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4월 18일 수요일 오전 08시 58분 29초 제 목(Title): Re: 도올이 뭐가 어때서? 의심은 무지의 증거가 아닐까요? 확신 역시 무지의 증거일수도 있습니다. 알면 알 뿐, 믿거나 의심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9 곱하기 9는 뒤집어도 81입니다. 산은 산, 물은 물이지요. 이렇게 여여한데 나와 당신의 의견의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걸까요? 구름과 도올의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걸까요? 냉장고 안의 물을 마셔보고, 물맛이 차다고 느끼는데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노자의 텍스트를 해석하는데에는 온갖 사람마다 차이가 납니다. 도올은 도올대로, 구름은 구름대로 타인의 마음은 도둑이고, 나의 마음은 탐정이라고 우기며, 물리고 물리는 도둑잡기를 하는 꼴입니다. 구름의 뒤를 쫓는 탐정들도 있죠. 그 탐정들 역시 누군가에 의해서 도둑으로 몰릴 것입니다. 이 도둑잡기의 끝없는 고리를 전체로 본다면 어느 것이 탐정이고, 어느 것이 도둑일까요. 전부 에고가 아닐까요. 남의 의견을 의심하는 것은 이와같이 나는 탐정이라는 입장을 취하는 에고의 활동입니다. 에고는 각기 다른 입장(다른 육체)에 거주하기 때문에 순수지각에서 보는 평등성과 이해심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여여하게 봄,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십니까? 거기엔 스테어도 크로체도 구름도 도올도 없습니다. 에고 이전의 순수지각만이 있을 뿐입니다. 순수지각이 여러 다른 육체에 현전해 있는 것이죠. 이를 불교에서는 '그대 안에 부처가 있다'고 말합니다. 아발로키테쉬바라, 관세음보살 역시 사람의 내면에 존재합니다. 세상의 소리를 바라보는 보디사트바, 이것은 바로 물맛을 보고 차움을 느끼며, 보고 듣고 말하는 그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크로체가 여여하게 보는 게 아니라, 여여하게 보는 그것(관세음보살, 순수지각, 佛性)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누구에게나 있는 그것만이 실체이며, 에고는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도 생멸하며 변하는 가짜 주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누구에게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스테어도 없고, 크로체도 없는데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들으라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순수지각이 사람마다 다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하나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마다 갖추어진 그것을 깊이 각성해서 깨어나야 하는 것은 제가 짜장면 먹어서 스테어님이 배부를수가 없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달이 천 개의 강에 비칩니다. 달이 천 개가 아니라 강이 천 개입니다. 강물 위에 비친 달은 하늘의 달과 모양이 똑같죠. 강물을 휘저으면, 달은 사라집니다. 고요해지면 달이 다시 나타나지만, 우리는 그 달을 건져낼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환영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육신에 순수지각이라는 달이 드리워있습니다. 육신을 해부해보면 거기엔 순수지각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순수지각이 있지만 사람마다 고유한 것이 아니라서 제법무아라 한 것입니다. 제법무아라 했지만, 모든 사람이 다 한 사람이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천 개의 강에 비친 달입니다. 저 위에 리키님이 보살도를 말하셨는데, 아발로키데쉬바라-관세음보살은 천 개의 강물 위에 비친 달과 같습니다. 이 지구상 60억명 사람들 속에 있는 순수지각 그것입니다. 그것이 기쁨을 느끼고, 슬퍼하고 분노하며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고뇌하다 죽어갑니다. 이 지구뿐일까요. 인간 뿐일까요. 모든 존재에 달이 비칩니다. 순수지각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 모두가 형제요, 자매입니다. 이것이 관세음보살, 붓다의 자비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