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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conom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1월 12일 목요일 오후 01시 52분 49초
제 목(Title): 강준만/ 인텔제국을 세운 앤디 그로브 


'인텔'제국을 세운 앤드류 그로브
   /강준만
    
   `디지털 혁명의 계승자이자 선도자'?
    
   "디지털 혁명의 진정한 계승자이자 새 밀레니엄을 앞둔 디지털 혁명의
  지칠 줄 모르는 선도자. …… 올해 미 경제가 거둬들인 풍성한 수확은 그의
  업적과 무관할 수 없으며, 컴퓨터 산업의 발전은 높은 경제 상장과 낮은
  인플레를 가져와 기존 경제학 교리를 흔드는 혁명적 힘이 되고 있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 은 `9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인텔(Intel) 회장
  앤드류 그로브에 대해 그런 평가를 내렸다. 미국 언론 특유의 국수주의적
  자화자찬이 엿보여 좀 마땅치 않은 점이 없지 않지만, 인텔과 관련된
  통계는 그런 말이 나올 만큼 경이적이라고 하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전
  세계 모든 PC의 90% 이상이 펜티엄 프로세서 등 인텔의 마이크로칩을
  장착하고 있다든가, 인텔의 재산 가치는 1천1백50억 달러에 이르며 한 해
  51억 달러의 영업 수익을 올려 세계에서 7번째로 돈을 잘 버는 회사라든가
  하는 기록은 기록 그 자체만으로 감
   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러나 인텔이나 앤드류 그로브라는 이름이 국내의 보통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된 건, 그런 기록보다는 지난 94년에 일어난 컴퓨터 칩
  `펜티엄 프로세서'의 부동소수점 결함 문제에 대한 언론의 떠들썩한 보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앤드류 그로브는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올해 들어 그가 직접 쓴 책 2권과
  인텔에 관한 책 1권이 번역돼 나왔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로브에 관한
  자료들을 챙기면서 그로브에 대해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이
  책들을 읽으면서 그로브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게 되었다. 생업에 바쁘신
  독자들께서 그 책들을 일일이 다 챙겨 읽기는 어려울 터인즉 내 나름대로
  파악한 `그로브론(論)'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그로브가 쓴 책은 2월에 나온 편집광만이 살아 남는다(Only the Paranoid
  Survive) (유영수 역, 한국경제신문사, 1만 원)와 5월에 나온 탁월한 관리(High
  Output Management) (성병현런兀淪� 역, 대경출판, 9천5백 원)다. 그로브는
  기업 경영을 하면서도 스탠퍼드대 교수로 강단에 서 왔다. 이는 이 책들이
  보통사람들에겐 재미가 없을 것이라는 걸 시사한다. 일반 대중용으로 쓰긴
  했지만 제법 전문적인 경영서라는 이야기다. 
   반면 컴퓨터 칼럼니스트인 팀 잭슨이 쓴 인사이드 인텔 (금기현 역,
  세종연구원, 1만3천 원)은 그로브는 물론 인텔이라고 하는 기업의
  이모저모를 파헤치고 있어 비교적 재미있다. 굳이 그로브에 관한 책을
  부담없이 읽고 싶은 독자들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글도 이 책에 크게
  의존했으며, 출처를 밝히지 않고 인용한 건 주로 이 책에서 나온 것임을
  밝혀 둔다. 
    
   인텔은 그로브의 개인적인 창조물
    
   그로브는 인텔의 창업자로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이야기하면 창업
  공신이지 창업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창업은 1968년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로브는 세 번째 인물로 스카우트되어 인텔에
  참여한 것이다. 물론 그의 직위는 노이스와 무어의 아래였다. 그러나
  그로브는 이미 70년대 초반에 이르러 인텔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최고
  경영자와 다를 바 없는 지위를 누렸다. 
   그걸 말해 주는 한 에피소드가 있다. 그로브는 자신과 지위가 똑같은 중역
  밥 그레이엄과 업무상의 문제로 갈등을 빚었는데, 노이스나 무어가 판결을
  내려야만 할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그레이엄은 고든 무어와 절친한
  친구였지만, 무어와 노이스의 선택은 그로브였다. 인사이드 인텔 의 저자
  팀 잭슨은 이렇게 말한다. 
   "분명히 그로브는 그레이엄보다 인텔의 성공에 더욱 중요했다.
  그레이엄은 능력 있고, 경험도 많고, 집중력 있고, 친화력도 강하고, 매우
  정열적이었다. 그러나 그로브는 그보다 더 나았다. 그는 엄청난 지능의
  소유자였고 세부적인 사항까지도 세심하게 따지며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는 친구조차 자신에 대한 충성심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 없는 투사였다. 또한 그는 강한 의지력과 자제, 결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텔에게는 진정한 투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앤디 그로브보다 더 투철한 사람은 없었다. …… 비록 밥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아직 회장직과 총부회장직에 있었지만, 모든 결정은 그로브의 손에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노이스와 무어는 새로운 중역을 채용할 때엔 반드시
  그로브에게 먼저 면접을 보게 했다. 그로브의 비위에 어긋나면 노이스와
  무어로서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브의 그런 영향력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오늘날의 인텔은 그로브의 개인적인 창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로브는 79년 인텔 사장, 87년 인텔 대표이사(CEO) 회장직에 올랐으며,
  97년 3월엔 고든 무어를 승계해 총회장이 되었고 그 자리는 98년 5월
  크레이그 배럿에게 이양했다. 그는 거의 전권을 행사하며 30년간 인텔을
  지배했으니 오늘날 인텔의 기업 문화가 곧 그의 성향과 취향을 반영하고
  있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편집광만이 살아 남는다"는 그로브의
  구호는 곧 인텔의 기업 정신이며 이는 흔히 `그로브의 법칙'으로 불려졌다.
  재미있는 건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편집광만이 살아 남는다는
  원칙은 다분히 그로브의 개인적인 출신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는
  점이다. 
    
   부다페스트에서의 어두운 시절
    
   그로브는 193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대인 `앤드라스 그로프'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독일이 헝가리로 쳐들어 왔을 때 그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숨어 지내야 했다. 50년대 부다페스트에서 그의 젊은 시절은 참으로
  암울한 것이었다. 그는 56년 헝가리 10월 혁명이 실패한 직후 스무 살의
  나이에 오스트리아를 거쳐 무일푼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로브는 자신의 이름을 미국식 이름인 앤드류 그로브로 바꾼 뒤
  뉴욕시립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도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63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페어차일드 세미컨덕터에 취직했다.
  그는 이 회사의 개발 부서에서 5년 동안 일하다가 인텔에 합류한 것이다. 
   그로브는 한동안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숨겼으며 어떠한 유대인
  예배당이나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미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는 두 딸을 위해 개를 사는 것을
  주저할 만큼 어쩔 수 없는 유대인이었다. 그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세퍼드가 유대인들을 죽음의 공포로 몰고간 기억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로브의 경영 스타일이 그의 어두운 과거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추론을 한다. 아니 적어도 젊은 시절엔 그랬던 것이
  분명하다. 젊은 시절 그의 행동 방식은 너무나 엄격하고 통제적이었다.
  업무 스타일 역시 딱딱하고 빈틈없이 꼼꼼했다. 그로브가 안정된 지위를
  갖게 된 이후에도 그런 스타일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로브가 소탈하다는 것만큼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아니 그가 그걸
  인텔의 기업 문화로 정착시켰기 때문에 소탈함은 모든 중역들에게도
  요구되는 것이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그는 운전 기사를 두지 않고
  직접 차를 운전했으며 사원들과 똑같이 일반 주차장에 선착순으로 차를
  세웠다. 또 출퇴근할 때에는 모든 근무자들과 같이 가방 검사 등 보안
  검사를 받았고 사무실도 일반 직원들과 같은 크기로 꾸며 놓았다. 또 해외
  출장을 갈 때는 꼭 이코노미 클래스만 이용했다. 그로브는 자신의 저서
  탁월한 관리 에서 이와 관련하여 한 기자의 질문을 소개한 뒤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그로브씨, 당신 회사에는 근무할 때 복장도 자유롭고 사무실 대신에
  칸막이를 쓰고 간부 전용 주차 구역과 같은 특혜 등이 없더군요. 혹시
  이렇게 하는 것은 직원들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처럼 보이게끔 하려는
  의도가 아닙니까?"
   "내 대답은 이렇다. 그것은 그저 그런 체하려는 게 아니다.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인텔에서는 지식으로서의 권력을 가진 사람과 높은 지위로 인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매일 섞어서 배치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인텔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만일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기술직 직원들과 관리팀을 연결시키지 않는다면 인텔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지위가 높다고 해서 좋은 생각이나 의견을
  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방식의 차이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필요의 차이이다."
    
   `치솟는 주가가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
    
   그렇다. 평등주의는 그로브가 가장 혐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에 미쳐
  지내는 사람에게 평등은 결코 매력적인 단어일 수 없잖은가. 그는
  휴양지에서 휴가를 즐기다가도 회사 걱정에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와서 회사를 둘러볼 정도로 일에 집착하는 성격이다. 그 지경이니 밑의
  부하들이 얼마나 괴롭겠는가. 그는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에서부터 청결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따지고 챙겨 원성을 사기도 했다. 
   그로브는 실질을 좋아하는 인물이다. 그는 회의를 관리 업무 수행의
  기본으로 여겨 매우 중요시했는데, 그가 좋아하는 회의 방식은 전혀 회의
  같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팀 잭슨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자신의 시간을 중시했기 때문에, 2∼3분이면 끝날 얘기를 가지고
  사람을 불러 관례상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30분씩이나 한담을 나누고
  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이런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그는 용건이 있으면
  그 사람의 사무실로 직접 가서 할 말을 간단히 끝내고 돌아오곤 했다."
   그로브의 실질에 대한 집착은 실질 이외의 것에 대한 인내심의 결여로
  이어져 때론 고압적인 자세로 나타나곤 했다. 
   "그로브는 자신의 결점을 최대한 이용할 줄을 알았다. 인텔에서의 초창기
  시절, 그는 그동안 고통을 겪어 오던 청력 문제를 보청기를 사용함으로써
  해결했다. 따라서 그는 원치 않는 것을 들었을 때, 보청기가 고장난 것처럼
  할 수 있었다. 그는 보청기를 마치 전투에서의 무기로 사용했던 것이다.
  회의에서 말하는 사람이 할당된 시간을 초과하거나 논점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그로브는 보청기를 벗었다. 그리고 지루한 표정이나 불평 이상을
  말하는 우아한 몸짓으로 더이상 듣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시해 그를
  테이블에 앉게 만들었다."
   그로브는 당연히 `목표 관리'에도 열성이었다. 각기 목표와 성과를
  설정하고, 그 진전 상황을 정기적으로 측정하고, 그 결과를 상부 조직에
  보고하는, 이른바 `인텔의 목표 관리'(Intel Management By Objectives)는 늘 인텔
  사람들의 머리를 지배했다. 인텔 사람들은 일상 대화에서도 목표나 주요한
  결과에 대해 말할 때 `임보스(imbos)'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나는 이번
  분기에 임보스의 70%를 달성했어."라는 식으로 말이다. 
   말이 좋아 `목표 관리'지 그건 직원을 가능한 한 쥐어짜는 통제술이었다.
  그러한 통제를 위해 그로브가 사용한 가장 강력한 도구는 성공한 자에게는
  상을 주고, 실패에는 벌을 내리는 개인 인센티브 제도였다. 성공의 주요
  인센티브는 스톡옵션제였는데, 1971년 주식 공개시 주당 23.5달러 하던 것이
  93년 6월에는 4천385달러나 된 까닭에 스톡옵션은 모두에게 중요한 동기
  부여로 인식되었다. 주식 공개 가격으로 1천 주를 받은 한 기술자는 22년간
  주식을 보유하여 5백만 달러를 벌어들였으며, 직원 중 1천 명 이상이 그들의
  스톡옵션으로 1백만 달러 이상을 벌었다고 하니, 감히 누가 그 마력을
  거부할 것인가. 팀 잭슨은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후한 선심의 결과, 수천 명이나 되는 스톡옵션을 보유한
  직원들은 다른 회사보다 더 심한 조직 통제, 불편함, 모욕 등을 기꺼이
  감수했다. 알파 입자의 결함을 발견한 고집불통의 과학자인 팀 메이는
  이러한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했다. `치솟는 주가가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
  이러한 스톡옵션 제도 덕분에 인텔은 다른 기업들이 거의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정책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바로 `리사이클링'이다. 앤디 그로브는
  한 관리자의 성과가 좋지 않다고 느꼈을 때,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를
  강등시켰다. 보통의 경우에 이러한 모욕을 감수할 사람이 거의 없었겠지만,
  인텔에서는 2∼3년만 더 버티고 있어도 50만 달러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관리자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오히려 더욱 열심히 일해서 자신의 위치를
  되찾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관행은 인텔 관리 체제의 표준이 되었다."
    
   경쟁자의 싹부터 밟아라
    
   인텔은 그런 방식으로 고속 성장을 해 온 기업이니 그로브가
  오만방자해졌다고 해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닐 게다. 97년 3월 최소의
  생산력을 내는 10%의 종업원들을 해고한 정책은 여론에 의해 전례 없을
  정도의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로브의 오만방자함은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때론 잔인함마저 느껴진다. 
   그로브는 `사직 면담' 제도라는 걸 도입했다. 회사를 떠나려고 결심한
  재능 있는 직원들로부터 유용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도입한
  제도다. 아닌 게 아니라 그거 꽤 멋있는 제도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로브는 때로 회사를 떠나는 직원에게 저주에 가까운 작별 인사를 하곤
  했다. 그게 향후 경쟁 상대가 될 수 있는 사람의 기를 꺽어 놓기 위해서란다.
  한 엔지니어에게는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자네는 자네 자식들에게 아무런 재산도 남겨 주지 못할 걸세. 자네
  이름도 곧 잊혀질 것이고, 자네는 실패할 거야. 무슨 일을 하든 자네는 망할
  거야."
   그로브가 자신의 후임을 약속한 인물이 여섯 명이었다고 하니, 그는
  권모술수에도 대단히 능한 경영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기야 권모술수는
  인텔의 오랜 경영 비법이기도 했다. 아니 말은 바로 하자. 어디 인텔만
  그러겠는가. 자본주의 체제하의 기업에게 권모술수를 포기하라면 그건
  장사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게다. 인텔이 즐겨 쓴 수법 가운데
  하나는 칩 디자인 독점을 위해 장기적인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아예
  경쟁자의 싹부터 밟아 버리는 것이었다. 소송을 많이 제기한 중역의 출세가
  빨라 인텔의 법무 관련 부서는 경쟁적으로 소송을 제기하였다고 한다. 
   경쟁자들에 대한 인텔의 과도한 집착은 `기업 보안'에서도 잘 드러난다.
  인텔은 회사 내 복사기에조차 `Intel Confidential'이라는 딱지를 붙일 만큼
  기밀에 민감하다. 인텔의 보안 부서는 경쟁자나 인텔의 이익에 큰 해악을
  끼칠 도둑은 물론 자신의 종업원들을 감시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이 부서는 이미 몇 번이나 미국 내 회사에서 적당한 행동으로
  생각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무리를 저지른 바 있다. 
   그로브의 뒤를 이은 크레이그 배럿이 지난 4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기자들은 삼성에 대한 10억 달러 투자설을 물었다. 그건 이미 다 언론에
  보도된 것인데도 배럿은 `컨피덴셜(비밀)'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시사저널 (98년 5월 14일)은 배럿의 이런 소심함에 대해 이렇게 추측하였다. 
   "그가 기자들 앞에서 필요 이상으로 소심하게 행동한 진짜 이유는 96년 월
  스트리트 저널 과의 인터뷰 내용이 문제되어 회사 경영위원회로부터
  달갑지 않은 상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재갈상'이라고 불리는 이 상의
  상패에는 개 입막음용 가죽 재갈이 그려져 있다. 기업의 내부 비밀을
  언론에 누설한 임원에게 주는 경고용 상이었다. "
    
   `Intel inside' 캠페인
    
   경쟁자를 따돌리기 위한 인텔의 무서운 집념이 꼭 나쁜 쪽으로만 작동한
  건 아니다. 인텔은 80년 말에는 경쟁자를 따돌리는 방법으로 소비자들에게
  인텔 상품의 높은 품질과 신뢰감을 심어 주자는 계산하에 PC 구매자들에게
  상자 위의 이름이 아니라 내부의 프로세서에 관심을 집중하도록 권장했다.
  이의 일환으로 인텔의 제품 위에 빨간색 스프레이로 `X'를 칠한 `레드 X'
  운동을 실시했으며 그리고 나서 인텔 칩이 내부에 있다는 뜻의 `intel inside'를
  표시했다. 만약 PC 생산업자들이 그들 제품의 표면에 이런 로고를
  부착하면, 인텔은 이들 업체들에 홍보 비용을 보조했다. 
   인텔은 91년 5월부터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1년
  동안 공식적으로 책정된 광고비만 해도 2천만 달러에 이르렀다. 캠페인은
  소비자들이 컴퓨터를 구입할 때 인텔의 이름과 로고가 들어간 컴퓨터를
  고르고, 그것이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구매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고의
  틀'을 만들어 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인텔은 자신의 광고뿐 아니라
  컴퓨터 회사들이 `인텔 인사이드' 로고를 눈에 띄게 드러낸 광고를 하면 그
  비용의 일부를 인텔이 보조해 주는 공동 마케팅 캠페인을 시작했다. 
   일부 컴퓨터 전문 언론인들은 인텔의 캠페인을 미친 짓이라고
  조롱했지만, 결과는 대성공으로 나타났다. 92년 인텔의 전 세계 매출은
  63%나 증가했으며, 인텔이라는 이름은 마케팅 전문가들에 의해 코카콜라와
  말보로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가치 있는 브랜드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기업의 캠페인이라는 건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물량 공세이기
  때문에 이 또한 편집광적인 냄새가 펄펄 풍긴다. 그로브가 굳이 그 용어를
  써서 그렇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기업 치고 편집광적으로 행동하지
  않은 기업이 또 있을까? 다만 그로브는 `양 다리 걸치기'에 대해 단호히
  반대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맛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일 경쟁자가 당신을 쫓아오고 있다면(그들은 항상 쫓아온다. 그것이
  이 책 제목을 편집광만이 살아 남는다]로 정한 이유다), 그들을 앞질러야만
  죽음의 계곡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을 앞지르려면 특정 방향을
  정하고는 사력을 다해 달려야 한다. 그들이 당신을 쫓아오고 있으니까
  가능한 모든 방향을 고려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달리 말해 양 다리를
  걸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대답은 `안 된다'다.
  양 다리를 걸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집중력을 약하게 한다.
  정확한 초점이 없으면, 조직의 자원과 에너지는 넓게 분산될 것이다.
  그리고 그 깊이는 매우 얕을 것이다."
    
   `편집광만이 살아 남는다'
    
   그로브는 편집광적인 자세를 가져야 자료나 데이터 이상의 그 무엇을
  감지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빌 게이츠처럼
  늘 기업 환경의 격변을 이야기하는데, 그 격변의 징후를 감지하는 건
  편집광적인 집중력이 없이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 교수로부터 빌려온 `10×' 개념도 바로 그런 편집광적인
  집중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중앙일보 96년 11월 6일자는 이 `10×'
  개념을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걸 인용해 보기로 하자. 
   "기업계에는 크고 작은 바람들이 잘 날 없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들도 있지만 어떤 것은 태풍으로 돌변하여 기존의 비즈니스 구도를
  송두리째 뒤엎어놓는다. 이 힘이 `10×' 곧 `곱하기 10'이다. `전략적
  굴곡점'으로도 부른다. 미국 소도시에 파고든 유통 업체인 월 마트가 기존
  소매상들을 황폐화시키고 시어스 등 거대 유통 제국까지 넘어뜨린 힘이다.
  실바람이 태풍으로 변하는 과정은 카오스다. 바로 직전까지도 예측을
  못한다. 그 낌새를 미리 알아차리는 능력이 문제다. 한 가지 요령으로 중간
  간부들에게 끊임없이 `귀를 땅에서 떼지 않도록' 경각심을 일깨우라고
  그로브는 권한다. 고객들의 사소한 불평, 제품 제조 과정에서의 조그만
  누수 현상, 종업원들의 불평과 루머 등 나쁜 뉴스들을 지나쳐 버리지
  말라는 권고다. 안개자욱한 새벽길을 운전할 때 앞차의 꽁무니 불빛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갑자기 시야에서 앞차가 사라졌을 때가
  문제다. 앞으로 인터넷이 PC 산업을 뒤엎는 `10×'가 되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도리어 PC붐을 영구히 지속시킬 것이며 미디어와 광고 산업을
  흔들어놓게 될 것'으로 그는 내다보았다. "
   그로브는 자료에 관해서도 아주 재미있는 말을 하고 있다. 경영 자료는
  아니지만 늘 글쓰기 자료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엉뚱하게도 이
  대목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그는 편집광만이 살아 남는다 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리석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언제 자료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하고, 언제 손에서 놓아야 하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비록 현재 시점의
  분석에서는 너무 작아 그 힘의 출현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당신이
  경험적으로 그 힘이 당신의 사업 운영 방식 전체를 바꿀 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느낄 때 당신은 자료와 싸울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떠오르는
  추세와 관련된 문제를 다룰 때 당신은 합리적인 자료를 단순히 대입시키지
  말고, 당신의 관찰과 본능에 의존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관찰과 본능이라! 이 또한 결국 편집광적인 집중력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순전히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그로브의 말은
  모두 귀담아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주장임에 틀림없다. 특히 우리
  기업들이 국제 경쟁을 피해갈 수는 없는 이상 그로브로부터 배울 건 배워야
  할 것이다. 한국일보 (98년 7월 20일) 김수종 논설위원은 지난 94년 그로브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고 한다. "장차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로브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경쟁력 있는 회사다. 기술도 그렇지만 자금력이 막강하다.
  돈이 모자라면 삼성 재벌이 도와 줄 것이고, 그래도 위태로우면 한국
  정부가 나설 것이 아니냐. 그러나 우리 인텔은 사방을 둘러봐도 우리가
  실패하기를 기다리는 경쟁자들뿐이다."
   그로브는 96년에는 전립선 암으로 사경을 헤매기도 했는데, 그는 자신이
  비즈니스를 통해 배운 교훈 몇 가지가 병마와의 싸움에 주효했다고 말한다.
  그가 뉴스위크 (한국어판) 96년 9월 18일자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나는 의사조차 권하지 않은 행동 계획을 수립해야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검토한 뒤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거기에 매진할 수 있도록 신념을
  불러일으켜야 했다."
   한 가지 중요한 걸 빼먹었다. 내가 보는 그로브의 가장 큰 장점은 `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가 그러하듯이, 컴퓨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미래학자 행세를 하려고 든다. 그런데 그로브에겐 그런 게
  없다. 아주 소박하게(?) 오직 기업 경영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이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편집광만이 살아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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