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eArt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fineArt ] in KIDS
글 쓴 이(By): imnot (반이정)
날 짜 (Date): 2002년 10월  1일 화요일 오전 01시 15분 09초
제 목(Title): [펌] 교수 작가의 꿈과 현실


원체 미술대학 교육의 문제점 에 관심이 많던 터에, 지난 월간미술 6월호

에 실렸던 '자의식 강한' 교수 3인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전부 읽어볼 만

한데, 게중에서 글 잘쓰기로 유명한 안규철(한국예술종합학교)의 글이

재밋어서 퍼옴니다.


[교수 작가의 꿈과 현실]  by  안규철


면접시험에 온 수험생에게 미술을 하려는 이유를 물었다. “유명한 작가가 
되고요, 대학교수
가 되고 싶어요.” 미술이 그냥 좋다거나 훌륭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
고 현실적인 목표를 갖고 있다. 먼저 유명한 작가가 되면 그 다음에는 교수가 
되겠다는 순서
도 정했다. 그러면 이 학생은 교수가 되기 위해서 미술을 하겠다는 것인가?

그런데 이런 학생의 생각이 순수하지 못하다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교수가 
되는 것이 대한민
국에서 미술가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유리한 조건이라는 것은 어린 
학생들도 다 아는 사
실이다. 이 솔직한 학생은 다만 그 꿈을 실현하는 데 얼마나 많은 조건이 
필요한지를 아직 
잘 모르고 있을 뿐이다.

작업에만 전념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는 예외가 간혹 있지만, 대부분의 
미술가들이 대학교수
를 중요한 직업적 목표로  
 
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미술이라는 
사회적 활동이 근본
적으로 직업으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창작만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1%
도 안 되는 극소수가 누리는 행운이다. IMF 상황은 미술가들에게 미술시장과 
컬렉터가 얼마
나 모래성 같은 존재이며 화랑의 지원을 받는 전업작가라는 지위가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
를 분명히 보여 주었다. 주위에 신세지지 않고 작업과 생활을 꾸려가기 
위해서는 미술 외의 
다른 직업을 가져야 하나, 작품활동과 병행할 수 있는 일이 드물다. 이를테면 
미술변호사, 미
술회계사, 미술의사, 미술벤처사업가, 미술부동산컨설턴트 같은 다양한 
전문직업이 있다면, 
모두가 지금처럼 대학교수만 바라보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작품활동을 하면서 
가질 수 있는 
직업은 대학교수나 시간강사, 중고등학교 미술교사, 그리고 미술학원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 외의 직업을 가지면 미술을 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가르치는 일만이 
인정되는 것이
다. 그러나 시간강사는 보수가 형편없고, 교사 자리 구하기는 마찬가지로 
어렵고, 학원 운영
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문제는 전임교수 자리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술대학이 전국적으로 
포화상태이기 때문
에 자리가 크게 늘어날 전망은 없다. 정년퇴직으로 비는 자리 외에는 
신규채용도 드물다. 따
라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데 필요한 조건은 점점 더 
늘어난다. 최
근에는 실기교수를 뽑는데 박사학위자들이 줄을 서는 현상까지 나타난다.

특히 교수 채용연령이 평균적으로 낮기 때문에 대학에 자리를 얻을 수 있는 
나이가 대개 30
대 중반에서 40세 이전, 늦어도 45세 이전으로 한정된다. 나이 40이 지나면 
교수가 될 가능성
이 급격히 줄어든다. 신임교수가 선임자들보다 나이가 많아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직업적 목표를 갖고 있는 젊은 작가들은 극심한 조바심에 쫓기며 30대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한국 특유의 이런 상황은 미술가들과 미술계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30대라
는 나이는 바로 작가들이 한창 작업에 열중해야 할 시기다. 미술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변화
는 대개 이 나이의 작가들에게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들의 젊은 에너지가 
상당부분 교수가 되
기 위한 조건을 급하게 갖추는 일에 소진되고 있는 것이다.

대학원은 빨리 마쳐야 하고, 이어서 2,3년 정도는 유학을 다녀올 필요도 있다. 
그 다음에는 
시간강사로 뛰어다니면서 작업실을 갖고 성실하게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시기이지만 다른 돈벌이에 열중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치명적인 
결격사유가 될 수 있다. 돈은 벌지 않되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고, 전시에 
참가할 기회가 있
으면 빠짐없이 출품해야 한다. 국제전 경력, 공모전 수상경력도 많을수록 
도움이 된다.

화려한 활동 경력이 우선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작가적 
능력과는 별도
로 ‘인간성’이 문제가 된다. 유별나게 ‘튀거나’ 반항적이거나 자존심이 
강하거나 고집스
럽거나 야심적이지 않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판이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성격 좋
고 인사성 바르고 선배들을 지극정성으로 받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동년배 
작가들, 전시조
직자들, 평론가들, 기자들, 선후배들, 교수들과 무조건 우호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
다. 물론 이런 조건들이 교수채용공고에 명시되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후임교수 임
용권을 갖고 있는 교수사회가 30대의 교수지망자들에게 묵시적으로 이런 
요구들을 하고 있다
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이것이 우리 나라 젊은 미술가들의 평균적인 
행동양식과 태
도를 규정하고, 젊은 작가들이 표출할 수 있는 창조적 에너지를 심각하게 
저해한다는 것이다.

기존 권위와 질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거나 도전하기보다는 순응적이고 
타협적인 태도가 일
반화되고, 개혁보다는 온건 보수 내지 중도 성향이 미술계의 표준적 성향으로 
자리잡게 된
다. ‘묵묵히’ 자기세계를 천착하면서 누구와도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어떤 종류든 논쟁은 피하는 것이 좋다. 문제의식이 있다면 감춰야 한다. 그러니 
웬만하면 글
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지금 필자가 쓰고 있는 이런 글 같은 것을 
써서는 절대 
안 된다. 자기주장이 강하면 적을 만들고 손해를 볼 뿐이다. 그런데 이런 
태도들은 젊은 예술
가가 작업에서 추구해야 할 원래의 가치와 상충한다. 학생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작가상을 스
스로 실천하여 제시하는 것이 미술대학 교수의 가장 큰 직분이라고 한다면, 
이는 교수가 추구
해야 할 가치와도 상충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교수가 되어야 하는 작가들은 
자기 주장을 유보
하고 ‘겸손하게’ 기존 미술의 그늘 밑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교수사회의 요구를 따르
면서 젊은 작가들은 평준화되고 길들여지고 ‘눈치’를 보게 된다. 이를 
기질적으로 받아들이
지 못하거나 ‘눈치 없는’ 작가들은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교수가 되는 
과정은 이처럼 기
존 교수사회의 요구에 스스로 ‘길드는’ 과정일지 모른다. 시간강사의 설움을 
겪으며 한 번 
두 번 공채에서 탈락하는 사이에 어느새 이런 태도와 행동양식이 몸에 배게 
된다. 


폐쇄적 가족공동체로서의 교수사회


그렇다 해도 좋다. 그렇게 해서 원하는 직장을 얻고 그것을 발판으로 다시 
자신의 창작활동
을 꿋꿋이 펼쳐 나갈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주목받던 작가가 
대학에 들어가면
서 작가적 긴장이 풀어지고 침체되는 많은 사례는, 이렇게 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보
여 준다. 직업적 타협의 과정은 예술적 타협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들은 우선 
신임교수로서 
학교를 위해 봉사할 더 많은 의무를 진다. 학과장 같은 보직은 여러 해 동안 
후임교수를 기다
려 온 선임자로부터 우선적으로 떠넘겨지며, 이를 통해서 그들은 
‘내부자’로서 학교를 운영
하고 기존 질서를 유지해 온 방법들을 선배들로부터 전수받는다. 
적자(嫡子)로서 선택된 이들
이, 자신을 받아들여 준 선배교수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으려면 상당
한 시간이 필요하다. 스스로 그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면서 어쩌면 그런 
목소리를 낼 기회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교수사회가 새 구성원을 받아들일 때 이처럼 까다로운 주문을 하는 데는 물론 
나름대로 이유
가 있다. 어쩌다 ‘골치 아픈’ 신임교수 하나를 받아놓으면 사사건건 말썽이 
일어날 수 있
다. 한번 채용하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내쫓기가 쉽지 않다. 또 재임용 
탈락이라는 장치도 함
부로 사용하다가는 소송까지 가고 학교가 곤경에 처할 수 있다. 그러니 
처음부터 믿을 만한 
사람으로 일종의 가족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안전하다. 교수채용이 학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지
고 연공서열 체계를 고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세대를 넘어서 동질적인 혈통과 기질을 가진 집단으로 구성, 
유지되는 교수집단
은 대체로 내부의 기존 가치를 방어하는 폐쇄적인 집단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를테면 학과
나 학교 내부의 문제는 내부에서 해결하며 밖으로 내보내선 절대 안 된다. 학내 
갈등이 있는 
대학들에서 학교의 횡포가 아무리 심해도 교수들이 좀처럼 이 얘기를 밖에 
내놓지 못하는 것
은 교수사회의 이러한 가족집단적 성격을 말해 준다. 


동시대미술과의 편차


교수사회 구성원의 이러한 동질성과 폐쇄성이 가장 심각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교육내용의 
정체라 할 수 있다. 동일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학연집단이자, 사제관계와 
선후배관계로 엮
여 있는 교수들 사이에서 기존의 교육내용과 방법에 대한 비판적인 토론과 
개혁을 기대하기
는 어렵다. 웬만하면 기존 틀이 관성적으로 유지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학교 밖 
미술현장과 
대학이 가르치는 미술의 편차는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학교에 들어간 교수작가들이 선배교수들에게서 넘겨받은 10년 전 커리큘럼을 
붙들고 있는 동
안, 일찌감치 전업작가로서 제 갈 길을 간 '눈치 없는' 말썽꾼들은 
미술현장에서 기존 미술
을 뒤흔드는 전복적인 작업을 계속하고 해외의 최신정보들이 인터넷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온
다. 교수들은 이런 영향이 학생들에게 확산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 든다. 
교과목 운영이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비인기과목을 필수과목으로 돌려 강제로 
듣게 만든다. 학
생들과 교수진 사이에는 소통장애가 생기고, 대학교육은 동시대와 분리되어 
공회전한다. 그럼
에도 동시대미술을 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교수 학생 간의 갈등은 
좀처럼 심각한 문
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가장 도전적이던 제자들 중 일부는 졸업 
후 다시 모교
를 기반으로 자리를 얻기 위해, ‘돌아온 탕자’처럼 겸손해지는 법을 배울 
것이기 때문이
다. 문제는 지금의 미술이 사회문화적 환경의 변화에 맞물려 있는 근본적인 
변화의 한복판에 
있으며, 이에 따라 미술가에게 요구되는 능력과 위상이 급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변화
에 적응할 능력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대학과 교수의 존재의의에 속하는 
일인데, 지금
의 미술교육이 과연 이런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는지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교수가 
가르치고 싶은 것, 가르칠 수 있는 것만을 가르치는 일방적인 교육으로는 
대학교육이 설 땅
이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미술대학교수는 누구보다 낯선 자극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생소하
고 이질적인 것을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확장하는 기회로 받아
들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학생의 실험적인 시도를 불순하거나 퇴폐적이거나 
저급하다는 부정
적 혐의를 걸어 매도하고 싶어지는 것은 교수로서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징후다. 미술의 틀 
자체가 변화하는데 자기가 아는 미술만 가르치려 하는 교수는 결국 학생을 
편협하고 타성적
인 예술가로 만들 것이다. 학생들이 지금과는 다른, 다음 세대의 예술가라는 
사실을 생각해
야 한다.

물론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미술현장에서 교수직과 무관하게 
활동하는 작가들
을 끊임없이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일정기간 
교내에서 작업하면
서 학생들에게 교수들이 줄 수 없는 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작가초빙제도 같은 
것이 좋은 사례
다. 어떤 식으로든 미술현장과 학교 사이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교
수들뿐이다.

무엇보다 교수작가들은 교수가 되기를 원했으나 기회를 갖지 못한 수많은 
동료작가들과 미술
계 전체에 대해 빚을 지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나의 노력과 능력으로 
대학교수가 되었다
는 자부심과 권위의식보다는, 미술계 전체를 바라보고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할 수 있
는지 교수로서의 소임을 생각했으면 한다. 나라 전체에서 미술가들이 어떤 
위상을 가져야 하
는지, 입시교육에 밀려나는 중고등학교 미술교육이 어떻게 정상화되어야 
하는지를 전문가로
서 앞장서서 말해야 할 집단도 바로 대학교수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교수가 된 지 6년
째가 되었다. 이 글이 필자를 포함한 선후배 교수작가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읽힐 수 
있기를 바란다. ■ 

 
출처: 
http://www.wolganmisool.com/02wolgan/serv/200206/01_special/main06_01.php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