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neArt ] in KIDS 글 쓴 이(By): textile (바보산수) 날 짜 (Date): 2001년 6월 2일 토요일 오후 09시 59분 50초 제 목(Title): Re: 혹 클림프의 이 작품명 아셔요? 위 클림프 작품명 찾았어요 ^^;; Farmergarden (flowergarden) 클림프 갤러리 http://www2.magmacom.com/~alexxi/klimt/1klimt.htm 에 그의 다른 작품들을 감상할수 있습니다. 에로티시즘으로 본 그의 연인들 -구스타프 클림트를 중심으로 - http://myhome.sinbiro.com/~hosung25/images/클림트.htm 에서 길어서 결론 부분만 옮겨오겠습니다. Ⅴ. 결 론 클림트의 예술은 오늘날까지도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잇다. 살아 숨쉴 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대중들로부터 광범위한 사랑을 받고 있다. 클림트의 대중적 인기와 관련해 클림트 평전을 쓴 고트프리트 플리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원하기만 한다면, 당신은 클림트 그림이 들어간 타일로 당신의 목욕탕을 장식할수 있다. 또 당신의 거실을 클림트 그림에 기초한 수공예 자수품으로 장식할 수 있다. 물론 기성품으로 나와있는 텐트 스티치방식의 자수회화를 이용할 수도 있다. 그 밖에 당신은 클림트의 대표작들을 포스터나 스테인드 글래스, 엽서 등의 형태로 집으로 손쉽게 가져갈수 있다. 아르누보가 광고 매체로서 여체와 나체를 발견한 것은 오늘날에도 깊이 공감되고 있는 부분이다. 클림트 예술의 에로티시즘과 고귀함은 이같은 광고를 위해서는 분명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것이다. " 클림트가 20세기 미술사에 남긴 가장 큰 족적은 관능의 무한한 힘을 생생히 드러내 그것이 갖는 미학적 영향력을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새롭게 되돌아보게 했다는 데 있다. 에로티시즘이 예술에서 더 이상 단순한 관상용 미학으로 표현되는데 그치지 않고 그 다체가 우리삶의 진정한 추동력임을 그의 착품을 명명백백히 드러냈던 것이다. 더불어 그의 이와 같은 관능의 표현을 통해 다가오는 시대가 페메니즘의 거센 물결을 타고 오는 시대가 될 것임을 예언했다. 그 이전까지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던 관능의 노골적인 폭고는 단순한 일과성의 쾌락적 추구에 그칠 수 없는 것이었다.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지향을 갖고 있었던 자유주의적 에고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처럼 무너져내리고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그의 미술사적 기여가 현대 미술사 일반이 중시하는 양식 혁명이나 형식미학의 진화와 관련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가 때로 현대미술사의 담론에서 쉽게 소외되는 현상을 야기해 왔다. 형식미학적 측면에서 그를 논할 수 있는 부분은 그가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건축, 공예, 장식, 회화 등을 하나로 엮어 보려는 '총체예술'을 지향했다는 것 정도이다. <빈 분리파>를 쓴 베르너 호프만의 아래와 같은 평가가 그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인정받는 것도 그런 면에서 당연한 일이다. "빈의 예술계에 개척자의 역할을 부과한 클림트는 과연 유럽 미술의 협주곡에 있어서 선각자였던가, 아니면 퇴보자였던가, 그는 분명히 미술의 형식 분야에 있어 그의 시대에 줄 수 있었던 가능성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뭉크와 칸딘스키를 생각해 보자 - 가장 깊숙히 박힌 뿌리를 캐내지 못했고 좀더 대담한 결론을 끌어내지 못했다. 클림트를 뭉크나 칸딘스키와 견줄수 없는 것은 그가 국제정세에 어두웠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의 개성이 갖는 구조에 대한 신중한 의식 때문이다. 이런 점은 그의 예술을 '보수적 혁명'이라는 빛 속에 드러나게 하며, 거리낌 없는 혁신을 위한 용기는 다음 세대에 양도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