본 천황과 같은 공식적인 호칭을 우리 멋대로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멕아더와 같이 일본을 정복한 입장이 아닌 이상. 더구나 예전엔 언론과 정부 문서에서 '천황'으로 이미 사용했단다. 그러다 90년대에 들어와 언론이 재일동포 지문 날인 문제로 들고 일어나 '일왕'으로 바꿨단다. 우리 나라의 냄비 언론에 같이 덩달아 춤추는 꼴이 아닌가? 줏대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한국 언론이 이런 지극히 형식적인 호칭 문제에는 왜 이리 강경한 지 정말 웃기지도 않는 짬뽕들이 아닐수 없다. 우리가 왜 이 시점에서 남의 호칭 문제로 과거에 당한 굴욕을 다시 떠올려야 만 하는가? 이번 호칭 문제는 일본이 과거에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우리가 그 과거 문제에만 매달려 현재에 해결해야 할 더 시급한 문제 들을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이미 그 과거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이웃 국가로서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고 앞으로도 계속 돼기를 바래야 하는 이상 과거 문제 만을 가지고 언제까지 물고 늘어질 수는 없다. 해결해야 할 과거 문제보단 해결해야 할 현재와 미래의 문제가 훨씬 더 큰 것 이다. 특히 국제 관계에 있어 아무리 엄청나다 할 지라도 과거의 문제를 가지고 늘어진다는 것은 매우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역사적으로 따지면 우리가 훨씬 더 많이 괴롭힘을 당한 중국과는 또 잘 지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가 이런 지극히 형식적이고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려 이렇게 화풀이하는 식으로는 일본과의 과거 문제뿐만 아니라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해 나갈 수가 없다. 우리가 독도 문제에서도 그저 관제 언론의 주도로 냄비처럼 그때만 들썩할 때 일본은 독도를 차지하기위한 방대하고도 체계적인 연구를 오래동안 해왔다고 하는 섬짓한 소식을 들었다. 우리가 일본의 계산된 정치적 발언에 농락만 당했지 실제로 독도를 지키기 위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방안을 세우지 못했다는 반성이 일고 있다. 이런 어리석음을 이번 '천황'호칭 문제로 다시 저지른다면 또 다시 우리는 스스로 일본에게 농락당하는 꼴이 된다. 우리가 일본에게 사과를 받아내고 현재와 같이 경제적으로 일본에 거의 압도당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이런 감정적인 대응에서 벗어나 좀 더 냉정하게 일본과 일본인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본에게 가지는 감정적인 대응의 또 다른 대표적인 예가 몇년 전에 모 신문사 일본 특파원이 쓴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 가 된 일이다. 이 책에선 거의 모든 면에서 일본에게 비판 일변도이다. 저자가 자의적인 지 고의적 인지 모르겠지만 매우 피상적으로 해석 했다는 게 겉으로도 드러나는 어처구니없는 비판이 많이 있었다. 도리어 책 제목에서 보듯 흑백 논리도 이 정도의 흑백논리는 없다. 일본이 그렇게도 없다면 오늘날 세계 제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것이 거의 운이였단 말인가? 그럼, 우리는 오천년동안 단지 운이 없었나? 절대 운으로 돌릴 수 없는 그 무엇이 분명히 일본엔 있다. 오늘날 우리와 격차가 벌어진 원인이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우리가 배워야 할 점들이 일본과 일본인들에게 있어서인 것이다. 미국도 한 때 일본을 배운다고 난리를 친 적이 있었는 데, 그 미국을 쫓아간다고 가랭이 찢어지는 우리가 어떻게 일본을 무시할 수가 있단 말인가? 작년인가에 일어난 일로 일본 영해에 침범한 혐의로 우리 어선이 일본에 납포된 일이 있었다. 일본측의 제소로 일본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도리어 원고측인 일본 정부(?)가 패소한 일이 있었다. 이런 일은 우리나라의 법원에서라면 바라기가 거의 불가능할 일이다. 일본은 우리가 보이는 대일 감정처럼 그렇게 획일적인 사회가 아님에 틀림없다. 우리가 자주 혼동하듯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고 천황 부활을 부르짖으면 자결하는 미시마 유끼오같은 황당한 사람만이 득실 득실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합리적인 사고는 획일적인 사회에서 나올수가 없다. 우리는 지금 일본을 너무 획일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나마 불행한 우리의 과거에만 붙잡혀 매우 감정적이고 일시적이다. 이제는 일본의 나쁜 점이 아니라 좋은 점도 얘기해야 할 때가 충분히 돼지 않았는가? 우리처럼 매사에 감정적으로 일본을 대해서는 일본에게 계속 당할 수 밖에 없다. 주먹으로 싸우든 말로 싸우든 먼저 흥분하는 쪽이 지기 마련이다. 흥분하면 주먹이든 말이든 삑사리가 나기 쉽기 때문이다. 너무 과거에만 매달려 바로 눈앞에 벌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어두운 과거를 하나 더 만들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