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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Bshaft (거 봉)
날 짜 (Date): 1993년12월26일(일) 03시05분09초 KST
제 목(Title): [단편] 지루박 전쟁



거: 음... 1,3,5,2 번...

승교수가 차례대로 숫자를 누르자 모니터 화면에 "애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바로 93년 최대 히트 가요인 김수희의 노래 제목이었다.

     "그대- 앞에만 서어면, 나는 왜 커어지는가 -
      그대- 등뒤에 서어면, 내 몸은 젖어드는데..."

빵-빠바 빵빠바- 빵빠바-

승: 짝짝짝... 정말 대단한 노래 실력이군요. 원장님께서 그렇게
    잘 부르시니 제가 기가 죽는군요.

그러나 승의 노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최신
히트 랩송인 'INSERT COIN'을 불러 제꼈다.

거: 음... 노래도 춤 솜씨만큼 훌륭하구만. 가사가 좀 난해하긴 하지만...

이렇게 몇 곡을 주고 받다가 둘은 늘 그랬듯이 자신들의 룸밖의 홀에서
놀고있는 팀의 모니터를 내다 보면서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이것은 일일이 선곡을 해야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게 해 주었다.

꽤 넓은 홀에선 키즈의 가족들이 망년 모임을 벌이고 있었다.
죽도리, 죽순이로 날리던 명물들은 노래 점수도 아주 높아서 이들이
키즈에서만 죽때린게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어쨌든 아주 명랑하고
화기애애한 젊음들이었다.

반면 거봉과 승은 이들과 같이 어울리고 싶었지만 창으로 내다 보이는
화면을 통해 노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왜냐하면 인격이면 인격,
용모면 용모, 어느 면으로 보나 자신들이 물주 노릇을 해야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특히 '제프리'라고 알려진 한 청년은 3차 이상까지
빈대붙는 인물이라는 것이 키즈내에선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둘은 흥이 무르익어 가자 노래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승에게 있어
요새 걱정은 자신의 세련되고 우아한 최신 스텝이 자꾸 거봉의 투박하고
촌스런 지루박 스텝을 닮아가는 것이었다. 안 그럴려고 의식적으로
애를 쓰는데도 거봉이 옆에서 하두 오두방정을 떨기 때문에 호흡이
짜꾸만 헷갈렸다.

창밖에서 종업원이 노골적으로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째려보고 있는
것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둘은 스텝속으로 몰두해 갔다. 그도 그럴것이
둘은 올때마다 서너곡 정도만 동전을 넣고는 문닫을 때까지 개기는 것이었다.
더구나 털털거리는 포니2를 몰고 와서는 꼭 키를 자신에게 주면서 주차를
부탁할 때는 자신이 과학원 입시를 중간에 포기하고 써비스업에 투신한 것이
후회 막급이었다. 마침내 참다 못한 종업원이 절규했다.

종: 에이그, 저 귀신들... 초저녁부터 와서 아주 뽕발을 내누만,
    닝김 조또 씨빠빠!

이 한마디에 갑자기 키즈 모임에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부르던 노래도
멈추고 하나 둘 황급히 노래방을 빠져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룸안에 있는 둘은 여전히 잘 놀고 있었다. 거봉은 승교수가 이제는
거의 지루박 스텝으로 바뀌었음을 느끼고 물은 높은데서 낮은데로 흐른다는
단순한 진리를 실감했다.

키즈인들이 다 빠져 나가고 차 한잔 마실 시간이 흘렀을까?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노래방으로 점점 가까와 짐을 느낄 수 있었다.
둘은 드디어 자신들의 춤이 입신의 경지에 들면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
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잠시후, 그 강력한 기운의 주인공은 아주 언발란스한 네 명의
무리들임을 알 수 있었다. 음... 저 깔다구는 제법 귀엽게 생겼는데...
물론 나의 장딴지 여인보단 빠지지만... 저 차돌같은 친구는 그 남편일까?
귀엽게 생긴 소년은... 또릿하구만. 아들은 아닐테고... 음.. 저 안경 쓴
꼰데는 복장이 아주 기묘한데... 근데 다들 표정들이 심각하군...
거봉이 춤을 추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네 명의 무리는
둘이 있는 룸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갑자기 차돌씨가 두 손을 허공에서
천천히 휘젓더니 룸을 향해 뻗어대자 문짝이 순식간에 날라가 버렸다.

그제서야 둘은 춤을 중단하고 불청객들을 쳐다 보았다.

거: 음... 야들은 누구야?

네명 중에 가장 연장자인 복장이 묘한 아저씨가 제일 앞으로 나서며
기도를 외웠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 로다.."

거: 할렐루야! 음... 승군, 이분들이 연말연시를 맞아 불우 이웃 돕기
    성금을 모금하시는 듯 하다. 근데.. 우리도 기부금 접수가 잘 안되서리...

차돌: 닥쳐라! 세상을 현혹하는 마귀들아!

거: 아니, 돈 좀 못낸다고 그렇게 심한 말을...

깔다구: 꽁무니 빼지마! 이 추잡스런 마귀들... 이젠 이런데 까지
   나타나서 지루박까지 추면서 노는 꼴들하고... 너무 더러워...
   준후가 어린 나이에 못볼 걸 너무 많이 보는구나.

준후: 승희 누나, 하지만 세상을 조금 더 살기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이라면 저도 도와야죠.

거: 점점... 지루박 좀 췄다고서 이렇게 까지 쪽을 주다니, 어린 애 앞에서...

준후: 아직도 자신들의 본면목을 감추고 뻔뻔스럽게 연극을 하다니... 에잇!

소년은 갑자기 부적을 한 웅큼 꺼내 들더니 뭐라고 주문을 외우며 사방으로
날려 보냈다. 거의 동시에 박신부는 기도를 외우며 몸에서는 푸른 빛의
오오라를 발산하는데 두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거봉과 승은 갑자기 술기운이 확 깸을 느꼈다. 승교수도 자신도 한때
야바위로 뽀리뜯던 과거가 있었지만, 성금을 안 낸다고 이렇게 까지
사람을 모욕주고 행패하는 것은 더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다.

차돌씨가 차력사같은 손동작으로 기공을 모아서 거봉과 승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승희라 불린 여인은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른 채 지긋이
눈을 감고 정신을 모으고 있었다. 춤을 추느라 기력을 많이 소모한
거봉과 승은 제대로 방어 한번 못해보고 디지게 맞기만 했다.
왜 맞는지도 모르고 맞을때의 억울함은 맞아본 사람만이 안다.

그렇게 맞기를 거봉의 체감 시간으로 한시간쯤 지났을까? 갑자기 준후 소년이
소리를 질렀다.

준후: 앗, 잠깐만요! 모두 멈추세요!

차돌: 왜 그러니, 준후야? 퇴마행 1년만에 모처럼 일방적인 공격을 하고
      있는데...

준후: 음... 투시를 해보니 이들은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어떻게
      된거죠?

박신부: 그럴리가... 우리가 실수를 한건가? 현암군, 도데체 어떻게 된거야?

현암: 글쎄요. 노래방에 귀신 둘이 출몰해서 지루박을 추고 있다는 전화
      연락을 받고...

승희: 어떤 사람이 전화했죠?

현암: 누구라더라? 키즈에서 퇴마록의 열렬한 팬이라면서....
      맞아! 이름이 하일수라고 했어요.

거: 엉엉... 당신들 이럴 수가 있어? 엉엉... 아파라...

박신부: 이거... 정말 미안하게 됐소. 확인도 제대로 안한 우리의 잘못이오.
    그러게... 현암군, 키즈 유저들은 믿으면 안된다고 했었쟎아. 이중 삼중
    으로 아이디나 만들고...

현암: 으음... 어쩐지 너무 쉽게 풀리더라니...

사건의 발단은 거봉과 승의 행동에 열받은 종업원이 '저 귀신들..' 운운하면서
욕하는 소리를 옆에서 들은 키즈 망년 모임 일행들이 듣고 과민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요새 퇴마록의 선풍적인 인기로 봐서 그럴 만도 했다. 그 중에서도
의협심이 강한 하일수라는 친구가 제일 먼저 나서서 퇴마행을 의뢰한 것이었다.

승교수: 앙앙... 아파라.. 두고 보자, 하일수. 공돌이들은 그렇게 하나같이
    매너가 황인가? 공돌이들의 무식한 행동이 아주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군.
    앙앙...

거: 엉엉... 그래요. 이미 물은 엎질러 졌으니 할 수 없지요. 더구나 좋은
    일들을 하시는 분들인데... 하지만... 엉엉...

박신부: 하지만... 뭐요?

거: 하지만... 깽값은 물어달라는 얘기죠... 뭐 저희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교육자 아닙니까? 좋은게 좋은거죠... 애구 아파라... 엉엉...

승희: 알았으니... 제발 그만 우세요. 남자들이, 참...

승교수: 알았어요.. 흑.. 안울께요... 흑..

거: 음... 저희도 실비만 부를께요. 승군 메모지 좀 주게.


             - 구타에 따른 피해 보상액 산정 방법 -

  1. 가해자는 피해자 거봉에게 주먹 한대당 20원 발길질 1회당 30원씩
     계산하여 보상한다.

  2. 승교수에 대한 보상액은 거봉에 대한 보상 단가의 반액으로 계산한다.

  3. 가해자들의 법적 보호자인 이우혁은 최근 출간된 퇴마록의 인세 수입의
     3%를 향후 1년간 지급한다.

                              1993. 12. 26.  박 신 부 (인)
                                             -------------

일동들은 이러한 불행스러운 상황에 처해서도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거봉의 의연함에 존경심이 일었다. 특히 승희양은 용모는 둘째치고
현암군에게 거봉의 절반만이라도 저런 사태 수습력이 있었다면 퇴마행이
여지껏처럼 어렵지는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박신부: 좋아요. 뭐 어차피 저희들의 보호자인 이우혁님께서 책임질 일이니
    기꺼이 도장을 찍지요. 책도 잘 나가고 있거든요, 허허허...

거: 하하.. 신부님, 성격이 화끈한 게 맘에 드는군요. 핫핫핫!

박신부: 뭘요? 거봉님이시야 말로 이 세상에 넓은 그늘을 드리우는 거목과도
    같은 존재인 것 같군요. 허허허...

거: 아, 신부님은 아주 표현력도 좋으시고 또 보는 눈도 예리하시군요. 핫핫핫!

승교수: ( 으... 또 도졌군. 저 인간 한번 추켜 주면 끝낼 줄을 몰라요... )
    원장님, 이제 마무리를 해야죠. 자정도 다 되가는데...

거: ( 짜식이.. 꼭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껸져요... )
    그런가? 음... 우리 이대로 그냥 헤어지긴 아쉬우니 같이 노래나 부르다
    가죠? 어떻세요, 신부님?

승희: 야, 신난다! 그래요, 신부님.

박신부: 좋아요, 그럼 돈은 이우혁님 앞으로 달아놓고 놀아 봅시다!

거: 할렐루야!

더 놀고 가려는 일행을 종업원이 영업이 끝나는 시간이라고 말리자 준후가
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내어 종업원의 이마에 붙이자 잠잠해 졌다.
그렇게 두 팀의 망년 모임은 즉흥적으로 시작되어 죽이 맞아 들어갔다.
박신부의 찬송가 열창에도 거봉의 지루박은 계속되었고 퇴마사 일행들도
노래방에서 춤 추는 맛을 알게 되었다. 무술하듯 춤을 추던 현암의 어정쩡하던
스텝도 어느덧 지루박의 예술로 승화되고 있었다. 아쉽군... 키즈 애들이
미리 가버렸으니...
단지... 천장위에서는 노래방 마이크에 감전되어 구천을 떠도는 마귀들이
이들의 노는 모습을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 보고 있었다. 낄낄낄... 저것들
잘들 노는 군... 퇴마사들이 저렇게 헤이해져 놀고 있으니 내년엔 우리 귀신들
장사가 좀 되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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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는 집에서 조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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