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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
날 짜 (Date): 2001년 10월 23일 화요일 오전 11시 05분 48초
제 목(Title):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하는 것에는 그 처음에만

'고백'의 의미가 있다. 눈을 뜨고 있는 것이 괴로울 정도로 두 눈을

가득 채우는 당신에게, 이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다. 눈을 감으면 눈 안에 있는 당신이, 달디단 가시처럼 나를 황홀하게

아프게 한다는 통증에 대한 하소연이 있다.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상태를 마음속에 가둬두고 있자니, 화산을 가둔 감옥처럼

내 몸이 무너질 것 같다는 경계경보의 사이렌을 울리듯, '사랑해'라는

말은 신음처럼 삐져나온다. '사랑해'라는 말에는 반드시, '당신은?' 이란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데, 당신도 나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전제하지 않는 첫 고백은 없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가'라는

의문문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사랑해'는, 단지, '사랑하지 않아'라는

대답을 들을까봐 두렵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자기 방어와 같을 뿐이다.

아무런 반응도 기대하지 않고, 단지 발화에만 의미를 두는, 보다 관대한

경우의 '사랑해'라는 고백은, 내가 당신에게 완전히 흡수되어 이 힘으로

이 생의 고달픈 강을 내가 건너간다는 표지판처럼 작용된다. 신에 대한

사랑의 고백처럼. 


그러나, '사랑해'라는 말에는 특허청에 의장 등록을 할 때와 같이,

내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이 도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독점의 욕망이 내포되어

있다. '사랑해'라는 고백을 처음 수용하는 그 대상은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

'사랑해'라는 말을 허가하지 말아야 하며, '사랑해'라는 감옥 속에 들어가

사랑이 다하는 순간까지는 정절을 지키라는 뜻이며, 소변을 발라놓음으로써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 개들처럼 영역의 우위 선점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며,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서 돈을 지불하듯, 나를 사랑해달라는, 나와 함께

사랑을 하자는, 거래를 완수하자는 교환 가치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한번 '사랑해'라는 말로 묶여진 한 쌍의 연인은 '사랑해'라는 말을 난사하면서,

사랑한다는 한마디 말의 효용성을 극대화시키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내가

전에 고백한 '사랑해'라는 말을 너는 기억하니?"라는 뜻으로 두 번째 발화를

시작하여, 당신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비워둔 내 마음의 빈 곳에 대한 결핍

때문에 내 앞에 당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부터, 오늘 저녁은 심심한데

영화나 같이 볼까, 에 이르기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유효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당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들이 후레쉬가 터지듯 온 거리의 여기저기에서

빛으로 터져 버릴 때에도, 당신이 벗어놓은 새까매진 양말의 허름함이

어쩐지 안스러워 보일 때에도, 새 양말과 속옷을 얌전하게 개켜서, 잠든

당신의 머리맡에 놓아두며 순간적으로 옛 기생의 감회에 빠질 때에도, 약속

시간에 알맞게 도착한 당신을 보았을 때에도, 약속 시간보다 일찍 와서

미리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에도, 약속 시간에 늦어

온몸에 바람을 헤집고 달려온 순진한 모습이 역력할 때에도, 음정을 잘못

짚어 엉망으로 노래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볼 때에도, 계단에서 내려오다

넘어지는 덜렁거리는 모습을 대할 때에도, 낡은 지갑을 들고 다니는 당신을

위해서 백화점 1층을 배회하는 순간에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당신의

모습이 무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빼어난 착시를 만들어낼 때에도, 공중

전화에 동전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할 때에도, 섹스를 하고 싶을 때에도,

섹스를 하면서 보다 멋진 황홀을 제공받고 제공하기 위해서도, 성과 있는

섹스를 하고 난 독후감을 표현하기 위해서도, 나의 '사랑해'라는 발화를

듣고 당신의 마음이 환하게 점등되는 모습을 관음하려고 할 때에도,

껴안고 있는 순간이 양수처럼 포근하고 설탕처럼 달콤하며, 이제는

익숙해진 당신의 향기에 내가 중독되어 있구나 여겨질 때에도, 껴안고

있는 순간이 피를 흘리고 있는 순간처럼 상처를 만들고 있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질 때에도, 이 순간 시계 바늘을 꺼내어 시간을 멈추고

싶다는 안락함이 죽음과도 같은 처절함으로 여겨질 때에도, 당신의

걸음걸이를 흉내내고 있는, 당신의 묘한 표정의 한 끝자락을 모사하고

있는, 내 말에서 당신의 말투가 섞여들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당신의

못된 버릇을 내가 답사하고 있다는 자각이 드는 그 모든 순간에도,

나 혼자 보고 있는 영화와 나 혼자 맛보고 있는 음식과 나 혼자 즐기고

있는 이 풍경의 아름다움을 함께 하고 싶을 때에도, 무섭거나 애잔한

꿈을 꾸고 눈을 뜬 아침에, 나를 가둔 감옥과도 같은 어두운 일상에

대한 권태에, 뜻대로 되지 않아 공허할 때에, 당신이 울적해 보여

용기를 주고 싶음에, 내 삶이 불안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곳을

탈출하고 싶음에도, 혼자 가기에는 외롭고, 여럿이 함께 하기에는

번거로운 여행을 함께 하고 싶음에도, 오늘은 유난히 달빛이 휘영청

밝아서 쓸쓸해지는구나, 하는 감상에 이르기까지, 비가 내리는 오후의

평화가 나를 차분히 가라앉게 한다는 감정에 대해서까지, 첫눈이 내려

세상의 흰빛이 무슨 축복처럼 느껴지는 설렘이 있는 날에까지, 길가에

핀 오월의 장미꽃이 유난히 선연해 보여 꽃집에 들러 꽃 한 송이를

막연히 사고 싶은 순간에까지,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듯

담배를 빼어 물 때와 같이, 그냥, 마음을 환기하고 싶을 때에도, 노력한

대가가 힘을 발휘하여 좋은 결과를 얻어 어딘가에 자랑하고 싶어질

때에도, 당신이 딴 마음을 품고 딴 곳에 정신을 팔고 있는 것에 대해

질투할 때에도, 딴 사람에게 자꾸만 눈길이 가고 손길이 가는 내 마음을

균형잡고 싶을 때에도, 당신의 따뜻한 주시가 피로하게 느껴져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 때에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운명임을 깨닫는 적막한 명상의 끝자락에서도,

한 곳에 주둔하지 못하고 뿌리 없이 떠도는 영혼의 실체를 응시하는

순간에도, 혼자서 하기에는 지루하고 힘겨운 일거리가 있어 도움을

청하려 할 때에도 '사랑해'라는 말은 쓸모 있게 쓰여진다. 


'사랑해'라는 말에는 애초의 내용이란 없다. 그 내용 없음은 사랑하는

두 사람에 의해 각각의 방식으로 섣부르게, 주관되게, 함부로, 무책임하게

채워진다. 생각보다 이용 가치가 높은 당신을 다목적으로 이용하고 싶다는

속셈이, 생각보다 이용 가치가 떨어지는 당신을 개선하고 싶다는 속셈이,

당신의 사랑에 대한 나태함에 자극을 주고 싶다는 속셈이, 요즘은 돈이

궁해, 라는 궁한 말을 할 때에도, 당신은 왜 그렇게 형편없는 속옷을 입고

내 앞을 얼쩡거리느냐, 라고 핀잔을 주고 싶을 때에도, 무료한 수다를

그만 접고 이제 전화를 좀 끊었으면 싶을 때에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술과 담배에 기댄 당신의 모습에 대한 언짢음에도, 작은 일에 우쭐거리는

당신이 유치해 보일 때에도, 큰 일을 해낸 당신의 속사정이 치사한

사기꾼처럼 탐욕스러워 보여 껄끄러울 때에도, 당신이 소유한 능력을 내가

좀 써먹겠다 싶을 때에도, 해야만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할 때에도, 당신의 부탁을 오직 귀찮아서 정중하게 거절하고 싶을 때에도,

명백히 당신이 하기 싫은 일을 시키려고 할 때에도, 내가 내 시간을

방해받지 않고 즐기기 위해 핸드폰을 꺼놓을 때에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도 시치미를 떼며 당신과 마주하고 있는 죄책감에도, 내가

설명하고 있는 말들이 진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오해를 가중하고

있을 때에도, 그 순간, 당신의 반박이 나의 미움과 배신에 대하여 스스로

눈뜨게 할 때에도, 그래서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시인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할 때에도, 피곤하고 지쳐서, 나를 피곤하게 하고

지치게 해서 당신 없는 곳으로 도망가서 한동안 살고 싶어질 때에도, 모든

행동과 말 끝에 넌즈시 이 말을 덧붙인다. "내가 사랑하고 있는 거 알지?"

테러범이 폭탄을 상자에 넣고 예쁘게 포장한 다음, 마지막에 리본을 묶듯이

말이다. 


마지막에 던져지는 '사랑해'라는 말은 '미안해'와 '고마워'를 함께 짊어지고

있다. 처음 '사랑해'라는 말은 언제나 수줍고 진지하게 발화되며, 과정

속에서의 '사랑해'라는 말은 때론 유치하게, 때론 장난스럽게, 때론 느끼하게

때론 청승맞게 발화되지만, 끝에서의 '사랑해'라는 말은 모래바람처럼

건조하고 공허하다. 처음의 '사랑해'라는 말이 신음의 형식을, 과정의

'사랑해'라는 말이 감탄 혹은 즐김, 의지 혹은 속박과 테러의 형식을 표면화

시킨다면, 끝의 '사랑해'라는 말은 학살의 형식을 표면화한다. 엄격하게

말해서, 세상 모든 사랑한다는 고백은 학살의 일부이다. 죽임과 죽음을

모사하고 투영하되 그것을 축제로 치환하려는 노력, 놀이로 가장하려는 흔적,

죽임과 죽음이란 사형대 앞에서 담배 한 대를, 혹은 노래 한 곡을, 혹은

기도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죽임과 죽음의 순간을 지연시키고자 하는 공포의

결과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에 던져지는 '사랑해'라는 기표는 '사랑'

이라는 기의를 가장 정확하게 등식화한다. 마지막 악수와 마지막 포옹과

마지막 섹스와 더불어, 마지막 '사랑해'라는 고백은 바타이유의 말처럼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을 절절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당신은 이제 새처럼 자유로워져라. 당신은 이제 나 없이도 밥을 먹고 길을

걷고 잠을 잘 사람. 당신은 이제 나 없이도 그래야만 하는 사람. 당신은

이제 모든 기억과 흔적과 추억과의 인연을 끊어라. 망각하라. 당신은

나로부터 얻으려던 것을 이제 다 얻었노라. 나는 더 이상 줄 것 없는

누추한 몰골이 되었도다. 그렇지만, 개새끼, 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향해,

예의 그 그윽한 눈빛으로 또 '사랑해'라는 말을 할 거면서. 그 사람을

안고 핥고 탐미하다가 허기질 거면서. 나 없이 잘 사나 두고 보자. 그동안

당신 비위를 맞추느라 피곤하고 피곤하고 피곤했을 뿐. 이제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노라. 용기와 만용이 축적되면 당신을 내 손으로 죽여줌으로써

내 사랑을 완성하겠노라. 당신을 내 손으로 죽임으로써, 당신의 나에 대한

결례를 응징하겠노라. 당신은 결코 잘 살 수 없을 것이다. 나를 떠난

당신에게는 언제나 액운이! 당신을 버린 나에게는 언제나 행운이 깃들기를!

그렇지만, 당신은 잘 살아야 해요. 나도 잘 살게요. 당신이 나를 아름답게

추억함으로써 내 사랑을 완성해주기를. 나 또한 그렇기를. 당신에게 내가

마지막이기를. 나에게 당신이 처음이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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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 "밤고양이가 쓰레기통을 헤집듯 '사랑해'라는 쓰레기통을 헤집다" 全文


* 너무 장황해서 내가 이 글에 공감하는지 어떤지 잊어버렸음 --;;; *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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