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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hang (장상현)
날 짜 (Date): 1996년09월09일(월) 14시04분37초 KDT
제 목(Title): 김용배씨에 관해서.


역사 보드와 성격이 맞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분은 요새 인기있는 사물놀이의 4명의 창시자 중의 한명입니다.

김덕수씨, 최종실씨, 이광수씨와 함께 각도의 풍물을 짧게 편곡하여

야외가 아닌 극장에서도 공연할 수 있는 공연 예술을 만들었고.

한국인의 음악이 아닌 세계인의 음악으로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한 분이죠.

다른 세분은 남사당의 자손입니다. 다시말해서 남사당 핏줄로

태어나면서부터 풍물을 배우고 익힌 사람들이죠. 하지만 김용배씨는

경기도, 지금은 서울에 속하는 지역의 가난한 연예인의 아들입니다.

어려서 집안이 너무 어렵자 남사당에 팔려간 사람입니다.

다른 분들도 많은 고생을 했지만, 무척 고생하며 풍물을 익힌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용한 사람이었으나 눈빛이 형형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무엇인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김소희, 박귀희, 박초월, 김윤덕, 지영희 등 국악계의 대가들이 세운 

국악고등학교에서 이들은 만났습니다. 여기서 어려서부터 배운 풍물에

판소리, 각도의 무악, 산조 시나위등 모든 음악을 두루 대가들에게 배웠습니다.

당시 김용배를 처음본 사물놀이의 다른 사람말로는 팔뚝에 담배로 지진 자국이

잔뜩있어 속내로 무척 무서워 했다고 합니다.

그후 각종 예술단에서 농악이라든가 상모돌리기로 활동을 하던 이들이 뜻을

모아 풍물 실내악단을 창단 그 이름을 사물놀이로 짓습니다.

이들은 대성공을 거두지요. 하지만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적인 노력을 

해서 동해안 무악의 대가 김석출옹과 서해안의 대가 박병천옹에게 음악을 배웁니다.

당시 김석출옹의 꽹과리 장단은 너무 복잡해서 그의 피를 이어 받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익힐 수 없다는 설이 있었는데, 김용배가 유일하게 그 음악을 완전히

익힌 사람이었답니다.

김용배씨는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르게 꽹과리를 칩니다. 수평타법이라고나 할까

다른 사람과는 적어도 세배이상 먼거리에서 수평으로 꽹과리를 두들기는데

따라서 그 때리는 속도가 무척 빨라, 채가 공중에서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에게 꽹과리를 배웠던 사람들이 그의 손은 항상 태극을 그린다

라고 감타하곤 했죠.

사람들 말로는 음악의 대가는 그가 연주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 예술의 본성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것을 버슴새라고 하는데, 보통 순수한 선의 모습

보살의 버슴새이거나 순수한 악의 모습, 악마의 버슴새가 나온다고 합니다.

김덕수씨는 전형적인 보살의 형태이고, 대개 대가들은 보살의 버슴새를 갖는데.

김용배씨는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고 일그러진 고통과 증오의 표정이 나와

악마의 버슴새를 갖고 있었답니다.

그가 항상 한 말은 "예술은 사악함과 광기마저도 승화시킬 수 있다" 였습니다.

곧 사물놀이는 그들의 예술적 견해차이를 나타나게 되는데.

클래식, 국악관현악단, 재즈밴드, 록밴드 등과 협연을 계속하려한 김덕수씨와

이를 반대한 김용배씨의 갈등이죠.

김용배씨는 먼저 자신의 예술을 완성한 후에 다른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리고 최소한 우리 수준에 맞는 실력의 연주자들과 연주해야 발전이 있다.

(당시 같이 연주한 연주자들을 겨냥한 것이죠.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나 한국의 

교향악단의 실력에 큰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사실 이들은 당대 최고의 재즈

연주자들과 외국서 협연을 해왔기 때문에 국내의 연주자들과의 실력차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먼저 보급을 통해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는 김덕수씨의 논리에 밀리고 

있었죠. 또 한편으로는 사실상 팀의 리더로 인정받는 김덕수씨에 대한

열등의식도 있었답니다.

결국 이들은 마약사건을 계기로 헤어지게 됩니다. 김용배씨가 국립국악원으로

옮기게 되죠.

하지만 여기서도 그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특정종교의 강요, 공무원생활의

답답함, 다른 음악하는 사람들의 차별대우, 무엇보다도 자신과 같은 수준의

실력으로 조화를 이루던 원조 사물놀이와 달리, 하나하나 자기가 가르쳐서

해야했던 국립국악원 사물놀이의 다른 구성원과의 현격한 실력차이.

어느날 자신의 제자들과 술을 마시던 그는 제자에게, 우리음악의 서양식 편곡을

강요하는 윗사람들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늘어놓았습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스스로 배울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우리 음악을

콩나물 대가리로 옮겨놓으라는 무식한 인간들에 대한 분노를 터트렸죠.

그리고 그는 문득 '나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에게 죽게 될것이다'

라는 이상한 말을 했죠. 그는 제자에게 자신의 집에 오늘 밤  찾아와라

꼭 와야 된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마치 그날 제자는 다른 일이 생겨, 여자 제자 한명을 보냈는데, 김용배씨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후 일이 끝난 제자가 김용배씨를 찾았으나, 그가 보이지 

않아, 수위와 함꼐 그가 사는 공무원 아파트 문을 열었더니

그는 목을 매단 시체로 변해 있었습니다.

방바닥에는 그가 아끼던 꽹과리가 깨어져 뒹굴고, 그의 시신은

어느 절의 승려가 그를 위해 써주었다는 25개의 "없을 무"자가 쓰여진

족자를 향해 있었죠. 커다란 "무"자가 점점 작아서 없어지는...

그것이 한시대를 풍미했던 광대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장상현
e-mail : schang@phys.ufl.edu
http://phyp.snu.ac.kr/~schang (korea)
http://www.phys.ufl.edu/~schang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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