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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onvex (4ever 0~)
날 짜 (Date): 1997년05월04일(일) 10시58분52초 KST
제 목(Title): 황장엽과 ‘고구려 요승’ 도림[한겨레21]




                         고구려 장수왕은 선대왕의 음덕으로 북방정책을
                         마무리하고 남쪽으로 눈 을 돌렸다. 남벌의 첫
                         대상은 물론 한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던 백
                         제였다. 백제는 이에 맞서 445년 신라와
                         나·제동맹을 맺고 공동대처에 나섰다. 마음은
                         굴뚝 같지만 고구려로서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472년 고구려의 승려 도림은 고구려를 ‘탈출’해
                         백제로 ‘망명’했다. 고구려 내부 사정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바탕으로 당시 개로왕에게 접근
했다. 이어 탁월한 바둑 실력으로 돈독한 신임까지 얻었다. 개로왕은 바
둑광이었다. 

도림은 개로왕에게 다음의 ‘계책’을 올렸다. “백제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천혜의 요새이기는 하나 큰 성이 없어 외적의 침입에
허약합니다. 고구려의 공격에 대비해 거대한 성곽 공사를 진행시키면
누구도 백제를 넘보지 못할 겁니다.” 도림은 또 지방호족을 누르고
중앙집권을 강화하 려던 개로왕의 생각에 착안, ‘왕궁을 장려하게
축성해’ 왕권의 위엄을 높이도록 권고도 했다. 

개로왕으로서는 달디단 이야기였다. 즉시 대규모 토목공사가 시작됐다.
머잖아 국가 재정은 바닥을 드러내고 거대한 토목공사에 무차별 동원된
백성들의 생활은 피폐해졌다. 장수왕의 3만대군이 밀어닥친 것은
이때였 다. 백제는 변변한 싸움 한번 없이 왕도 한성을 넘겨줬다. 

황장엽씨를 도림에 비교할 수는 없다. “갈라진 조국의 어느 한 부분을
조국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그의 충언을 믿고 싶다. “내가 아
끼고 사랑하는 모든 것을 합쳐도 7천만 우리 민족의 생사운명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라는 그의 망명 동기 또한 도림과의 비교를 허락하지 않는
다. 그러나 누가 주도하는지는 몰라도 요즘 그와 안기부의 처신은
‘요승 ’ 도림의 연상을 막지 못한다. 

황씨가 안기부를 통해 내놓은 ‘계책’은 크게 다섯 가지. 사회 안정을
위한 안기부 강화, 북한의 침략에 맞설 국방력 강화, 각종 시위의 엄격히
차단을 통한 통제력 확보 등이 우선 꼽혔다. 이와 함께 북한에 대한 기술
이나 자본 지원은 금지하고 먹을 것 정도만 게공해 북의 경제적 예속을
강화하고 북한의 개방정책을 철저히 차단해 고립시켜야 한다는 내용도
포 함돼 있다. 하나같이 안기부 등 극우세력들이 군사정권때부터
제시했던 책략들이었다. 게다가 당국은 그의 이름을 빌려 이른바
‘황장엽 리스트 ’를 예고했다. 이 예고가 불러올 파장은 자명하다.
합리적인 대안을 주 장했던 당국자나 지식인 사회의 입은 얼어붙는다.
오로지 안기부 등 극소 수 공안세력과 보수언론의 입만 허용된다. 그
다음엔 마녀사냥과 혼란이 다. 그리고는 ‘퇴행적인’ 공안천국이다. 

‘민족의 생사를 우려해 모든 것을 포기한’ 나이 75세의 노철학자를 믿
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누가 그리로 몰고가는 것일까. 고
구려군에 붙잡혀 죽기 직전 개로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무도
나 를 위해 싸울 사람이 없구나.” 

한겨레21 편집장 곽병찬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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