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민형) 날 짜 (Date): 1994년03월05일(토) 21시03분12초 KST 제 목(Title): 엔트로피와 진화론 전 뭐 열역학은 잘 모릅니다만 (음.. 문제다 기계쟁이가 열역학을 잘 모른댔으니 이게 교수님 귀에 들어가면 ..으..) 그 엔트로피.. 라는 대중적인 책은 솔직이 마음에 안들더군요. 요즘 나오는 퍼지이론이나 카오스에 대한 책도 그렇지만 대중에 영합하려고 그랬는지 좀 너무 함부로 적용 대상을 확대한 감이 있더군요. 열역학 제2법칙의 성립 조건은 까다롭습니다. 생물 개체 또는 온 생태계라는 "국소적인" 시스템에서의 엔트로피 감소는 가능하거든요. 그리고 자기복제기구가 있을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자기복제'란 생물만이 가진 특유한 성질이 아닙니다. 포르피린 아시죠? 생물책에 나오는 고리 모양의 분자... 그건 시험관 속에서 유기합성됩니다. 그런데 포르피린의 재료가 되는 물질(C, H, N...)이 든 시험관에 포르피린을 소량 넣으면 포르피린이 마구 만들어집니다. 포르피린은 '자신을 만드는'반응의 촉매거든요. 아미노산 서열의 확률도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Korana던가 하는 생화학자가 RNA분해효소를 인공합성한 적이 있는데, 모든 화학반응은 수득률이 100%일 수는 없으니 당연히 불순물이 섞이지요. 대충 계산하면 아미노산 128개가 순서대로 배열되어야 하는데 각 단계의 반응률을 99%라고 보더라도 만들어진 효소가 제대로 생겼을 확률은 0.99^128 = 27.6%정도. 화학반응에 대해 뭘 좀 아시는 분은 그 이하라는 걸 아실 거에요. 근데 이 효소를 assey(활성을 측정해서 효소의 양을 가늠하는 작업) 를 해보면 거의 80%의 활성을 보이거든요. (음.. 실수다. 80%의 활성이 아니라 효소의 양 80%에 해당하는 활성.. 입니다) 이건 무슨 뜻입니까? 128개의 아미노산 중에는 기능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은 놈도 있지만 단순히 끼어있기만 하는 놈도 있죠. 어떤 놈은 자리를 채우는 역할만 하기 때문에 아무거나 다른 아미노산으로 바꿔도 되는 것이 있고 아예 없어도 되는 놈조차 한둘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런 아미노산이 128개 모여 제대로 된 효소 하나를 만들 확률은 (1/20)^128이 아니라 훨씬 큽니다. 심지어는 이 효소에서 촉매 기능을 갖도록 하는 radical을 갖는 아미노산 (뭐더라... 티로신 아니면 트립토판인데...) 한 종류만으로 사슬을 만들어도 어느정도 효소기능을 갖습니다. 한윤수님의 '폭발적 진화'에 대해서도 오해가 있는 것같군요. 한윤수님의 주장은 그렇게 허술한 것이 아닙니다. 간단한 사고실험을 해볼까요? 원시 박테리아 '균돌이' 가 있습니다. 이놈은 효소를 여러 종류 가지는데 아직 원시생물이라 효율이 썩 좋지 못합니다. 이놈들이 어느 연못에 살고 있습니다. 간단히 하기 위해 먹이는 1000마리분으로 균일하게 공급된다고 칩시다. 균돌이는 30분이면 분열해서 2마리가 됩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돌연변이로 효소의 아미노산 배열이 좀 다른 게 나왔다고 칩시다. 이게 균돌이보다 효율이 좋아서 20분이면 다 성장하고 분열합니다. (이놈을 균식이라고 할까요?) 한시간이 지나면 균식이는 균돌이보다 한번 더 분열하니까 개체수는 2배가 되지요. 근데 먹이는 1000마리분이니까 균돌이는 333마리, 균식이는 667마리가 됩니다. 2시간후에는 1:4니까 균돌이는 250마리, 균식이는 750마리가 되겠죠? 24시간 후의 균돌이와 균식이의 비율은 1:2^24, 즉 1:16777216입니다. 그럼 균돌이는 몇마리가 남습니까? 이런 식으로 자연도태는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한윤수님께서 '미생물은 환경이 나쁠수록 빨리 돌연변이와 도태가 일어나 더 빨리 적응한다'고 지적하셨죠? 위의 메커니즘에서 먹이가 일정하게 공급된다는 가정을 빼고 먹이가 국소적으로나마 소모된다는 모델로 바꾸면 그 현상도 쉽게 설명됩니다. (물론 그렇게 단순하기만 한 것은 아니겠죠, 생물학 이 그런 만만한 학문일 리 있나요.) 전 뭐 생물 전공자도 아니고 진화론을 믿는 것도 아닙니다만 만일 먼 훗날에라도 진화/창조의 문제를 시원스럽게 해결해줄 결론(과연 있을지...)을 얻고자 한다면 아직은 창조론이나 여타의 설보다는 진화론쪽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첫째, 진화론은 아직 다른 이론보다는 자기 비판에 인색하지 않은 건강한 학풍을 지녔고 둘째, 창조론자들의 지적을 타성 때문에 거부할 만큼 진화론자들이 우매한 교조주의자는 아닐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참고 서적을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 그리고 프리고진의 ...음..책이름이 생각 안나는군요. 하지만 뭐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프리고진의 책이라면 다들 아시겠죠. 워낙 유명한 책이니까. 모노의 책은 저자가 '골수 진화론자' 라는 걸 감안해서 읽으셔야 하고 프리고진은 직접 이 주제와 관계없어보이 겠지만 엔트로피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전에는 의학도, 지금은 기계쟁이인 스테아가 잠시 주제넘은 짓을 했습니다. 한윤수님편은 아무도 안계신 것같아서 (음.. 쇼팽님은 꽤 객관적인 입장인 것 같아서) 한번 노골적으로 한윤수님 편을 들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