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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virt ( TЯIV)
날 짜 (Date): 2003년 5월 20일 화요일 오후 04시 38분 56초
제 목(Title): [기시다 슈] 자녀교육, 이것이 문제다


게으름뱅이 정신분석 1,2 로 저서가 번역되어 있는 일본의 심리학자 
기시다 슈의 글을 올립니다. 타이핑하느라 손가락이 아프군요.




자녀 교육, 이것이 문제다

현대심리학의 사상은 여러 군데에서 해독을 흘리고 있는 것 같은데, 현대의 
어머니들은 스스로 모르는 동안에 그 해독의 침범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

현대심리학의 사상이란, 한마디로 하여, 인간이란 어떤 자극을 주면 어떤 
반응을 하는 하나의 조건반응체라고 보는 사상이다. 물론, 이 사상은 심리학 
특유의 것은 아니며, 큰 사상적 흐름의 한 지류가 심리학에도 그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 지나지 않지만, 심리학은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하다보니, 
다시 말하여 심리학은 일반적으로 '과학'이라고 간주되고 있으니, 그 악영향은 
가공스럽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육아 책들이 있고, 육아 전문 잡지도 부지기수다. 그 
책들을 들여다보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며 키울 것인가로 고민하는 
어머니들이 곧잘 등장하는데, 그 고민하는 양상을 보다보면 아무래도 
터무니없는 그릇된 전제 위에 서 있다고밖에 여겨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린이가 어떤 짓을 했을 때 그것을 꾸짖을 것인가 말 것인가로 
햄릿처럼 괴로워한 나머지, 이른바 육아학의 전문가를 찾아가 상담을 벌이는 
어머니가 눈에 띄는데, 이런 태도는 두 가지 암묵 속의 전제에 서 있다. 그 
하나는 어딘가에 올바른 꾸지람법 또는 올바른 예절교육법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것을 자신은 모르지만 전문가는 알고 있다는 전제. 또 하나는 
아이가 한 어떤 짓을 칭찬하든 꾸짖든 함으로써 그 아이의 어떤 경향을 
조장하거나 없앨 수가 있다는 전제.

이 두 전제는 모두 그릇된 것이다. 어떠한 친자 관계에도 들어맞는 객관적으로 
올바른 일정한 꾸중법이나 예절 교육법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그것은 
어떠한 여자에게도 통용되는 정해진 올바른 구애법이라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따라서, 어머니의 그같은 질문에 답하여 이러니저러니 지시하는 이른바 
전문가라는 것이 어떤 종류의 인물들인가는 일부러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은 
아무 근거도 없는 엉뚱한 말을 마치 전문적 조언이나 되는 양 뻔뻔스럽게 떠들 
수 있는 종류의 인물들인 것이다).

그같은 올바른 예절교육법 또는 설득(구애)법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상대 어린이나 여자를 일정한 방법으로 주무를 수 있는 조작의 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생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칭찬하는가 꾸짖는가에 따라 자녀의 
성격을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은, 현대심리학의 주류인 행동주의심리학의 상과 
벌에 의한 조건부여의 강화라는 관념 그 자체인데, 이 조건부여라는 현상이 
어떤 상황 아래에서 발견되었는가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

아시다시피, 이 현상은 러시아의 심리학자 파블로프(Ivan petrovich pavlov)가 
실험대에 개를 꽁꽁 묶어 놓고 개에게 먹이를 주는 동시에 그 직전에 벨 소리를 
들려주는 실험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자, 이윽고 개는 먹이가 주어지지 않아도 
벨 소리만 들으면 타액 분비가 활발해지는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조건반사'로 
부른 것이다.

파블로프와 그 후계자들, 나아가서는 미국에서의 전승자인 왓슨(John Broadus 
Watson)과 후계자들은, 이 현상을 일반화하여 인간을 포함한 온갖 동물의 
후천적 학습은 조건부여로써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다. 어떠한 반응도 
상(예컨대 먹이)을 줌으로써 가오하할 수 있고, 벌(예컨대 전기쇼크)을 
줌으로써 소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강도로, 언제 부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가 하는 
것뿐이었다. 예를 들어 쥐의 어떤 반응을 소거하려 할 경우, 쥐가 그 반응을 한 
3초 뒤에 전기쇼크를 주는 경우와 6초 뒤에 주는 경우는 소거의 효과에서 
어떻게 다른가, 30볼트의 전기쇼크와 60볼트의 그것과는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 심리학에서의 큰 문제였다. 가장 효과적인 소거의 방법, 곧 올바른 
꾸중법이 탐구된 것이다.

그러나 조금 생각해 보면 알 일이지만, 개가 어딘가에 꽁꽁 묶여있고 벨 소리가 
들려오고 먹이가 나온다는 장면이 자연 속에서 일어날 리는 없다. 파블로프 
이하의 여러 사람들은 이같은 극히 특수한 상황에서의 특수한 반응을 일반적인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동물이 자기의 지각이나 지능을 
써서 자발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장면이다.

현대심리학은 이 방식을 동물 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셈이다. 예컨대 왓슨은, 건강하고 좋은 몸집을 가진 한 다스의 아이가 
주어진다면, 그 가운데 한 아기를 임의로 의사나 법률가로 만들 수 있고, 또는 
예술가가 위대한 실업가로, 또는 거지나 도둑놈으로도 만들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그러나 상대를 임의로 의사나 도둑놈이 되게끔 조건지을 수 있는 사람이란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그 자신은 다른 사람에 의한 조건부여의 제약을 받고 
있지 앟은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그는 상대를 임의로 의사나 도둑놈이 되도록 
조건지을 수 있는 인간으로 조건지어져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가 상대에게 
베푸는 조건부여는 의사나 도둑놈밖에 될 수 없는 제약적인 것인데, 그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동기부여는, 그에게 임의로 상대를 의사로든 도둑놈으로든 
만들 수 있게 조건짓는 자유를 허용하는 것일까.

이것은 배리가 된다. 조건부여를 받은 당사자에게 자유의 여지를 남긴다면, 
정의의 견지에서 그것은 조건부여가 아니다. 의사가 되게끔 조건지어진 사람이 
필연적으로 의사가 된다고 정해짐으로 조건부여라고 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해, 조건부여의 이론은 조건부여를 베푸는 자를 타인에 의한 
조건부여의 제약을 받지 않는 완전히 자유로운 절대주체로 놓고, 조건부여를 
받는 자를 일체의 자유와 주체성이 없고 다만 조건지어지는 채로 완전히 
수동적인 반응체로 놓는 한에서밖에는 성립하지 않는다. 곧, 자극조건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실험자와 꽁꽁 묶인 개 사이의 관계에서만 성립된다.

실제로 인간에게 이 이론을 적용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는 절대 주체이고 
상대자는 완전히 객체라는 전체를 아무런 의문도 없이 믿을 수 있는 사람, 곧 
오만하며 멍청한 자뿐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들은 이같은 조건부여의 이론과 그 배후에 있는 사상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으며, 자녀교육에 이 방식을 적용하려고 한다. 예컨대, 어떤 
육아잡지에서, "자연을 사랑하고 꽃을 사랑하는 마음씨 고운 어린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아기들이 꽃을 꺾거나 했을 때, '그런 짓을 하면 꽃이 가엾지 않니? 
꽃도 꺾이면 아프단다'라고 타이르며 꾸짖어야 한다"는 기사가 실려 있으면, 
즉각 그것을 실행하여 그로써 "자연을 사랑하고 꽃을 사랑하는 마음씨 고운 
어린이"로 자랄 줄 믿고 있는 어머니들이 있다.

천만에, 무슨 소리를. 어린이를 바보로 다루는 짓도 어지간해야지. 어린이에게 
'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 심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마음속 깊이 꽃을 
사랑하는 어머니뿐이다. 꽃이 꺾이건 밟히건 마음속으로는 전혀 가엾지도, 아플 
것이라고도 생각지 않는 어머니일 경우, 어린이가 꽃을 학대할 때마다 아무리 
엄하게 꾸짖은들 효과가 있을 리 없다.

어린이는 표면적으로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엄마가 보는 앞에서는 
꽃을 꺾지 않게 될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주체적인 지각과 판단으로 엄마가 
사실은 결코 성나거나 슬퍼하거나 하지 않음을 감득하고 있으므로 엄마의 
'가르침'을 결코 진심으로 납득하고 있지 않다. 납득되지 않는 일이 몸으로 
구현될 리가 없다.

진실로 꽃을 사랑하는 엄마라면, 자녀가 꽃을 꺾었을 때 문득 나타낸 
노여움이나 슬픔의 표정이 절로 어린이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하게 마련이다. 
그런 엄마는 육아잡지가 지시하고 있는 그따위 말을 쓰지 않아도, 의식적으로 
"자연을 사랑하고 꽃을 사랑하는 마음씨 고운 어린이"로 키우지 않더라도, 
아들딸은 그렇게 키워질 것이다.

요컨대, 부모는 자신의 감성·인격·기량·덕성 등의 정도 이상으로 자녀를 
훈도(薰陶)할 수 없다. 어린이는 점토가 아니므로 누군가 전문가에게서 '올바른 
예절교육법'을 가르침 받고 그대로 실행해도 '이상적인' 자녀가 완성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에 부모가 '올바른 자녀 교육법'인가 하는 것을 배워가지고 
자신의 정도 이상의 교육을 어린이에게 베풀려 하면, 앞에 말한 모친의 
경우처럼 자녀를 겉 다르고 속 다른 표리 부동의 인간으로 만들어서 도리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절망적인 말을 하는 것 같지만, 만일에 부모가 자녀를 인격적으로 수준 높은 
인간으로 키우고 싶거든, 먼저 부모 자신이 인격을 높이는 길 이외에는 아무리 
허우적거려 봐도 방법이 없다. 세상에는 뻔뻔스러운 부모도 없지 않아서, 
자녀를 부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효자 효녀'로 키우려고 하는 부모들도 
있지만, 그런 교육법으로 키워진 자식은 부모를 위할 생각은 없이, 자식을 
이기적으로 이용하려 한 그 부모와 똑같이, 부모 생각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그 부모를 이용하려고밖에 하지 않는 이기적인 자식으로 자랄 것이다. 

부모의 의식적인 의도보다 무의식적인 태도에 어린이는 민감하다. 부모의 인격 
가운데 의식적 부분과 무의식적 부분에 대립·분열이 있을 경우, 왕왕이 자식이 
그 악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성실하고 소심하며 선량한 양친 사이에 비행소년인 자식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 자식은 어버이의 무의식적인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 부모는 내심으로는 세상에서 부당하게 학대받고 있다는 
느낌으로 원한이 사무쳐 복수를 하고 싶으나, 그랬다가는 사회적으로 부적응 
상태가 되므로 그런 경향을 깊이 무의식으로 억압하고 의식적으로는 비굴하다고 
할 정도로 소심한 삶을 보내고 있다. 이 부모는 자식에 대하여 입으로는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설교하며 자식의 단정치 못한 품행을 꾸짖지만, 
자식이 세상에 폐를 끼치는 면구스러운 짓을 저질렀을 때 문득 보인 기쁨의 
표정을 자식은 놓치지 않고, 비행을 거듭하는 동안은 부모의 애정을 잃지 않을 
것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격분열을 지닌 부모가 의식적으로 아무리 자식을 '깨끗하고 
바르게' 키우려 한들 그리 되어 주지는 않는다. 아무리 자식의 비행을 엄하게 
꾸짖고 윽박질러도 헛일이다. 자녀에게는 말로만 하는 꾸지람이나 
주먹다짐보다도 부모의 참된 시인과 애정을 잃는 쪽이 훨씬 두려운 것이다.

영재교육이니 천재교육이니 해서, 어린이의 '독창적인 천부의 재능'을 키우는 
교육법이 있다는데, 어처구니없는 웃음거리 이야기다. "우리 학원에서는 그같은 
교육법을 실시하고 있다"고 선전하는 장사꾼도 장사꾼이려니와, 그런 선전에 
넘어가는 부모들도 한심스럽다. '독창적 재능'이라는 것을 알기를, 마치 '씨 
속의 싹'처럼 어린이 속에 뭍혀 있다가 충분한 햇빛과 물과 비료만 제대로 주면 
저절로 피는 것쯤으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

도시, '독창적'이란 것은 종래의 것을 부정하고 초월해 가는데 있으므로, 
'독창적 재능'을 키우는 일정한 방법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독창적 
재능'이 태어난다고 한다면, 그것은 당사자가 받은 교육이나 부식(扶植)한 
사상이나 기술 등의 오류와 결함에 유래하는 곤란을 상대로 고투하여 그것을 
타고넘는 극복을 통하는 수밖에는 없다. 

따라서, 빈정거리는 투로 말하자면, 세상없어도 자녀의 '독창적 재능'을 키우고 
싶거든, 나중에 자녀를 곤란한 처지에 휘몰아갈 그릇된 교육을 베푸는 길밖에 
없다. 하지만, 그 그릇된 교육 때문에 자녀가 망가질는지도 모르니, 이것은 큰 
도박이 아닐 수 없다. 필경, 의도적·계획적으로 자녀의 '독창적 재능'을 
키우는 방법 따위는 존재할 리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인격적 수준에서 자식이 그 부모보다 훨씬 훌륭한 사례는 분명히 눈에 
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부모가 '올바른 자녀교육법'을 배워서 그것을 자녀에게 
베푼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그 낮은 인격적 수준에 어울리게 혹독한 
자녀교육을 베푼 때문이었다. 자식은 부모의 혹독한 교육으로 고민하고 
몸부림치며 제 힘으로 일어서 부모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조건부여의 이론은 요컨대, 어린이가 주체성이 없는 기계적 반응체로써 
부모와의 정서적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결여되어 있다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할 
이론이다. 이같은 이론은 예컨대 서커스단의 동물에 대해서 자연의 상태에서는 
결코 하지 않는 행동형식을 강제적으로 훈련하는 경우 외에는 응용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인 어린이에 대한 예절교육과 지능교육에 응용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 테지만, 어미고양이만 해도 새끼교육을 
제법 잘한다. 그곳에 어미고양이와 새끼고양이 사이의 생생한 커뮤니케이션을 
관찰할 수 있다. 결코 조건부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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