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nvirOnment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7월 15일 목요일 오전 12시 11분 56초 제 목(Title): 대자보/장형석 자연? 자원? 장형석의 녹색세상 자연? 자원? 인류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세 차례에 걸쳐 바뀌었다. 그리고 그 시각이 바뀔 때마다 자연환경에는 심각한 변화가 찾아왔다. 가장 처음 인류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을 때에는 최초로 농업을 시작했을 때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이후부터 이전까지 수렵, 채취 생활에 의존하던 인간에게 처음으로 자연을 인간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관념이 생겼다. 하지만 인간의 지식과 기술 수준이 미약했기 때문에 이 시기의 농업은 자연 의존적이었고 사람들에게 자연은 아직 공포의 대상이었다. 둘째 대대적인 변화는 중세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인구에 비해 식량과 땔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땔감 마련을 위해서는 산림을 파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중세인들은 숲에 정령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섣불리 숲을 파괴하려 하지 않았다. 절대적인 땔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로마 교황청에서는 숲에 정령이 있다는 믿음을 이단시하였고 이때부터 중세인들의 믿음 속에 친근한 존재로 남아있던 '요정'들은 악마의 사도로 여겨지게 되었다. 로마 교황청의 시도는 초기에는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지만 곧 숲이 벌목에 의해 자취를 감추었고 중세 말기가 되면 더욱 심각한 연료 부족현상이 일어났다. 이때부터 석탄이 나무를 대신해 연료로 쓰이게 되었고 자본주의가 출현하게 되었다. 셋째 시각 변화는 자본주의의 출현과 함께 시작되었고 그것은 너무나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자본가들은 자연을 하나의 '자원(資源)'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들에게 더이상 자연 환경은 인간의 생존의 기초를 마련하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자연은 다만 일정량의 자본과 노동력을 투입하면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도구로 전락했다. 자본가들은 나무를 바라볼 때 그 나무가 분출하는 산소에 의해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 같은 문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눈에 나무는 그저 목재(木材)일 뿐이다. 수 많은 경제학 이론 역시 투입, 산출의 간단한 등식으로만 자연을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가들의 단순무식한 사고방식은 아마도 전 지구가 사막으로 바뀐 이후에나 교정이 가능할 것이다. 이쯤에서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동강댐 건설에 대해 돌이켜보자. 수많은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동강 유역은 최근의 댐 건설 파문으로 동강을 모르고 지내던 많은 일반인에게 그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환경단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일단 즉각적인 댐 건설은 막아냈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겨났다. 갑작스레 늘어난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와 그들의 래프팅, 낚시질, 고성방가 등으로 동강의 환경은 급속히 파괴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댐을 짓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점차 커져가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동강 유역의 자연 환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여전히 하나의 자원으로 동강을 이해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 차이는 동강의 물을 '수자원'으로 보느냐 아니면 '관광자원'으로 보느냐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환경단체의 캠페인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하고 싶다. 동강댐 건설을 저지하기 위하여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굳이 붙였어야 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캠페인 방식은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생각지도 않던 새로운 문제점을 불러 일으켜 동강 파괴에 일조하고 있다. 동강댐 문제를 조금 적나라하게 비유하자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아름다운 유태인 여인이 갇혀 있는데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가스실에서 생명을 마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라는 여론이 일어 일단 그녀가 가스실에 들어가는 시한은 유보되었지만 오히려 나찌의 위안부가 된 꼴이다.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고는 인간의 관점에 불과하다. 일전에도 지적했듯이 자연은 아름답지 못한 것도 그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번 일을 거울 삼아 차후에 환경단체들은 캠페인 방식을 사람들의 일시적인 관심을 끌어내는 것에서 기본적인 가치관을 바꾸는 쪽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광기의 시대에 아우슈비츠에서는 유태인들의 몸을 그 사람의 몸에 축적된 화학물질이나 단백질의 양으로 평가했다. 우리는 인간의 몸을 분해하여 평가하는 사고방식에는 분개하면서도 자연을 함부로 평가하는 사고방식에는 익숙해 있다. 동강을 흐르는 물은 수자원도 아니고 관광자원도 아니다. 초원을 뛰어다니는 짐승들은 사냥감도 아니고 고기감도 아니다. 모두가 제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귀중한 존재들이다. 환경친화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녹색세상은 여러분과 함께 이루어가고 싶습니다. 좋은 의견이나 반박 내용이 있으신 분의 이 메일 환영합니다. 장형석 vimoksa@nownuri.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