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namjh (남 주희) 날 짜 (Date): 1994년01월16일(일) 12시18분32초 KST 제 목(Title): // 말자와 함께 스쿠프 쇼핑 // 가엾은 말자는 아직도 79년형 현대 포니를 몰고 다닌답니다. 자기 말로는 그래도 특수칼라를 (핑크색) 입힌 보기드문 복고풍 포니라고 하지만 소나타 오너드라이버인 저로선 얼굴을 찌푸릴수 밖에 없지요. 그래도 총알택시로 영업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가속도는 꽤 붙나봐요. 일전에 현대자동차 연구원이 말자가 자주 애용하는 한남동의 까치기사식당에까지 찾아와 10년 넘은 포니로 성능이상의 출력을 내게 한 비법에 대해 인터뷰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걸 가르켜 들이면 제 밥줄이 끊어지잖아요!"하며 딱 잘라 말했대요. 그걸 계기로 현대자동차와의 아프터써비스 계약이 예고 없이 어느날 갑자기 취소됐다고 하는데, 제 추측으로는 그게 아마 한달 전인 것 같아요. 요즘에 와서야 제가 오래전부터 충고해준 말들이 기억 났는지 오늘 같이 스쿠프 쇼핑하러 가자고 말자는 아침 일찍이 제 핸드폰을 울렸지요. 다른때면 저답지 않게 신경질을 냈겠지만 쇼핑하면 또 저 아니겠어요? 기쁨의 설레임을 꾹 참으며 그러자고 답변했지요. 여성을 우대하는 현대자동차 방배영업소의 미스터 방을 우연히 찾게된 우리는 곧 그분이 말자의 사춘오빠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60년대 말 군대에 복무하는 동안 탈영소동을 낸 그 오빠는 호적에서 삭제 되었으며 말자가 태어났다는 소식은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 20년이 지난 오늘 이날까지 말자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는 거에요. 그래서인지 얼떨결에 부둥켜 안킨 말자는 오빠의 가슴에 얼굴을 맏기고 훌쩍 훌쩍 눈물을 흘렸지요. 저도 여성인 만큼 울음을 참지 못할뻔 했는데 화장이 지워질까봐 나름대로 슬픈 미소를 지으며 이 감동의 장면을 가슴 깊이 세겨 두었답니다. 하지만 공은 공, 사는 사, 미스터 방은 눈물을 씻고 말자의 손을 꼭 잡으며 스쿠프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어요. "스쿠프는 크게 두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고급형'이고 다른 하나는 'LS형'이야. 사실 이건 말하면 안되는데 '고급형'이란 이름에 속으면 안돼. 'LS형'이 더 고급이야." 고개를 끄떡이며 오빠를 쳐다보는 말자의 두 눈에는 예전에 볼수 없었던 희망과 믿음으로 반짝이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것 또한 말하면 안되는데 터보를 부착시키지 않는게 더 좋아." "왜요, 오빠?" "터본 잘 고장나고, 또 고장나면 고치기 힘들거든. 그래서 오빠는 말자에게 스쿠프 LS형을 권하고 싶어. 에어콘을 부착시켜도 값이 아주 저렴해. 오빠가 덤으로 광폭 타이어까지 얹어 줄께." "정말이야, 오빠?!" 하며 언제 울었나 싶을 정도로 말자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였답니다. "그럼, 사춘오빠가 그정도의 써비스도 못할라구? 자, 그럼 우리 값을 계산해 보자... 더 가까이 앉어... 응 그래, 이게 차값이고, 이게... 응, 응, 맞아..." 말자와 미스터 방이 값을 계산하고 있는 동안 저는 전시장 중앙에 품위있게 서있는 그랜저로 살며시 걸어 갔어요. 영감틱 디자인을 과감하게 탈피한 세련된 그 승용차는 "아가씨, 저를 사가세요! 전 아가씨에게 일편단심입니다!" 하고 마치 저에게 핸들을 잡히고 싶은 욕망의 시선을 보냈어요. 옆에 사람이 없는걸 확인하며 문을 열고 운전석에 사뿐히 앉았지요. 그리고 그랜저의 안락감을 만끽하였답니다. 한 10분이 지났나, 옆에서 유리창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주희야, 이제 가자. 나 계약 다 했어. 일주일 후에 다시 찾아 오면 돼," 하며 말자가 영수증을 내 눈앞에 흔들며 웃고 있었어요. 아아, 정말 짧은 동안 단잠을 잤나봐요. 상쾌한 기분으로 우리 둘은 미스터 방에게 인사를 하고 방배동의 거리로 나왔답니다. "얼마였어?" 하고 옆에서 싱글 벙글 걷고 있는 말자에게 물었어요. "세금까지 합해서 한 천백만원 들었나? 12개월 할부 이자로 샀거든." 말자는 영수증을 가슴에 대고 행복한 목소리로 답했어요. "어머, 스쿠프가 그렇게 비싸니?" 하고 제가 의문을 제시하자 말자는, "얘, 모르는 소리 마. 이뢰뵈도 스쿠프 LS에 에어콘 및 광폭타이어까지 달았다고," 라고 반박했어요. "말자 오늘 팔자 고쳤구나." "응, 그래... 약오르지?" "그래 약올라 죽겠다," 하며 우리 둘은 제 소나타 앞으로 다가왔는데 글쎄 차 열쇠가 없지 모에요! "미안, 아까 그랜저에 핸드백을 놓고 나왔나봐. 잠깐만 기달려, 빨리 갔다 올께," 하곤 영업소로 달려갔지요. 예상했던 대로 핸드백은 그랜저 안에 있었고 그걸 집고 나오려는데 영업소 뒷쪽 사무실에서 미스터 방의 시원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려 왔어요. "하하하하! 정말이라니깐! 고 기집애의 사춘오빠라고 장난 삼아 우겼는데 정말 믿더라고! 포옹도 해 보고 계약이 끝날때까지 손을 쭉 잡았다고. 뻥이 아니라니깐! 게다가 기본으로 부착되는 광폭타이어를 써비스로 주는 척 했지! 회사로선 적자인 LS 모델을 비싼 가격에 팔았으니 꿩 먹고 닭 먹은 셈이지, 뭐.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남 주희 � namjh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