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conom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2월 30일 수요일 오후 09시 12분 28초 제 목(Title): 유시민/달러,유러,엔화의 치열한 샅바싸움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경제이야기 달러·유러·엔화의 치열한 샅바싸움 유시민 〈경제 평론가〉 ------------------------------------------------------------------------------- - 얼마 전 일본을 방문한 김종필(金鍾泌) 국무총리는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 필요성을 역설하고 일본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했는데, 본인 말로는 그게 다 「개인적 입장」을 말한 것일 뿐이라고 한다.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 「개인적 입장」을 밝히려면 그 잘 하는 일본말로 일본 신문에 기고를 하든가 호주머니를 털어 「개인적으로」 갈 일이지, 무엇 때문에 대통령 전용기씩이나 타고 「공식방문」을 한다는 말인가. 김종필 총리가 주장하는 아시아통화기금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단순히 「아시아판 IMF」인가, 그와는 다른 무엇인가? 그리고 거기서 일본이 무슨 주도적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일까. 혹시 이런 발상은 아닐까.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이 꽉 잡고 있고, 통화동맹을 창설한 서유럽 산업국가들은 99년부터는 유러(Euro)라는 신종화폐를 도입해 2002년에는 마르크와 프랑 등 기존 화폐를 모두 없애버린다고 하니까, 아시아도 무언가 하긴 해야 할 것도 같다』 ------------------------------------------------------------------------------- - 「화폐 위조범」과 중앙은행의 차이 ------------------------------------------------------------------------------- - 국제통화기금이든 아시아통화기금이든 다 돈에 관련된 기구니까, 이 문제를 다루려면 화폐이론에 대해 우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로체스터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스티븐 랜즈버그라는 사람이 있다. 랜즈버그는 자신의 저서 『안락의자의 경제학자(The Armchair Economist)』 제2장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주연배우나 대학의 초청 강연자들이 돈을 불태우면서 『돈은 그저 종잇조각에 불과하며, 먹을 수도, 마실 수도, 같이 잘 수도 없고, 돈이 없어진다고 해서 세상이 더 나빠지지도 않는다』는 식의 「감동적인 말」을 하는 데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수준 높은 청중들은 이 논리가 석연치 않다고 느낀다. 하지만 틀린 것은 그 석연치 않은 느낌이다. 누군가 하루 저녁 내내 돈을 불사른다고 해도, 이 세상 전체의 부(富)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돈 1달러가 재로 변하면 통화공급이 아주 조금 줄어들고, 경제 전체로 보면 물가도 감지할 수 없을 만큼이긴 하지만 분명히 하락한다. 이 사건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돈이 불타는 그 순간에 현찰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1달러 지폐 한 장을 불태움으로써 발생한 물가 하락 덕분에 재산 가치가 늘어난 현찰 보유자의 이익을 모두 합치면 1달러를 불태운 사람의 손실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랜즈버그의 말대로 돈을 불태워도 사회 전체에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만약 누군가 1달러 지폐를 만들어 유통시켰는데, 그 지폐가 진짜 돈과 너무나도 똑같아서 아무도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눈치챌 수 없다면. 사회 전체의 부는 물론 증가하지 않는다. 통화량이 늘어서 물가가 「감지할 수 없을 만큼이지만 분명히」 오르게 되면, 현찰을 가진 모든 사람이 조금씩 손해를 본다. 그 손해를 다 합치면 정확히 화폐위조범이 얻은 이익과 일치할 것이다. 화폐위조범은 현찰을 가진 모든 사람의 재산을 조금씩 훔치지만 사회 전체의 부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성공한 쿠데타」는 아무리 깔끔하게 성공을 해도 언젠가는 단죄받아야 할 범죄행위다. 하지만 「성공한 화폐 위조」를 처벌하는 것은 정말로 불가능하다. 가장 완벽한 「화폐 위조범」은 각국 중앙은행이며, 그들이 화폐를 찍을 때마다 현찰을 가진 사람은 손해를 본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화폐 발행은 완전히 합법적이다. 어떤 개인이나 마피아 조직이 중앙은행만큼 완벽하게 화폐를 찍을 수 있다면, 그들의 행위는 적발될 가능성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중앙은행이 화폐 공급을 통해서 그렇게 하듯 때로는 사회 전체의 부를 증가시키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물론 중앙은행이 「화폐를 공급」해서 번 돈은 국고에 귀속되고, 마피아가 「화폐를 위조」해서 생긴 돈은 마피아 두목 호주머니에 들어간다는 차이는 있지만, 두 집단이 한 일 자체는 근본적으로 똑같다. 중앙은행을 화폐 위조범과 비교한 것은 국가기관을 모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불환화폐(不換貨幣)」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불환화폐의 원년은 미국 정부가 달러의 금 태환(兌換) 중지를 선언한 1971년이며, 이 선언은 수천 년 화폐의 역사를 뒤집어버린 하나의 혁명이었다. 인간이 교환의 매개수단인 화폐의 양을 금이라는 자연자원의 생산량에 종속시켰던 금본위제 시대를 끝내버렸기 때문이다. 그 이후 화폐의 양은 금의 산출량과 무관하게 늘어났고, 금은 가장 중요한 국제적 결제수단이라는 전통적 지위를 빼앗겼다. ------------------------------------------------------------------------------- - IMF의 탄생과 한계 ------------------------------------------------------------------------------- - 우리나라에서는 97년 말 외환위기와 더불어 비로소 유명해진 IMF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사람들 일상에는 별다른 영향을 준 바 없는 이 「혁명」의 전후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IMF의 「원적지」는 1944년 7월 미국과 영국 등 44개국 대표가 모여 전후 국제통화질서 재건 방안을 논의한 미국 뉴햄프셔 주의 조그만 시골마을 브레턴 우즈다. 여기서 창설 합의가 이루어졌고 다음해인 45년에 출범한 IMF의 임무는, 한 마디로 말해서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국제적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는 일이었다. IMF 체제의 기본원리는 무척 단순하다. 우선 세상의 중심에 달러가 있다. 모든 회원국가는 자국 화폐와 달러의 교환비율을 정한다. 시장환율이 그 교환비율을 중심으로 상하 1%를 벗어나지 않도록 회원국들이 협력하며, 불가피하게 10% 이상의 큰 폭으로 환율을 변동시킬 때는 회원국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세상의 중심인 달러가 진정한 가치를 지닌 화폐임을 과시하기 위해서 달러와 금의 교환비율을 정하고, 미국은 달러 발행 규모의 일부를 금으로 보유하면서 요구가 있으면 달러와 금을 바꾸어 준다. 그리고 회원국들은 능력에 따라 돈을 내서 기금을 조성한다. 어떤 회원국이 일시적인 외환부족 사태에 빠지면 신속하게 이 기금을 빌려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벌어준다. 이것은 표면상 달러를 중심으로 짜인 체제였다. 그러나 달러는 여전히 태환화폐였기 때문에 아직은 낡은 「금본위제」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 체제는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첫째는 자국 통화량을 관리하는 권한이 회원국 정부에 있다는 점이다. 통화관리를 엄격히 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는 물가인상률이 다르고, 인플레가 심한 나라 화폐는 그 가치가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IMF의 고정환율제도에는 이러한 물가 변동을 환율에 자동적으로 반영하는 메커니즘이 결여돼 있었다. 둘째는 기축통화인 달러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달러 시세가 약화될 경우, 달러와 금의 교환비율을 조정해야 한다. 만약 이것을 조정하지 않으면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서 엄청난 이익을 볼 수 있다. 태환을 중지할 경우 달러는 신인도를 잃게 돼 국제적 고정환율 시스템 전체가 요동치게 된다. 실제로 60년대 후반에 이런 사태가 일어났다. 미국 정부는 베트남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서 달러를 무더기로 찍었다. 각국 중앙은행은 금보다는 달러로 외환보유고를 쌓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디서나 달러 보유고가 올라갔기 때문에 모든 나라 정부들이 그걸 자랑하면서 만족해했다. 그런데 시골 벽지의 할머니까지도 「요즘은 달러가 너무 흔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60년대 후반이 되자 사태는 달라졌다. 미국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았던 프랑스의 민족주의자 드골 대통령은 달러가 생기는 족족 금으로 바꿔 보유하라고 지시했고, 프랑스 중앙은행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독일은 미국과 갈등을 빚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소극적이었다. 만약 독일 연방은행 총재가 드골과 같은 짓을 했다면 「브레턴 우즈 체제」는 훨씬 일찍 무너져 버렸을 것이다. 어쨌든 막대한 금 유출 사태 때문에 더 견딜 수 없게 된 미국 정부는 71년 달러의 금태환 중지를 선언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태환화폐 시대는 마침내 완전히 막을 내렸으며, 고정환율제도는 수요와 공급이 환율을 결정하는 시장 시스템에 자리를 내 주었다. ------------------------------------------------------------------------------- - AMF 창설 제안의 의미 ------------------------------------------------------------------------------- - 고정환율제도가 무너지면서 IMF는 존재 근거를 상실했다. 하지만 어떤 조직이든 일단 만들어진 것이 저절로 사라지는 일은 없다. 한국이 환란에 휩쓸린 직후 마치 점령군 제독처럼 당당한 걸음걸이로 서울에 입성했던 캉드쉬 총재는 이른바 「IMF 관료」의 대표자다. 고정환율제도의 유지라는 원래의 임무를 잃어버린 「IMF 관료」들은 재빨리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경제위기에 빠진 나라에 자금을 장기대부해 주면서 그 나라의 경제정책에 대한 자문(사실은 간섭과 통제)을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70년대 중반 라틴 아메리카에서 시작해 90년대 말 아시아의 신흥공업국에 이르기까지, 경제위기에 빠진 나라의 경제정책에 대한 「IMF 관료」들의 개입과 통제는 브레턴 우즈 협정에 명시된 IMF의 임무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김종필 총리의 「일본 주도론」은, 통화기금을 만들자면 누군가 전주(錢主)가 있어야 할 테고, 이런 점을 고려하면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부자 나라가 바로 일본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일본이 아시아 경제의 안정을 위해서 「마음씨 좋은 전주 노릇」을 한다? 좋은 이야기다. 그런데 김 총리에게 한번 물어 보자. 일본이라는 나라가 자선사업 단체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 게 있다고 전주 노릇을 하겠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미국이 IMF 창설을 주도한 속내를 좀 들춰볼 필요가 있다. IMF의 「정신적 대부」는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였다. 브레턴 우즈 회의 당시 케인스는 달러가 아니라 인공적인 국제화폐를 만들어 기축통화로 삼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미국측 대표는 막강한 경제력과 국제정치적 힘을 빌려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IMF 창설안을 밀어붙이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패권주의나 미국적 자존심의 표현이 아니었다. 미국은 달러를 중심으로 한 국제통화체제를 창설함으로써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챙겼다. 간단한 방정식을 가지고 이야기해 보자. MV=PQ(M은 통화량, V는 화폐유통속도, P는 물가수준, Q는 거래량) 한 해 동안 거래된 재화의 양에 물가수준을 곱한 우변은 한 국민경제에서 이루어진 거래의 총액이다. 좌변은 그 국민경제의 통화량에 화폐유통속도를 곱한 것이다. 어떤 거래든 거래가 이루어지면 그에 상응하는 화폐가 오가야 하기 때문에, 사후에 측정할 경우 양변의 크기는 항상 같다. 이 방정식은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 팔 때는 그 값만큼의 돈이 오간다는 당연한 상식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업과 가계의 자산 보유행태와 관련된 화폐유통속도(V)가 일정하다고 가정하면, 이 화폐교환방정식은 흥미로운 경제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유력한 가설이 된다. ------------------------------------------------------------------------------- - 달러 사용, 공짜는 없다 ------------------------------------------------------------------------------- - 이제 방정식을 국제교역에 적용해 보자. 우변의 P는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상품의 가격수준이다. Q는 거래되는 상품의 양이다. 화폐유통속도(V)는 변하지 않는다. M은 국제결제에 사용되는 화폐의 양이다. 마르크나 엔화도 국제결제에 사용되지만 편의상 다른 화폐를 무시하면 M은 곧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달러의 양이다. 여기서 가격(P)이 일정한 가운데 국제교역량(Q)이 늘어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방정식 양변의 크기가 일치하려면 달러의 양(M)이 같은 비율만큼 늘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가격(P)이 내려야 하는데, 이건 바로 디플레이션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격이 충분히 신속하게 내리지 않을 경우 이 방정식의 양변이 일치하려면, 국제교역량(Q)의 성장이 지체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다시 감소해야 한다. 30년대 대공황 기간에 국제통화질서가 무너져 국제결제 수단이 부족해지자 발생한 국제적 디플레이션과 파국적인 교역량 감소사태는 그 극단적인 사례였다. 이런 사태를 피하려면 국제결제수단인 달러 통화량이 국제교역의 양이 증가하는 데 발맞추어 늘어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달러 양은 어떻게 해서 늘어날 수 있을까. 첫째는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보는 것이다. 미국은 전후 50년 동안 끝없이 달러를 찍어냄으로써 이 요구에 부응했다. 미국 국민은 50년 동안 종이에 잉크를 묻혀서 만든 달러를 주고서 전세계에서 만든 제일 좋은 물건을 가져다 썼다. 수조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 누계에도 불구하고 달러가 휴지쪽으로 변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며, 이런 일은 오직 미국만이 할 수 있다. 둘째는 IMF를 통해서든 직접적으로든 미국 정부와 기업이 달러를 해외에 빌려 주거나 투자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달러는 미국 연방준비은행에서만 찍으며, 이 달러를 시중에 내보낼 때는 그냥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자를 받고 내보낸다. 이 두 경로가 있기 때문에 미국 연방준비이사회가 달러 통화량을 늘릴 경우 늘어난 달러의 일부만 국내에 남고 나머지는 나라 밖으로 흘러나간다. 얼마 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환란 직전 40억 달러도 안 되던 가용외환보유고가 400억 달러를 넘어섰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400억 달러가 넘는 가용 외환을 보유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리다. 연리 10%만 잡아도 그 외환보유고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연간 40억 달러나 된다. 하지만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90년대 초 IMF 연차보고서를 보면 중앙은행 보유 외환을 포함한 회원국의 금융자산 및 자본거래에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50%가 넘는다. 90년대 후반 들어 비중은 더욱 높아졌다. 달러로 결제하는 전세계의 모든 수출입업자와 여행자, 달러를 보유한 전세계의 모든 개인과 기업과 금융기관과 중앙은행이 달러 발행 독점권을 가진 미국연방준비은행에 달러 사용 대가로 이자를 지불하고 있다는 얘기다. ------------------------------------------------------------------------------- - 기축통화 달러화의 특권 ------------------------------------------------------------------------------- - 대학에서 가르치는 경제학을 지배하는 도그마는 「한계 법칙」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어떤 재화든 마지막 한 단위를 생산하는 데 드는 「한계비용」이 가격과 같아질 때까지 생산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화폐는 어떨까? 일정량의 금과 교환해 주지 않는 100달러짜리 불환지폐의 한계생산비는 거의 제로라고 할 수 있다. 가계가 이 지폐를 사용하는 값은 이자율을 연리 10%로 잡으면 연간 10달러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이 돈을 연리 5%로 시중은행에 꾸어주면 연간 5달러를 번다. 시중은행은 이 돈을 아시아 어느 나라 은행에, 예컨대 연리 10%로 꾸어주면서 두툼한 마진을 챙긴다. 모든 나라의 중앙은행은 자국민을 상대로 이렇게 장사를 해서 해마다 막대한 이문을 남기는데, 이것을 전문용어로는 「시뇨리지(seiniorage)」라고 한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별난 점은 이 장사를 미국 국민만이 아니라 전세계인을 상대로 한다는 것이다. 브레턴 우즈에서 미국 대표단이 달러를 기축통화로 밀어붙인 것은 기축통화의 발행권 독점과 결부된 이러한 경제적 특권을 챙기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해마다 챙기는 「시뇨리지」는 500억 달러 수준으로 추산되는데, 그 대부분이 사실은 달러를 결제수단으로 쓰는 외국에서 온 것이다. 미국 금융기관이 간접적으로 누리는 혜택까지 고려하면 미국이 달러 지폐를 발행해서 벌어들이는 경제적 이익의 규모는 훨씬 더 커진다. 유럽 통화동맹의 배후에 깔린 계산도 이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국제결제에서 마르크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19% 수준이었던 90년대 초,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해마다 150억 마르크, 미화로 100억 달러 내외의 당기순이익을 남겼는데, 이 이익의 원천은 바로 독일 국내외에서 취득한 「시뇨리지」였다. 유러화가 도입되면 환전에 따르는 비용과 유럽연합 역내에서의 환율 변동 관련 리스크가 사라진다. 92년과 93년에 헤지펀드가 파운드, 프랑, 페세타 등 유럽연합 주요 회원국 화폐를 잇따라 공격함으로써 야기되었던 환율파동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회원국들의 통화량 조절에 대한 국가 주권을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에 넘겨주면서까지 통화통합을 추진하는 유럽연합의 「야망」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극단적 자유주의자」 하이예크는 국가의 화폐발행권 독점을 철폐함으로써 경쟁을 통해서 가장 안정된 화폐가 생존하게 하자는 극단적인 주장을 한 바 있다. 하나의 국민경제 안에서 이 제안을 실현할 길은 없다. 그런데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이런 주장을 아예 할 필요가 없다.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국제무대에서 가장 환영받는 화폐는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그 가치의 안정성이 가장 확실하게 보장되는 화폐다. 국제결제에서 달러와 마르크, 엔과 프랑 등의 화폐가 차지하는 비중은 당해 화폐의 안정성에 대한 시장의 평가에 좌우된다. 유럽연합은 미국과 맞먹는 경제력을 가진 거대경제단위이며 유러화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유럽연합을 대표한다. 만약 유러화가 달러에 맞먹는 또는 달러를 능가하는 안정성을 확보한다면 국제무대에서 달러를 밀어내고, 미국경제가 지금까지 취득해 온 막대한 규모의 「시뇨리지」 가운데 일부를 빼앗아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유럽연합 회원국 지도자들 사이에는 장차 유럽중앙은행의 당기 순이익 형태로 얻게 될 「시뇨리지」를 어떻게 나누어 가질 것인지를 둘러싸고 팽팽한 물밑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다. ------------------------------------------------------------------------------- - JP 「일본 주도론」의 허구성 ------------------------------------------------------------------------------- - 김종필 총리는 단기성 자본이동으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금융위기를 방지 또는 완화하기 위해서 아시아 국가들이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하고, 거기서 일본이 경제력에 걸맞은 역할을 주도해주기를, 다시 말해서 돈을 많이 내기를 바라는 것 같다.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이런 주장을 하려면 몇 가지 문제를 더 따져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째, 일본은 돈을 내는 대신 무슨 반대급부를 받을 것인가. 최근 일본 금융계에서 「시뇨리지」를 둘러싼 논의가 일고 있는 것을 보면, 일본은 그 대가로 아시아의 역내 교역에서 엔화를 기축통화로 삼는 「엔통화권」 구축을 원할 것이다. 국제결제에서 엔화가 차지하는 비중을 예컨대 20% 수준으로 높일 수만 있다면 달러와 유러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화폐들의 자유경쟁」에서 엔화가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아시아 국가들이 아시아통화기금의 잠재적인 수혜자가 될 수 있다고 해도 그게 수지맞는 거래라고 할 수 있을까. 엔화가 달러나 유러에 비해서 안정성이 떨어지는데도 엔화자산을 보유하거나 엔화 결제를 함으로써 떠안는 불이익보다 일본이 전주 노릇을 하는 아시아통화기금을 만들어서 얻는 이익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엔 통화권」 덕에 생긴 「시뇨리지」는 일본이 현찰로 독차지하지 않는가. 둘째, 과연 일본이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아시아의 경제적 통합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미국이 브레턴 우즈 체제라는 달러 중심의 국제금융질서를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최대의 경제력에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전으로 주도한 나라로서 압도적인 정치군사적 헤게모니를 가졌기 때문이다. 유럽이 통화통합에까지 이른 것은, 통합이 아니라 패권을 추구하다가 「유럽의 내전」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벌인 쓰라린 경험과, 유럽석탄철강공동체에서부터 유럽경제공동체, 유럽통화체제(EMS) 구축, 역내관세 철폐와 국경 개방 등 50여 년에 걸친 진지한 통합 노력의 결실이다. 그런데 아세안과 동북아시아 사이에, 동북아시아에서도 일본과 한국과 중국 사이에 그러한 심리적 공감대나 상호접근과 협력을 위한 노력이 있었는가. 미국처럼 강력한 헤게모니를 가진 국가라도 있는가. 이런 상황에 일본이 돈을 좀 많이 낸다는 이유만으로 주도권을 행사할 경우, 그렇게 만들어진 기구가 변화하는 상황과 갑작스러운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위기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기 위해 결속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좋은 일이다. 나프타를 중심으로 아메리카 대륙이 하나의 경제블록으로 나아가고 유럽이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단일 경제단위로 나아가는 추세와 아울러 급격히 증가하는 아시아의 「역내 교역」 규모를 고려하면 아시아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지역적 협력과 결속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과 결속이 꼭 김총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아시아통화기금 형태여야 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 총리가 「일본 주도론」을 말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든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게 꼭 필요하다고 본다면, 김총리는 먼저 국내 언론에 그 이유를 밝히는 글이라도 한 편 발표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실질적인 대화와 토론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 - Copyright(c) 1998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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