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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Convex (4ever 0~)
날 짜 (Date): 1995년02월13일(월) 16시31분02초 KST
제 목(Title): 모래시계의 광주항쟁묘사에 대해..


모래시계 광주항쟁 부분을 보면서 옛날 대학시절 겪었던 학생들의 

반독재투쟁장면이 다시금 악몽처럼 떠오른다. 작가 송지나씨는 78학번

이대 다니던 시절 운동권 학생이었다고 했다. 작가는 말이 운동권이지

당시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다고 했다. 80년대 중반까지도

그러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작가는 모래시계의 의미가 작은 

알갱이들이 모여 하나의 역사를 이루게되고 어떤 제한시간까지 가지만 

엎어놓으면 다시 순환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광주에서 올라온 친구들이나 후배들의 말을 들으면서 그 진상이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고, 가끔 당시 외국언론에 나왔던 기사, 비디오

테이프등이 가끔씩 돌아다니면서 (그건 목숨걸고 하는 행위였다. 실제로

광주항쟁 비디오 돌려보다 걸려서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사형받은 사람도

있고, 흠씬 두들겨 맞아 (반)병신 된 학생도 많았다.) 학생들은 분노하기

시작했고 나중에 사진까지 실린 광주사태진상의 대자보들을 보면서 어느쪽 

말을 믿어야 하는가를 확실히 해주었다. 언론에 나오는 정부측 발표와는 

상충되던 그 내용이 나중에 하나둘씩 사실로 밝혀지면서 당시 대학생들은  

학업이냐 투쟁이냐를 놓고 갈등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데모에

참가를 직접 안하더라도 투쟁하는 학우들을 지원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 자체가

하도 황당해서 정말 이나라 이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지 잠시 착각한건 

아닌지 의심이 드는 순간이 많았다. 

        YH 라는 회사의 사장은 미국에 뉴욕 37가에 30층짜리 빌딩까지

소유하고 잘먹고 잘살고 있다. 

        모래시계에서 나오는 부분은 리얼하다. 그래서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라는 지적도 받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절제된 표현이었고 여러가지

여건으로 인해 생략된 부분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공수특전단의 총검술 

장면은 나오지도 않았고 (물론 풍선터지는 식으로 상징적으로 묘사되었지만)

마지막 도청에 모여 끝까지 항전하던 장면은 그냥 총소리로 대신해야만 했다.

그리고 천주교신자 군인들의 고해성사로 알려지게된 집단 시체 매장장면은 

나오지도 않는다. 이 기록들은 일부명단과 일지까지 남아있는데, 

나중에 황석영의 "죽음의 사선을 넘어"라는 광주항쟁 기록집에도 나온다. 

(판금되었으나 몰래 돌려지며 읽히던 책)

드라마에서 국민학생들도 헌혈하려했고 아줌마들이 밥을지어 나르는 장면

아기엄마가 총에 맞고 임산부가 칼에 찔리는 장면, 고등학생이 실제로 

도청 사수파에 남아 있다 죽는 장면, 택시 운전사 아저씨가 분노하던

장면등은 한 민주공화국이라는 곳에서 불과 15년전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어느분은 깡패들을 미화했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 당시 광주에는

범죄율 제로를 기록했다. 경찰관들이 치안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사재기나 가게약탈등이 없었던 점에서 시민의식을 높게 

평가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 언론에서 떠들던 무장폭도들에 의한

주민대상 약탈, 방화, 폭동등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다.

        특전사가 빠져나가고 영문도 모르는 한 일반 사단병력이 진압용으로

투입되면서 도청은 넘어가게 되는데... 거기서도 만행이 많았다.

투항해 오는 시민들을 한손으로 갈기면서 "어때? 영화보는 것 같지?"

하고 조롱하였고, 건물안에서 잡힌 사람들은 두들겨 맞으면서 두손이

뒤로 묶인채로 몇층을 기어 내려와야만 했다. 등에는 "극렬"이라고

페인트 써진채로. 탱크부대의 한 장교로 있다가 미국에 유학왔던 한 사람은 

당시상황을 회고하면서 "적어도 1000명쯤 죽었으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군인들이 너무한다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실제상황에선

"저놈들은 나쁜놈, 우리 전우를 죽인놈" 하면서 군인정신에 충일해

있었다고 한다. 외국의 한 언론은 '마치 적군을 섬멸하고 돌아오는

군인들이 개선하는 듯 착각한다'면서 탱크위의 늠름한(?) 군인아저씨를

찍었다. 그리고 Newsweek 표지에 개처럼 목에 밧줄을 끌고 다니는

사진을 실으려다가 한국 대사관의 간곡한 만류로 다른 장면으로

바뀌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광주시민들은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라는

기사가 나갔었다. 성질 사납게 만들기 위해 잠도 안재우고 술도 먹이면서

살벌한 구타 기합도 주었다고 했다. 모래시계에서도 나오지만 부마사태

때에도 사람들은 많이 죽었으며, 초기 과잉진압이 효과를 보았었다.

광주에서는 더 심했던 것이 젊은이 시체들을 지프에 묶어 끌고 다녔던

것이 택시운전사들을 자극시켰으며, 차를 검문시 2미터 더 앞으로 정차

시켰다는 이유로 반죽음이 되었던 어느 버스운전사도 있었다.

        유학생 선배중에 당시 광주를 벗어나려다가 특전사 패잔병들에게

걸려서 산에서 일주일동안 같이 야영하면서 밥짓고 설거지, 빨래등 

일을 해주고 풀려난 사람도 있으며, 하필이면 그날 결혼식날을 잡은

한 광주처녀는 인근 마을의 도시에 있는 예식장에 신부측 단 2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삼촌과 남동생이 자전거를 빌려타고 갔다고 했다.)

        지금 이나마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도 다 '민주는 쟁취하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잘 실천한 사람들 덕분이었다는 것을 잊지않았으면

좋겠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운동권 작가에 의한 편협한 시각의 작품'

이라고 심한 반발을 했다지만, 내가 보기엔 공정하게 (이게 운동권을

편드는 일이긴 하지만) 묘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더 심한 

사실들도 많았으며 그런 것이 그냥 슬쩍 넘어간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법대생이라서 훈방하는거냐"라는 박상원의 야유조 질문에, 벌컥 화를내며,

"네가 훌륭한 판검사 되어서 제발 이런 꼴 바로 잡아라"는 경찰관의

고뇌, 명령에 절대 불복종 할 수 없었던 군인들, 그리고 고향사람들을

마구잡이로 폭행하는 것을 보고 혹시 친지들이 자기 얼굴 알아볼까봐

어쩔줄 몰라하던 한 특전사군인... 다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주도록 했다. 

          몇사람의 정권 야욕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게 된 사건.

가해자들이 버젓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아직 법적기한이

만료되지 않은 일인데 12.12사태 참 자알 처리하던 그 나물에 그 비빔밥격인

사법부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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