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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hseung (승 현석)
날 짜 (Date): 1994년06월30일(목) 22시08분45초 KDT
제 목(Title): - 여자가 된 하루 -


eye weekly라는 주간지에서 퍼온 글입니다.  신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글속
에 나타나는 이름을 조금씩 바꿨습니다.  이것으로 유익한 토론이 오가길
바랍니다.

승 현석 -- hse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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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된 하루
by K.K.Campbell


이성의 삶을 엿보기 위해서 사람들은 군중 심리학, 롤플레잉, 옷 바꿔 입기,
그리고 심저어는 성전환수술까지 시도해왔다.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저요?  저는 그냥 컴퓨터를 썼죠.

몇년전, 필자는 BBS라고 알려져 있는 "컴퓨터 채팅" 시스템에 대한 기사를 쓰
려고 이곳 저곳에서 취재를 하고 있었다.  모뎀을 이용하여 먼지 쌓인 컴퓨
터를 전화선에 연결하고, 어떤 특정한 전화번호를 돌리면, 전혀 모르는 사
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당신의 모니터에 상대방이 타이핑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상대방 또한 당신이 타이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건 그렇고, 그 취재를 하는 동안 발견한게 있는데, 그것은 많은 BBS가 여
자에겐 무료이고, 남자에겐 유료라는 점이다.  나같이 글을 쓰는 사람은 원
래 굶주리지 않을 정도의 보수로 하루하루를 생활하는데, 내 사정을 딱하게
여긴 남주희이라는 친구가 자기 계정을 쓰게 해줬다.  여자 계정이다. 난
공짜로 BBS를 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한가지 조건을 붙였는데 아무에게도 내가 그녀라고 밝히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녀가 남자에게 그녀의 계정을 빌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BBS 운영
자가 알아내면 그녀의 계정은 지워지게 된다.

사실, 나는 그녀의 계정을 이용함으로써 185cm 신장의 남자에서 165cm의 여
자로 변신했다.  그리고 취미는 (그녀가 다른사람들이 볼 수 있게 써올린
조그마한 프로파일에 적혀 있 듯) "특별한 그 남자와 별을 바라보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나는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마자 컴퓨터가 삐~삐~ 거렸다!  거의 눈깜짝할 사이 시작한다: 남자
들로부터의 채팅 신청이.  "누구 누구와 대화를 나누시겠습니까?"라는 작은
메세지가 화면에 나타난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뻔하기 때문에 그것을
무시하고, 나는 시스템을 익히려고 안간 힘을 다하여 노력한다.  하지만
jeffrey라는 녀석은 끝이 없다.

내가 남주희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약속은 했으니깐).  나는 되는데
까지 그를 무시한다.  곧 포기 하겠지?  남자들은 친절하잖아.

채팅 신청을 31번이나 하더니, jeffrey는 작전을 바꾸고 나에게 조그마한
메세지를 보낸다.  나밖에 볼수 없는 메세지를.

첫번째 메세지: "여기 처음이세요?"

끝없이 나타나는 "여기 자주 오세요?"의 다른 버젼인가 보군.

"누구야 이녀석?!" 나는 큰소리로 묻는다.  나는 이용자들의 정보를 보관하
고 있는 메뉴로 들어가 jeffrey의 프로파일을 찾아 본다.  화면에 나타난다:

     프로파일: 27살, 189cm, 80kg
         취미: Sex, 오디오, 전자제품, sex, 아름다운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
좋아하는 영화: 모든 것, 특히 sex 영화!
       스포츠: Sex.  Sex.
  좋아하는 책: Playboy.

    (그 이외에 자신은 맥킨토시 매니아라는 정보도 있었다.)

황당해진 나는 멍하니 화면을 쳐다보며 중학교시절 책걸상에 파여져 있던
나체그림들의 기억이 머리를 꽉 체운다.

그와 동시에 jeffrey의 메세지는 내 화면을 쉴새 없이 두드린다:

"도움이 필요하세요?"

"남주희가 당신의 실명입니까?"

"채팅 해요 - 중요한 얘기가 있어요!!!"

조금 조금씩 이 jeffrey라는 작자가 나를 가만히 않놓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기 시작한다.  "jeffrey, 몰상식한 행동은 그만 해," 나는 화면에 외친다.
짜증나기 보다는 오히려 신경질이 난다.  그가 이런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단지 나를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 이름 옆에 남자라
는 표시가 있다면 jeffrey는 두번째 거절당했을때 나를 더이상 방해하지 않
았을 것이다, 물론 내가 그의 시야에 들어 왔다면 말이다.

새로운 메시지가 삐삐 거린다:

"사랑을 나누자!"

이것을 본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 jeffrey라는 작자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거지?  이것이 그의 인생철학이라는 것인가... 혹은 이것이 jeffrey
의 새로운 공격작전이란 말인가?

"xxx-3558."

전화번호다.  그가 나에게 자기 전화번호를 준 것이다.  난 태어나서 한번
도 그의 존재를 인정한 적도 없는데... 그는 나에게 자기 전화번호를 준 것
이다.

결심했다!

까짓 것,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채팅해 주마.  내가 설사 165cm의 여자로
가장해야 한다 하더라도, 좋다 이거야, 채팅으로 네가 얼마나 병들린 남성
상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마.

채팅신청을 어떻게 받는지 겨우 알아 내고 나서, 나는 화면을 쳐다 보며 기
다리고, 기다린다.  예상했던 대로 채팅신청이 들어오고 우리는 재빨리 채
팅모드로 들어 간다.  1 대 1이다.

그가 첫번째 말을 쓰고 있는 동안 나는 그녀석의 자존심을 납작하게 만들
궁리를 한다.

* 어? jeffrey가 아니네!! *

이사람은 창새기라고 하는 들어 본적도 없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채
팅을 건 것이다!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제서야 내가 채팅모드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 생각났다.

"음... 안녕하세요?" 라고 일단 치고 빠져 나올 방법을 생각한다.  "당신과
채팅하려고 한게 아니에요.  실수로 다른 키를 누른 것 같아요.  이곳 BBS
에는 첨이거든요.  어떻게 하면 채팅모드에서 빠져 나가죠?"

완전한 실수다.  나의 바보같은 말을 듣고 기뻐하는 창새기는 자신의 품안
으로 나를 인도해 하려 한다.  그는 jeffrey처럼 꼬시려 들지 않는다.  그
대신, 믿음직 스러운 오빠처럼 충고의 말을 해준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저한테 먼저 오세요," "조심하세요, 이곳에 있는 남자들 중 상당수는 변태
입니다," "여기에 있는 어떤한 사람보다도 당신이 못나지 않다는 것을 절대
로 잊지 마세요!"  창새기가 나를 바보로 취급하는 건지, 뿅간 여자로 생각
하는 건지, 아니면 둘다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창새기는 비록 얕은 장애물이다.  내가 다른 남자와 채팅하고 있는
모습이 온라인 상에 있는 모든 남자에게 나에게 채팅신청을 해도 좋다는 인
식를 심어주게 된 것이다.  "bubble"과 "ddaeng"이라는 사람이 꼬시기 시작
한다.  채팅모드에서 애타게 빠져 나가고 싶은 나, 하지만 창새기는 나를
쉽사리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jeffrey!  가엾은 jeffrey, 내가 창
새기(다른 남자!!)와 얘기하는 모습을 보곤 심리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메세지가 폭탄처럼 날아 온다:

"썅년아!  내가 먼저 신청했잖아!!!"

_썅년아?_ 뭐라고...?!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모뎀과 컴퓨터, 그 모든것을
꺼버렸다.  얘들아, 안녕~~.  나 말고 딴 사람이랑 놀아라.

의자에 털썩 앉은 나는 너무나도 피곤했다.  정말 뭔가 부숴버리고 싶은 심
정이었다.  예를 들어 jeffrey의 머리라든지.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
은 없었다.  그냥 컴퓨터를 끄는 일 이외엔.

여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이런 남자들을 만나면 어떤 스위치를 쓰는지 의문이
난다.  날카로운 총알이면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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