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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neArt ] in KIDS
글 쓴 이(By): imnot (반이정)
날 짜 (Date): 2004년 10월 18일 월요일 오후 10시 40분 37초
제 목(Title): 국보법 철페 미술전시



정국이 국가보안법 정국인 만큼, 그 주범을 주제로 한 전시를 하나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80년대 민중미술이후, 큰 공백을 갖고는 있지만 여전히 현실 
정치에 대한 긴장을 풀지 않고 있는 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오프닝 전에 초대 했어야 했는데, 전시를 앞두고 너무 경황이 없어서 이제서야 
초대 메일을 드립니다. 시간이 되시면 찾아오셔서 관람해주시길 바랍니다.  
전시가 조만간 끝난답니다. (10월 23일 토요일 오후까지)   -_-;;

 


 

- 반이정 (미술평론가/ 시국선언 전 기획자) 

 

시 국 선 언 展

2004. 10. 15 (金) ▶ 10. 23 (土)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갤러리 
(서울 중구 정동 34-5 배재정동빌딩 B동) 
초대일시 _ 2004. 10. 15 (金) 오후 5시 

기획_반이정


참여작가_ 김기수,김대중,김태헌,김학량,김형석,노순택,반이정,옥정호,이제, 
조습,최경태,최진욱 
학교사수단(A중학교 B선생과 중3학생 00명) 
주최 _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 주관 _ 문화연대

 


                         <시국 선언 展>

 

 


전시 계획서를 <문화연대>에 황급히 제출할 무렵, 내가 가제로 정한 전시 
제목은 “보안법 덕에 전시를 다 여는군!” 이었다. 출품자들 모두가 국보법과 
연관하여 심신이 고달팠던 ‘남 다른’ 추억을 갖고 있지도 않았음에도, 이 
특별법 덕에 전시 출품의 기회가 주어졌으니 이만 저만 횡재가 아니다. 게다가 
요즘 전시 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던 중 위기를 느낀 보안법 존속파들이 
고색창연한 대국민 퍼포먼스가 있으셨다. 소위 ‘원로 시국선언’이 그들이 
내세운 행사명이었다. 순간 가제로 머물던 전시 제목이 망설임 없이 
변경되었다. 그래서 탄생한 게 ‘시국선언’전(展)이다. 이 얼마나 반어적인가? 
예술은 원래 반어를 먹고 사는 녀석 아닌가. 

우려와 흥분이 교차하는 긴장감 속에도 요즘 내가 몰두하는 화제는 단연 보안법 
철폐를 둘러싼 매체 보도들이다. 온/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이 유서 깊은 법의 
존폐를 두고, 입장이 다른 두 세력이 사생결단을 각오하고 투쟁 중이다. 그래서 
더 흥미진진하다. 보안법 폐지론 쪽은 보안법의 불온한 탄생배경부터 지난 폐해 
사례들을 나열하며, 폐지 쪽에 명분을 실어주고 있다. 특히 강경 폐지론자들 
중에는 이 법의 직접 피해자이신 분들도 계신 듯 하다. 반면 보안법 조항 중 단 
한 줄도 건드릴 게 없다고 주장하시는 강경 존속론자들은 남북 대치상황과 국가 
정체성의 위기를 그 반대 이유로 내세우시는 모양이다. 한편 이 같은 정략적 
이해관계에 연루되지 않은 국민 대다수는 보안법 존폐에 관해서는 이분화 된 
양상인 듯하다. 하지만 보안법이 무얼 의미하는 지조차 아예 관심을 끊어버리고 
나 몰라라 하시는 분들이 여전히 대세를 이루는 형국이다. 세상사 제대로 
풀리는 않는 근본 원인이 보통 그렇듯이 악법의 오랜 존속 배후에는 해당 
법조항의 제약으로 인해 반사 이익을 누리시는 소수의 탓만 있는 게 아니다. 
대다수의 무관심과 몰이해가 악법 존속에 있어서 더 중한 역할을 수행하는 
법이다. 그 대다수는 언제나 변명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정치하는 놈 꼴 보기 싫어서.” 아마 그들 중 단 한번이라도 이 
유서 깊은 법의 위협을 경험해 본 이는 많지 않으실 게다. 이번 전시에 
출품하시는 분들 가운데 보안법 위반으로 ‘적발’되거나 ‘처벌’ 받으신 
분들이 계시는 것 같진 않다. 따라서 보안법에 대한 실 체험적인 두려움이 작품 
속에서 다소 부재한 상태가 아닐까 짐작된다(아직 출품작을 내가 일일이 
확인하질 못해서...). 그럼에도 출품 작가들은 모두 보안법을 위반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언제 어느 때 난데없이 처벌 받게 될지 모르는 
처지에 놓여있다는 얘기이다. 이게 난데없이 무슨 말이람? 구구절절 억울한 
사연을 나열할 수 없으니 간단히 말하면 이런 거다. 국보법은 비단 표현을 
업으로 삼는 우리 미술인 뿐 아니라, 오만가지 표현에 의존해야 의사소통이 
가능한 오늘날, 그 의사소통의 근거인 ‘표현’과 ‘자유’를 범법으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을 현행법으로 존속하는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언제나 
국보법 위반으로 처벌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얘기이다. 아마 이번 
‘시국선언’전 출품작 대부분을 국보법의 여러 조항들에 끼워 맞추다 보면, 
이번 출품자와 기획자들은 모두 범법 행위를 한 꼴이 될 지도 모르겠다. 아니 
공안당국자가 본다면 이번 전시는 반국가단체 구성을 위한 회합 정도로 간주될 
터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전시가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반국가단체를 
결성하기 위한 회합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이번 전시의 성격은 국보법이 우리 
삶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다고’ 느낄 뿐 아니라, ‘우리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느껴서, 그 위기감에서 벗어나 우리들의 ‘생존과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결성한 일종의 ‘시국선언’임을 밝힌다. 

<문화연대>로부터 기획을 부탁 받았을 때, ‘전시 기획’에 원체 관심이 없던 
나는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할 지 가늠이 안됐다. 왜냐하면 현실 공간에서 
미술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성과라는 게 항시 별 대단치 못하다는 경험론 
때문이다. 물론 한국 근대사의 질곡에서 선배 미술인들이 보여준 성과를 무시할 
수야 없다. 그렇지만 그때와 지금은 매체 환경이 굉장히 달라졌다. 굳이 
미술인의 직함을 걸지 않고서도 ‘정치적 조형작업’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개별 예술계가 모두 발 벗고 나서, 천수를 누리려는 
이 괴물의 숨을 조이려는 마당에 미술계만 가만 손놓고 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예술 존립의 기본 목적이 사회 변혁을 향한 기계적인 복무는 
아닐테지만 미술인들이 사회를 형성하는 동일한 구성원이라면, 적어도 
무관심하고 몰이해한 구성원의 축에 끼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물며 적어도 
예술의 한 특징으로 왕왕 인용되는 ‘표현의 자유’는 보안법의 몇몇 조항과 
정면 대치된다는 점만으로도 이번 전시는 ‘미술인 생계 보장’을 위한 타당한 
시국선언이 될 수 있겠다. 기획에 참여한 나와 출품 미술인들은 변화 중인 
세상에, 무임승차하기가 무엇보다 싫다. 철지난 특별법 때문에 전시가 개최되는 
경우는 보기 드문 예이다. 본래의 전시 타이틀(“보안법 덕에 전시를 다 
여는군!”)처럼 그렇지 않아도 전시할 기회가 없는 마당에 우리 미술인들은 
국보법 덕에 전시까지 개최하게 되어 그 은덕에 감사하는 마음에 이렇게 출품을 
한다. 하지만 모두(冒頭)에서 말했듯 예술이란 원래 뒤통수를 후려치는 배신의 
미학이요, 반어의 미학이다. 여기서 배신과 반어의 대상은 물론 우리에게 
전시의 기회를 마련해 준 녀석이다. 

 

2004. 10. 10 기획자, 반이정


 


ban E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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