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onggukUniv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아! 고려..�x) 날 짜 (Date): 1995년08월20일(일) 17시33분36초 KDT 제 목(Title): 조선 왕조 500년 [1] 역사상 가장 통치기구가 완벽하였고, 위계 질서가 철저하였던 나라...어쩌면.. 중국이라는 나라보다 그 신분적 질서가 엄격했던 나라.. 그러한 나라의 탄생 배경은 바로 위화도 회군 이라는 쿠데타적인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한 나라 장군의 권력을 위해, 존재하였던 역사의 후퇴... 이것은 우리민족의 건국이래 최대의 민족적 역사적 후퇴가 아닐까... 보통 왕조의 교체는 기존 왕조의 부패와 타락, 기상이변의 연속.. 외세의 침략 등등의 내외부적인 문제가 심각한 나머지 발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위화도 회군의 시대적인 배경과 그당시 사회상을 볼때에 이 쿠데타적 사건의 성격은 기존의 왕조 교체와 조금 다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왕조의 교체는 여러가지 합병적 문제점에 의해서 몰락을 하였지만, 그당시 고려는 그러한 심각한 문제점은 없었다. 몽고는 내부 왕권과 그 넓은 국토의 분리로 인해 국운이 서서히 기울고 있었고, 고려는 몽고의 지배하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으며 조금씩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하였다. 천재적인 통치술로 고려의 안정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던 공민왕 이후로 조금씩 국토 확장을 가다듬었다. 그것이 바로 위화도 점령이라는 일대 군사적 작전이었다. 만약 그당시 고려 왕조가 위와같이 부패하고 타락하였다면 십만이라는 대군을 언제 정비하였으며, 군사 작전을 펼 수 있었겠는가. 조금씩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하였다. 천재적인 통치술로 고려의 안정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던 공민왕 이후로 조금씩 국토 확장을 가다듬었다. 그것이 바로 위화도 점령이라는 일대 군사적 작전이었다. 만약 그당시 고려 왕조가 위와같이 부패하고 타락하였다면 십만이라는 대군을 언제 정비하였으며, 군사 작전을 펼 수 있었겠는가. 그 십만이 위화도가 아닌 만주로 만주로, 그 엣날 고구려의 함성을 외치며 달려 나아 갔다면... 역사는 재평가 되기 마련이다. 한글의 탄생의 근원적 배경, 성왕이라고 일컫었던 영정조의 정치적 실패... 국가 기반의 시대적 착오... ... |