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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conom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워싱턴사과)
날 짜 (Date): 1999년 1월 23일 토요일 오후 10시 04분 04초
제 목(Title): 유시민/수출은 악이고 수입은 선이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경제이야기

                    수출은 악이고 수입이 선이다?

    유시민 〈경제 평론가〉 


        어떤 경제학자의 정의에 따르면 「경제학은 여러 변수 사이의
    함수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말을 들으면 경제학이 몹시 간단한 학문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경제학자들 눈에 들어오는 변수가 하나둘이
    아니다. 어떤 변수가 다른 하나의 변수하고만 함수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다.
    함수관계가 분명히 있지만 인과관계를 확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래서
    경제는 매우 복잡한 현상이고, 경제학은 「난해한 학문」으로 여겨지고 있다. 

    경제학자와 경제전문가들의 모든 이론과 가설과 예측은 근본적으로 「단순화」와
    「과장」의 산물이다. 그들은 제각기 나름의 직관과 경험과 가치관과 이해관계에
    따라서 수많은 변수 가운데 어떤 것은 무시하고 다른 것은 중시한다. 하나의
    경제현상을 제각기 부분적으로 또는 다른 인과관계를 들어 설명하는 여러 이론과
    가설 가운데 특정한 것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경제전망이나 부정적인
    현상에 대한 처방이 개인에 따라 큰 차이가 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전문 경제저널에 실리는 경제학 논문에서는 그것을 쓴 학자의 이론 틀과
    연구방법, 거기 동원된 데이터의 차이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하지만 신문과
    방송의 경제 관련 보도나 논평, 칼럼, 분석기사를 볼 때는 그 배후에 깔린
    이해관계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언론의 경제 보도는 보도 대상이 된 현상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 가운데서
    편리한 것만을, 그것도 전체가 아니라 한 부분만을 자의적으로 차용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도적 또는 무의식적 「왜곡」의 동기 또는 목적은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또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을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여론의 영향을 받는다. 언론보도는 단순히 여론을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여론을 형성한다. 경제현상은 보통 시민이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인만큼, 언론의 경제 보도는 정치 일반이나
    사회적인 문제와 비교할 때 여론 형성에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정부의 경제정책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가려는 이익집단은 전문가의
    입을 빌려 일그러진 정보를 쏟아낸다. 


                        수출업자들의 「아우성」 


    이제 최근의 급속한 환율하락 문제를 가지고 언론의 경제보도에 깔린 이익집단의
    목소리를 추려내 보자. 다음은 달러 환율이 1150원대를 오르내렸던 99년
    1월5일을 전후해 주요 신문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기사다. 

    『환율 비상이 걸렸다. 국내 외환시장의 수급 불균형으로 달러환율이 급락해
    경제운용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가격경쟁력이 급격히 악화, 수출전선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한동안 억제돼 왔던 소비재 등의 수입도 환율하락에 편승해
    되살아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급격한 환율 하락이 「수출둔화 수입확대」라는
    경상수지 악화 패턴을 재등장시켜 200억 달러 흑자 목표 달성에 차질이
    우려된다』 

    정말 사람 겁주는 말이다. 여기에다 「수출업계 거액 환차손 비명」 「채산성
    악화 비상」 「원 고(高) 이대로는 안 된다」 「팔수록 손해」 「3개월 환차손
    1조 9000억원」 따위의 분석과 해설기사가 덧붙여지면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 넌더리가 난 국민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그러니 어쩌자는 말인가. 결론은 빤하다. 「정부가 달러를 사들여 환율을
    방어하라」는 것이다. 옳은 말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진단과 처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일까. 그럴 수가 없다. 

    IMF 체제를 하루 빨리 극복하자는 「국민적 합의」에 딴죽을 거는 불경스러운
    짓일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보도와 주장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주인은
    수출업자가 아니다」라는 말로 대답할 수밖에 없다. 경제정책론 영역에서 널리
    통하는 상식에 따르면, 소수의 이익은 조직하기 쉬우나 다수의 이익은 조직하기
    어렵다. 생산자의 이익은 조직하기 쉽지만 소비자의 이익은 조직하기 어렵다.
    그리고 수출업자의 이익은 조직하기 쉬우나 수입업자의 이익은 조직하기 어렵다.
    우리 언론의 환율 보도를 보면 이 세 가지 상식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달러 환율은 97년 여름까지는 900원 수준이었다가 외환위기 조짐이 일면서
    1000원을 돌파했다. IMF 구제금융 신청 이후인 97년 12월의 평균환율은 무려
    1700원에 육박했다. 국가부도 위기를 넘긴 98년 봄 이후에는 줄곧 1300원대를
    중심으로 폭이 그리 크지 않은 가운데 등락을 거듭하다가 지난해 막바지에서야
    1200원대로 내려섰다. 그리고는 금년 들어 외환시장이 열리기가 무섭게 며칠
    사이에 달러당 50원 넘게 빠져 1100원대를 기록한 것이다. 


                        고환율의 수혜자와 피해자 


    그러면 그동안 고환율은 국민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
    국민 중에는 엄청난 이익을 본 사람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수출업자다. 98년
    한국의 물가는, 설탕과 밀가루와 유류 등 원자재를 절대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상품의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는데도, 전체적으로는 크게 오르지 않았다.
    원자재를 수입하지 않는 상품 값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작은 나라다. 메모리 반도체 등 한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매우 높은 몇
    가지 제품을 제외하면 국제시장의 상품가격에 한국 기업이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환율이 폭등해도 수출업자들은 그전과 같은 달러 표시 가격으로
    물건을 팔 수 있다. 더 많이 팔고 싶다면 물론 달러 표시 가격을 내릴 수도
    있다. 

    지난해 유럽연합 국가의 소비자 단체에서 현대 등 한국의 자동차 메이커가 환율
    변동을 감안해서 가격을 내려야 한다고 요구했던 데서 보듯, 한국의 대형
    수출업자들은 제품의 달러 표시 가격을 별로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수출업자들은 똑같은 물량을 수출하고서도 환율이 오른 것과 똑같은 비율로
    늘어난 원화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예컨대 1만 달러짜리 소형차 한 대를 팔
    경우 환율이 800원이면 800만원을 얻지만 환율이 1600원이면 16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이다. 

    한국 최대의 수출업자가 최대의 생산자인 재벌기업임을 고려하면 수출업자가
    얻은 이익의 폭은 더욱 커진다. 한국의 달러 표시 임금은 98년 한 해에 무려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다. 상여금 삭감까지 포함하면 근로자의 임금은 원화
    표시로도 20% 넘게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은 임금이 삭감된 만큼 추가
    이익을 얻었다. 

    그러면 환율 인상의 최대 피해자는 누구일까. 말할 것도 없이 소비자다.
    원자재나 중간재를 수입하는 국산품과 완성제 수입품 가격이 폭등하면 소비자는
    예전과 똑같은 물건을 더 비싸게 사거나 구입을 포기해야 한다. 이런 상품이 덜
    팔리면 당연히 수입업자도 손해를 보게 된다. 환율이 내리는 경우에는 수혜자와
    피해자가 정반대로 바뀌게 된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98년 한 해에만 무려 399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올렸다. 달러 표시 수출액은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조금이지만 어쨌든
    감소세를 보였다. 하지만 수입이 너무나 큰 폭으로 줄었기 때문에 유사 이래
    최대의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언론 보도에서 주류를 이루는 것은 환율이 오를 때나 내릴 때나 상관없이
    수출업자들의 아우성뿐이다.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수출기반 붕괴 우려」,
    이것은 98년에 가장 자주 등장한 경제관련 보도 제목 가운데 하나였다. 달러가
    비싸지면 원자재를 사기가 힘드니까 지당한 말씀처럼 들린다. 

    그러나 적어도 재벌기업처럼 직접 수출을 하는 생산자에 관한 한 이런 아우성은
    엄살에 불과하다. 그들은 원자재를 수입할 때 달러를 지불하지만 물건을 내다팔
    때는 달러를 벌어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출업자들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달러 표시 가격을 약간 인하할 수 있었다. 98년도 수출이 전년도에 비해
    물량으로는 10% 이상 늘었는데도 달러 표시 금액으로는 오히려 줄어든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하지만 환율이 오르면 달러 표시 생산비 역시 낮아지기 때문에 달러 표시 가격이
    인하돼도 개별 수출업자들은 이득을 보게 되어 있다. 예컨대 1만 달러짜리
    소형차 한 대를 만드는 데 5000달러어치의 부속품을 수입해야 한다고 하자.
    환율이야 어쨌든 수출업자는 차 한 대를 팔면 부속품 수입 비용을 뺀 5000
    달러를 손에 쥔다. 이걸 원화로 바꾸어서 국산 원자재와 부품 대금을 결제하고
    인건비를 지급하고 영업비용을 지출하고 이윤을 남긴다. 대량 실업사태와 함께
    국내 임금이 떨어지면 기업의 이윤은 오히려 증가한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반면 직접 수출을 하지 못해 수출업자와 원화로 계약을 하는 「불쌍한
    중소기업」은 때로 원자재를 수입하는 데 필요한 달러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손해를 본다. 그러나 종합상사를 보유한 재벌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언론
    보도는 모든 수출업자가 고환율 때문에 큰 피해를 보는 것처럼 묘사한다.
    거짓말이다. 


                      최근 환율하락이 의미하는 것 


    환율이 급격하게 떨어질 경우에는 수출업자가 곤경에 처하기 때문에 더 노골적인
    아우성이 터진다. 물론 이 경우에는 그 방법이 좀 다르다. 달러 환율이
    1600원대였을 때, 수출업자들이 주도하는 이익단체인 무역협회는 5대 재벌을
    포함한 모든 수출업체에 무역금융을 지원하라고 요구했지만 환율 인하를 위한
    정부 개입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환율이 1300원대로 떨어지기 무섭게 적정 환율은 1400원대라며 수출이
    막힌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환율이 1200원대로 내려간 98년 말에는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요구하는 경제전문가들이 도처에서 출현했다. 그들이 주요
    논거로 삼은 것은 「적정환율」이 1400원 선이라는 무역협회의 주장과
    수출업체를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였다. 물론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인데,
    속이 너무 훤히 보이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환율이 1100원대로 내려앉은 금년 1월 초순에는 정부가 금리를 인하하고 달러를
    사들여 IMF 빚과 민간기업의 외채를 조기상환하도록 하라는 등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 쏟아졌는데, 주로 재벌그룹이 운영하는 경제연구소 「전문가」들께서
    이런 좋은 말씀을 하셨다. 정부가 정말로 그런 방향으로 움직일 기세를 보이자
    달러 환율은 1월 둘째 주 후반에 다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고, 언론 보도에서
    수출업자의 아우성도 일제히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러면 국민들은 보통, 무슨
    좋지 못한 사태가 진정되었나 보다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연극이다. 

    최근의 달러 환율 하락은 원화 강세와는 다르다. 달러는 유로에 대해서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유로의 강세는 마르크와 프랑 등 통화동맹에 가입한 서유럽 11개
    선진국 화폐 모두의 강세를 의미한다. 여기에 엔화 강세까지 덧붙이면 최근의
    환율 하락은 원화의 강세가 아니라 달러의 약세를 의미한다. 

    이런 추세는 국제결제와 외환 보유에서 유로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그래서
    전세계 중앙은행과 투자가와 기업들이 팔아치워야 할 달러와 달러 표시 자산이
    늘어나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 기업과 직접 경쟁하는 일부
    기업의 피해를 제외하면, 이것 때문에 우리나라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급속히
    악화되기라도 하는양 호들갑을 떨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런데 수출업자는 정말로 대한민국의 주인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수출
    이데올로기」가 온 사회를 지배한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많은
    경제전문가와 전문 저널리스트들은 마치 「수출은 선이요 수입은 악」인 것처럼,
    그리고 「수출업자는 애국자요 수입업자는 매국노」라도 되는 것처럼 선동한다.
    하지만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는 전혀 없다. 

    경제정책의 목표에는 경제생활의 안정 등 다른 것도 포함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부(國富)의 증진이다. 그리고 일찍이 애덤 스미스가 갈파한 바와 같이
    국부는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생필품과 편의품의 양」을 의미한다. 

    경제활동의 목적은 생산이 아니라 소비다. 생산은 어디까지나 소비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것은 저축이 「현재 소비의 포기」이며, 「미래의 소비」를
    위한 수단인 것과 마찬가지다. 


                  서울 거리에 외제차가 굴러다닌들… 


    소비가 생산의 목적이라면 수출의 목적은 수입이다. 수입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직접 생산하지도 않은 것을 소비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수입은 선이다. 

    반면 수출은 우리가 만든 물건을 소비하지 않고 외국 사람에게 내주는 행위다.
    수출 그 자체는 악이다. 수출이 선이 되는 것은 수출을 해야 수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업자가 수입에 필요한 외화를 벌어옴으로써 「애국」을 한다면,
    수입업자 역시 좋은 물건을 싼 값에 사다가 소비자에게 공급함으로써 「애국」을
    한다.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돼 원화가치가 폭락하고 외채를 갚기 위해서 한 푼의
    달러라도 더 벌어야 하는 요즘 같은 시절에는 「한시적으로」 「수출이 선이요
    수입은 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도 이러한 선악의 구분은
    국민의 절대다수인 소비자의 희생과 극소수 수출업자들의 엄청난 축재라는
    「불가피한 사회악」을 전제로 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원화가치 상승은 악이 아니다. 외채위기가 없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것은
    선이다. 수출업자는 손해를 보겠지만 소비자인 국민은 같은 값으로 더 많은
    상품을 사거나 더 좋은 물건을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을 예외로 하면, 서울 거리에 BMW나 벤츠 자동차가 굴러
    다니는 것도 좋은 일이다. 왜?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평생 창의적으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좋은 차 타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국민 위화감을 거론하는 것은 고약한 선동이다. 만약 모두가 정당하게 경쟁해서
    번 돈이라면 외제차를 탄다고 욕할 이유가 없다. 도둑질과 부정부패가 판친 결과
    그러한 빈부격차가 생겼다면 그걸 바로잡아야지 외제차 못 타게 해서 감추어
    봐야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 

    과소비 타령 역시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흔히 신문방송에 나와서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과소비를 지목하지만 제 정신 가진 경제학 교수치고
    강의실에서까지 그런 소리를 하는 이는 없다. 이론적으로 볼 때 과소비는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소비는 소득을 초과할 수 없다. 소득 가운데 어느 정도를
    소비하는지는 개인의 선호와 습관과 인생설계에 달려 있다. 

    몇 %를 저축해야 과소비가 안 되는지를 「객관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국산품을 사든 외제품을 사든 소득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몫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처럼 외채가 많을 때는 되도록 국산품을 쓰는 것이 국민경제를
    위해서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입품의 소비 그 자체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이유는 없다. 

    「국산품 애용주의」는 한국 기업이 소비자를 손쉽게 등쳐먹는 데 퍽 쓸모 있는
    이데올로기다. 「수출 애국주의」는 외환위기로 인한 환율 상승의 최대 피해자인
    소비자들을 찍소리 못하게 만드는 수출업자들의 이데올로기적 무기다. 환율
    변동에 대한 모든 보도의 이면에는 이런 이데올로기의 칼날이 숨겨져 있다.
    이렇게 해서 다수의 이익은 무시당하고 소수의 이익은 효과적으로 조직되는
    것이다. 


                     환율변동 자체보다 속도가 문제 


    환율이 오르내리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행이 통화량을
    늘려서 물가가 뛰면 당연히 원화가치가 떨어져야 하고 또 실제로도 그렇게 된다.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돼도 원화가치가 떨어져야 한다. 그래야 수출이 늘고
    수입이 줄어 대외적 불균형이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투자자금이
    지나치게 많이 몰려드는 경우에도 환율 인상은 이자율 하락과 더불어 불균형을
    교정하는 균형회복 장치로 작동한다. 문제는 환율 변동 자체가 아니라 그
    속도다. 

    외환 거래는 원래 독립적 존재의의를 가진 행위가 아니라 단지 실물거래를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한 보조적 행위일 뿐이다. 그런데 지구촌 시대의 현대화된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외환거래가 자산 증식을 추구하는 투기 무대로 독립적
    성격을 획득했다. 소수의 「큰손」과 그 뒤를 따르는 무수한 「작은손」과
    「개미군단」 투자가들이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떼거리를 지어 똑같은 행동을
    하기 때문에, 환율은 실물경제의 움직임을 앞질러서 또는 그와 전혀 무관하게
    단기적 등락을 거듭한다. 

    환율이 이처럼 단시간 안에 큰 폭으로 요동치면 상품과 서비스의 국제적 거래에
    따르는 리스크가 높아진다. 그리고 리스크가 높을수록 기업은 안정된 계획을
    세우기 어려워지고, 이것이 각국의 국민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환율이 오르든 내리든 변동 속도와 폭을 완화하기 위해서 정부가 개입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외환시장의 안정을 위한 정부의 개입은 「대칭적」이어야 한다.
    수출업자들은 환율이 급등할 때는 무역금융 지원을 요구하고, 환율이 떨어질
    때는 「적정환율」을 들먹이면서 정부가 달러를 사들여 고환율을 유지하라고
    소리를 질러 「비대칭적」 환율정책을 유도하려고 한다. 사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수출업자들로서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하지만 공익의 극대화를 추구해야 할 정부가 이처럼 「잘 조직된 소수집단」의
    작전에 놀아나서는 곤란하다. 지금 정부의 경제팀은 고환율을 방어하라는
    수출업자의 요구에 대체로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정부가 이런 태도를 굳건히
    견지하도록 도우려면, 「조직되지 않은 절대다수」인 소비자들이 수출업자의
    이익을 경제이론으로 포장하는 일부 경제전문가들의 주장을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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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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