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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2001년 4월 18일 수요일 오후 12시 28분 13초
제 목(Title): 도올이... (to croce)


> 의심은 무지의 증거가 아닐까요?
> 확신 역시 무지의 증거일수도 있습니다.
> 알면 알 뿐, 믿거나 의심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 9 곱하기 9는 뒤집어도 81입니다.
> 산은 산, 물은 물이지요. 
> 이렇게 여여한데 나와 당신의 의견의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걸까요?

일단 저는 무지합니다. 의심은 무지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무지를 꺼리지 않으므로 의심이란 대단히

즐거운 일입니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공부하는 즐거움이 있는 겁니다. ^^

공부하는 즐거움 이외의 목적은 없습니다. 도둑을 잡기 위해서, 혹은 논쟁에

이기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면 별로 즐거울 것 같지 않습니다.


확신이 무지의 증거인지 어떤지 논하기 이전에 우선 '확신'과 '앎'을

구별할 수 있는지부터 의심(^^;;)해봐야겠죠. 9 곱하기 9가 81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건가요? 아니면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81이라고 확신하는 건가요?

이전에 크로체님께서는 '마태가 좀더 오래된 자료를 왜곡하였다'라는 이론에

대해서 '그것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스테어가 어거지로

꾸며낸 거짓 이론으로서 성경을 좀 안다는 사람 누구에게 묻더라도 동의할 리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앎일까요 확신일까요? 그 이론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이 스테어만의 억지인지 아니면 성경 연구자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동조하는 이론인지에 대해서 크로체님은 단단히 확신하고 계셨고

스테어를 깊이 의심하고 계셨으며 도둑을 거의 다 잡았다는 생각에 빠져 신나게

몰아댔던 거죠. 그러므로 크로체님께서 '앎'을 이야기하시더라도 저는 의심의

눈길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그것이 '스테어만의' 억지라고 믿으신다면

Crossan의 'The historical Jesu'를 읽어보십시오. 그 억지 이론을 신뢰하는

사람이 적어도 하나 이상 있다는 것, 그리고 스테어가 그 억지 이론을

'꾸며내기' 이전에 이미 그 이론을 제시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간단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구름과 도올의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걸까요?
> 냉장고 안의 물을 마셔보고, 물맛이 차다고 느끼는데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 그런데, 노자의 텍스트를 해석하는데에는 온갖 사람마다 차이가 납니다.
> 도올은 도올대로, 구름은 구름대로 타인의 마음은 도둑이고, 나의 마음은
> 탐정이라고 우기며, 물리고 물리는 도둑잡기를 하는 꼴입니다. 구름의
> 뒤를 쫓는 탐정들도 있죠. 그 탐정들 역시 누군가에 의해서 도둑으로
> 몰릴 것입니다. 이 도둑잡기의 끝없는 고리를 전체로 본다면 어느 것이
> 탐정이고, 어느 것이 도둑일까요. 전부 에고가 아닐까요.
> 남의 의견을 의심하는 것은 이와같이 나는 탐정이라는 입장을 취하는 에고의 
> 활동입니다. 에고는 각기 다른 입장(다른 육체)에 거주하기 때문에 
> 순수지각에서 보는 평등성과 이해심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평등심과 이해심을 가진 경우에는 9 곱하기 9가 80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믿을 수 있습니까? 진단을 잘못 하신 것 같습니다. 평등심이나

이해심 이전의 문제를 평등심이나 이해심에 잘못 결부시키고 계십니다. 아무리

구름에 대한 이해심이 깊어도 구름의 엉터리 물리학을 수긍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의 평등심이나 이해심의 부족 때문이 아닙니다.

(저의 견해를 의심하셨던 크로체님께서는 평등심과 이해심을 잃고서 도둑잡기에

빠져 있었던 것이겠죠?)


> 여여하게 봄,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십니까?
> 거기엔 스테어도 크로체도 구름도 도올도 없습니다.
> 에고 이전의 순수지각만이 있을 뿐입니다.
> 순수지각이 여러 다른 육체에 현전해 있는 것이죠.
> 이를 불교에서는 '그대 안에 부처가 있다'고 말합니다.
> 아발로키테쉬바라, 관세음보살 역시 사람의 내면에 존재합니다.
> 세상의 소리를 바라보는 보디사트바, 이것은 바로 물맛을 보고 차움을
> 느끼며, 보고 듣고 말하는 그것입니다.
> 다시 말해서 크로체가 여여하게 보는 게 아니라,
> 여여하게 보는 그것(관세음보살, 순수지각, 佛性)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 누구에게나 있는 그것만이 실체이며, 에고는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도 
> 생멸하며 변하는 가짜 주체라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가설이긴 합니다. 헤겔도 이런 류의 믿음에 푹 젖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입증하죠? 여여하게 보기만 하면 알 수 있나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것 한 가지밖에 없는 건 아니겠죠? 그 가설을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평등심이나 이해심은 충분히 갖고 계신가요?


끝으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지요. 스테어가 의심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정확히

보셨지만 도둑을 잡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셨다면 역시 잘못 넘겨짚으셨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사람들이란 어찌 보면 대단히 다양한 것 같지만 또 어찌

보면 모두 비슷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크로체님의 단순한 구도에

맞아들어가기에는 너무나 다양합니다. (사람들의 다양성에 비해서 크로체님의

모델이 너무 단순합니다.) 의심하는 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도둑잡기를 하고

있다는 식의 단순소박한 인간관으로는 사람 읽기에 충분치 못하며 헛짚는 게

당연합니다. 헛짚었음을 수긍하십니까?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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