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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clearsea (晴海)
날 짜 (Date): 2009년 08월 20일 (목) 오전 09시 47분 40초
제 목(Title): [답] 한나라당을 쪼갤 수 있을 것인가?(상)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전 제 글에서 한나라당 쪼개기 문제제기를 했었습니다. 현 정치판에서 
제1당인 한나라당을, 가만히 있는 공당을 왜 쪼개느냐 마냐는 문제를 던지는가? 
라는 의견이 올라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다행히 그런 의견은 없었습니다.^^ 
만약 그런 의견이 있었다면, 한나라당은 쪼개질 거리라도 있지만, 다른 정당은 
그런 거리가 없다고 답했을 것입니다. 다른 정당들은 오히려 연합해야 될 
것입니다. 연합할 명분도 있고, 약자이니까요.

1. 호텔링과 블랙: 중위 투표자 정리

1929년에 호텔링(Harold Hotelling)이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에 대한 중요한 
정치적 해석을 제시합니다. 두 정당의 정책이 비슷하다는 것이죠. 이 
아이디어를 논리적인 공간모형으로 제시한 것이 1948년 블랙(Duncan Black)의 
"중위 투표자 정리(Median Voter Theorem)"입니다. 아시듯이, 선거 쟁점 
하나(일차원), 단봉(single-peaked) 선호순서를 가진 합리적 유권자들, 정당 
혹은 후보자 둘이라는 가정에서 중위 투표자에 더 가까이 가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이긴다는 내용입니다. 호텔링의 해석을 논리적으로 잘 정리한 것이죠.

듀베르제(Maurice Duverger)는 영국 정치를 관찰하여 이 정리가 경험적으로도 
말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영국 선거를 살펴보니, 2, 3백만의 중도 
성향 유권자가 보수당과 노동당의 선거 승패를 좌지우지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선거에 결정적인(decisive)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미국 정치에서는 
무당파 스윙(independent swing) 유권자라는 존재입니다.

중위 투표자 정리의 기본 가정에도 합리성이 역시 들어갑니다. 유권자의 
합리성과 정당/후보자의 합리성이죠. 유권자는 자신의 선호순서에 따라서 
효용을 극대화하려고 투표하며, 정당은 표를 더 많이 모으려고 한다는 가정이 
들어 있습니다. 이 가정에 의문을 제기한 정치학자가 제 미국 사부님 중 한 
분인 故 라이커(William H. Riker) 교수님입니다.

2. 라이커: 최소 승리연합 정리 (The Theorem of Minimum Winning Coaltion)

라이커 교수님은 정당이나 후보가 이길 정도만 표를 모으면 되지, 더 많은 표를 
모을 필요는 없다는 매우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시합니다. 예컨대 후보자가 둘일 
때는 단순과반수만 확보하면 이기므로, 그 이상의 표는 필요 없다는 다른 
내용의 합리성을 제시합니다. 표를 모으는 데 비용이 들어간다는, 더 
경제학적인 분석입니다. 비용-편익 분석이죠. 경제학의 재정학이나 공공선택 
분야에서 이런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학자로 부캐넌(Buchanan)과 
툴락(Tullock)이 있다고 합니다. 다음은 라이커 교수님의 최소 승리연합 정리에 
대한 설명입니다.

"First he says that the intentional exploitation of the outsiders is 
maximized when the deciding coalition is as small as possible, but still 
decisive. Then he predicts that exactly for this reason such minimal 
coalitions will form."
http://www.mobergpublications.se/arguments/ideology.htm#minimal

조금 살벌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한나라당 예를 들어서 위 인용이 암시하는 
바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뒀습니다. 
민주주의에서 다수의 지배라고 하면, 과반수만 확보하면 되는데, 과반수를 훨씬 
넘는 국회의원을 한나라당이 확보한 것이죠. 그런데 정치판의 이익은 무한한 
것이 아니죠. 파이는 일정한데 그것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탐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파이를 나눠 먹을 수 있는 그룹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각자가 챙길 몫은 작아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압승은 파이를 챙길 수 있는 국회의원 각자의 이해관계 잣대를 따르면, 
그들에게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이 라이커 교수님의 최소 
승리연합 정리입니다. 효용의 극대화를 이루려면 승리연합이 최소화되어야 
하고, 현실에서 그런 양상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미국 정치를 경험적으로 살펴보면 라이커 교수님의 정리는 매우 일리가 
있습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거의 반반으로 의원수를 나눠 갖습니다. 이것이 
유권자의 선호순서 때문에 그렇게 된 측면도 있지만, 정치인들의 합리적 효용 
극대화 추구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지난 18대 총선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국회의원 숫자는 다다익선이라는, 거의 일당독재를 향하는 정치세계의 
냉혹함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우리 정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라이커 교수님의 
정리가 우리 정치판에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정권을 잡고 나면 그 
내부에서 항상 권력투쟁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을 최소 승리연합을 향한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박근혜 씨가 한나라당을 뛰쳐 나가지 않는 이유도 라이커 교수님 정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정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최소 승리연합 요건에 
한나라당이라는 브랜드가 있다고 볼 수 있죠.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초부터 
지금까지 친박계, 친이계라고 하면서 권력투쟁이 있었던 셈이죠. 친이계는 현재 
최소 승리연합을 구축하기 위해서, 친박계는 미래 최소 승리연합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런 행보를 보여줬다고 저는 봅니다.

이런 구조적 특성 때문에 한나라당은 내부적 요인에 의해서 쪼개질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쪼개지려면 외부의 충격이 가해져야 가능할 
것입니다. 어떤 충격이 가능할까요?

3. 정치적 지역주의를 쪼개기

지역주의도 건설적인 것이 있습니다.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리는 전통과 문화가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죠. 전라남도 담양의 대나무 문화라든지, 
경상북도 안동의 하회탈 전통문화 등의 지역주의는 더 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정치적 지역주의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고질적 병폐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그 부작용이 심각합니다. 이 글에서 앞으로 지역주의는 
정치적 지역주의를 말합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지역주의 혜택을 받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지역주의를 완화 혹은 극복해야 하는 이유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에 
비이성적인 왜곡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에 장문의 기고문을 
연속으로 게재한 전북대 박동천 교수는 이 지역주의를 "허위문제"라고 
주장했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박 교수의 주장은 지역주의 문제 자체가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괴물이기 때문에,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일부 일리가 있지만, 원인이 어디에 있든 현재 우리 정치의 발목을 잡는 
"물귀신"이라는 점만 들어도 저로서는 허위가 아닌 진짜 문제입니다. 지역주의 
해소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딴 주머니를 차는 정치인이 허위이지요. 박 교수도 
아마 그런 의미에서 지역주의가 허위라는 주장을 펼쳤을 것으로 봅니다.

한나라당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지역주의에 기대서 그렇게 많은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물론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감, 경제를 살려주겠다는 장밋빛 
약속, 뭘 상실했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정치적 수사 등도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래도 지역주의 영향이 결코 적지 않았다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따라서 공룡을 만든 한 원인인 지역주의를 깨면서 
한나라당을 쪼개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4. 지역주의를 지역주의로 쪼개기: 친노 신당?

며칠 전에 드디어 친노 신당의 출범을 알리는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헌법에는 
정치적 결사의 자유를 명시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라도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규합하여 정당을 만들 수 있죠. 따라서 친노 신당도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계승한다는 대의명분을 걸고, 전국 정당을 목표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정치적 결사의 자유를 존중합니다.

대의명분도 좋고, 전국 정당 목표도 좋습니다. 문제는 현재 정치 지형입니다. 
야권이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으로 삼분되어 있는데, 신당까지 실제 
정치세력으로 작동하면 사분되는 것이죠. 사분오열이라는 표현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선거에서 연합하면 된다고 간단하게 정리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 재보궐 선거에서 진보신당의 조승수 후보가 선거 연합을 
이뤄내서 이긴 것을 보면,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되겠다는 판단이 설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런 성공 사례가 얼마나 되며, 그 사례마저도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 힘들게 성사된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친노 신당이 구색을 갖춘다면 PK 지역에서는 선전할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며, TK 지역과는 원래 정서도 다르다고 평가할 수 있죠. 또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PK 지역의 현 정부 지지도가 TK보다 훨씬 낮다고 합니다. 
따라서 친노 신당이 제대로 작동하면, 내년 지방 선거나 2012년 총선에서 PK 
지역 일부를 한나라당에서 쪼개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이 지역주의를 지역주의로 쪼개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죠.

그런데 다른 지역은 어떻게 될까요? 예컨대 서울/경기 지역에서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친노 신당이 전반적인 선거 연합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저는 어렵다고 봅니다. 야권표가 분산되는 효과가 더 클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렇게 되면 친노 신당은 전국 정당이 아니고 지역 정당이 되죠.

정치에서는 결과가 중요합니다. 친노 신당에 아무리 좋은 명분과 목표가 
있어도, 결과적으로 선출직 당선자가 특정 지역에 몰린다면, 그것은 지역 
정당입니다. 특정 정치문화에 따라서 지역 정당이 건설적인 순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연방제를 채택한 나라에서는 그런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지역주의가 이미 심각한 문제인 사례에서 
새로운 지역 정당이 생긴다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지역주의를 깨는 효과가 설사 있더라도, 또 다른 지역주의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친노 신당이 전국 정당으로 성공하여 제 예측이 빗나가면 
좋겠습니다.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서 자신이 괴물이 되면 곤란합니다. 지역주의를 
지역주의로 쪼개는 것이 비슷한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 공룡 
정당을 쪼개는 다른 방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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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 성냥불 이야기
http://ahnabc.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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