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parkeb () 날 짜 (Date): 1997년07월02일(수) 11시37분18초 KDT 제 목(Title): 위의 두분께.. :) 아마 촛점이 잘못된 듯 합니다. :) 제가 위에서 언급한 것은 문화대혁명이나 청조의 얘기가 아닌 1982년의 홍콩반환 회담과 84년의 중,영 공동선언을 말한 것입니다. 참고로 이미 아시겠지만.. 홍콩의 구성은 홍콩섬, 신계지역, 구룡반도로 크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중 신계지역만이 명목상 조차지역이고 나머지는 영구할당지역입니다. 즉 돌려줄 의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 모든 지역을 돌려줍니다. 중국이 홍콩 전체에 대해 얼마나 집착하는지는 잘 아실 것입니다. 등소평 생전에 소원이 중국에 반환되는 홍콩을 보겠다는 것이었던 만큼.. 위의 협상에서 전쟁불사라는 보도까지 나온 것을 봐도.. 그럼 재밌는 것이.. 영구할당지역인 곳까지.. 되찾아오려는 중국이 왜 하필 바로 그당시에 찾이 않았나는 것때문에 생각해 봤던 것입니다. 전쟁까지 불사하려고 했던 친구들이 말이죠.. 그래서 혹.. 그당시의 중국은 개방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던 때이고.. 당시의 경제력으로는 바로 홍콩을 받아도 쓸모없지만 좀 더 기다려서 받으면 자신들의 개방과 맞물려서 엄청난 효과가 나올 것을 생각하고 약 15년을 기다린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던 것입니다. 물론 당연히 저도 압니다. 정치가란 다 그렇지요. 천안문사태를 일으킨 것도 분명 등소평과 중국정부니까.. 단지 빼앗긴 옛땅을 찾는데.. 적절하게 때를 기다리면서 찾는 중국정부의 자세가 독도문제조차 해결못하는 우리 정부와 비교되어 생각해 본 것입니다. 사대주의는 아니니 걱정마시길.. :) @설마 84년에도 문화대혁명의 후유증이 있었나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