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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neArt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3월 29일 목요일 오전 11시 47분 40초
제 목(Title): 홍성식/ 소리판,장사익,봄바람 


출처: 오마이뉴스 

그대, 초로의 광대여 영원히 철들지 마시라 
시와 수필로 만나는 장사익 소리판 '봄바람' 
 
 
이흔복/홍성식 기자 hss@ohmynews.com    
 
시: 이흔복 시인
수필: 홍성식 기자

시- 소리판, 장사익, 봄바람

잎은 잎의 꽃을, 꽃은 꽃의 잎을 밀어내는 봄. 찔레꽃, 찔레꽃잎 지천으로 
무너지며 길을 내는 광천! 거긴 일이란, 삶이, 일상이 아주 천천히 흐른다. 
산사의 동글둥글한 소리 떠매고 끝없이 고요한, 나즈막한 저음에서 절규에 
가까운 소리꾼 호올로 피를 토하는 봄날은 멀리 간다. 바야흐로 모질고 참담한 
생, 나는 내 생까지도 짊어지고 쉴지어다. 간다, 돌아간다. 나 돌아간다. 바람 
타고 간다. 구름 타고 간다. 간다, 돌아간다. 나 돌아를 간다. 그리하여 나 
서러워 말리. 서러워지고 말리.

수필- 잠자던 신명 깨우는 철부지 광대

속되게 말하자. 장사익은 잘 노는 사람이다.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 남의 
아픔을 대신 울어주는 곡비(哭婢)나, 가슴속 상처는 숨긴 채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사람들을 웃기는 삐에로. 장사익은 병든 날도, 슬픈 날도 사람들을 울고, 
웃기는 천상 잘 노는 광대다.

출신지역을 광고라도 하는 양 동작 굼뜨고 말투 어눌한, 그러면서도 충청도 
특유의 의뭉스러움을 천성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이 아름다운 광대를 나는 꼭 네 
번 보았다. 거기다 볼 때마다 그의 시원스레 트인 절창을 듣는 행운을 누렸다. 
이제 나는 광대 아니, '인간' 장사익을 말하려 한다.

  
▲영원히 철들지 않을 우리들의 '광대' 장사익.
ⓒ 행복을 뿌리는 판 
첫 번째 만남
97년 5월. 숭의여대 강당에서 '북한 어린이 돕기 시 낭송회'가 열렸다. 
긴치마를 즐겨 입던 햐얀 얼굴의 여자친구와 나들이 삼아 거길 찾았다. 강은교 
시인이 직접 서명한 시집을 그녀에게 사주고, 신경림, 박완서 등이 낭랑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시를 들었다. 

그 자리에 장사익이 왔다. 학교 앞 대폿집에서 늘어진 테잎으로 듣던 그의 
목소리. 가까이서 들은 그의 노래는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지상의 
사람이 아닌 <국토>의 시인 조태일(99년 타계)이 태산같은 덩치에는 어울리지 
않는 놀란 목소리로 내게 물었던가? "저 놈 누구냐?" 배경이 되는 어떤 반주도 
없이 징 하나만을 울리며 불러 제치는 '강남 아리랑'은 관객을 단박에 압도했던 
것이다.

그날 조시인과 그녀, 나는 명동에서 취하도록 생맥주를 마셨다. 장사익의 
노래는 술을 부르는 힘을 지녔던 것일까?

두 번째 만남

2000년 5월. 세기가 바뀌었지만 변한 건 없었다. 여전한 오월광주의 상처. 그 
상처를 달래는 행사 '2000 님을 위한 행진곡'이 서울 시내 한복판 광화문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여기에 광대가 나타났다. 오호라, 
그러나 이 광대의 몸짓이라니.

동학농민전쟁에서 5.18에 이르는 역사의 질곡을 형상화한 집체극이 공연되고, 
비장한 '5월의 노래'가 장중한 합창으로 울려 퍼지고, 정태춘이 "저기 장군들의 
금빛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라고 학살의 책임자를 질타했던 그 자리. 
장사익은 어울리지 않게(?) '대전 블루스'를 끈적하게 부르며 이렇게 능청을 
떤다. "사모님, 오늘 밤 가정을 버리시죠."

한국의 소리는 해원(解寃)을 그 특징으로 한다. 맺힌 한을 푸는데는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앙갚음뿐 아니라, 해학과 풍자도 단단히 한몫을 한다. 
장사익은 그 해학과 풍자를 노래하고 있었다.

세 번째 만남

2000년 12월. 매운 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화가 임옥상이 평창동 집에서 <누가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지 않으랴>의 출판기념회를 한다고 했다. 마당에 
톱밥난로가 타고, 돼지 바비큐와 생맥주잔이 돌았다.

원로 타악 연주자 김대환의 드럼연주와 거꾸로 붓글씨를 쓰는 퍼포먼스가 
펼쳐졌고, 정태춘이 '황토강에서'를 흥에 넘쳐 불렀다. 거기에 하얗게 수염을 
기른 장사익이 있었다. 역시나 '대전 블루스'. 그러나 그날 나는 그의 노래보다 
인간미에 감동했다. 감기로 인해 목이 잠겨 한사코 노래를 사양하는 정태춘의 
부인 박은옥을 기어이 무대로 끌어간 것이다. "아유, 선생님이 함께 하셔야지, 
부군이 힘을 내시쥬." 화회탈같은 그의 천진한 웃음과 밉지 않은 강권에 
박은옥은 못 이긴 척 '사랑하는 이에게'를 불렀던가.

장사익은 '떨리는 손을 잡아'주는 '더운 가슴'의 광대였던 것이다.

네 번째 만남

그리고 어제(3월27일). 소설가 조정래와 시인 김초혜, 방송작가 김수현, 최근 
민주당 정책위의장에 임명된 이해찬 등 3000여 관객이 세종문화회관을 가득 
메웠다. 장사익 소리판 '봄바람'. 빨간 양말에 검은 고무신을 꿰고 나타난 
광대는 초장부터 사람들을 웃겼다. 봄꽃을 가득 실은 자전거를 "찌르릉"거리며 
몰아 등장한 그가 함박웃음 띄우며 인사한다. "선생님들, 안녕하시쥬?"

노래다. 아니 차라리 절규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희망이 족할까..." 어디 갔을까? 그의 어눌한 
말투는. 다시 그가 입을 열어 소리를 토한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목놓아 울었지..." 그의 목소리는 지상의 관객을 
천상으로 불러들였다.

오케스트라와 사물(징, 북, 장고, 꽹과리), 아쟁이 함께 울어 젖힌 
초로(初老)의 광대가 벌인 굿판의 마지막, 장사익이 말한다. "오늘은 비가 
왔으면 좋겠어유." 이어지는 노래 '봄비'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언제까지 내리려나/마음마저 울려 줘/봄비야..."

  
▲이흔복 시인/1986년 <민의>로 등단/98년 <서울에서 다시 사랑을> 간행/현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국장.
ⓒ 이흔복 
오, 놀라워라. 두 시간 삼십 분의 질퍽한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때아닌 진눈깨비가 적셔주고 있었다. 장사익은 광대가 
아니라 샤먼(주술사)이었던 것일까? "오늘은 비가 왔으면 좋겠어유." 공연의 
끝자락 그가 한 말이다.

하여, 그대 광대여. 영원히 천진한 웃음의 철부지로 남아다오. 철없는 그대의 
소리는 속되게 철든 우리 가슴 속, 숨어있던 신명의 머리카락 언제나 '쭈뼛' 
세울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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