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eXpression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hjchoi (최 항준)
날 짜 (Date): 1994년08월10일(수) 05시07분29초 KDT
제 목(Title): 왕십리 분원 비망록 (2)


학생들의 노고에 힘입어 자신의 연구실이 있는 2호관 4층까지 무
사히 올라온 승교수는 복도끝에 베니어 합판으로 막아 임시로 만
든 자신의 초라한 연구실을 보며 다시금 '휴우~' 하고 한숨을 내 
쉬었다.

처음 자신이 이곳 왕십리 분원에 부임할 때만 하더라도 그의  야
바위 학계에서의 뛰어난 연구실적을 높이 산 거봉원장의  아낌없
는 지원으로 엄청난 연구비와 함께 최신 연구장비 및 왕십리  분
원 내에서 가장 크고 휘황찬란한 연구실을 지원 받았었다. 

그의 60평 연구실 바닥에는 페르시아 산 붉은 카페트가 깔려  있
었으며, 천장에는 이태리제 샹드리에가 주렁주렁 매달려 빛을 발
하고 있었다. 

그는 고동색 오크목으로 견고하게 만들어진  고풍스러운  집무용 
책상 앞에 앉아 방 중앙에 둥그렇게 설치 된 CRAY II 에  연결된 
터미날로  한가로이 테트리스를 즐기곤 하였다. 

또한 연구하다가 힘들때에는 그의 연구를 위해 6대 도시에  깔려
진 45메가 BPS급 전용 광케이블을 통해 가끔씩 kids나 여자가 많
이 있다는 BBS에 들어가 Talk를 하곤 하였다.

사실 그는 45메가 BPS가 얼마나 빠른지는 잘 몰랐다. 단지  Talk
로 여자 꼬시기에 족하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사치와 호강으로 떡칠했던 얼마전까지의 연구환경을 회상
하며 베니어 합판으로 막혀진 연구실 문앞에서 멀거니  서  있던 
그의 등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항준 : "어이~ 승교수 이제 오나?"
승교수 : "응... 그래... 자넨 언제왔나?"
최항준 : "나도 방금 왔어... xblast 한판 워뗘?"
승교수 : ('으~ 저 빌어먹을 놈의 자식이 날 이모양 이꼴로 만들
          어 놓고 또 xblast를 주둥아리에 올리다니...')
         "아니야... 됐네... 자네나 열심히 하게..."

최항준이 xblast라는 희한한 게임을 가져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
는 미국 유학기간 동안 등록금을 날려가며 갈고 닦은 탁월한  포
커 실력으로 왕십리 분원을 휩쓸고 있었다.  왕십리분원  교수들 
월급날 그 월급봉투들은 모두 승교수의 것이나 마찬가지 였다. 

그러나, 포커 대신에 xblast라는 새로운 게임이 왕십리 분원  지
정 종목으로 바뀌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승교수의  월급봉투는 
몸을 현란하게 돌려가며 마라도나의 킥보다 빠르게 쏘아대는  최
항준의 폭탄에 번번이 공중분해 되곤 하였다.

승교수는 너무도 분한 나머지 밤을 새워가며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하고, 각 스테이지의 지도까지 그려가며 열심히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였다. 

그렇게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내던 어느날 그렇게 잘하던  최항준
이 연거푸 승교수에게 지는 것이 아닌가? 

피나는 연습끝에 이젠 월등한 실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한  승교수
는 지금까지 날린 월급 봉투를 단번에 탈환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승교수 : "이제 푼돈가지고 내기 거는것도 귀찮지 않어? 화끈하
          게 내 연구실이랑 자네 연구실이랑 걸어보는게 어떨
          까?"

최항준은 이 제안에 대뜸 동의를 하고,  드디어  연구실  따먹기 
xblast 한판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럴수가? 

그는 이 한번의 착각으로 그토록 휘황찬란한 연구실을 초당  7방
이나 연속으로 차대는 최항준의 폭탄 속에 갇혀 사면초가에 빠져 
날려버리고 만다. 

연구실을 찾기 위해 그가 수년간 에로티카 뉴스 그룹으로부터 다
운 받아 왔던 50 기가바이트 상당의 주옥같은 명화들이 담긴  시
스템까지 걸어가면서 게임을 계속 했지만 연전 연패 였다. 

결국 남은 것은 복도에 베니어 합판으로 막은 연구실과 껍데기도 
없는 IBM-XT 한대 그리고 300 bps 짜리 구형 자네트  모뎀  한대 
뿐이었다.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