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rotifl (잘모름) 날 짜 (Date): 1997년10월13일(월) 09시59분42초 ROK 제 목(Title): 祖와 宗의 차이 번호:31839/31869 등록자:F1RACING 등록일시:97/10/12 18:50 길이:102줄 제 목 : 종(宗)과 조(祖)의 차이 왕 칭호에 붙이는 조(祖)와 종(宗)의 차이 태조(太祖).태종(太宗).세종(世宗).세조(世祖)와 같이 왕의 호칭에 붙이는 '조'나 '종'은 무슨 뜻을 가지고 있으며 그 차이는 무엇인가? 어떤 왕에게는 '조'를 붙이고 어떤 왕에게는 '종'을 붙이는가? 태조.태종.세종.세조.성종.선조와 같은 호칭은 그 왕들의 이름이 아니다. 이 는 임금들이 죽은 후에 그의 신주(神主)를 모시는 종묘 사당에 붙인 칭호로서, 이를 묘호(廟號)라고 한다. '祖'나 '宗'이라는 글자에는 다같이 '사당'이라는 뜻이 있다. 왕조시대에는 신하나 백성들이 감히 왕의 이름을 부르지도 쓰지도 못한다. 그래서 왕들은 생시에는 주상(主上)이나 전하(殿下)라고 부르고, 죽은 후에는 사당을 지칭하는 묘호나 능을 지칭하는 능호(陵號)로 불렀다. 세종은 영 릉(英陵)이라고도 부른다. 묘호는 그 왕이 죽은 후 신주를 종묘에 올릴 때 조정에서 의논해 정하는 것이 다. 따라서 산군과 광해군처럼 폐위되어 종묘에 들어가지 못한 왕들은 묘호가 없다. 왕의 호칭에는 묘호 외에도 사후에 중국 황제가 지어 보내주는 시호(諡 號)라는 것이 있고, 또 신하들이 그 왕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지어 올리는 휘 호(徽號) 혹은 존호(尊號)라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태조(이성계)의 정식 호칭 은 '태조강헌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太祖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이었는데, '태조'는 묘호, '강헌'은 시호, '지인계운성문신무'는 휘호(존호)이다. 묘호는 대신들이 회의하여 추천하고 왕의 결재를 받아 정한다. '조'나 '종'을 붙이는 원칙을 흔히 "조공종덕(祖功宗德)"이라고 한다. 공이 많은 임금은 '祖', 덕이 많은 임금은 '宗'자를 붙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애매한 원칙 이다. 공이 많은지 덕이 많은지 판단하는 것은 그야말로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 이다. 결국 묘호는 그때 그때 정하기 나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은 한 왕조를 건국하였거나 거의 망한 왕조를 부흥시킨 왕에게만 '조'를 붙이고 기타 왕들에게는 '종'을 붙이는 것이 관례였다.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는 창업자인 태 조(太祖)나 고조(高祖) 및 중흥 황제들 외에 후대의 황제들에게는 祖字를 붙이 는 일이 거의 없었다. 고려시대에도 태조(왕건) 외에는 모두 종을 붙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조'를 붙이는 것이 '종'을 붙이는 것보다 더 권위 있고 명예로운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후계자인 왕이나 신하들이 아첨하느라고 억지로 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로 인하여 때로는 조정에서 큰 말썽이 일어나 기도 하였다. 세조(世祖) 선조(宣祖) 그리고 순조(純祖)의 묘호는 억지로 무리 하게 정한 것이라고 비난을 받았다. 묘호는 한법 정한 후에 다시 개정하는 일도 있었다. 인조(仁祖)의 묘호는 본 래 열종(烈宗)이라고 정하였던 것인데, 아들인 효종이 불만을 표시하여 인조라 고 고쳤다. 영조(英祖)와 정조(正祖)의 묘호는 원래 영종(英宗)과 정종(正宗)이 었으나 1897년 조선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친 후 '종'을 '조'로 고쳤다. 정 종(定宗)과 단종(端宗)은 오래동안 묘호를 정하지 않고, 몇 백년 동안 공정왕 (恭靖王)과 노산군(魯山君)으로 불리우다가, 숙종 때 와서 비로소 정종과 단종 으로 정하였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반정으로 쫓겨나고 죽은 후 종묘에 들어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묘호가 없었다. 연산군이나 광해군이라는 칭호는 그들이 왕자 시절에 받은 벼슬 이름이다. 이는 그들이 왕위에서 쫓겨난 후 다시 왕자의 신분 으로 강등되었음을 뜻한다. 그와 반대로 즉위하여 통치하지는 못하였으나 후에 왕으로 추존된 이들에게도 묘호를 올렸다. 성종(成宗)의 생부(친아버지)인 덕종 (德宗), 인조의 생부인 원종(元宗), 정조의 생부인 장조(莊祖), 헌종(憲宗)의 생부인 익종(翼宗)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왕자의 신분이었으나 죽은 후에 아 들들이 왕이 되어 국왕의 지위에 격상된 것이다. 그러나 선조의 생부인 덕흥대 원군(德興大院君)이나 高宗의 생부인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왕자가 아니었 고, 또 왕위계승의 차례(항렬)에도 맞지 않아 왕으로 추존되지 못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