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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guest (guest) <minerva-as53.lab>
날 짜 (Date): 2002년 4월 13일 토요일 오전 10시 58분 13초
제 목(Title): 담배 피는 뇨자


네델란드에 있는 어떤 회사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거기 사람들 진짜로 담배 
엄청 피우더만. 카페나 음식점 등은 말할 필요도 없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용하는 사무실 안에서 조차 담배를 피워대길래 매우 놀란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무실 안에서는 담배를 안피우는 분위기인데 말이야. 
네델란드처럼 환경문제에 적극적인 나라도 있을까 싶었는데, 담배는 환경과 
아무 상관이 없어서 그런건지...

아뭏든.

회사에서 잡아준 호텔에 머물고 있던 몇일동안, 호텔 데스크에서 일하던 
아가씨와 친해지게 되었었다. 친해진 계기가 우스운 것이, 그 아가씨는 
부모님이 싱가포르 출신으로, 그 아가씨가 태어나기 전에 네델란드로 이민 온 
중국계였기 때문이었다. 뉘리끼리한 피부색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던 곳에서, 
같은 색깔의 사람을 만나는 반가움이란... 거 참... 그러고 보면 백인들이고 
흑인들이고, 자기들끼리 어울리려고 하는게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 아가씨도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지 내가 거기 머무는 동안 
어리버리한 나를 여로모로 잘 챙겨주었었다. 지나친 친절을 받으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 나는 그 아가씨의 자상함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마지막 날 저녁 호텔 문을 들어서는데, 그날 일을 마치고 라운지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그 아가씨를 보았다. 내가 다음날 새벽에 암스테르담으로 
떠나는 것을 알고 있던 그 아가씨는 암스테르담 지도를 들고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암스테르담에 관한 정보를 일러주려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아가씨를 
보고서 먼저 든다는 생각이,

'어, 너 담배피우니?'

그러면서 순식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담배.. 담배... 너같이 참한 
아가씨가 담배를... 너 담배 피우는 줄 몰랐다... 실망... 실망... 너,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니... 네 부모님은 너 담배 피우는 거 아무말 
안하시니...' 이런 잡다한 생각들이...

그 아가씨가 앉아있던 테이블에 다가가 앉으면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던 
모양이다. 그 아가씨는 내게 담배 피워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아, 물론 괜찮구 말구.. 맘놓고 피워요.." 이러면서 싱글거리던 나...

내 자신이 싫어질 때가 가끔 (아니 자주) 있는데, 바로 이런 때가 그렇다. 물론 
속다르고 겉다르고 한 모습도 싫지만, '참한 여자는 담배 피우면 안된다'라는 
그릇된 편견을 갖고 있던 나. 줄곧 착하고 예쁜 아가씨에게 고마와하고 
있었으면서, 어떻게 담배 피우는 모습 하나만으로 그간의 생각들이 다 무너져 
버릴 수가 있냐는 거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그 아가씨한테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담배연기 
냄새처럼 싫은 것이 없지만, 그보다 더 싫은 것은 '여자는 담배 피우면 
안된다.'라는 편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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