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eXpression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Luka (c) H. Son)
날 짜 (Date): 1996년03월15일(금) 07시33분08초 KST
제 목(Title): 김중사와 신하사




이글은 예전에 쓰던 "재미없는 이야기"속에 끼워넣으려 했던 것이다.

굳이 여러사람에게 나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 왠지 부끄럽기도 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해서 그 재미없는 이야기는 더이상 쓰지 않기로 한것이

오늘 김중사와 신하사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이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란 것은 나 

자신의 개인적인 일이 들어나면 읽는 이마다 나름대로의 해석을 덧붙여 나라는 

인간을 평가한다는 것도 한 원인이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애초에 키즈에 글을 

쓸때 부터 소설가 흉내나마 내고 싶었던 나의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글쓰는 

이중에는 소설을 쓰는 이도 있고 수필을 쓰는 이도 있다. 수필가는 자신의 생활을 

진솔하게 옮겨놓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소설가는 어떤 소재이던 나름대로 

잘 부풀리고 뜯어 고쳐서 자기만의 예술로 만들어야하는 행위를 필요로 한다. 그 

자세한 정의는 모르겠으나 이것이 내가 정의했던 내가 쓰고자 했던 글이었던 

것인데 날이 갈수록 내 자신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옮겨 놓는 이야기꾼이 되어가지 

않는가? 아뭏든 ...









육군 제 #@@&부대 연병장 옆을 따라 비탈길이 있었다. 위병소 정문에서 부대 

본건물을 잇는 가파른 길이다. 새벽마다 점호후 구보하는 고행길이기도 하다.

그때는 손병장이 제대를 5개월 정도 남겨놓은, 한꺼번에 나가버린 고참들 덕에 

일찌기 말년생활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단순한 하루 하루를 놀며 보내기도 

지루해서 나름대로 공부도 하고 여기 저기 쫓아다니며 쫄병들 일 간섭도 하며 

보내던 터였다. 하지만 군생활에 어떤 의미를 찾고자 했었음인지 근무나 임무에는 

충실했었던 것 같다. 야간 경계근무 상황근무 주번근무 등등을 한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눈치빠른 행정반 쫄병이 은근히 근무에서 제외시키곤 했었으나 그럴때마다 

다시 고치라해서는 근무를 자원하곤 했었다. 



그날은 길옆에 치워놓은 눈들이 녹아내리고 산을 넘어가는 포장도로 옆의 개나리가 

노랗게 꽃을 피우고 있는 나른한 봄날이었다.손병장이� 기억하는 군생활의 느낌 

좋은날은 대부분 이때즈음이다. 황토길에 묻어나는 눈녹은 물기 그리고 피어나는 

싹들... 토요일이라 부대 뒷산에 있는 경계초소로 자원 근무를 나섰다. 쫄병과 

함께 서는 경계근무라 별 부담이 있을리도 없겠거니와 봄의 향기를 맡기에는 

그곳이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멀리 연병장옆 비탈길로 대여섯명의 병사들이 커다란 

백을 걸머지고 걸어오고 있었다. 인솔자는 김중사. 바로 한달전에 중사 계급장을 

단 천덕꾸러기... 갑자기 대열이 흩어지더니 연병장 끝의 축구 골대를 돌아 원위치 

한다. 김중사가 신병들 군기를 잡는 것이려니... 어느덧 그들은 부대 막사로 

사라지고 있었다.



경계 근무를 마치고 기재 창고에 들어가 이것 저것 둘러보고 따로 떨어져 있다가 

느즈막히 저녁을 먹었다. 고참이 저녁이 늦으면 당번들은 항상 밥을 따로 챙겨 

놓았다가 주곤한다. 그 고충을 알기에 그러지 않을려고는 하지만 이미 빠져버린 

군기라 그게 잘 되지는 않는 것이다. 그리고 동기녀석 하나와 두란 두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어둑해져서 내무반에 들어갔다. 

"충성 손병장님 이제 오십니까?"

"그래 요놈아 근데 충성이 모냐? 다시해!"

"옙 순결"

"그래 잘한다. 아무일 없지?"

"예 어짜고 저짜고"

침상에 걸치고 앉아서 텔리비젼을 보고 있었다. 삐기덕 문소리가 들리고 탕하고 

닫긴다. 돌아다 보았다. 왠 처음보는 녀석이 계급장도 없는 야전 상의를 걸치고 

들어와 앉아 있었다. 가끔 타부대서 다른 곳으로 파견 갈때 묵어가는 경우도 있고 

보안검열같은 것이 나오면 보안부대서 와서 묵어가는 수도 있으므로 그들중 

하나거니 하고 그저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약 10초간을... 그리고 잠시 

그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그순간..

"야 이 개씹따구야 뭘 보냐?"

그녀석의 입에서 튀어나온 욕설에 잠시 어리둥절하며 주위를 살펴 보았다. 도대체 

누가 이 육군 장성중 제일 높은 말년 병장에게 개뼉다구도 아닌 개씹다구?

순간 그 옆에 있던 조상병이 벌떡 일어나 야전삽을 꺼내더니 그녀석의 뒤통수를 

향해 내리찍었다.

"야 안돼!"

손병장의 고함소리도 아랑곳없이 주위의 병사들이 우루루 달려들어 녀석의 옆구리를 

마구 밟고 있었다. 잠시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무반은 종전의 상태로 돌아갔지만 녀석은 모포를 덮어쓰고 울고 있었다. 

흐느끼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알고 본즉 녀석은 갓 하사계급장을 달고 전입온 

신참 하사관이었다. 군대야 계급사회이기는 하지만 장교, 하사관 그리고 병으로 딱 

나위어진 사회가 존재한다. 갓 들어온 소위들은 하사관 고참들에게 무척 시달리게 

마련이고 갓들어온 하사는 병사들에게 시달린다. 하사관의 경우 중사 달때 까지는 

내무반에서 병사들과 같이 보내야 하기 때문에 그 괴로움은 더욱클 것이었다. 

김중사도 얼마전까지만해도 내무반 생활을 할때는 우리 고참들에게 꼼짝을 못하고 

설설기는 입장이었는데 중사 진급 하자마자 금새 폭군으로 변해 버렸다.

그녀석을 신하사라고 부르기로 하자. 다른 병사들 보다 어린 더구나 늦게 

입대한 손병장보다는 한참 어린 고등학교를 갓나오자 마자 

하사관 학교로 자원해서 들어간 어린아이.... 내무반에 있던 자기의 고참 

고하사가 보는 마당이라 한마디로 "게겨야 한다"라는 강박감에서 손병장에게 그런 

욕지거리를 했던 것이었다. 하사들이 처음 전입 오면 그들의 고참 즉 말년 하사나 

중사들이 시키는 것이 바로 "병사 다스리기"였다. 초반에 하사관 무서운 맛을 

뵈주겠다는 것인데, 그것 시킨 녀석들도 예전에 병사들에게 꽉 잡혀 있었던 

놈들인데 새로온 놈들이라고 그게 잘 될리는 없다. 아뭏든 어떤 식으로라도 

"게기지" 않으면 그날 저녁으로 죽지 않을만큼 터지게 되어있던 터였다.

그런데 이 신하사 병사들에게 두드려 맞고 모포덮어쓰고 울고 있으니 그것을 본 

고하사의 말한마디면 부대의 고참하사관들에게 맞아죽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피엑스에 간 손병장은 내무반으로 전화를 돌렸다.

"야 고하사좀 오라해라 피엑스다"

오랜만에 툭 터놓고 말을 꺼냈다. 고하사는 손병장보다 약 3살정도가 적었던 

녀석이었는데 다른 하사관들 보다는 제법 착한 심성을 지닌 충청도가 고향인 

녀석이었다. 맥주 몇깡을 앞에 놓고 군생활에서 느꼈던 여러 갈등과 그런 

것들을 오해하지 않게 말하고 신하사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생전쓰지 않던 "고하사"라는 말까지 쓰면서 평소의 호칭 "고띵"또는 "야" 에서 

많이 발전한 것이다. 아마도 짬밥을 많이 먹어서 돌았었나 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 신하사가 무척 불쌍하게 느껴졌었던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었다.



신하사는 밤에 누구에겐가 불려 나갔다. 그 다음날 그의 얼굴은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손병장은 고하사를 불러  물어보았다. 고하사의 말은 내무반에서 

있었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다른 트집을 잡혀서 동기들이 한꺼번에 

기합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의무실에 

들어가 나올생각을 않는 녀석이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의무실엔 또 다른 하사관 

고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데...



그와의 소원한 한달이 흘렀다. 그도 제법 부대사정이나 돌아가는 것을 

눈치챘음인지 나름대로 사람 상대하는 수단도 부리며 병사들에게도 잘하는 것 

같았다. 인간적으로 나오면 병사들도 인간인데 왜 사정을 봐주지 않겠는가.

그가 제법 우리들에게 친근한 행동을 비출무렵 우리도 하사관들 있을 때는 그에게 

심한 말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부추겨 주기까지 했었다.



어느날 그가 손병장에게  말을 걸었다.

"손병장님.."

이렇게 시작한 말투가 밉지 않았다. 그 호칭은 조금후 "형님"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와 이런 저런 이야기 등등을 털어놓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말년 병장이라 별로 할일도 없었으니 그녀석과 잡담하는 것도 좋은 소일거리 

였음에 틀임이 없었다.



손병장이 제대를 약 일개월 정도 남겨놓은 무렵...

밤에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왠일일까? 녀석이었다.

소리를 죽여 흐느끼는 녀석..무척 안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어깨를 두드려 깨웠다.

"야 불침번아.. 나 신띵하고 행정반에 가서 야그좀 하고 올거니깐 인원현황 잘 

맞춰놔라.."

"넵 충성.."

그의 말은 이러했다. 김중사가 늘 괴롭힌다고 했다. 자신의 월급은 모두 고참들 

술값으로 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김중사는 특히 더해서 하루라도 

아부하지 않으면 밤마다 불러내서는 구타한다는 것이었다. 불쌍한녀석

하지만 그것이 신하사만 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김중사역시 예전에는 그런일을 

당했을 터였다.

그런데 김중사의 말인즉 요번에 일주일간 휴가를 보내줄테니 들어올때 20만원을 

들고 와서 읍내에 가서 한상 차려먹자고 했다고 한다. 마음약한 신하사는 그말에 

기겁을 하고 "저 능력이 없는데요"라고 했다고 하는데 화가난 김중사가 그를 

구타하면서 "그럼 30을 안가지고 오면 너죽는다 ..." 이랬다고 한다.



신하사가 군대에 들어오게된 동기는 가정형편이었다. 전라도 어느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기술하사관으로 가면 보수를 고스란히 저금할 수 있다는 말에 

끌려 고등학교 때부터 무슨 장학금을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지와 막일을 하는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하나... 그들에게 용돈한번 제대로 

보내지 못했었다.



그는 결국 억지 휴가마저 반납하고 말았다. 당당히 식구들 앞에 나서지도 못할 

입장에 돈까지 달라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천리행군을 끝내고 들어오는 병사들의 행렬이 보였다. 여름으로 접어들어 더운 

기운이 감도는 산중의 막사.. 지친 얼굴의 신하사가 보였다. 이제 일주일 후면 

전역하는 손병장에게 그 모든 것들은 그저 추억의 한 장면 처럼 비춰졌을 

뿐이었건만...  신하사는 손병장이 누워있는 침상옆에 걸터 앉았다.

"형님, 나 오늘 그새끼 죽여버릴래요..."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아무리 격한 언어가 군대의 표준어라고는 하지만 

죽여버리겠다니... 공교롭게도 그는 손병장의 전역일에 휴가를 떠나게 되어있었다.

"야 신하사야 너 무슨 말이냐? 그러지 마라..안그럴거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저녁 그는 점호시간에 겨우 맞추어 내무반에 들어왔다. 주번하사의 

투덜거림에도 평소같지 않게 대꾸도 없었다.

관물대 뒤로 무엇인가를 집어넣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취침시간, 모두들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피곤했을 터였다.

훈련에 참가하지 않은 말년인 손병장으로서는 잠이 올리가 없다.

전역하면 해야할 일 만나고 싶은 사람들... 온갖 상상이 머리속에 맴돌고 있었다.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잠자리에서 일어서 신하사의 관물대로 갔다. 그리고 그 잘제켜진 내복과 군복 들 

뒤로 손을 넣었다. 묵직한 감자같은 것이 잡혔다. 슈류탄이었다. 

신하사는 빛나는 눈으로 손병장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전역하는 길은 황금색 아스팔트가 깔린 파라다이스로 가는 길이었다. 위병소를 

가로지를 쇠사슬 위로 한발자국을 내밀었다. 한쪽 다리는 부대안에 있고 다른 

다리는 사회로 나가 있었다. 신하사는 저만큼서 손병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되도록 부대와 멀리 떨어진 **읍에서 한 술집에서 둘은 마주보고 있었다.

신하사는 고맙다고 했다. 

군생활 하는 도중 안해본 일도 없건만 병기고 잠입은 그날밤이 처음이었다. 

말년고참이라는 특권으로 병기고를 맡은 타중대 쫄병도 그일에 무리없이 협조해 

주었었다.주머니에 넣은 슈류탄이 무척 부담스러웠었다. 행여 실수로 핀이 빠지면 

어쩌나 하고...휴...

"신하사야 시간은 가는 것 아니겠니.. 힘들더라도 참고 견뎌봐라..좋은일인들 

없겠니..김중사와 너는 인연이 아니라서 그런 것이겠지... 그사람도 좋은 

사람일게야.. 시간나면 편지나 한통 하렴..."





아닌게 아니라 예비군 손병장은 편지를 한통 받았다. 김중사가 갑자기 상급부대로 

전출을 가게 되었다는 것과 자신은 별로 한일도 없는데 표창장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포상금을 집에 송금했다는 것과... 아버지가 국군병원 **지원에 입원하게 

되셨다는 것 등등이내용이었다. 

짧은 답을 썼다. 그것이 손병장이 그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였다.

"..... 신하사야 언젠가 인연이 있음 보겠지.. 나도 이제 곧 한국을 다시 떠난다.. 

부디 몸조심하고 군생활 잘하고...."





이제는 중사가 되어있을 신하사 그리고 군생활을 계속 하고 있다면 상당한 고참이 

되어있을 김중사.. 그밖의 수많은 병사들 그들의 얼굴이 어른 거린다. 




[끝]








전역후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았을 때 손병장은 &(*군단 군단장이었던 그의 

외삼촌에게 전화통이 부서져라 소리치고 있었다.

"예.. 김중사 이름은요 *** 신하사 고향주소는 ....

........."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