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guest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guest) **alalalalalal
Guest Auth Key: 8e5e99b1243494276116e0e4bc57b9d6
날 짜 (Date): 2009년 08월 30일 (일) 오후 08시 36분 56초
제 목(Title): 초식남의 오해에 관한 오해



한동안 스타일을 바꿔서 살아본 적이 있다. 헤어스타일부터 입는 옷, 심지어 
라이프스타일까지 다 바꿔봤다. 청바지 대신 스키니한 체크 무늬 바지를 
입었고, 외출할 땐 한겨울에도 반드시 선크림을 발랐고, 1주일에 두어 번 
마스크 팩도 했다. 한동안 그랬다. 그러다 말았다. 그리고 얼마 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여자보다 나를 사랑하는 남자들-초식남’편을 보고 
내가 그 당시에 초식남처럼 살았단 사실을 알았다. 

한 가지 다른 건 있었다. 방송에 소개된 초식남의 특징을 보면 연애나 섹스에는 
관심 없고 일과 개인적인 취미 생활에 대부분의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고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당시에도 난 물론 연애를 했다. 하지만 패턴은 달랐다. 
고깃집에서 삼겹살에 소주 마시는 걸 좋아하던 내가 주로 카페에 앉아 노트북 
켜놓고 일하면서 데이트를 했고, 소주 대신 와인이나 커피를 마셨다. 그땐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살던 동네 분위기가 그랬다. 그래서 삼겹살에 소주 
마시잔 얘기를 꺼내면 촌스러운 건 줄 알았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생활 패턴이 변하면서 나도 모르게 서서히 성욕이 줄어들고 
있단 사실을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됐다. 예전보다 더 스타일리시해진 내 
주변에는 여자 친구들이 점점 많아졌지만 날 이성으로 대하는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녀들과 내가 떠드는 얘기는 더 이상 대화가 아니라 수다였다. 
물론 애인이 있으니까 날 부담 없이 편하게 대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연애를 많이 해본 사람은 안다. 골키퍼 있다고 슈팅 안 하는 
선수가 세상에 어디 있나. 매력적인 남자를 보면 ‘못 먹어도 고!’라고, 한 
번쯤 베팅을 해보는 게 오히려 인지상정이고 게임의 법칙이다. 그런데 아무도 
내게 베팅하지 않았다. 베팅은커녕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난 그녀들에게 더 이상 
남자가 아니라 그냥 편한 친구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태가 심각했다. 난 다시 변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난 여전히 여자들에게 친절했지만 수다가 아니라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화가 날 땐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더 이상 초식 동물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 않았다. 그리고 불과 몇 주일이 지났을까? 거짓말처럼 날 대하는 
여자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비로소 다시 남자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섹스에 대한 욕구도 정상적인 수치까지 다시 치솟았다. 

언론에서는 초식남에게 ‘신인류’라는 수식어까지 붙여주고 있다. 이쯤 되면 
미래의 남자들은 전부 다 초식남이 되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다. 과거의 
전형적인 마초형 남자들을 대신하는 모델로 초식남이 대두되기까지 한다. 물론 
여자를 정복 대상 정도로 여기는 극단적 마초나 폭력적인 남자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마땅하고 이미 사라져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자리를 초식남이 
메운다는 논리는 왠지 맘에 들지 않는다. 그게 더 위험하단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손에 총을 쥐어주면 유효 사거리 같은 성능보다 디자인부터 따지는 
남자들이 인류의 절반을 메운다고 생각하면 이건 뭔가 아니다 싶어진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기본적인 
균형이 깨지는 것 같아서 개운하지가 않다. 뭐든지 ‘다워야’ 한다. 그게 
자연스럽다.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개그 프로그램의 ‘형님뉴스’란 코너에서 
행동대장 길용이가 외치던 멘트가 생각난다. “남자가, 남자다워야, 남자지!”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