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neArt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3월 19일 월요일 오전 02시 22분 47초 제 목(Title): 김철영/ 노오란 꽃 한 송이와의 대화 @ 멋보드에 올리려고 했으나 화장품 얘기가 많아서 이 보드에 올립니다. :) 출처: 오마이뉴스 노오란 꽃 한 송이와의 대화 희망으로 출렁이는 이웃들의 새 봄을 소망하며 김철영 기자 bitsongzigi@hanmail.net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 앞에는 꽤 넓은 정원이 있습니다. 예년 같으면 잔디도 파릇파릇한 색으로 봄이 왔음을 알려줄 때이고, 우리들은 한 귀퉁이에 꽃씨를 심을 때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봄이 왔어도 날씨가 예년 같지 않아서인지 정원에 꽃씨를 심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정원 한 구석에는 제법 큰 눈덩어리가 녹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남도에는 이미 개나리꽃도 피웠을 법 한데, 서울에서도 봄소식이 제일 늦게 오는 곳에 살고 있다보니, 봄의 전령을 빨리 보고 싶은가 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드디어 봄의 전령을 보았습니다. 출근을 해서 그 정원 앞을 지나가려는데, 작지만 노오란 꽃송이가 전나무 밑 그늘진 곳에 피어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처음에는 봄을 애타게 기다리는 누군가가 조화를 꽂아 놓았겠지 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려다가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해서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진짜 꽃인 겁니다. 무슨 꽃인지도 잘 모릅니다. 아주 작고, 연약한 줄기에 의지한 노오란 꽃 세 송이가 수줍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참, 신기하다. 왜 덩그렇게 이 꽃만 피었을까?" 황량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나그네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싶을 정도로 신선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기고, 봄의 향기를 전해 준 그 야생화를 나는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꽃과 나무와 새들과도 대화를 나눈다고 들었는데, 나도 그 꽃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어, 언제 이렇게 아름다운 얼굴을 세상에 내밀었어요? 나는 누군가가 가짜로 만들어 놓은 꽃인 줄 알았어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겠지요. 아직은 바깥이 추워서, 잔디도 푸른 싹을 내밀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왜 이렇게 빨리 세상에 나왔어요? 조금만 더 늦게 나오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봄 햇살을 받을 수 있을 텐데... " "저도 그것을 알고 있지만, 봄이 왔음을 빨리 알리고 싶었거든요". "온실 속에 있는 꽃들보다, 우리 곁에서 같이 추위에 떨기도 하고, 눈 속에 파묻히기도 하면서 꽃을 피워서인지 더 친근감이 들어요." 그 꽃과의 대화는 계속되었습니다. "겨울을 지내면서 제일 큰 희망이 무엇이었어요?" "제일 큰 희망은 봄이 되면 환한 미소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거였어요." "그렇군요. 우리 이웃들도 마찬가지랍니다. 강추위 같은 세파를 이기는 힘은 내일에 대한 희망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그 꿈도 꾸지 않고, 지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마음이 아파요" "현재의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끼고 있겠지요. 그래도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생명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말이에요. 몸만 건강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잖아요." "그러게 말이에요. 몸이 건강하지 않는 사람들도 내일에 대한 꿈을 그리며, 꾹 참고 살아가는 모습이 건강한 사람들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는데 말입니다." "아직은 완연한 봄기운을 맛볼 수 없어도, 꽃들 만발한 그날이 꼭 오는 것처럼, 사람들에게도 반드시 고통을 참아가면서 꿈꿨던 그 무언가를 반드시 얻게 될 거예요". 가장 빨리 봄을 알리기 위해, 외롭지만 남들보다 일찍 세상에 나와 환한 미소를 보내는 이름 모를 그 꽃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내 마음속에도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올랐습니다. 그리고 춥고, 배고프고, 힘든 세월을 지내온 우리 이웃들의 마음속에도 따뜻한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생겼습니다. 우리 이웃들의 마음이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출렁이는 봄날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2001/03/18 오후 6:19:41 ⓒ 2001 OhmyNews 김철영 기자는 시인이며, 학부에서 국문학을, 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는 대학원에서 언론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개인시집으로는 '피리를 불어도', '풀잎과 바람'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