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sagang (보라빛향기) 날 짜 (Date): 1996년04월09일(화) 16시28분28초 KST 제 목(Title): [댓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님의 글의 서두와 말미에는 어느정도 공감을 느끼는데 중간에 그렇지 않은 게 있어 몇말씀 여쭤볼까 합니다. 편의상 님의 말씀에 토를 다는 형식을 취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 글속에서 간혹 지나치게 한쪽으로 경도된 듯한 인상을 받는 것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4D형의 글을 읽고 자칫 나무를 숲으로 오인하는 >사람들도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4디형의 글이후에 덩달아 따라붙는 >감정적이면서 깊은 사고가 없는 글들을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타인의 글에 함부로 "감정적이고 깊은 사고가 없는 글"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 역시 감정적이고 또 깊은 사고가 없는 발언이라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자신의 생각에 그렇게 여겨지노라고 말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만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한국기독교의 자기발전 없는 교육은 결국 기독교의 독자적인 배타성을 떠나서 >타종교에 대한 저급한 배척수준으로 한국기독교를 만들어버렸다. >5공화국때의 조찬 기도회..부끄러운 사실이다. 그곳에 참가한 목사님들은 >개신교 지도자급이었고, 결국 그들은 민중의 피를 얼굴에 묻힌 독재자의 안녕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곳에 참가한 >모든 목사들을 영적으로 타락한 목회자라고 매도하고 싶지 않다. > >개중엔 개인의 영광을 위해서 참가한 자들도 있지만, 목사로서 참가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스스로 참가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목사이건 신부이건 스님이건 당사자가 악한일지라도 그를 위해서 기도를 해야만 >한다. 저주의 기도를 올리는 목회자는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 >한 경직 목사와 같은 분은 그 분이 템플턴상을 받건 노벨 평화상을 받건간에 >한국 사회에서 충분히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 역시 >조찬 기도회에 참석을 하신 분이다. 그가 개인의 영광을 위해서 그랬다면.. >그는 지금쯤 꽤 안락한 생활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인생 >이력서에 비해 그분은 일생을 청렴하게 깨끗이 살아가고 있는 분이다. >남한산성 자락에 가면 수수한 단층집에서 고무신을 신고 마당일을 하시는 그분을 >뵐 수 있다. > 성직자가 청렴하고 깨끗이 산다는 점이 그 성직자가 특별히 더 존경을 받을만한 덕목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인간적으로 성직자의 그런 삶에 존경스러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성직자라면 그래야만 하는 게 당연한 것이고 그러하지 못할 바에야 스스로 성직자이길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목사의 아들이 고급 룸펜이란 사실 하나가 그 목사를 기준해버리는 잣대가 된다 >는 것은 희극이다. 지극히 한국적인 조롱이요 비방이 아닌가? > 신도의 헌금이 부당한 방법으로 유용되어 목사의 젊은 아들의 정당치 못한 여유로움 을 위해서 쓰여진다면 그건 당연히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라 생각되는데요? 그럼 신도의 헌금이 그런식으로 유용되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는, 아니 보편 적이고 세계적인(귀하의 우습기 짝이없는 한국적이란 표현에 반해서 써본 것인데 역시 우습긴 마찬가지군요) 것입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목사라고 하면, 그 가족들마저 성인성자의 모습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목사는 반드시 가난해야 한다고 믿고있으며 그 가족들 >역시 그 가난의 고통을 같이 지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목사에게 신도로서 >동정을 주면서 생색을 내고 싶어한다. 비기독교 신자들 역시 목사의 아들이나 >아내에 대한 웃기지도 않은 선입관을 많이들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하시 는 말씀이죠? 정말 웃기지도 않은 선입관이라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전 만인을 돌봐야할 성직자라면 독신이어야 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라 생각합니 다만, 뭐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적어도 한 성직자의 손길이 미칠 수 있는 범위 내에 어려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이 있는 데도 성직자가 그들을 보살피는 데 보다 자기 가족을 보살피는 데 여념이 없다면 뭔가 잘못된 것 아닐까요?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문제삼는 것은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그런 것들이 아니라 그 도가 지나친 경우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예를 하나 들까요? 월급 사백여만원에 고급 중형 승용차와 그 유지비 그리고 부수 활동비를 지급받는 목사가 있습니다. 48평형의 아파트를 제공받아서 살고 있고요. 뭐 목사도 그정도의 경제적인 혜택은 누리며 살 수 있다고 칩시다. 근데 문제는 그의 공부도 못하는 자녀 둘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곤 물가도 비싼 일본 에서 자비유학--무슨 과정인지 정체도 모호한--을 하고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유학비용 일체를 교회에서 따로이 지급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 돈이 부당하지 않은 정상적인 방법에 의해 올바르게 지출된 것이라고 보십니까?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많이 있으며 또 이런 목자의 사적인 비리말고도 더 구조적이고 큰 잘못이 얼마든지 많이 있고 바로 그 점이 한국의 개신교계가 갖고있는 여러가지 수많은 큰 문제들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만일 그들 눈앞에 목사의 생활이 여유있고 윤택해보인다면, 그들은 사소한 >문제 하나까지도 걸고 넘어가면서 어찌해서든지 자신의 위치보다 성직자들을 끌어 >내리려 한다. 왜냐고? 우리는 결코 우리보다 조금 나은 사람을 용납하기 싫어 >하니까말이다. > 우리라뇨? 전 님을 포함한 님께서 말씀하신 그 '우리'에 들어가고픈 마음이 추호도 없고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목사의 생활이 윤택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목자로서 마땅히 힘써야 할 일에 소흘한체 자신의 안락을, 자기 개인의 부와 헛된 명성에 연연하는 자가 많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제게 보이는 한도 내에서는, 바른 신앙생활을 포기한 일부(?) 개신교도를 제외하고는 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설령 그 목사의 아들이 고급 룸펜이고 그것이 그 아버지의 부당한 방법에 의해서 >이루어진거라면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깊은 이성적인 사고가 없이 만일 >주위의 풍문에만 의거해서 그러한 말에 동조하고 그러한 연유로 반기독교를 >내세우는 모습은 그리 똑똑해 보이지 않는다. > 비리를 바라보는데 무슨 '깊은 이성적인 사고'가 필요합니까? 그리고 무슨 근거로 주위의 풍문에만 의거해서 동조하고 그런 연유로 반기독교를 내세운다고 확정지어 말씀하십니까? 또 똑똑해 보이지 않다뇨? 뭐 "올바른 일이 아닐 것이다"와 같은 표현이라면 모르겠지만, 똑똑하다는 표현은 아랫사람에게나 쓸 수 있는 표현입니다. 위에 님께서 말씀하신 "하지만"에서 "않는다"로 끝나는 그 문장 정도가 님께서 여러번 내세우시는 "깊은 이성적 사고"의 결과로 나온 것이라면 님의 그 '이성적 사고'라는 게 의문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아래에 말씀하신 것처럼 감정이 배제되지 않아 어찌 하시다보니 표현이 그렇게 되었다면 최소한 타인의 이성적 사고에 대해서 함부로 왈가왈부는 하지 않으셨어야 하는겁니다. >역시 감정이 배제되지 않은 글이라 전개가 엉성하게 길어진 글을 마무리 지어야만 >하겠다. > >기독교는 교리면에서 배타적인 종교이다. 하지만 사랑의 종교이다. >그래서 그 사랑으로 타인을 감싸주어야만 한다. 뒤틀려가는 한국기독교계의 >현실은 신도들을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사회 이곳저곳 >에서 잡음들을 빚어내고 있다. 4디형의 글은 반드시 읽고 가슴에 넣어두어야만 >하는 글이다. > >하지만 음지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들을 수행하시는 목사님 신부님이 많은 것을 >잊지말자. 단지 보이지 않을 따름이고 그분들이 내세우지 않을 따름이다. >그 분들의 숫자가 적다고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일반적인 예상수치를 훨씬 >웃돈다. 그만큼 배출되는 신학생이 많으니까 말이다. :> > 현재 한국 기독교의 현실에서 목사님과 신부님이 동등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천주교단은 과거 중세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천주교도 현재 열린 태도--근본적인 한계는 있겠습니다만-- 를 표명하고 제법 바른 모습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고 또 실제로 어느정도 그러한 모습을 갖추었다고 여겨집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는 님의 "목사님 신부님"이란 표현은 대다수 신부님들의 좋은 모습을 빌어 마치 대부분의 목사님들도 그런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같아 보여서 조금은 우습네요. 님께서 의도하신 바가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죠. 그리고 쟁점이 되는 문제는 님께서 말씀하신 그러한 목사님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목사들이 많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 바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목사의 수가 사회에 별 해악을 미치지 못할만큼 몇명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거야 말로 진짜 '오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끝으로, 배출되는 신학생이 많으면 뭐합니까? 그들 모두가 올바른 자세로 목자의 길을 걷고싶어 하더라도, 그들이 <이미 잘못된 길 을 걷고 있는 기득권을 가진 엄청난 세력>을 이겨낼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목사의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현존해 있는 개신교계의 문제점이 나아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음지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들을 수행하는 것만으론 목자로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다 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현재 한국의 개신교계가 썩어있는 수준을 볼때... .... 바다는 넓고/고독은 자라고/세인트헬레나의 옛사람을 닮아 思 江 아무도 걷지 않는 해안선에/솔밭이 있고/모래밭이 있고 하늘과 바다와 소라가 있고/소라와 같이 고독한 내가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