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conom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6월 11일 금요일 오전 11시 05분 51초 제 목(Title): 이코노/배선영씨 관련기사 제 490호 1999.6.15 화제인물 News People 케인스에 맞먹는 ‘天才’냐? ‘돌아이’냐? 기존 경제학의 ‘틀’ 뿌리째 뒤엎고 나선 재경부 39세 총각관료 배선영 과장 박종인 경향신문 경제1부 기자 ▲ 재경부서 근무하다 지금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파견 근무중인 배과장이 책과 씨름하다 휴식을 취하고 있다. 외환위기로 나라 경제가 IMF 관리체제로 접어든 작년 7월. 영·미의 기존 경제학 토대를 뒤엎고 새로운 경제학 틀을 제시한 이상한(?)‘한국인’이 있었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실에 근무하던 배선영 과장(39)이다(본지 98년 9월29일자 455호 보도됨). 그는 그후 청와대에서 나와 재정경제부에 적을 둔 채 현재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파견근무중이다. ‘기존 경제학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컬으며, 그 지록위마(指鹿爲馬)로 당대를 풍미하고 있을 때, 그것에 필마단창(匹馬單槍)으로 도전, 마침내 경제학의 역사에 일대 변혁을 불러일으키는 획기적인 이론서-그런 저서가 21세기에 두 권이 있다면, 그 첫번째 책은 1936년 영국에서 발간된 케인스의 ‘일반이론’이고 그 두번째 책은 바로 이 책이다.’ 도전과 패기·야심으로 시작되는 그의 책 ‘화폐·이자·주가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기존 경제학에 대한 이론적 도전-’(예창각)은 발간된 지 8개월만에 초판으로 찍은 5천권이 모두 팔렸다. IMF로 찬바람이 돌고 있는 서점가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다. 더욱이 3만8천원이란 만만찮은 가격에 1천46쪽에 달하는 원본과 1백73쪽짜리 요약본, 31쪽의 초록 등 세 권으로 구성된 막대한 분량. 특히 이 책은 웬만한 경제학도도 쉽게 읽기 힘들다는 평을 들을 만큼 난해하다. 이 책은 “기존 경제학자들의 이론은 경제 주체들이 화폐를 지출하지 않은 상황을 전제로 이론을 전개하고 있어 현실 경제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자율 결정 이론의 고전으로 여겨지는 케인스의 유동성선호설을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배과장은 대신 자신이 정립한 이론, 즉 신규·기존 대차증서, 신규·기발행 채권 등 부리(附利)증권의 매입과 매출에 관련되는 자금 전체가 시장이자율 결정에 의해 작용한다는 ‘유량자금설’로 기존 이론을 대체해야 한다는 것. 대학 강단의 교재로 쓰이지 않는 딱딱한 전문서적이 이만큼 팔려나간데는 나름대로 사연이 있을 터. 우선 책을 쓴 배과장의 독특한 이력과 행보에 대한 세인의 관심이 높다. 그가 작년 9월 개설한 인터넷 홈페이지(www.sybae.net)의 방문 건수는 그 동안 3만3천건. 하루 조회건수가 1백60건에 달한다. 경제학도에서부터 고교생까지 방문객도 다양하다. 한국경제신문 고승철 부장은 책을 보고 난 느낌을 “한 청년의 처절한 집념이 밴 정수(精粹)를 대하는 기분”이었다고 인터넷에 적고 있다. 이어 “이 책이 한국에서 인정되지 않으면 한국은 선진국이 되기 힘들 것”이라며 “그나마 저자가 번지르르한 학력에 고시 2관왕이란 그럴듯한 타이틀이 있기에 ‘돌아이’ 취급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부장 말처럼 배과장의 학력은 남다르다. 고교 시절 전교 수석을 놓친 적이 없고 서울대 경제학과 3학년 때(20세) 행정고시에 최연소로, 4학년 때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고시공부를 할 때도 언제나 화려한 넥타이나 스카프를 매고 다녔고 명동이나 신촌의 고고장에 여자친구와 함께 자주 출몰해 가까운 친구들조차 그가 고시준비를 하는 줄 몰랐다고 한다. 친구들은 신문에 실린 합격자 명단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가 고시공부를 했다는 것을 알았을 정도다. 대학시절 지도교수였던 조순 한나라당 명예총재는 “무척 아꼈던 제자”라며 “머리가 좋고 상당히 독창적이었다”고 말한다. “학자가 되라고 권했지만 케인스를 좇아 꼭 관리를 하고 싶다며 학교를 떠났다”며 “학문하는 자세가 바르고 정직하며 대학 때부터 기존 이론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의심하고 반박하곤 했다”고 덧붙였다. 남다른 학력과 고시 2관왕이란 타이틀에도 배과장을 ‘돌아이’로 보는 사람은 많다. 가장 심한 곳이 바로 국내 경제학계, 이른바 교수사회다. 대부분의 경제학 교수들은 배과장의 이론을 토론 대상으로 삼지 않고 있다. 무관심과 냉소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그의 책에 대한 멘트를 받으려고 몇몇 교수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말하지 않겠다. 관심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순 명예총재는 이같은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기존 학설에 입각해 학문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론이다. 기존 경제학계의 벽은 생각보다 두껍다. 기존 학설은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이를 깨는 건 쉽지 않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특히 영·미 경제학이 세계를 주름잡는 상황이라 더 그렇다. 그러나 기존 이론의 틀을 버리고 새 틀을 제시한 독창적인 지적 태도는 높이 사야 한다.” 미국 경제학의 본류인 시카고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최근 귀국한 기획예산위원회 외신대변인 김종면 박사는 “경제학의 흐름에서 벗어난 논의는 한마디로 달밤에 체조하는 격”이라고 혹평했다. 국내는 물론 영·미계 경제학자들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이슈가 되더라도 기존 경제학의 개념을 사용, 새 이론을 정립해야 누가 봐 줄 텐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새로운 틀을 배워가면서까지 배과장의 이론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 반면 임원택 서울대 명예교수는 우호적이다. 그는 “내가 가르친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중 한 명”이라며 “천재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어 “책이 너무 크고 한자가 많아 진지하게 끝까지 읽는 사람이 적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공부를 위해 결혼을 미루고 있다는 말을 듣고 가상하다고 생각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공무원으로는 드물게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더블 정장의 가슴 포켓에 포켓행커치프를 꽂아 한껏 멋낸 배과장을 외모로만 보면 압구정동의 신세대와 구분이 안 된다. 선이 가늘고 단정한 하얀 얼굴이 30대 후반으로 보기엔 아직 앳되다. 갸날픈 몸매의 미남형. 거만하고 자부심 강한 재무관료 답지 않게 사람을 대할 때는 지나치리만큼 겸손하다. 그러나 그의 연약한 외모 안에는 강한 의지가 숨겨져 있다. 대학 1학년 때 품은 기존 경제학에 대한 의심을 15년간이나 갈고 닦아 책으로 내놓은 뚝심이 그것이다. 낮에는 근무하고 밤에 틈틈이 책을 쓰느라 아직도 미혼이다. 89년 재무부 증권국에 파견근무를 할 때 배과장을 만났다는 대한투신 송길헌 채권운용부장은 “처음에 자신을 당대에서 제일 가는 경제학자라고 소개해 의아했다”면서 “그러나 함께 지내면서 그의 자신감에 서서히 매료됐다”고 술회한다. 재무부 관료에게 기본인 해외 연수를 배과장은 거부했다. 세계 각국을 아무리 찾아봐도 나를 가르칠 만한 경제학자가 없다는 게 이유다. 언젠가 송부장이 배과장(당시 사무관)의 책상에 놓인 그의 석사논문을 무심코 읽으려 한 적이 있었다. 배과장은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논문은 심심풀이로 읽는 게 아닙니다. 대학교 도서관에 가서 정식으로 대출신청을 해서 꼼꼼히 읽어 주십시오.” 무안해진 송부장은 속으로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너무 한다’고 생각했지만 점차 배과장을 알게 되면서 학문에 대한 그의 진지한 자세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한다. 배과장이 30대 초반으로 재무부에 근무하던 때 외무부장관을 지낸 고위 관료가 그에게 자기 딸과 교제해 볼 것을 은근히 권한 적이 있다. 배과장은 단호히 이를 거절했다. “국적이 불분명한 여자와는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세계 각국을 돌며 교육받은 여자와는 인생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보수적인 재무부에서 이같은 ‘튀는’ 태도가 곱게 받아들여졌을리 만무했다. 재무부 증권국 증권발행과장으로 있을 때 배과장을 부하로 데리고 일했던 한국투신 강대영 부사장은 “그는 상사들과 논쟁하기를 즐겼고 옳다고 믿으면 끝까지 따지곤 했다”면서 “그래서 그를 건방지다고 싫어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논쟁을 하더라도 예의는 깍듯이 차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에 열심이었다. 한 번은 일을 맡기고 퇴근했는데 다음날 출근해 보니 배과장이 사무실에서 밤샘작업을 하고 책상위에서 자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두고두고 얘기가 되는 90년 초 ‘채권시장활성화 방안’은 배과장이 자신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해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이 정책은 우리 나라 채권시장 발전에 큰 공헌을 했으며 당시 증권국장이던 임창열 현 경기도지사는 두고두고 배과장을 칭찬했다고 한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귤보다는 오렌지를, 그리고 가요보다 팝송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서양에서 태어나신 분들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장차 칸트의 철학보다 율곡의 철학을, 그리고 사뮤엘슨의 경제학보다 나의 경제학을 더 좋아하시게 되더라도,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실 필요가 전혀 없다고.” ▲ 제490호 ------------------------------------------------------------------------------- - �� �後後� �짯後� �後� �碻碻碻� �碻碻� �� �� ┛┗ �� �� �� �� �後後� �碻�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